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r Klinke “The Unexpected”

2009년부터 활동해 온 벨기에 다크웨이브 밴드… 정도로 홍보되고 있긴 하지만 그건 너무 ‘웨이브’에 강조점을 둔 얘기고, 콜드웨이브/다크-일렉트로 정도의 음악으로 생각하는 게 더 적절할 듯싶다. 이런 류의 밴드들만을 기복 없이 공개하고 있는 Echozone에서 모든 앨범을 발표했는데, 나름 구력이 쌓였음에도 아무래도 Distain!이나 IKON 같은 레이블메이트들을 인지도에서 이길 수는 없는 게 불만이었는지 이 앨범부터는 레이블도 바뀌었다. 물론 그렇다고 음악 스타일이 바뀐 건 하나도 없으니 항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신선함을 찾아 헤매는 혹자들은 불만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실 이런 ‘콜드웨이브’ 류의 음악에서 새로운 부분을 찾기 힘들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건 좀 불공평하지 않나 싶다. 80년대풍의 고딕 향기 풍기면서도 적당히 댄서블한(그리고 때로는 표정 반쯤 찌푸리고 분위기 잡을 줄 아는) 웨이브 밴드가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모습은 말하기야 쉽지 생각하매 떠오르는 모습이 별로 없다. 그리 복잡하지 않은 연주와 듣기는 편하지만 특별할 건 딱히 없는 멜로디를 드라마틱하게, 때로는 댄서블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충분하지 않을까. 좀 더 댄서블한 버전의 Clan of Xymox를 연상케 하는 ‘The River White’나 괴팍한 보컬을 감안하고 듣는다면 The Cure풍의 멜랑콜리를 맛볼 수 있는 ‘My Frozen Heart’가 앨범의 백미.

[Wool-E Discs, 2017]

Parzival “Zeitgeist / Noblesse Oblige”

이름은 파르지팔이라니 멋들어지지만 사실 알고 보면 Cleopatra에서 (별로 메탈릭하지 않은 버전으로)Laibach풍의 인더스트리얼 앨범을 내놓던 Stiff Miners가 이름을 바꾼 밴드. 그러니까 사실 밴드의 역량이나 스타일을 생각하면 저 원탁의 기사보다는 차라리 돈키호테를 밴드명으로 하는 게 더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이 앞선다. Emperor가 만약 B급 밴드였다면 음악도 그저 그런 게 쓸데없이 이름만 황제라는 이름을 들었을 거라는 생각도 스친다. 각설하고.

덕분에 이 앨범도 특별하다고 할 것까지는 없는 인더스트리얼을 담고 있는데, 그래도 주목할 점이라면 ‘별로 어울리지 않을 법한’ 다양한 스타일이 섞여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Dmitry Babelvsky의 보컬은 Laibach풍이고, 조금은 경박하게까지 들리는(그래서 Die Form 생각이 나는) 일렉트로닉스도 여전한데, 그러면서도 과장 섞으면 거의 In Slaughter Natives급으로 화려한 신서사이저에 뜬금없이 흥겨운 댄스 비트가 섞이면서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어찌 보면 싼티나는 Laibach 노선 탄 김에 아예 댄서블하게 갔나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Noblesse Oblige”는 2004년에 바이닐로만 나왔던 앨범인데, 2008년작인 “Zeitgeist”보다 더 댄서블한 것이 나름의 증거랄까? 물론 내 생각일 뿐이다.

좋게 얘기하면 이국적이면서도 흥겨운 댄서블 비트를 만날 수 있는 보기 드문 인더스트리얼 앨범이다. 물론 인더스트리얼 들으면서 이런 걸 미덕으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는 게 밴드로서는 아쉬울 것이다.

[Euphonious/VME, 2008]

Sun Ra / Merzbow “Strange City”

Sun Ra와 Merzbow의 공작? 이라고 소개되기도 했고, Sun Ra가 말이 아방가르드 프리-재즈지 따져 보면 발을 걸친 스타일들이 셀 수 없지만, 그래도 돌아가신 지 20년 넘은 분과 노이즈/파워 일렉트로닉스와의 결합이 상상하기 쉬운 모습은 아니다. 이 괴악한 시도가 어떻게 나왔을까 따져 보니 답은 의외로 쉽게 나온다. “Strange City”는 Sun Ra의 “Strange Strings”와 “The Magic City”를 재료로 해서 Merzbow가 찢어발겼다가 다시 나름의 방식으로 짜맞춰낸 앨범이라니, 결국 Merzbow가 Sun Ra에 대한 리스펙트 담아 만든 앨범이라고 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그런 만큼 이 앨범은 재료가 재료인지라 Merzbow의 어느 앨범보다도 재즈적인 어프로치가 자주 등장하지만(특히 신서사이저), 그렇다고 이 앨범에 감히 재즈라는 말을 붙이기는 어려울 정도로 곡은 해체되어 있다. 특히나 ‘Granular Jazz Part 3’은 Throbbing Gristle이 한창 때려부수던 시절을 연상할 만큼 괴팍한 면모를 보여준다. Sun Ra라고 나긋나긋한 분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래도 Sun Ra가 우주생물같은 이미지라면 이 음악은 우주생물에 대응하기 위해 아날로그 방식으로 준비한 기계의 이미지에 가깝다고 해야 하나? 결국 Merzbow의 음악인 셈이다.

웃기는 건 이 앨범은 CD와 LP의 수록곡이 완전히 다르다. LP에는 ‘Granular Jazz’의 Part 1, 3, 4 세 곡이 수록되어 있고, CD에는 ‘Granular Jazz Part 2’와 ‘Livid Sun Loop’ 2곡만이 수록되어 있다(말이 2곡이지 둘 다 30분이 넘어간다). 뭐 LP와 CD를 합쳐서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할 말 없지만 그런 의도는 아직 잘 모르겠다. 확실한 건 Sun Ra 특유의 리듬감과 ‘영지주의적’인 분위기에 파워 일렉트로닉스 특유의 파괴적인 면모를 버무리면 아마도 이 앨범에 가까워질 것이고, Sun Ra보다 파워 일렉트로닉스에 익숙하다면 LP보다는 CD를 구입하는 쪽이 더 나을 것이다.

[Cold Spring, 2016]

Genocide Organ “Obituary of the Americas”

블로그 주인장의 썸네일 이미지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분들이 있어 설명할 겸. 1989년부터 활동해 온 이 파워 일렉트로닉스 거물의 현재까지는 마지막 정규 앨범인데, 원래 민감한 소재들을 골라 묵직한 음악을 만들어내곤 했던 밴드이지만 이젠 지역의 내전이나 군벌 얘기를 넘어서 직접 남미를 휘젓던 미국의 모습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바꿔 말하면 밴드의 그간의 어느 앨범에 비교하더라도 좀 더 ‘직접적인’ 메세지를 예상할 수 있는데(뭐 이런 음악을 누가 메세지 생각하고 듣기야 하겠냐마는), 그래서인지 “Under-Kontrakt”에서 조금은 잦아들었던 공격성은 이 앨범에서 다시 강해진 모습을 보여준다. 좀 더 장르의 본령에 집중한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Genocide Organ이 늘 그랬듯 구조 자체는 심플하고, 총성이나 남미 군벌들의 목소리 등 다양한 샘플링과 점진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드론 사운드 등이 공격적인 노이즈와 함께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밴드의 다른 앨범들에 비해서 굳이 특징적이라면 보컬이 좀 더 다양한 양상들을 보여준다는 점인데(물론 노래를 한다는 얘기는 아님), 소재가 소재이다보니 스페인어 가사까지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독하게 뒤틀린 신서사이저와 불길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피드백이 돋보이는 ‘Escuela de las Americas’가 앨범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Genocide Organ의 초기작들을 알고 있다면 좀 더 친숙하게 들을 만한 앨범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파워 일렉트로닉스의 가장 지독한 부류들을 접하는 입문작으로도 유용해 보이는 앨범이다. 그래도 워낙에 듣기 피곤한 스타일이다보니 어느 정도는 각오가 필요하다. 하긴 이런 류의 음악들은 ‘감상’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체험’한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이는 구석이 있다. 그런 음악이다.

[Tesco, 2016]

Scorpion Wind “Heaven Sent”

사실 Boyd Rice가 Death in June에 참여하거나, Douglas P.가 Boyd Rice의 솔로작에 참여한 적은 많지만, 이 둘이 함께 밴드의 멤버로서 활동한 사례는 “Alarm Agents” 앨범을 제외하면 이 앨범이 유일하다. 그렇지만 ‘법적 문제’로 실제로 Scorpion Wind라는 이름으로 활동이 이어지지는 못했고, 이후 2007년에야 다시 Nerus에서 “Death in June & Boyd Rice”의 “Scorpion Wind” 앨범으로 재발매했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얘기다. 하지만 저 ‘법적 문제’가 대체 뭔지는 찾아봐도 나오질 않고, “Heaven Sent”로 나온 1996년 버전이 10유로에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판인지라 그냥 잘 안 팔린 걸 법적 문제로 소수만이 들어볼 수 있었다고 뻥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딱히 그럴 이유는 없긴 하겠지만 말이다.

음악은 Death in June 류의 네오포크에 Boyd Rice의 나레이션에 가까운 – 좋게 얘기하면 ‘레치타티보’ – 보컬이 실리는 스타일인데, 시절은 바야흐로 “Rose Clouds of Holocaust”와 “Occidental Martyr”로 Douglas P.의 송라이팅이 절정에 이르던 시절이었고, 음악적 역량을 떠나서 트롤링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Boyd Rice의 위악이 이에 합쳐져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낸다. ‘The Cruelty of the Heavens’의 공격적인 비트에 사드, 다눈치오 등의 텍스트를 버무려내는 모습이나. Ennio Moricone마냥 낭만적인 연주를 업고 소셜 다위니즘을 논하는 ‘Love Love Love’ 같은 곡을 겁도 없이 내놓는 패기 넘치는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In Vino Veritas’ 같은 곡의 서정(과 낭만 어린 스트링)은 가사야 잔뜩 미쳐 있을지언정 이들이 어쨌든 브리티쉬 포크 전통의 끝단에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기도 한다. 꽤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는 앨범인 셈인데, 그러면서도 오컬트적인 내용을 주로 다루었던 “Alarm Agents”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소재들을 다루고 있는 만큼, 트롤링이라는 측면에서도 이 앨범이 좀 더 강력하다.

Boyd Rice의 똑똑한 듯 잔뜩 미쳐 있는 광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그만큼 곱씹으면 Boyd Rice가 내놓은 앨범들 중 가장 불쾌한 구석이 있는 앨범이겠지만, 네오포크의 역사에서 꼭 언급되어야 할 시절의 중요한 앨범들 중 하나임에는 분명하다. Douglas P.의 전성기 한가운데가 그대로 담겨 있는 앨범이다.

[Twilight Comman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