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erit “Bardo Exist”

누구도 블랙메탈 레전드라는 사실을 부인하진 않지만 그럼 신보를 믿고 구입할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분명 상당한 불안감을 안겨줄 법한 Beherit의 작년 신작. 사실 “Drawing Down the Moon”에서도 앰비언트의 기운은 상당했지만 그 독특한 분위기는 “The Oath of Black Blood”와는 또 다른 Beherit의 개성적인 블랙메탈을 만들어내기 충분했고, 밴드가 그런 스타일의 연장선을 유지했다면 팬들은 아마 행복했겠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DJ를 꿈꿨을지 모르는 Nuclear Holocausto Vengeance는 이후 아예 앰비언트 사운드를 밀어붙여 많은 이들이 (만듦새의 문제를 떠나서)괴작으로 기억하는 “H418ov21.C”와 “Electric Doom Synthesis”을 내놓았다. 뭐 후자는 그래도 기타가 들어가긴 했다만 Beherit의 이름으로 이런 게 나와서야 좋은 말만 해주기는 사실 어렵다.

그래도 “Engram”으로 잠시 안심했던 팬들을 놀리려는 것인지 “Bardo Exist”는 다시금 앰비언트로 돌아왔다. 그렇다곤 해도 사실 음악 자체만으로는 “H418ov21.C”와 “Electric Doom Synthesis”보다는 귀에 잘 들어온다. 일단 Tangerine Dream을 열심히 들었는지(하나 고른다면 “Zeit”) 확실히 이전의 앰비언트들보다는 좀 더 정적이고 자연스러운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고(특히 ‘Extreme Thirst and Insomnia’), Mortiis 생각도 나는 ‘Coruscation’ 같은 곡은 확실히 Beherit이 만든 여느 곡보다 좀 더 명확한 멜로디를 만날 수 있다. 그렇지만 ‘Peilien vanki’에서 불현듯 튀어나오는 디스코를 들으면서 느껴지는 허탈감을 보니 내가 아직 Nuclear Holocausto Vengeance의 클럽 DJ 놀이를 받아들일 깜냥이 안 되는 건 분명하다. 거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Kvlt, 2020]

Crystal Jacqueline “Rainflower”

Mega Dodo는 Fruits de Mer 등과 더불어 약간은 흘러간 시절의 사이키델릭 사운드에 취향을 둔 이들에게는 생각보다는 잘 알려진 레이블이다. 당연히 Crystal Jacqueline도 이런 노선에 있는 뮤지션이고, 같이 작업하고 있는 Icarus Peel(이 양반도 물론 Mega Dodo 소속의 뮤지션이다)도, 좀 더 듣기 편한 편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Syd Barrett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에 60년대 웨스트코스트 특유의 ‘쿨한’ 그루브를 담아낸다. 말하자면 Syd Barrett 스타일답게 귀에 안 들어오지만 나름 멋들어진 그루브를 실어내던 Icarus Peel이 Crystal의 보컬을 빌어 좀 더 친숙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Crystal Jacqueline의 앨범인데 왜 Icarus Peel 얘기만 하고 있는지가 나도 의문이지만 넘어가고.

곡은 전체적으로 “Sun Arise”보다는 좀 더 무거워졌다. 내놓고 플라워 무브먼트를 따라가던 전작에 비해 “Rainflower”는 Pink Floyd의 “Unmagumma”나 “More” 같은 앨범들을 좀 더 의식하는 편이다. 물론 David Gilmour풍 기타는 싹 걷어내고 Syd Barrett스러운 약 냄새와 은근한 동양풍을 더한 스타일인데, 아무래도 이 앨범의 꽃 4부작 ‘Water Hyacinth’, ‘Daisy Chain’, ‘Strange Bloom’, ‘Rainflower’이 가장 두드러진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Dress of White Lace’의 목가적이면서도 어두운(그리고 가끔은 주술적인) 분위기는 이 밴드가 사이키델릭의 많은 교과서들을 참고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쿨한 그루브 대신 포크의 바탕을 깔고 다양한 사이키델릭의 사례들을 나름 열심히 현대화하여 늘어놓는 앨범,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무척 흥미롭게 들었다.

[Mega Dodo, 2015]

Emerson, Lake & Palmer “Tarkus”

올해가 이 앨범이 나온 지 50년이 됐다길래 간만에. 뭐 심포닉 프로그의 역사에서 반드시 기억할 밴드인 것도, 걸출한 3인조가 만나 화끈하게 활동했던 밴드인 것도 분명하지만 장르를 거의 완성형에 가깝게 정의내리면서 확실히 세련된 연주를 들려줬던 Yes에 비한다면 EL&P는 그 걸출한 3인조가 서로 내가 제일 잘나간다는 듯 경쟁적으로 밀어붙이던 사례에 가까워 보인다. Yes보다 훨씬 노골적으로 클래식의 편곡과 차용에 의존하면서 좀 더 정형적인 구조의 곡을 연주하지만 멤버 개개인은 확실히 과시적인 데가 있다고 생각한다. 좋게 얘기하면 록스타의 전형이었고, 나쁘게 얘기하면 태생부터 슈퍼 밴드다운 한계가 풀풀 풍겨났던 셈이다.

밴드의 가장 화려한 연주의 앨범은 “Brain Salad Surgery”(중에서 ‘Karn Evil 9’)이었겠지만, 저 과시적인 면모와 정형적인 구조를 가장 여실히 보여준 앨범은 “Tarkus”라고 생각한다. 일단 밴드의 오리지널이 가장 많은 앨범이기도 하고(뭐 그 중 상당수는 사실 밴드의 이름값이 아깝다고 생각하지만), Keith Emerson의 건반만큼이나 다른 파트가 거칠게 존재감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밴드의 가장 하드한 앨범은 이 앨범이라고 생각하고, Greg Lake의 커리어에서 보컬이 가장 훌륭했던 한 장을 꼽더라도 아마 이 앨범이 유력하겠거니 싶다. ‘Are You Ready Eddy?’는 밴드가 의외의 팝 센스(와 유머)를 가지고 있다는 흔적이기도 한데, 훗날 “Works Volume II”에서 클래식 물을 뺀 팝을 쓰는 데는 젬병이라는 걸 입증한 밴드에게는 의외의 면모라고 생각한다. 뭐 이 곡이 아니라 사실 ‘Tarkus’ 하나만으로도 기억될 가치는 충분한 앨범이긴 하지만.

[Island, 1971]

Destroying Angel “Conversations With Their Holy Guardian Angel”

Destroying Angel의 데뷔작…이지만, 이미 2014년께부터 북미의 싸이키 스타일의 대표적인 네오포크 밴드 정도로 이름이 오가던 밴드였던만큼 밴드를 둘러싼 기대감만큼은 확실했고, 그러면서도 은근히 펑크 바이브를 풍기는 이들의 ‘개성'(꽤 씁쓸한 유머를 섞어낸다는 점을 강조해 본다)은 기대감을 넘어 꽤 힙하다는 평을 듣는 많은 웹진들로부터 괜찮은 평가를 듣기에도 충분해 보였다. 음악이야 다르긴 하지만 Cult of Youth라는 꽤 비슷한 행보를 먼저 보여줬던 사례가 있기도 하고. 하긴 그래서 Sean Ragon이 이 앨범에 참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이 Not Just Religious Music에서 나왔다는 건 사실 밴드에 대한 기대감과는 조금은 맞지 않았다. 아무래도 King Dude 특유의 지극히 ‘아메리칸스러운’ 음악이 Destroying Angels의 음악과는 쉬이 겹쳐 보이지 않는 탓인데, 그래서인지 “Mother is Dead” EP의 일견 사이키하면서도 영적인 스타일과는 확실히 다르다. ‘wierd folk’식으로 어둡긴 하지만 괴이하게 발랄한 분위기를 섞어내는 셈인데, 그런 면에서는 보통 얘기하는 ‘네오포크’의 팬보다는 포스트펑크 팬들이 더 즐길 만한 음악일 것이다. 어찌 들으면 Throbbing Gristle을 듣고 흑화된 Scott Walker 같기도 하고.

[Not Just Religious Music, 2016]

Il Tempio delle Clessidre “AlieNatura”

Il Tempio delle Clessidre가 마치 Museo Rosenbach가 남긴 잿더미에서 피어오른 후계자인양 소개된 덕에 셀프타이틀 데뷔작은 Black Widow 발매작이 시완레코드를 통하지 않고도 국내에까지 라이센스되는 위업을 달성했다. 뭐 그런 엄청난 데뷔작이 과연 얼마나 팔렸으려는지는 알아봐 봤자 모두가 슬퍼지는 사실일 게 분명하니 넘어가고, 문제는 Stefano ‘Lupo’ Galifi가 이 밴드에 몸담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는 점이다. 밴드가 다시금 Museo Rosenbach의 이름을 수면 위로 밀어올린 덕분인지 Galifi는 Museo Rosenbach의 재결성을 위해 밴드를 떠나버렸고, 홍철 없는 홍철팀마냥 거듭난 밴드는 새로운 보컬을 맞이하여 지지 않고 두 번째 앨범을 내놓았다…는 게 대략적인 레이블의 소개 내용이다.

그렇지만 새로운 보컬인 Franscesco Ciapica는 톤은 좀 다를지언정 확연히 Galifi를 의식한 보컬 스타일을 보여주는데다, 밴드의 스타일도 데뷔작의 심포닉 프로그를 따라가고 있으니 결국 딱히 달라진 건 없다. 그래도 데뷔작의 ‘Danza Esoterica Di Datura’의 어지러울 정도의 키보드 연주가 앨범의 백미였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보다는 좀 더 밋밋해진(좋게 얘기하면 ‘분위기 위주의’) 연주가 꼭 마음에 들진 않는다. 그래도 ‘Onirica Possessione’의 은근한 스푸키함은 Museo Rosenbach의 이름값에 힘입어 의외의 고급스러움을 과시했으나 개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데뷔작과는 달리 좀 싼티나지만 슬슬 개성을 밴드가 드러내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다음번에는 ‘Senza Colori’ 같은 스타일로 ‘Il Cacciatore’ 같은 에픽 트랙을 하나쯤 만들어 봤으면 좋겠다. “Il-Lūdĕre”에는 그런 곡은 없었다.

[Black Widow,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