Dolores O’Riordan “Are You Listening?”

Cranberries의 바로 그 분의 2007년 솔로작. 시절이 시절인지라 이 분은 물론 Cranberries의 좋았던 시간은 이미 지나간 지도 좀 된 시점이었고, 그러니 이 앨범을 많은 이들이 기대에 부풀어 기다렸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겠다. 그런 면에서는 Richard Ashcroft의 솔로 앨범과도 비슷하다 할지도? 그러니 이 앨범도 나오자마자 라이센스로 등장하던 그 시절도(물론 가장 좋았던 시절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이런 얘기로 시작하니 나이먹은 티가 너무 나므로 각설하고.

Cranberries 이후 시간은 꽤 지나 나온 앨범이지만 음악은 Cranberries 시절의 스타일과 크게 차이는 없다. 애초에 Cranberries의 송라이터면서 밴드의 색채(와 각종 사건사고)를 대표했던 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걸 본인도 알고 있어서 일부러 의도했음인지 앨범은 Cranberries의 앨범보다는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싱글 커트한 ‘Ordinary Day’는 안전하게 Cranberries 스타일이지만, 살짝 트립합 느낌을 담은 ‘Human Spirit’이나 Evanescence를 살짝 따라한 듯한 ‘In the Garden’이나 ‘Black Widow’ 등은 Cranberries의 전형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물론 그래봐야 Dolores의 보컬이 영락없는 Cranberries의 b-side 같은 인상을 덧칠하긴 하지만, 이 분이 그리 노래 못하는 분도 아니고 결국은 타고난 목소리 때문인 것을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은가.

‘Loser’의 철 지난 발랄함은 차라리 없었으면 나았겠다 싶긴 하지만 썩 괜찮게 들었다.

[Sequel, 2007]

Asia “Fantasia – Live in Tokyo”

80년대 초반 프로그 씬이 더없이 지리멸렬해지고 씬의 거물들이 결성했던 팝스 지향형 밴드들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단연 엄지손가락의 자리에는 역시 Asia가 있을지어다. 일단 브리티쉬 프로그 근본 중의 근본에 가까운 멤버들이 모여 만든 밴드인지라 개개인의 기량도 그렇고, 걸출한 프로그 밴드들 출신답지 않게 약간의 프로그 레떼르가 녹아 있긴 하다만 비슷한 다른 밴드들보다도 더욱 명료한 구성의 팝을 연주한지라 본진의 팬들에겐 욕을 먹었을지언정 나 같은 귀 짧은 이들을 사로잡기에는 더할나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25년만의 Asia의 원년멤버들이 다시 모여 가진 라이브를 담은 이 앨범은 그 자체로 눈길을 모으고, 이 멤버들이 라이브에서 내놓은 셋리스트는 Asia의 주요 넘버들만이 아니라 멤버들이 거쳐 온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핵심 밴드들의 명곡들을 아우르고 있다. ‘Roundabout’이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Fanfare for the Common Man’ 같은 곡이 셋리스트에 자연스레 끼어들 수 있다는 게 이 슈퍼 밴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Geoff Downes 덕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까지 끼어드는 셋리스트는 이걸 현장에서 봤다면 되게 뜻깊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이 빠져도 많이 빠진 John Wetton의 목소리와 밴드의 확실히 예전같지 않은 에너지는 이 앨범을 ‘nostalgia trip’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되는 ‘Don’t Cry’ 등 “Alpha”의 수록곡들은 이 힘 빠진 공룡의 처진 어깨를 더욱 부각시키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그나마 John Wetton과 Carl Palmer가 Chris Squire와 Bill Bruford의 한창시절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한 ‘Roundabout’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느낄 수 있지만, Asia 앨범 얘기를 하면서 이 앨범의 장점을 ‘Roundabout’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본전 생각까진 아니지만 아쉬움을 지울 순 없을 라이브 앨범이다.

[Eagle, 2007]

Cyan “Pictures from the Other Side”

SI Music의 발매작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높은 금액대에 거래되곤 하는 앨범이긴 한데 애초에 SI Music 발매작들을 그 돈 주고 모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저게 말이 되는 가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걸 한 20년 전 중고로 만원 주고 샀던 건 그때야 몰랐지만 꽤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받아줄 이는 별로 없겠다만 자랑으로 하는 얘기다.

훗날 Magenta의 핵심으로 이름을 날리…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브리티쉬 프로그의 주목할 만한 이름 정도로는 명함을 내밀었던 Robert Reed의 원맨 프로젝트인데, 훗날 Magenta에서도 마이크를 잡게 되는 Christina Booth가 여기서도 Nigel Boyle와 함께 보컬을 맡고 있다. 이 Nigel Boyle은 Just Good Friends의 보컬로도 활동했던 나름 잔뼈 굵은 인물이라는 게 넷상의 설명인데, 나로서는 전혀 생소한 이름인지라 그냥 Robert Reed가 이름값 무일푼이던 시절 나름대로 실력자들을 발굴해서 만든 프로젝트…정도로 이해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음악은 비교적 70년대 프로그의 그림자가 짙었던 Magenta와는 달리 좀 더 80년대 네오프로그에 다가간 스타일에 가깝다. 마냥 듣보잡인 것처럼 소개해서 그렇지 저 Nigel과 Christina의 보컬도 준수하고, 적당히 팝적이고 과장되어 있지만 심포닉한 기운도 잊지 않은 건반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특히나 Marillion 따라잡기를 꽤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Solitary Angel’이나 심포닉 네오프로그 밴드로서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The Guardians’가 인상적인 편인데, 그러다가 앨범의 마지막 ‘Nosferatu’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프로그메탈 연주는 준수하면서도 갑자기 왜 이런 게 나오나 하는 어리둥절함을 던져준다. 힘쓴 건 알겠는데 나 같으면 다음 앨범에 넣었을 것이다. 말하고 보니 다음 앨범이 나올 거라 장담하긴 좀 어렵긴 했겠구나.

[SI Music, 1994]

Atomic Rooster “Made in England”

흔히 프로그레시브 록 얘기할 때 나오는 이름이긴 하다만 이 밴드의 단연 최고작 하나를 꼽는다면 내 생각에는 밴드가 별로 프로그레시브하지 않기 시작했던 이 앨범이다. 일단 청바지 기지를 끊어 만든 저 호기 넘치는(넘치다못해 미쳤다 싶은) 커버와 빛나는 밴드의 공격성은 이 시절 영국에서 활동한 수많은 인걸들 가운데에서도 더욱 빛나는 사례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인터넷상의 ‘블루 아이드 소울 스타일이 묻어나는’ 식의 소개문구만 보고 프로그는 커녕 대체 이게 뭐냐! 하고 이 앨범을 넘겨 버리는 건 무척 곤란하다.

말이야 이렇게 하지만 밴드의 그 공격성 가운데 소울의 기운이 강하게 묻어나는 건 분명하다(그러니까 저 소개문구가 사실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애초 Chris Farlowe의 보컬 자체가 소울풀한 것도 있겠지만 잊을만 하면 들려주는 펑키한 전개와 그루브, 전작에 비해 확연히 줄어든 오케스트레이션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브라스 섹션은 밴드가 이 앨범에 와서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접어들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Vincent Crane의 Keith Emerson 따라잡기가 돋보이는 ‘Breathless’나 ‘Time Take My Life’ 같은 곡의 프로그함도 있긴 하지만 결국 이 앨범의 핵심은 Atomic Rooster 식의 적당히 소울풀한 브리티쉬 하드록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긴 그러니까 앨범명부터가 “Made in England”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만큼은 해서 Dawn 퍼스트 프레싱으로 한 장 구해보고 싶은데… 상태 그럭저럭인 물건이 5천유로를 찍어주는지라 오늘도 입맛 한번 다시고 넘어간다. 하지만 갖고 싶다.

[Dawn, 1972]

Wolfsheim “Casting Shadows”

Depeche Mode 이후의 신스팝 밴드들이 대개 그랬듯 Depeche Mode 아류라는 식의 딱지를 떼어낼 순 없었지만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좀 많이 억울했을 독일 신스팝 듀오의 마지막 앨범. Depeche Mode도 “Some Great Reward”부터는 마냥 댄서블한 신스팝 밴드로 부르기엔 많이 어려워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Wolfsheim의 음악은 처음부터 이미 그보다 더 어두운 스타일이었다. 딱히 팝적이지 않은 적도 없었지만 내놓는 앨범의 어느 정도는 항상 다크웨이브에 흡사할 정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Casting Shadows”도 다르지 않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전작에 비해서 은근히 다채로워졌다는 점인데, 은근히 트랜스도 섞여들어가고(‘Care For You’), 락스타를 꿈꾸던 Depeche Mode를 의식한 듯한 모습도 있으며(‘I Won’t Believe’) 원래 잘 하던 것도 잊지 않고 보여준다(‘Kein Rück’). 하지만 아무래도 이 듀오의 팬베이스의 절반은 Peter Heppner의 음울한 목소리일 것이고, 다양하다지만 결국 앨범을 관통하는 멜랑콜리함은 일관된만큼 막상 앨범을 다 듣고 나서 그런 차이점이 얼마나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가끔은 Human League의 업데이트된 버전 같았던 “Spectators”에 비해 이 앨범이 좀 더 심심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때문일지도? 하지만 21세기에 여전히 신스 팝(과 Strange Ways의 발매작들)을 듣는 이들이라면 그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Depeche Mode는 2001년 “Exciter”를 내놓고 바야흐로 커리어의 바닥을 찍고 있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이 앨범이 나오던 시점에서는 Wolfsheim이 Depeche Mode보다 세련된 사운드를 구사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뭐 당신 말씀이 맞겠죠.

[Strange Ways,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