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arl Jam “Yield”

올해가 이 앨범이 나온 지 25년 됐다길래 간만에. 사실 Pearl Jam 최고의 앨범을 묻는다면 아무래도 “Ten”이나 ‘Vs.”에서 고르는 게 보통이겠지만 내가 지금에 와서 가장 좋아하는 Pearl Jam의 앨범은 이 앨범이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일단 내가 Pearl Jam을 별로 찾아듣지 않는 메탈바보라는 점이 가장 클 것이고(그러니까 Pearl Jam의 가장 에너제틱한 앨범인들 그리 빡세게 들리지 않는다), Pearl Jam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보통 얘기하곤 하는 ‘저항적이고 분노에 찬 에너제틱한’ 모습보다는 오히려 Eddie Vedder의 보컬로 대표되는 관조적인 면모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모습이 이 “Yield”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빈말로라도 맘에 든다고 할 수 없었던 “No Code” 이후 별 기대 없다가 그래도 맘에 드는 앨범이 나온 덕분도 있긴 있겠다.

그런 면모가 잘 들어나는 곡이라면 아무래도 이미 잘 알려진 ‘Faithful’이나 ‘Given to Fly’, ‘In Hiding’ 같은 곡들이 있을 것이고, ‘Do the Evolution’처럼 앨범에서 비교적 하드한 편에 속하는 곡이라도 Eddie Vedder의 목소리만큼은 이제 90년대 초반의 땀내 나는 그런지 사나이보다는 적당히 Bob Dylan의 그림자가 느껴지는 가사를 버터 향기 나는(그리고 적당히 블루지한) 목소리로 불러주는 포크 싱어에 가까워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 가장 Neil Young 느낌이 많이 나는 앨범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Neil Young에게 그런지 레떼르가 붙기 시작한 이후의 음악과 그 이전의 음악은 아무래도 다르니까.

그러고 보면 이런 앨범 정도는 너끈하게 라이센스돼 주던 90년대도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시절이었다… 만, 이 앨범은 IMF 터진 다음에 나왔으니 그 때는 좀 아니긴 하구나. 뭐 그래도 어쨌든 좋은 시절이었다. 어른들이야 좀 입장이 많이 달랐겠지만 어쨌든 나는 걱정이 없는 시절이었다. 어린이날이라고 별 소리를 다 하네…

[Epic, 1998]

Death in June “Nada-ized”

네오포크라는 장르가 쇠락했다는 사실에 대한 가장 단적인 증거들 중 하나는 Death in June의 이 앨범이 작년에 나왔다는 걸 알리는 뉴스 자체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이제는 한창이라기보다는 한물 간 뮤지션에 가까워 보이기도 하고, 장르 자체가 힘을 잃은 상황에서 DIJ라고 뭔 뾰족한 수가 있었겠냐마는 그래도 이 장르 최고의 ‘구루’의 신작이 짤막한 단신도 보기 드물다는 게 엄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제목도 “Nada-ized”인만큼 “Nada!”와 딱 연결지어 소개하기 좋건만 말이다.

하지만 정작 이 앨범은 신서사이저의 비중이 크다는 점을 제외하면 “Nada!”와 도통 비슷한 점을 찾기 어렵다. 신서사이저가 등장하긴 하지만 Joy Division과 New Order 사이 어딘가에서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한 “Nada!”에 비해 “Nada-ized”는 당혹스러울 정도로 댄서블하다. 과장 섞으면 DIJ의 멜로디를 빌려와 라운지풍을 적당히 곁들여 만든 신스웨이브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인데, 이런 식의 라운지 스타일은 일찍이 “Peaceful Snow + Lounge Corps”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지만(하긴 그 때도 Miro Snejdr의 솜씨였으렷다), “The Snow Bunker Tapes”의 조금은 심심했던 오리지널에 새로운 매력을 더했던 “Peaceful Snow…”에 비해 “Nada-ized”는 그저 안일하게 들린다. 그나마 새롭게 들리는 곡이라면 ‘Last Europa Kiss’가 있겠지만… “The Rule of Third”의 원곡 자체가 기억에 덜 남았던 탓도 있을 것이다.

결국 감상보다는 의문거리들을 던져주는 앨범이다. 네오포크라는 장르는 끝장난 것인가? (여기에 비하면 록은 죽은 것도 아니렷다) 아니면 DIJ의 매너리즘이 선을 넘어간 것인가? 아니면 왕왕 있었던 DIJ의 얼척없는 실험 사례가 또 하나 나온 것인가? 다음 앨범이 나와 보면 답을 알 수 있으려나.

[New European Recordings, 2022]

Primordia “The Gleaming Eye”

Primordia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애초에 Primordial을 구하려다가 한 글자를 빼먹은 덕에 알게 된 밴드이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Thy Primordial을 구하려다가 Primordial을 알게 되었고, Primordial을 구하려다가 Primordia를 알게 되었으니 생각보다 뒷걸음질 치면서 쥐를 잡게 되는 경우들이 왕왕 있는 셈이다. 각설하고.

이 밴드를 아는 이들의 대부분은 아마 World Serpent에서 나왔던 이 컴필레이션을 통해 밴드를 접했을 것이고, 사실 이 레이블에서 나오기 이상할 것까지야 없었지만 레이블의 다른 발매작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좀 더 탐미적인 류의 신스팝에 가까워 보이고, ‘Surface Tension’ 같은 곡에서는 거의 Skinny Puppy스러운 비트까지 보여주던 이 밴드가 World Serpent에서 나올 수 있었던 건 아마도 Fire+Ice의 “Glided by the Sun” 덕분일 것이다. 단연 밴드의 최고작일 이 앨범에서 혼자서 기타와 키보드로 Ian Read의 뒤를 굳건히 뒷받침하던 모습이 레이블의 괴팍한 주인장들 눈에 띄지 않았을까? 사실 Fire+Ice를 제외하면 W.M. Owens가 네오포크에서도 그리 굵직한 흔적을 남긴 적은 없기도 하고.

말하자면 사실 네오포크의 팬보다는 일렉트로닉스 적당히 섞인 고딕 음악을 좋아할 이에게 더 어울릴 만한 앨범이고, 적당히 싼티나는 심포닉이 B급 호러물 OST에 가깝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Ikon’이나 ‘Mother Love II’의 기괴한 인더스트리얼은 World Serpent가 굳이 이 밴드를 왜 주목했는지 이유를 짐작케 한다. 비트가 비트인지라 EBM 좋아하는 이들에게도 꽤 다가갈 것이다.

[World Serpent, 1993]

Amazing Blondel “The Amazing Blondel & A Few Faces”

천로역정 운운한 김에 간만에 한 장. John Bunyun은 17세기를 살다 간 영국인이었으니 르네상스와는 좀 거리가 있을 것이고, Amazing Blondel이 가장 많이 듣던 얘기 중 하나는 르네상스 시절 음악을 재현하는 밴드였으니 생각하면 아무 상관 없기는 한데.. 난 천로역정을 컨셉트로 앨범을 만든다면 가장 적당할 밴드는 아마도 Amazing Blondel일 거라고 생각한다. 그 시절 이런 류의 브리티쉬 포크를 연주하는 밴드가 Amazing Blondel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비교적 록에 기울어진 부류(Gryphon이라든가)나 재즈물을 의외로 좀 먹었던 부류(Pentangle이라든가)보다는 Amazing Blondel이 확실히 좀 더 ‘포크’에 천착했던 사례라고 생각한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고전적인 스타일이라는 뜻인데, 기타가 중심이지만 거기에 류트나 시타, 플룻, 아르모니움 등이 어우러져 (그래봐야 실내악 스케일이지만)꽤 풍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편이다. 사이키 포크를 얘기하는 건 아마 그 브라스 때문이겠지만 ‘고전적인’ 스타일인만큼 동시대의 다른 밴드들보다 사이키 맛은 좀 덜한 편이다. 누가 봐도 가스펠을 의식했을 ‘Cannan’이나 그 시절 흔했던 싱얼롱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는 ‘Bethel Town Mission’ 같은 곡보다는 ‘Season of the Year’ 같은 목가적인 마드리갈이 앨범의 스타일을 좀 더 대표할 것이다. 앨범의 백미일 ‘Shepherd’s Song’도 알고 보면 트래디셔널이란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포크 ‘록’을 원한 이들에겐 뭔가 좀 맹숭할지언정 목가적인 포크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이만한 앨범도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보통 보이는 평점보다는 더 좋은 앨범이란 뜻이다. 일단 나는 그렇다.

[Bell, 1970]

Revolutionary Army of the Infant Jejus, The “The Gift of Tears”

루이스 브뉘엘의 “욕망의 모호한 대상(That Obscure Objects of Desire)”에 나오는 가상의 테러리스트 집단에서 이름을 따 왔다는 The Revolutionary Army of the Infant Jejus는 지금 들어도 독특하기 그지 없는 음악을 연주했다. 브리티쉬 포크가 중동풍의 사운드와 연결되고, 동시에 인더스트리얼의 사운드와 노이즈가 등장하며, 간혹은 (약간은 흘러간 시절의)뉴욕 아방가르드를 연상시킬 정도의 괴팍함을 보여주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디스코 비트가 등장한다. 장르의 구분이 무의미할 정도의 음악을 연주했던 셈이다. 덕분인지 이 밴드는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네오포크에 큰 영향을 주었던 뮤지션 중에 언급되고 있다만, 그럼에도 그럼 어느 후대의 밴드가 이들에게 구체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인지를 묻는다면 대답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이들이 보여주는 컨셉트도 독특하다. 기독교 문화 이전의 ‘유럽적인’ 면모에 천착하는 경향을 보여주었던 다른 많은 네오포크 밴드들과는 달리 이들은 로마 카톨릭과 그리스 정교회의 상징들과 테마들에 근간을 두고 있다. 더 잘라 말하자면 천로역정 오컬트 버전을 추구하고 있는 셈인데, 천로역정이 좀 더 외로운 여행길이었다면 이들의 음악은 그보다는 좀 덜 고독한 여행길을 그리는 듯 의외로 다양한 편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음악이 네오포크, 그 중에서도 소위 ‘아포칼립틱 포크’와 맞닿는 지점도 거기에 있다.

그렇지만 앨범의 스타일은 꽤 다양한 편이다. Douglas P. 등을 연상케 하는 남성 보컬과 사실 노래라기보다는 나레이션이나 읊조림에 열중하는 여성 보컬이 만들어내는 기묘한 분위기가 기본이 되긴 하지만 다양한 편성을 기반으로 앨범은 예상보다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그런 다양함을 잡다하지 않게 붙잡는 건 이들의 멜로디감각이다. ‘Tales from Europe’나 ‘The Singing Ringing Tree’처럼 명확한 멜로디라인에 뿌리내리지만 이를 점점 뒤틀어 가는 모습은 네오포크 특유의 괴팍함이 아마도 이 시점에는 이미 그 맹아는 완성돼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 생각한다. 멋진 음악이다.

[Probe Plus,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