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rcle Jerks “Wild in the Streets”

Circle Jerks의 2집. 사실 펑크를 굳이 찾아듣지 않은지 좀 됐고 어디 가서 펑크를 좋아한다고 얘기할 만큼 아는 것도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도 묵직한 이름들은 그 무식한 메탈헤드라도 만족시킬 정도는 충분히 된다는 점을 오랜 커리어를 통해 입증했으니 기회를 주기엔 충분하다. 메탈은 아니라지만 어쨌든 캘리포니아 하드코어 펑크를 상징하는 밴드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Group Sex” 같은 앨범은 충분히 에너제틱했으므로 파워라는 면에서도 매력은 분명하다. 한 때 그 Chris Poland(Megadeth의 그 분 맞음)가 이 밴드의 투어 멤버로 뛰기도 했으므로 메탈헤드의 입장에서도 이야깃거리 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말 나온 김에 이 분은 왜 펑크 밴드에서 베이스로 세션을 뛰셨는지 의문이지만 찾아보긴 귀찮으므로 넘어가고.

아무래도 “Group Sex”보다는 조금은 떨어진다는 평가가 일반적일 텐데, “Group Sex”보다 길어진 곡들이 늘어지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소리까지 있는 모양이지만 25분짜리 앨범을 너무 길다고 얘기하는 건 솔직히 너무한다 싶다. 아무래도 ‘하드코어’라는 말이 붙어 있긴 하지만 후대의 팝 펑크와도 무관하지 않은, 마냥 강하지만은 않은 음악이라서 그렇지 않을까(그런 미국 펑크를 찾는다면 차라리 Siege를 권해본다). 말하자면 적당히 흥겨운 멜로디와 절도있는 에너지가 돋보이는 하드코어 앨범이고, ‘Wild in the Streets’의 코러스는… 이 시절 펑크 밴드들이 만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귀에 잘 박히는 사례가 아닐까 싶다. 러닝타임이 25분이다 보니 러닝머신 뛰면서 듣기에도 좋다. 너무 짧은가? 저질체력으로서는 더 길면 곤란하다.

[Faulty Products, 1982]

Eels “Beautiful Freak”

오늘은 거의 종일 파워 일렉트로닉스를 들은 하루였으니 마무리는 좀 그래도 사람이 노래하는 앨범을 듣고자 문득 손을 뻗으면 이렇게, 메탈은 망했지만 그래도 록은 차트에서 나름의 성공을 거두었고 동방의 어느 청자는 생각 없이 인생을 살아도 별 문제가 없었던 90년대 초중반의 앨범이 걸려드는 경우가 많더라. 아마도 그 시절에는 지금보다는 마음 편한 인생이었을 테니 그렇잖을까 싶다.

‘Novocaine for the Soul’로 더없이 유명한 90년대 클래식이자 Eels의 데뷔작이니 사실 이 블로그까지 흘러올 이들에게 설명은 불필요할 것이고, 아무리 그런지가 한풀 꺾인들 결국은 그런지 시대의 유산일 테지만 시애틀의 그 흐름과는 방향 자체를 달리하는, 아무래도 그런지를 하기에는 Beatles를 너무 많이 들었음이 분명해 보이는 영국적인 사운드를 꽤 좋아했었다. Randy Newman을 의식한 Nirvana같기도 한 저 첫 곡도 좋지만 칠링한 분위기의 ‘Flower’에서 역설적일 정도로 분위기를 바꿔버리는 ‘Guest List'(하모니카 솔로만으로도 이 곡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로 이어지는 부분이 앨범의 백미일 것이다.

뭐 그리고, 이런저런 얘기를 했지만 사실 Eels를 선택하도록 하는 건 그 시절 얼터너티브가 보여주곤 했던 분노나 (나름의)고뇌보다는 어쨌든 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힐링’의 분위기에 가까웠던 밴드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곤 하는 사실이지만 어떤 시점에는 정말로 노보카인 같은 앨범이었던 셈이다. 라이센스도 나왔지만 2CD 리미티드 버전에 실린 BBC 라이브 보너스가 그만이므로 웬만하면 그쪽을 권한다.

[Dreamworks, 1996]

When “Death in the Blue Lake”

When은 80년대 노르웨이에서 인더스트리얼을 하고 있었다고 이런저런 문헌에서 이름을 디밀던 Lars Penderson의 솔로 프로젝트이다. 위키에 의하면 어린 시절 Jackson 5 풍의 활동을 뒤로 하고 1983년부터 When으로 활동을 개시했다고 하나… 어쨌든 알려진 건 아무래도 근래의 Jester Records에서 나온 작품들 덕분일 것이고, 처음으로 빛본 건 그래도 Satyricon의 “Dark Medieval Times” 인트로에 ‘Death in the Blue Lake’의 샘플링이 들어간 덕분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초창기 북유럽 블랙/데스메탈의 알려진 밴드들 중 다수가 은근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Silvester Anfang’의 Mayhem도 있었고, 훗날 메탈은 집어치우고 전자음악으로 넘어가는 Ulver나 Burzum도 그렇고, De Infernali를 통해 (나쁜 의미로) 충격적인 사운드를 보여준 Dissection도 그렇… 다고 하려니 이건 좀 그렇다. 넘어가자.

물론 블랙메탈 밴드들에게 인기 많았던 앨범이라 해도 메탈과는 별 관련 없는 사운드지만, A사이드 전체를 장식한 ‘Death in the Blue Lake’의 기괴한 샤우팅이나 자욱한 분위기의 사운드 이펙트, 바람 소리 머금은 오케스트레이션 등은 틈만 나면 숲 얘기를 하곤 하던 노르웨이 블랙메탈 밴드들이 어떤 지점을 참고했을지 짐작케 하는 부분이 있다. B사이드는 그런 분위기와도 거리가 멀고 이런저런 주제의 소품들을 모아 놓은 듯한 구성인데, ‘Paint the Dance’의 생각보다 팝적인 모습에 어리둥절하다가도 ‘Under X-Mas Tree of Medusa’의 Art Bears풍 괴팍함은 When이 알려진 ‘블랙메탈풍’ 분위기 말고도 즐길거리가 많은 프로젝트임을 보여준다. 솔직히 Satyricon 얘기를 하지 않고 소개하기는 조금은 번거로울 앨범이겠지만, 들을 때는 Satyricon 생각을 하지 않고 듣는 게 훨씬 좋을 것이다.

[Witchwood, 1988]

X-Botteri Project “Universe”

In the Woods…와 Green Carnation에 몸담았던 Christian “X” Botteri이 Richard Sahlin이라는 정체모를 이를 끌어들여 만든 프로젝트. 하지만 곡은 전부 다 X Botteri가 만들었고 저 Richard의 역할은 드럼 프로그래밍 뿐인데, 그 드럼 프로그래밍의 비중도 별로 없는 앨범이니 사실상 X Botteri의 솔로 앨범이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렇다면 X Botteri가 드럼 프로그래밍까지 해도 됐을 텐데 대체 Richard Sahlin을 왜 끼워줬을까? X Botteri 정도면 그래도 웬만큼 알려진 뮤지션인데 이 솔로작은 왜 어느 곳에서도 다루고 있지 않을까? 그간 밴드 활동으로 얻은 명성은 어디 내다버리고 이런 멋대가리 없는 커버로 정체모를 레이블에서 앨범을 내고 있을까? 앨범의 남루한 외양에서 벌써부터 많은 의문거리가 피어오른다.

그리고 음악은… 왜 이 앨범을 어느 곳에서도 다루고 있지 않을까 짐작되는 사운드이다. 느릿느릿한 템포라는 점 외에는 Green Carnation의 둠-데스와는 공통점을 전혀 찾을 수 없는 일렉트로닉에 약간의 기타 연주를 곁들인 정도의 음악인데, 보컬도 없고 나름 곡명에서 엿보이는 테마에 X Botteri가 짤막하게 붙인 곡들을 모은 앨범이 아닐까 싶지만 미욱한 청자로서는 딱히 빛나는 연주나 멜로디를 찾아볼 수 없다. ‘Door’ 같은 곡의 공간감 있는 신서사이저와 기타 멜로디라인이 그나마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의 단편에 가까울 텐데, 녹음은 왜 또 이렇게 했는지 날카로운 일렉트로닉스가 그 와중에 귀를 때린다.

그래서 간만에 기억나서 들어봤지만 오늘도 이해는 좀더 미뤄둔다. 사실 앞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이 앨범은 정말 뭘까.

[PR Records, 2005]

Autopsia “In Vivo II : Autopsia Archive Recordings 1980-1988”

Autopsia는 사실 뮤지션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영역을 오가는 아티스트라고 알려져 있지만 일단 나로서는 이 ‘그룹’의 음악 외 영역의 활동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고, 1980년부터 활동한 이 오랜 역사의 그룹의 대표적인 활동상은 역시나 음악이다. 이 그룹은 2016년에 Death Continues라는, Sutcliffe Jugend의 앨범을 낸다는 점 외에는 딱히 알려진 게 별로 없는 레이블에서 창작력이 넘치는지 “In Vivo”라는 이름의 아카이브성 컴필레이션을 낸 바 있고, 말하자면 이번 앨범도 그 컴필레이션의 후속작인 셈이다. 하지만 “In Vivo”가 1982년부터 1989년까지의 작품을 담고 있던 점을 생각하면 대체 왜 1980년부터 1988년까지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게으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수록곡들은 꽤 다양하다. “Berlin Requiem” 같은 앨범이 기본적으로 인더스트리얼에 의외일 정도로 전통적인 악기 편성을 가미한 ‘현대음악’에 가까운 음악을 담고 있었다면 이 컴필레이션은 그룹이 1980년대 데스 인더스트리얼의 맹아에 가까웠던 음악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그런 면에서 이들을 Laibach에 비교하는 것은 꽤 많은 면모들을 놓치는 셈이다) 훗날의 martial 사운드를 예기하는 ‘Kissing Jejus in the Dark”도 그렇지만, 의외의 다크 앰비언트를 보여주는 ‘Red Nights’에서 역설적으로 SPK풍의 폭력성을 선보이는 ‘Relax’로 이어지는 부분을 보자면 아날로그로 별 걸 다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레이블의 소개에 의하면 모두 컴퓨터/신서사이저 등을 쓰지 않고 테이프 머신과 링 모듈레이터만을 썼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건가?) 솔직히 “Berlin Requiem”의 즉물성에 반했던 사람이라면 아쉬울 수 있겠지만, 그룹의 이름에 걸맞는 충분한 재미만은 확실한 앨범이다.

[Death Continues,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