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yd Rice & Fiends “Wolf Pact”

누가 봐도 나쁜놈이 어깨에 손을 올리며 ‘우리가 남이가?’한다면 그 패거리 전체가 불한당처럼 보일 거라는 세상의 진리를 반영한 것인지 Boyd Rice는 이 앨범에서 ‘Friends’가 아닌 ‘Fiends’를 달고 등장했다. 그런데 그렇게 같이 나온 이들이 Douglas P.와 Albin Julius이니 친구라 하건 불한당이라 하건 단어 하나로 뭉뚱그려질 수 있는 사람들인가, 일단 저 셋 중에 Boyd Rice가 중심에 올 수 있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뭐 셋 다 어쨌든 장르의 거물이긴 하고, 서로 안면 없는 사이도 아니니 가능했을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역시 내 음악에 양보란 없다고 고집부릴 만한 3명을 모아 놓아서인지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다. 전형적인 Death in June 스타일의 포크 ‘Watery Leviathan’으로 앨범을 시작하지만, ‘The Forgotten Father’나 ‘Rex Mundi’에서는 Der Blutharsch풍의 ‘bombastic’한 인더스트리얼을 들을 수 있고, ‘Murder Bag’의 기묘한 분위기 아래 실리는 장광설은 Boyd Rice식의 말장난 내지는 개똥철학에 가까워 보인다. ‘Fire Shall Come’에서는 Blood Axis풍의 거친 사운드도 등장한다. Boyd Rice식의 ‘지독한’ 스타일의 유머 정도를 제외하면 앨범을 관통하는 일관된 스타일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그러니 나쁘게 얘기하면 사실 좀 난삽하게 들릴지 모를 앨범이지만, 수록곡 어느 하나 허투루 넘길 만한 곡도 없는 만큼 위에 이름이 나온 뮤지션들을 좋게 들었던 사람이라면 분명 만족할 만한 앨범이다. 좋게 얘기하면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고 있는만큼 아무리 망해도 한두 곡 정도는 분명히 건질 법한 앨범이다. Douglas P.가 참여한 앨범들 중에서는 비교적 싸게 구해지는 물건인만큼 장르의 입문자용으로도 좋을지도.

[Neroz, 2002]

Kathe Green “Run the Length of Your Wildness”

그 시절 많이 나왔던 이게 팝이냐 포크냐 자체가 애매한 그런 류의 앨범 중 하나지만 일단 Deram에서 나온데다 음악 자체도 클래식의 반열의 말석에는 올려줄만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음악을 떠나서도 유명한 분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Deram에서 나왔던 이 앨범이 2008년에야 CD화가 된 건 좀 의아하기도 하다. 뭐 덕분에 나름 프리미엄도 붙은 앨범이기도 했고, 저 커버는 LP 버전으로 봐야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배어나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혼자서 생각해 보는데, 그렇다고 딱히 음악이 그로테스크한 스타일은 아닌만큼 역시 전혀 근거없는 상상일 뿐이다. 넘어간다.

흔히 바로크 팝이다 스윙잉 런던이다 얘기도 많은 류의 스타일이지만(커버 때문인지 선샤인 팝 얘기는 의외로 별로 없더라) 그래서 이 음악이 구체적으로 어떤 음악이라고 집어 얘기할 자신은 없다. 일단 뮤지션 본인의 이력이나 앨범이 나온 시절도 있는지라 듣다 보면 Dana Gillespie의 “Foolish Seasons”가 먼저 생각나지만, 따지고 보면 “Foolish Seasons”도 Donovan스러움이 묻어나는 오케스트레이션을 얹어낸 팝과 포크의 느슨한 경계에 놓여 있는 음악이었던만큼 이 앨범도 그 정도로 얘기하는 게 안전한 설명일 것이다. ‘Promise of Something New’ 같이 좀 더 명확하게 Donovan의 모습이 보이는 곡도 있고… 하지만 장르의 미덕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곡이라면 그래도 ‘Primrose Hill’을 골라야 할 것이다. 뭐 하나 저 커버의 이미지와는 도통 어울리지 않지만 멋지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Deram, 1969]

Cerrone “Dream”

이 디스코 거물을 Giorgio Moroder 짝퉁 격으로 알고 있다가 내가 사람을 많이 잘못 봤구나 깨닫게 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딱히 디스코를 좋아해 본 적은 없었던지라 Cerrone을 다시 보게 된 것도 Cerrone이 커리어를 통틀어 본격 디스코를 선보였던 시간은 생각보다는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을 알게 된 덕이었다. 이후의 앨범들은 물론이거니와 “Supernature”까지만 가더라도 나름의 스페이스 오페라 사운드트랙을 만드려 했는지 변화의 양상을 보여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고, 이후 Paul Simon 이전에 뮤지션이 함부로 뮤지컬을 시도했다가는 훅 가는 수가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으니, Cerrone을 ‘디스코 마스터’식으로 부른다면 맞는 얘기긴 하지만 이 뮤지션의 중요한 부분들을 보여주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Cerrone이 본격적으로 전자음악 물을 덜어내고 밴드음악의 기운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Cerrone V”부터일 것인데, David Hungate가 참여한 덕인지 음악은 Toto식 AOR의 기운을 분명히 머금고 있었고, 뮤지션 나름의 변신은 계속되었지만 이 AOR의 기운은 꽤 오랜 동안 Cerrone의 커리어를 뒤덮었다고 생각한다. 대폭망 뮤지컬이 돼 버린 “Dream”도 뮤지컬이 망해서 그렇지 음악 자체는 준수한 Cerrone식 AOR을 담고 있었고, 차트와 평단이 폄하할 이유야 따지자면 꽤나 많았지만 애초 디스코에 관심이 없었던 청자에게는 Cerrone을 입문하기엔 더할나위 없는 앨범이었다. Steve Overland(FM에 있었던 그 분이 맞음)가 노래한 ‘Harmony’ 같은 곡만으로도 이 앨범에서의 Cerrone을 준수한 AOR/멜로딕 록 뮤지션이라고 하기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얘기하면 좀 과하려나?

Cerrone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대폭망 앨범이었겠지만 좋은 앨범이다.

[NAC, 1992]

Lisa Gerrard & Pieter Bourke “Duality”

새해에는 좀 더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보냈으면 했는지 2022년 첫 앨범이 Lisa Gerrard인데, 조용하고 차분한 시간을 위하여 꺼내는 앨범이 이런 류라면 그건 그거대로 조금 문제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분명 좋아하는 앨범인데 피곤할 때 들으면 숙면용으로도 그만인 앨범인지라 새해 소망 같은 건 전혀 모르겠고 어쨌든 1월 1일은 푹 자고 싶은 걸까 싶기도 하다. 이 횡설수설함에서도 느껴지지만 내가 생각해도 1월 1일 벽두부터 들을 만한 앨범일까 하는 생각은 든다. 각설하고.

사실 Lisa Gerrard가 Dead Can Dance를 나온 이후 정말 Dead Can Dance의 스타일을 유지한 앨범은 많지는 않은데(일단 영화음악을 하도 많이 만들다보니), 이 앨범도 사실 Dead Can Dance와는 엄연히 다르지만 그래도 원래의 스타일이 많이 남아 있었던 건 이 앨범까지였을 것이고, 이후로는 영화음악을 제외한 음악들도 확실히 예전보다는 좀 더 실험적인 방향으로 기울었다. Pieter Bourke도 Eden의 멤버였으니 그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할 결과처럼 보이는데, 일단 Sean Bowley의 Martin Gore스러운 목소리가 음악과는 좀 따로 놀았던 Eden이었던만큼 좀 독특한 고딕 이씨리얼을 들으려는 이에게는 이쪽이 좀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만큼 클래식 물을 의도적으로 피해가다 못해 원시적인 모습까지 비추는 스타일은 이 장르에서 분명 보기 드물다. ‘The Unfolding’이나 ‘Sacrifice’, ‘The Human Game’가 개인적인 앨범의 백미.

[4AD, 1998]

Cowboy Junkies “Ghosts”

소시적 Hunger Project라는 빈티나는 이름으로 밴드를 만들었다는 점에서도 보이지만 Cowboy Junkies가 장사를 하는 데 그리 재주가 있는 이들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앨범에 와서 그런 생각을 좀 더 굳히게 되었다. 이 앨범의 최대 단점은 2018년작이었던 “All That Reckoning”을 LP로 재발매하면서 “All That Reckoning”과의 LP 2장짜리 패키지로만 판매되었다는 점인데, 30분 정도밖에 안 되는 앨범을 따로 팔고 싶지 않았는지는 모르나 이러면 나처럼 “All That Reckoning”을 이미 갖고 있는 사람은 답이 없어지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주변에 했더니, 그래서 너처럼 갖고 있는 사람도 한 장 더 사도록 했으니 오히려 최고의 장사치라는 얘기를 하더라. 조금 헷갈리지만 이쯤에서 넘어가고.

음악은 “All That Reckon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스타일이다. 밴드의 평소보다 좀 더 격정적이고 거친 맛이 있었던 “All That Reckoning”의 투어 중에 작업을 시작했다니 당연한가 싶기도 한데, 그러다가도 ‘Breathing’처럼 단정한 피아노에 Margo Timmins의 보컬을 얹은 발라드를 보면 밴드가 본연의 색채를 유지하고 있음도 명확하다. 그렇게 격정과 관조를 안배한 A면에 비해 B면은 솔직히 좀 평이하게 느껴지지만, 우쿨렐레와 트럼펫을 특이하지만 그리 우습지는 않게 써먹은 ‘Ornette Coleman’은 – 이 앨범에 어울리는 곡일지는 좀 애매하지만 – 그래도 귀에 박힌다.

솔직히 A면의 수려함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남는 앨범인데, 생각해 보면 지금껏 꾸준히 앨범을 낸다는 게 다행한 건가 싶어서 불만이라고까진 못하겠다. 그런데 저번부터 왜 이렇게 앨범 커버가 Inside Out에서 나오는 프로그 앨범처럼 나올까?

[Latent Recordings,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