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ii “Taste of Victory”

Steinklang Industries는 네오포크의 쇠락을 즈음하여 함께 끝없는 내리막길을 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래도 다행히 망할 정도까지는 아닌지 꿋꿋하게 새로운 앨범들을 내놓고 있는 레이블이다. 물론 그래도 소시적 A Challenge of Honour나 Stahlwerk 9, Allerseelen 같은 장르의 거물들의 앨범을 내놓던 모습과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Albin Julius도 떠났으니 이젠 Der Blutharsch의 앨범이 나오기도 어려울 것이다. 이래저래 쉽지 않은 시절임은 분명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Taste of Victory”는 이 레이블의 최근 발매작들 중에서는 그나마 ‘히트’의 가능성이 있어 보인달까? (앨범명만 봐도 사실 Nocturnal Mortum 생각도 나고)기본적으로는 Martial Industrial이라기엔 좀 약하지만 호전적인 분위기만큼은 명확한 비트에 얹혀지는 다크 앰비언트와 심포닉이 주가 되는 음악인데, 장르의 전형보다는 심포닉의 비중이 훨씬 크기 때문에 사실 영화 사운드트랙처럼 들리는 감도 있다. 심포닉을 웅장하게 ‘터뜨리는’ 맛은 사실 별로 없기도 하고, 적당히 어둡긴 하지만 그리 ‘creepy’한 스타일은 아니기 때문에 In Slaughter Natives 같은 이들을 떠올리면 곤란하고, 그보다는 Café De L’Enfer 같은 이들에 비교하는 게 더 나아 보이지만, ‘Jupiter Calls’나 ‘Imperator’ 같은 곡을 보면 이들의 음악이 훨씬 ‘시각적’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말하자면 Hawkwind나 Daevid Allen이나 지구인을 빙자한 우주생물임은 똑같지만 후자가 좀 덜 하드하고 더 ‘시각적인’ 것과 비슷한 편이다.

쓰고서도 이게 설명이 되는지는 영 애매해 보인다. 확실한 건 꽤나 잘 만든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사실 관심 끊은 지 좀 된 레이블인데 다시 좀 눈여겨 봐야겠다. 100장 한정이라지만 아직 잘 보이는데다 할인판매까지 하고 있는 거 보니 생각보다 잘 안 팔리는 모양이다. 아니 히트의 가능성 운운한 마당에 이러면 뭐 어쩌자는 말이냐…

[Steinklang Industries, 2021]

Current 93 “Hitler as Kalki”

Current 93이 초창기의 인더스트리얼에서 본격적으로 네오포크 스타일로 넘어가기 시작한 건 “Swastika for Noddy”였을 것이다. 물론 “Imperium”에서부터 밴드는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했지만 어쨌거나 초창기의 오컬트풍 인더스트리얼을 벗어나지는 못한 모습이었고, 그런 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Current 93의 모습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누가 뭐래도 “Swastika for Noddy”였고, 그런 행보가 결실을 얻은 것은 그 다음 앨범인 “Thunder Perfect Mind”였다.

이 도발적인 제목의 앨범은 위 “Thunder Perfect Mind” 투어 시절의 공연 실황들을 담고 있는데, 아무래도 “Thunder Perfect Mind”의 수록곡이면서 이 라이브앨범에서 가장 뛰어난 곡이 동명 타이틀곡이다보니 그냥 지은 이름이었을지도 모르겠는데, David Tibet이 그런 식으로 앨범명 지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보니 그냥 짐작만 할 뿐이다. 5곡밖에 안 되는 앨범에서 ‘Imperium V’을 두 곡이나 넣어두어 굳이 수미쌍관을 맞추는 것도 무슨 의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끼리끼리 논다고 장르의 올스타급 인사가 아니면 게스트로라도 얼굴을 내밀 수 없던 시절의 Current 93이었으므로 퍼포먼스가 확실히 받쳐주는지라 즐겁게 들을 수 있는 건 분명하다. 레코딩이 아쉽긴 하지만 네오포크 라이브앨범에 과한 기대를 하는 건 좀 곤란하다.

이후 “Of Ruine or Some Blazing Starre”부터 밴드는 Douglas P.와 결별하면서 조금은 독기를 내려놓고 관조적인 분위기에 집중하기 시작했으니, 밴드가 가장 광기어렸던 시절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라이브라는 것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할 것이다. 그런데 한 번도 재발매되지 않은 네오포크 앨범인데 아직도 10달러 밑으로도 구할 수 있는 거 보니 다른 이들의 생각은 좀 다른가 싶기도 하다. 그냥 초판 오리지널을 아직도 저렴하게 구할 수 있다는 메리트라고 얼버무리련다.

[Durtro, 1993]

Dissecting Table “Memories”

노이즈나 인더스트리얼이나 도통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알고 있는 사실들 중의 하나는 이 일본 출신 파이오니어가 도저히 모을 수 없을 정도로 앨범을 많이 냈다는 점이고(1년에 10장 이상 앨범 내는 것도 예사인지라), 그렇기 때문에 장르의 거물이지만 애초에 모을 생각 자체를 깔끔히 포기했었다. 하긴 베스트 컨디션에서 들어도 이 앨범과 저 앨범이 대체 어디가 다른 건지 집중하지 않으면 알아먹기 어려운 앨범들을 비싼 건 200달러씩 내 가면서 사 모으기는 아무래도 쉽지 않다. 경제적 능력 부족한 음알못으로서 나름의 합리적 소비형태라고 강변해 본다. 각설하고.

덕분에 몇 장 들어보지도 못한 Dissecting Table의 음악이지만 그래도 들어본 중에서는 이 앨범이 노이즈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좀 더 감당할 수 있는 류의 음악이지 않을까? 그라인드코어 식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리프’ 비슷한 게 나오는 음악이기도 하고, 그 리프도 복잡하게 꼬기보다는 가끔은 둠적인 색채까지도 드러나는 직선적인 형태인지라, 그런 면에서는 Man is the Bastard 류의 파워 바이올런스를 연상할 만한 부분도 있다. 말하자면 노이즈지만 리드믹 인더스트리얼 형태가 아니면서도 ‘후려치는 맛’이 돋보이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후려치는 맛을 기대하고 Dissecting Table을 듣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로서는 나쁘지 않았지만 이걸 찾아듣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잘 모르겠다.

[Triumvirate, 2000]

Twelfth Night “Fact and Fiction”

Marillion을 제외하면 나는 영국 네오프로그 밴드들 중 가장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밴드는 Twelfth Night라고 생각한다. Fish도 있긴 했지만 연극적이라는 면에서 Fish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Geoff Mann이 있었고, 이쪽 장르가 대개 그렇지만 Steve Hackett의 좋은 점을 많이 닮아 있었던 Andy Revell의 기타가 있었고, 그러면서도 동시대 펑크나 NWOBHM 물을 은근히 먹은 덕에 다른 네오프로그 밴드들에 비해 확실히 ‘화끈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애초에 이 밴드의 별명 중 하나가 ‘Punk Floyd’였기도 하고(물론 Pink Floyd는 전혀 닮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만).

그 중에 한 장을 고른다면 단연 “Fact and Fiction”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Twelfth Night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Geoff Mann은 이 밴드에서 딱 두 장 내고 나가 버렸는데, 아무래도 데뷔작다운 빈티가 좀 강했던 데뷔작을 고르는 이는 많지는 않을테니 그리 어려운 선택은 아닐게다. IQ 생각도 좀 나는 적당히 그림자 드리운 키보드와 괴팍하면서도 연극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보컬, 대처 시대의 영국을 삐딱하게 비꼬는 가사, 특이한 박자를 쓰진 않지만 뜯어보면 꽤나 복잡하게 구성된 리듬(특히 ‘Fact and Fiction’) 등 네오프로그 팬들이 원하는 거의 대부분이 모두 들어 있다. ‘Human Being’의 은근슬쩍 들어오는 신스 팝 연주도 힘있는 기타와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Marillion이 데뷔하기 전에 나온 앨범이다. 후배가 워낙 압도적이라서 묻히는 건 당연하겠지만 장르의 팬이라면 이 앨범은 구해볼 가치가 있다. 최근에 각종 보너스들 까지 바리바리 싸서 3CD 버전으로 재발매됐으므로 관심있는 분은 그쪽을 알아보시는 게 나을 것이다.

[Self-financed, 1982]

Landmarq “Science Of Coincidence”

Tracy Hitchings가 죽었다. 네오프로그 뮤지션들이 대개 그렇지만 음악계에 한 획을 긋기에는 택도 없었고(Marillion 정도가 예외랄까) 참여했던 프로젝트들에서 핵심적이었다 하기에도 조금은 부족해 보이지만 남긴 앨범들에서 들려주는 목소리는 절창이란 표현을 쓰기에 부족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Landmarq에서의 퍼포먼스는 전임자가 Damian Wilson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모습인데, 보여주는 기량을 떠나서 왜 프로그 밴드가 어떤 때에 굳이 여성보컬을 쓰는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답안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을까? Landmarq를 먼저 얘기하긴 했지만 Tracy Hitchings가 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모든 앨범들은 적어도 서사라는 면에서 결코 떨어지지 않는 프로그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Quasar도, Landmarq도, Strangers on a Train도, 솔로작도.

그 중에서 한 장만 고르는 게 사실 크게 의미는 없겠거니 싶지만(어차피 참여한 사람들도 다 거기서 거기이기도 하고) 굳이 한 장을 택한다면 아무래도 Landmarq의 새로운 보컬로서 등장했던 이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Clive Nolan의 손길을 피해갈 수 있었던 것도 있고, Quasar의 앨범들에서 지울 수 없는 은은한 싼티를 찾아볼 수 없는 앨범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파퓰러한 건반 연주를 퍼붓는 류의 심포닉이 주류가 되지만 때로는 Camel풍의 분위기에 재즈적인 트위스트를 섞어 나름의 개성을 보여주기도 하는 모습(‘Lighthouse’), Genesis 따라지를 정말 최선을 다해 수행하는 모습(‘Between Sleeping and Dreaming’) 등 많은 즐길거리들을 던져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The Vision Pit”이 똥반이란 이름에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었으므로 더욱 돋보이는 행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내 기억에 꽤 깊이 남아 있는 보컬이자 밴드의 한 장이다. 그저 명복을 빈다.

[Cyclops,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