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mind “IV – Until Eternity”

Mastermind의 4집. “Tragic Symphony”가 그래도 라이센스도 되고 해서 들을 만한 사람들은 또 은근 다 들어본 앨범이었지만 열심히 만든 기색 역력한 심포닉 록이면서도 아쉬운 점도 분명해서인지 평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가장 거슬렸던 부분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Bill Berends의 좋게 얘기하면 관조적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가지고 있는 에너지를 기타에 몽땅 쏟아버렸는지 힘없는 보컬이나, 일부러 그랬겠지만 때로는 싸구려 멜로디카 수준까지 내려오는 엄청난 톤을 들려주는 미디 기타를 꼽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밴드가 “Excelsior!”부터 Jens Johansson을 키보드로 영입한 건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Stratovarius로 더없이 잘 나가던 사람을 대체 어떻게 데려왔는지가 궁금해지지만 그건 이 다음 앨범 얘기니 넘어가고.

앨범은 “Tragic Symphony”처럼 결국 ELP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심포닉 프로그이지만 ‘Inferno’처럼 재즈적인 연주를 집어넣거나, ‘Under the Wheels’처럼 Rush와 King Crimson(또는 좀 기운 빠진 Anekdoten)을 묘하게 섞은 듯한 곡들에서 전작과의 차이를 찾을 수 있다. 테크니컬하긴 하지만 여전히 기타 연주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세컨드 기타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는 미디 연주가 못내 거슬리지만, 좋게 얘기하면 그게 밴드의 개성일 것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기타리스트가 건반 파트까지 미디 기타로 때우는 앨범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그래도 ‘Under the Wheels’만큼은 밴드가 남긴 앨범들 중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고, 이 한 곡만으로도 앨범 한 장 값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꼭 싸게 사서 하는 얘기는 아니다.

[Prozone, 1996]

Brighter Death Now “Everything is Gonna be Alright”

홈페이지를 봐서는 정말 살아난 게 맞는지 의문이 들지만 이런저런 곳들의 얘기에 의하면 Cold Meat Industry는 2018년부터 레이블 운영을 재개했다..고 한다. 사실 그 이후 나온 앨범들을 보면 본격적으로 레이블을 다시 한다기는 좀 어렵고, Roger Karmanik이 예전에 내지 못했던 작업물들을 다시 내기 위해 일단 문을 연 수준이 아닌가 싶다. 그 덕분인지 CMI 카탈로그 넘버를 달고 나오지만 레이블 홈페이지에서도 이 앨범을 주문할 수 없고, Tesco 아니면 다른 디스트로에서는 보이지도 않는 수준인데, 그래도 Brighter Death Now의 앨범이 다시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장르의 팬이라면 구할 이유는 충분하다. 희망차게 다시 시작하는 입장이라 앨범 이름이 저런가 싶기도 하고. 사실 저게 Brighter Death Now의 이미지에 맞는 앨범명은 아니지 않나.

음악은 Brighter Death Now라는 이름에서 흔히 떠올리는 스타일과 대동소이하다. SPK식 인더스트리얼을 좀 더 느긋하게 늘어뜨린 듯한 ‘I Tell the Truth’나, 90년대 스타일보다 좀 더 노이지하면서 마지막의 뜬금 포크가 청자를 당혹스럽게 하는 ‘Prepared for Life with a Knife’, 괴이한 펑크 리프에 어우러지는 리드미컬한 노이즈의 ‘Love Hard’ 모두 ‘데스 인더스트리얼’이라고 부르기는 그럴듯하면서도 조금씩 애매하다. 특히나 ‘Love Hard’는 인더스트리얼보다는 차라리 Thorofon풍의 (살짝 신스팝 섞인)파워 일렉트로닉스에 가까워 보인다. 뭐 그놈이 그놈 아니냐? 한다면 어째서 아닌지 설명하기는 꽤 어려운 과제가 되겠지만 말이다.

Brighter Death Now의 초심자에게는 적당치 않겠지만 재미있는 앨범이다.

[Cold Meat Industry, 2022]

Von Thronstahl “Corona Imperalis”

Devin Townsend Project의 “Deconstruction”에 이어 코로나 양성판정 기념 감상 #2. 물론 이 전염병과 발톱의 때만큼도 상관없는 앨범이지만 이유는 앨범 제목에 ‘코로나’가 들어가기 때문에. 그리고 역시 사람이 갖다 붙이려면 뭔들 이유가 안 되겠나. 각설하고.

Von Thronstahl도 네오포크 또는 martial-industrial의 오래 된 이름 중 하나이고 결과물도 꽤 묵직하지만 상대적으로 장르의 다른 이름들에 비해서는 쉬이 넘어가지는 경향이 없진 않은 듯하다. 아무래도 본진 외에 이런 저런 사이드 프로젝트들을 많이 하는 게 이 장르에서 보통이라면(일단 인재 풀이 넓지가 않다보니) 다른 뮤지션들과 협업 없이 거의 Von Thronstahl로만 활동하기도 했고, 어쨌든 2000년부터 활동한 이 프로젝트에 프론티어 이름을 붙여주기도 좀 애매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이 프로젝트의 이름으로 나온 앨범들은 대개 다 괜찮았고, 장르의 통상보다는 좀 더 다양한 스타일들을 한번에 담아내는 경향을 보여준 덕에 듣기에도 좀 더 편한 편이었다. 점점 노이즈나 인더스트리얼로 나아가는 류의 밴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클래시컬한 무드가 강한 것도 있었고.

“Corona Imperialis”도 마찬가지다. 원래 이렇게 기타를 묵직하게 넣었었나 싶은 ‘Majestat Brauchen Sonne’나 ‘And After the War’가 기존의 네오클래시컬 무드를 보여준다면 좀 더 포크(라기보단 ‘민속’)적인 분위기에 천착하는 ‘Hyeresolyma est Perdita’, 어쿠스틱 네오포크의 전형에 다가가는 ‘An Bahnsteigen Stehen’ 등이 한 앨범에서 겉돌지 않고 잘 어울리고 있다. 다만 흡사 힙합에 가까운 분위기가 당혹스러울 지경인 ‘Tausend Jahre Spater’가 앨범의 맥락에 잘 들어맞는지는 모르겠다. 시도의 다양성에 있어서는 프로젝트의 기존 앨범들을 넘어선다. 그래도 장르에 걸맞는 소재기는 하지만 테마 선택 자체가 어그로를 지독하게 끌기 좋았던 초기작들의 과시적인 분위기는 조금은 잦아들은 탓에 난삽하단 느낌은 들지 않는다.

‘드라마’의 구현이라는 점에서는 프로젝트의 앨범들 중에서도 위쪽일 것이다. 특히나 전후 집에 돌아가는 병사의 모습을 그려내는 앨범 후반부의 사실 신나지도, 패배감에 휩싸이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쓸쓸한 분위기는 은근히 기억에 남는다. 정말 코로나와는 눈곱만큼도 상관이 없구나.

[Trutzburg Thule, 2012]

King Crimson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Ian McDonald가 죽었다. King Crimson이야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Robert Fripp의 밴드이고 밴드 최고의 명작은 대개 “Red”나 이 데뷔작을 많이들 꼽을 것이고 나같은 메탈바보들은 둘 중에서는 후자로 기울 가능성이 높겠지만(하지만 난 청개구리라서 “Lizard”를 제일 좋아함) 그래도 프로그레시브 록의 역사에서 가장 묵직한 한 장을 꼽는다면 “Red”보다는 이 앨범이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Red”가 밴드 문 닫기 전에 그동안 쌓아놨던 분노를 King Crimson식 헤비메탈(이라면 좀 과하려나)로 끌어올린 앨범이라면 이 데뷔작은 장르의 시작점에서 심포닉 프로그레시브가 나아갈 많은 길들을 보여주고, 동시에 당대 또는 후대의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와는 클래식에 대한 접근 자체를 좀 달리 가져갔던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앨범을 구성하는 많은 모습들을 보자면 클래식보다는 퓨전을 운운하는 게 더 맞을 앨범이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King Crimson의 역사에서 Robert Fripp만큼 다른 멤버가 묵직한 비중을 가져간 사례가 있었다면 아마도 이 앨범에서의 Ian McDonald가 아닐까? 걸작을 만들기는 했지만 Robert Fripp이 음악계에 이름을 내민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기타에 집중한 Fripp과는 달리 Ian McDonald가 보컬에 비브라폰에 멜로트론에 다양한 악기들로 이 앨범의 다채로운 연주를 수놓은 걸 생각하면, 이 앨범은 Fripp과 Ian McDonald가 권력투쟁이 그래도 비등비등했지만 조금은 Ian McDonald에게 균형이 기울어졌을지도 몰랐을 시점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2집에서의 Keith Tippet의 영입은 음악적 실험도 있지만 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Fripp의 방안이 아니었을까? 뭐 그저 내 생각일 뿐이다.

어느 하나 빼 놓을 수 있는 곡이 없고 한민족의 메가히트 팝송 ‘Epitaph’가 있고… 등 워낙 잘 알려진 앨범이니 첨언은 불필요할 것이다. 이래저래 내 머리에 마음에 깊이 남아 있는 앨범이자 뮤지션이다. 적어도 이 앨범 시점에서 King Crimson은 Robert Fripp과 Ian McDonald의 밴드였다. 다시금 명복을 빈다.

[Island, 1969]

Boyd Rice Experience, The “Hatesville!”

Boyd Rice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애초에 앰비언트로 음악을 시작해서 무려 Mute에서 (NON의 이름으로)앨범들을 냈던 뮤지션답게 네오’포크’에 가까운 음악을 만든 적은 그 (불한당들처럼 생긴)친구들과 함께 한 앨범들을 제외하면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만 음악 활동만큼이나 그 논쟁적인 개똥철학으로 유명한 인물답게 앰비언트류의 음악만 만든 건 아니었고, The Boyd Rice Experience는 그런 인물답게 ‘spoken word’류의 앨범을 내기 위한 프로젝트인 것 같다. 당장 앨범에 본격 뮤지션이 아닌 Adam Parfrey(Feral House 출판사 사장) 같은 인물이 끼어 있다.

바꿔 말하면 암만 좋게 봐 주려고 하더라도 사실 음악을 기대하고 들을 앨범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에게 깃든 증오를 까발린다는 류의 뮤지션의 의도답게 가사도 폭력성과 여성 혐오 등으로 가득하다. 그러니까 ‘Love will Change the World’ 같은 제목은 누군가에게는 보기에 불쾌할 정도로 지독한 농담일 것이다. 그런 지독한 가사 뒤에 깔리는 음악은 기본적으로 거칠지만, 때로는 유치하게까지 들리는 라운지 재즈도 등장한다. 이 기묘한 분위기를 Charles Bukowski 같은 이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Charles Bukowski의 경우 그 천박함이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깃든 모습일 수 있음을 까발리는 신랄함을 보여준다면 Boyd Rice가 그런 신랄함이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스스로의 논쟁성은 논외로 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서는 진정한 의미의 ‘사악한’ 음악은 이런 류의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들으면서 이만큼 사람 불쾌하게 만드는 앨범도 별로 없다.

[Hierarchy,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