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 Der Graaf Generator “Pawn Hearts”

Van Der Graaf Generator를 좋아하긴 하고 그 역량의 중심에는 물론 Peter Hammill이 있겠지만 Yes나 King Crimson 같은 장르 최고의 공룡들에 비해 이 밴드에 손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도 역시 Peter Hammill의 존재일 것이다…라는 게 사견이다. 좋게 얘기하면 장르 최고의 시인이고 서사라는 면에서는 비교 대상을 찾기도 어렵겠지만 특유의 그 스타일 탓에 위악적이라는 얘기를 듣기도 쉬울 것이다.

“Pawn Hearts”가 밴드의 최고작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 ‘위악’이라는 면이 정점에 이르렀던 것도 이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여기까지 내고 해체했었는지도). 그래도 컨셉트 앨범의 방식을 빌어 정말 그런 방향성을 앨범 끝까지 일관되게 밀어붙였으니 그 뚝심이 이 미친 앨범이 나올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을지도? 게스트로 참여한 Robert Fripp의 기타마저도 이 광기의 분위기 덕에 전혀 튀지 않는다. 다른 악기도 아니고 색소폰을 이렇게 공격적으로 쓰는 사례도 내 기억에서는 비슷한 경우가 없다. 연주의 정교함을 떠나서 이만큼 자신들의 컨셉트를 극한으로 몰아붙인 앨범은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달려갈 수밖에 없다고 외치지만(‘Lemmings(including Cog)’) 끝까지 달리는 건 가사 속의 사람들만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멋진 앨범에 손이 쉬이 가지 않는 이유를 새삼 실감한다. 듣고 나면 참 피곤하다. 그건 니가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고 한다면 아마도 그게 맞긴 할거다. 하지만 이 앨범을 듣지 않고 다크 프로그레시브를 얘기할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니긴 할거다.

[Philips, 1971]

Arena “The Visitor”

네오 프로그레시브로 불리는 수많은 Genesis 따라지들 중에서 뻔한 카피캣 이상으로 평가되는 사례는 생각보다 별로 없는 듯하고 특히나 장르의 생명력 자체가 빈사상태에 이르렀을 90년대 이후에는 더욱 그렇지만 그래도 90년대 이후에 나름의 입지를 얻어낸 드문 사례라면 Arena는 첫손가락은 혹 몰라도 다섯 손가락에는 들 수 있잖을까 생각한다. 잘 하는 건 알겠는데 특유의 싼티나는 톤이 적응되지 않았던 Clive Nolan도 Arena에서만큼은 확실히 좀 덜한 것처럼 느껴진다. 네오프로그 레떼르가 붙어서 그렇지 이 밴드의 가장 알려진 앨범들은 동류로 분류되는 이들보다는 확실히 메탈에 기운 편이었고, 그 묵직함이 가벼워 날아가려는 키보드 연주를 붙잡고 있는 면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최고작을 꼽는다면 이견은 있겠지만 역시 “The Visitor”일 것이라 생각한다. 멤버가 멤버인지라 Pendragon과 IQ, Marillion(“Clutching at Straws” 시절의)을 적당히 섞은 듯한 사운드이지만 컨셉트에 따라 세심하게 배치된 파트들이 어느 하나 쓸데없이 들어간 곳이 없어 보인다. 가끔은 Tony Banks를 떠올리게 하는 Clive Nolan의 건반도 확실히 분위기를 잡아내는 데 성공적이다. ‘The Hanging Tree’나 ‘Crying in the Rain’처럼 적당히 어두운 분위기의 발라드는 Paul Wrightson이 “Mad as a Hatter”의 연극적인 면모 외에 좀 더 감정적으로 호소하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주고, 수려한 멜로디감각도 확연히 드러내는 편이다.

Pendragon이나 Shadowland 등을 좋아했다면 어떻게 흘러갈지가 좀 예상되는 앨범이겠지만 네오프로그의 상당수가 원래 그런 거 아니겠나? 생각하면 그 점으로 흠잡기는 좀 아니지 않나 싶다. 멋진 앨범이다.

[Verglas, 1998]

Andwella “People’s People”

9월이 가기 전에 간만에? 뭐 판 비싸다고 이름만 들어봤던 밴드였고 특히나 데뷔작의 CBS판 가격은 그야말로 기가 막혔으므로 감히 손대볼 생각도 잘 못했는데, 정작 찾아 보니 CD는 그리 비싸지 않은지라 나 같은 사람도 이젠 쉽게 구해들을 수 있는 앨범이 되었다. 뭐 하긴 이 앨범 가격은 그 데뷔작보다는 원래 훨씬 양반이기도 했고.

프로그 듣는 분들이 주로 찾아듣는 밴드고 앨범이지만 그래도 이 앨범이 그렇게 프로그레시브한지는 잘 모르겠고, 데뷔작의 사이키함도 찾아볼 수 없는지라 이 앨범을 좋다는 사람은 생각보다는 자주 못 봤다. 그러니까 프로그라고 부르기보다는 차라리 The Band 풍의 포크록이라고 소개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올뮤직이나 이런저런 사이트들에서 써놓고 있는 ‘메인스트림에 가까워진 사운드’ 식으로 얘기하면 이 장르를 찾아듣는 이들은 피해가라고 써놓는 거나 비슷할 테니 그런 면에서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온 앨범이라는 생각도 든다. 9월이 가기 전에 ‘Four Days in September’는 일청을 권해본다. 멋진 앨범이다.

[Reflection, 1970]

Death in June “All Pigs Must Die”

Death in June의 전성기의 마지막 끝자락? 사실 이 밴드야 커리어 전반에 걸쳐 기복이 딱히 심한 건 아니었고, 특히나 90년대에는 더욱 그랬지만(물론 중간에 “Occidental Martyr” 같은 지뢰도 있다만) 그래도 정점은 아마도 “But, What Ends When the Symbols Shatter?”와 “Rose Clouds of Holocaust”라는 데 이견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결국 Douglas P.의 물 오른 창작력이 “Take Care and Control”까지였나, 아니면 “All Pigs Must Die”까지였나가 많은 이들의 논쟁점일 것이다. 극소수의견으로 “The Rule of Third”까지 잡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건 2008년에나 나온 앨범이니 같이 묶기엔 아무래도 좀 그럴 것이다.

이 앨범을 그 전성기의 끝자락에 묶을 수 있도록 하는 힘은 아무래도 앨범 전반부에 있다. 앨범명부터 World Serpent에 쌍욕을 내던지며 Albin Julius와 결별한 Douglas P.가 대신 맞이한 파트너는 Forseti의 Andreas Ritter였고, 그 ‘시간낭비하기 좋아하는 이들'(‘Tick Tock’의 서두를 참조하시길)과 헤어지고 생각났던 건 David Tibet과 함께하던 시절이었는지 이 앨범의 초반부는 다시금 “Rose Clouds of Holocaust” 시절의 네오포크를 보여준다. 여기에 Andreas Ritter가 합세하면서 더해진 아코디언이나 플루트 연주는 이 ‘위악적인’ 밴드에게서 보기 드물었던 낭만적인 면모를 선사하는데(특히나 ‘Disappear In Every Way’), 그렇게 잠시 서정에 빠지다가 곧 등장하는 돼지 세 마리에 대한 냉소적인 저주를 들으면서 청자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이 앨범이 Death in June의 작품이라는 점을 상기하게 된다.

하지만 ‘We Said Destroy II’부터 앨범은 급격하게 노이지한 방향으로 선회하고(아마 Boyd Rice의 탓일 것이다), ‘Lord of the Sties’에서는 과장 좀 섞는다면 데스 인더스트리얼에 가까운 면모까지 살며시 드러난다. 갑자기 왜 이렇게 나아갔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여전히 가사는 앨범 전반부와 마찬가지로 World Serpent 욕인 걸 보면 어쩌면 잔뜩 뿔이 난 Douglas P.가 그 시절에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이 이런 거였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그 때만큼은 말이다.

[Tesco, 2001]

Waterclime “The Astral Factor”

보컬리스트로서 Vintersorg를 그 느끼함에도 불구하고 꽤 좋아하는 편이지만, Borknagar에서 노래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Borknager의 앨범들을 제외하면 Vintersorg가 참여한 앨범들 중 괜찮았던 게 있었나 하면 사실 좀 망설여진다. 이 분이 어디 가도 그 개성 넘치는 목소리 덕에 그 밴드의 음악을 Vintersorg화 시켜버린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안 그래도 “Cosmis Genesis” 부터는 확실히 프로그레시브해지던 Vintersorg의 음악이었는데, 그러면서 프로그에 맛을 들였는지 새로 참여한다는 밴드들도 결국은 ‘Vintersorg의 보컬을 얹은 프로그레시브 메탈’ 스타일이었으니, 이럴 거면 뭐하러 새로운 밴드를 하느냐 얘기가 나올 지경이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일정 수준 퀄리티는 있지만 막상 결과물을 마주하면 좀 허탈해지는, 말하자면 익스트림메탈계의 임찬규… 같은 사례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Waterclime도 결국 비슷한 길을 걸은 프로젝트인데, Vintersorg가 Mr. V라는 성의없는 가명을 내세워 이번에는 범작의 명가 Lion Music…을 통해 프로그레시브 메탈도 아니고 무려 네오프로그를 연주하고 있다. 이런 사례는 이미 Dan Swano가 Unicorn을 통해 보여준 적은 있지만 그래도 메탈 기운 빼고 해먼드에 멜로트론까지 내세운 멜로딕 네오프로그를 Vintersorg의 보컬로 듣는 건 조금은 당혹스럽다. ‘Midnight Flyer’ 같은 곡은 Uriah Heep까지 생각날 지경인데, 역시 Lion Music의 발매작 답게 군데군데 빛나는 부분(아무래도 Otyg식의 포크풍 짙은 멜로디가 등장하는)이 있지만 그래도 굳이 Vintersorg의 이름을 굳이 뒤로 할 정도의 특별함은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애매한 상황에서 임찬규가 오늘도 연승 스토퍼를 하고 있으니 더욱 귀에 들어오질 않는구나.

[Lion Music,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