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hty Sphincter “The New Mansion Family”

전설적인 애리조나 출신 고쓰 밴드라고 하는 듯하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다. 그나마 좀 알려진 얘기는 이 앨범은 떡하니 Alice Cooper가 프로듀스했다고 라이너노트에 쓰여 있기는 하나 사실은 Alice Cooper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더라… 레코딩과 믹싱을 맡은 Allen Moore는 찾아보니 바로 저 레이블 사장이라고 하던데, 아무래도 밴드 멤버들의 꾀죄죄한 행색과 음악에 히트와는 백만년은 떨어진 듯한 거리감을 느끼고 과감한 어그로…를 끌어본 건 아닐까 싶다. 사실 꾀죄죄한 모습만 본다면 Alice Cooper의 헝그리한 젊은 시절을 생각하면 대충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들은 얘기지만 Alice Cooper가 업계의 손꼽히는 호인이라 듣기도 했으니 이 정도 어그로는 그냥 넘어가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음악은 사실 Alice Cooper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굳이 비교한다면 Bauhaus를 좀 더 뒤틀린 멜로디와 좀 더 가난한 애티튜드…로 재현한 듯한 스타일인데, Bauhaus에 비해서는 좀 더 메탈릭하고 호러풍의 이미지(뱀파이어 컨셉트랄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웬만한 80년대 고딕/고쓰 밴드들은 브릿 팝(내지는 Johnny Marr 식 쟁글쟁글 기타의 마이너스케일 버전)에 상당히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출신이 출신이라서인지 이 밴드만큼이나 그런 영향에서 벗어나 있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Impetigo’ 같은 곡은 가사나 사운드나 확실히 영국 고쓰 씬에서 튀어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음악은 분명 다르지만) Marilyn Manson이 스푸키 키즈 시절에 뭘 참고해서 이런 밴드를 만들었을지를 짐작케 해 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앨범명의 Mansion도 사실은 Charles Manson을 의식한 말장난일지도 모르겠다. 재미있다.

[Placebo, 1986]

Iona “Journey Into the Morn”

프로그 포크 내지는 네오프로그로 보통 분류되곤 하는 밴드이지만 그런 레떼르를 염두에 두고 이 음악을 듣는다면 아무래도 볼멘소리(역시 네오는 이래서 안된다는 류의)를 뱉을 사람도 있어 보인다. 밴드 본인들도 사실 프로그보다는 ‘켈틱 포크’라는 부분에 방점을 두는 것처럼 보이듯이, 본격적인 프로그라기보다는 Clannad 류의 스타일에 Mike Oldfield풍 신서사이저와 그래도 포크라고 하기에 민망하지 않게 이런저런 다양한 전통 악기들을 더한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그래도 일단 Joanne Hogg의 보컬이 수려한데다 멜로디도 귀에 박히게 잘 뽑아내는 편이니 웬만한 청자들에게 들을만하다는 평을 얻어내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그래도 밴드의 앨범들 중 이 앨범이 가장 잘 알려진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Robert Fripp이 게스트로 참여해 특유의 기타와 프리퍼트로닉스 연주를 담아냈다는 점일 텐데, 사실 Fripp이 참여한 곡들보다는 David Gilmour스러운 기타가 돋보이는 ‘Encircling’이나, 켈틱으로 모자라 본격 찬양 CCM을 들려주는 ‘Wisdom’이나 ‘Everything Changes’가 밴드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일 것이다. 멜로트론을 위시한 다양한 악기들을 발견하고 프로그라고 얘기하고 싶은 이들이 많겠지만 결국 그런 편성이 만들어내는 것은 프로그레시브보다는 오히려 뉴에이지식 분위기에 가깝다. 그러니까 좀 에너제틱한 스타일을 원한 이들이라면 별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이후의 Brave 같은 밴드들을 좋게 들은 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런 스타일의 원류를 이쪽에서 찾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뭐, 이런저런 얘기들을 떠나서 그냥 이지리스닝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이런 것까지 돈주고 샀냐는 식의 공격만 피해 간다면 온 가족이 같이 듣기에도 충분해 보인다.

[Alliance Music, 1995]

Midnight Danger “Nights at Lake Milsen”

신스웨이브 중에 80년대풍 하드록/메탈의 기운을 은근히 풍기는 사례들이 드문 편은 아니지만 그 중에 가장 본격적으로 헤비메탈 스타일을 받아들이는 경우를 꼽는다면 Midnight Danger를 최유력 후보에서 빼놓기는 어려워 보인다. 일단 본인이 하고 다니는 모습부터가 Michael Monroe가 좀 더 병약해진 버전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본인은 인터뷰에서 메탈의 영향만 받은 건 아니라고 강조하곤 한다만 듣는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기타가 좀 더 전면에 나서는 곡들은 사실 신스웨이브라기보다는 헤비메탈 밴드가 어쩌다 보니 드러머 빼고 신서사이저를 내세워서 좀 외도를 했을 때 나올 만한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Dance with the Dead보다도 Midnight Danger가 나 같은 메탈바보가 듣기에는 좀 더 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각설하고.

Midnight Danger의 이 세 번째 앨범은 이 프로젝트가 내놓은 여태까지의 앨범들 중에서 앞서 말한 나름의 스타일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Fatal Attraction’처럼 비교적 신스웨이브의 정형에 가까운 ‘발라드’ 곡도 있지만 앨범을 채우는 건 묵직한 리프와 곡 중반부의 테크니컬한 솔로잉이 적당히 ‘스푸키한’ 신서사이저 연주 앞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모습들이다. 이 앨범의 게스트들이 다른 신스웨이브 뮤지션들이 아니라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인 헤비메탈 뮤지션들이라는 사실은 바로 이런 스타일의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을까? Rafael Bittencourt나 Kane Roberts(Angra와 Alice Cooper 밴드의 그 분들 맞음)가 이런 앨범에 크레딧을 올릴 거라고는 레이블 스스로도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Out in the City Lights’. Crazy Lixx의 Danny Rexon까지 모셔와서 무려 노래를 시키고 있다. 애초에 Midnight Danger의 곡에서 연주곡이 아닌 사례를 찾기도 어려운 것도 있거니와 한창 좋았던 시절에 비해서는 그래도 김이 빠진 근래의 Crazy Lixx의 곡들보다 이 노래가 더 낫게 들린다면 어떠려나? 이 한 곡 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비메탈 앨범으로 표시해 놓기는 했지만 메탈 팬들이 더 좋아할 것처럼 보이는 앨범이다.

[NewRetroWave, 2021]

Xiphos “The Rise and Fall of Athens”

martial industrial이나 다크웨이브란 장르가 새로운 앨범 자체를 찾아보기 어려울 레드 중의 레드오션..이 된 지는 꽤 되었는데 그런 면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새로운 밴드라고 할 수 있다…만, 그렇다고 빡센 기운을 찾는다면 하나도 없는 밴드이니 그냥 신인 네오클래시컬 밴드라고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물론 말이 신인이지 사실 H.E.R.R.의 Troy Southgate와 Miklos Hoffer가 주축이 되는 밴드인만큼 그냥 고인물들의 새로운 프로젝트인데, Troy Southgate가 본격 우파 정치인(이라기보다는 선동가)의 행보를 걸으면서 지지부진했던 H.E.R.R.을 생각하면 그냥 H.E.R.R.이 이름 바꿔서 재결성한 거 아닌가 하는 인상이 먼저 어린다.

역시나 음악은 로마 얘기가 아니라 그리스 얘기를 하는 차이가 있을 뿐 스타일에서는 H.E.R.R.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스타일이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을 소재로 한 앨범은 처음 보는데(덕분에 인트로와 아우트로를 빼면 곡명들은 전부 사람 이름이다), H.E.R.R.부터가 유럽 만세 얘기로 점철된 커리어를 보여주던 밴드인만큼 충분히 이해되는 선택이긴 하다. H.E.R.R.과의 차이점이라면 Matteo Brusa의 여성 보컬을 내세운 ‘낭만성’이랄까? 그래도 H.E.R.R.풍의 과장된 네오클래시컬 튠과 나름의 멜랑콜리를 꽤 일관된 톤으로 풀어내는 모습이 능숙하고, 가사와 함께 본다면 (책의 순서와는 다르긴 하다만)아테네의 시작부터 끝까지의 역사를 순서대로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H.E.R.R.를 좋아했을 사람이면 만족할 만한데, H.E.R.R.를 너무 영화음악 스타일이라고 꺼렸던 이들에게는 그보다도 더 ‘간지러운’ 구석이 있으므로 유의를 요한다. 가끔은 21세기에 유럽이 최고라고 외치면서 천 년 전의 조상님 얘기에 빵빵한 심포닉과 위엄을 뽐내려는 모습이 역력한 보컬을 끼얹은 이 스타일이 무척이나 낯뜨거울 때가 있더라. 영화음악계의 목버스터? 정도로 얘기해도 무방하지 싶다. 물론 그 영화는 아마도 폭삭 망한 영화일 것이다.

[Self-financed, 2022]

Arkus “1914”

네덜란드 네오프로그 밴드의 데뷔작. SI Music에서 재발매한 버전으로 보통 알려져 있지만 알고 보면 1970년대에 이미 결성해서 1981년에 이 데뷔작을 낸 나름대로 베테랑…이라고 하나 이 한 장 내고 망했다가 이후로는 거의 10년 간격으로 두 장의 자주반만을 내놓았으니(물론 이 두 장은 못 들어봤음) 베테랑 어쩌고 하는 건 그냥 미사여구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왜 이걸 구했는가 한다면 나야 세평이야 어쨌건 SI Music을 꽤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데 SI Music을 왜 좋아하냐고 다시 묻는다면 어째 떠오르는 답이 딱히 없다. 그냥 길티 플레져라고 해 두자.

음악은 좋게 표현하면 Camel의 대중적인 측면을 의식했을 말랑말랑한 멜로디를 전면에 내세운 심포닉 프로그레시브(라기보다는 멜로딕 록)에 가깝다. 말하자면 SI Music에 ‘니네가 그러고도 프로그레시브 레이블이냐?’라는 식의 악평을 던져주는 주된 원인이 된 바로 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비교한다면 이창식이 “단식예술가”에서 보여준 것보다도 조금 더(사실은 많이) 심플한…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다. 복잡한 전개보다는 기타가 이끄는 멜로디라인을 키보드가 보통의 심포닉 프로그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며 나름의 공간감을 확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점에서는 Eloy와 비슷하다고 할지도? ‘No Chance’같은 곡의 전개가 전형적인 사례라고 하겠는데, 이걸 너무 구태의연하다고 할 사람도 많겠지만 하긴 이 시절 네오프로그가 많이들 그랬다. 바야흐로 Marillion이 사실은 이게 제대로 된 네오프로그라고 하며 데뷔작을 내놓기도 이전이었다.

그래도 ‘Life’ 같은 곡은 훗날의 Jadis 같은 밴드가 참고했을 법한 모습이 있고, SI Music 재발매반에 포함된 ‘Don’t Break the Silence’는 어쨌든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영국의 Clive Nolan을 위시한 ‘네오프로그 패밀리’ 밴드들과는 다른 건반의 용례를 보여준다. 장르의 팬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볼만 할지도.

[Self-financed,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