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 “Zabijanie Czasu I”

일단 밴드 이름이 이래서야 음악이 뭐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범상찮겠다 생각할 수밖에 없고, 그나마 레이블을 보고 어땠든 블랙메탈이긴 하지 않을까 정도만 짐작하며 앨범을 접했는데도 이렇게 짐작이 제대로 빗나가는 경우는 그래도 드물었던 것 같다. 얻어맞은 뒤통수가 얼얼한 가운데 부클렛을 들춰보니 밴드 편성부터 보컬, 베이스에 클라리넷이고, 스스로의 음악들을 ‘다크 오컬트 펑크(funk)’라고 자처하고 있다. 거기까지 보고 나서야 지금 이런 음악을 들었었구나 조금 가닥히 잡힌다. 물론 가닥이 잡혀도 꽤 괴이한 걸 들었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펑크라고는 했지만 사실 리듬감으로 먹고 사는 음악은 아니고, 그보다는 앰비언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둠에 가까울 정도의 여유 있는 템포를 바탕으로 만들어내는 오컬트 분위기로 승부하는 앨범이다. 베이스가 둠의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괴팍한 클라리넷이 이 분위기를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뒤튼다. 기묘한 건 덕분에 앨범을 들으면서 머리속에 떠오르는 별다른 이미지가 없었다는 점인데, 거의 대부분이 임프로바이징으로 구성된 앨범이라니 그래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사실 철저하게 혼돈스러운 구성은 아니고, 부분부분 곡을 구성하는 멜로디나 테마들은 있지만, 그 사이사이를 연결하는 모습이 좀 황당할 정도의 도약이다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덕분인지 세평은 꽤 좋은 모양이지만 아직은 이 앨범이 정말 그 정도인지 별 감은 없는데, 그래도 2020년 가장 신기했던 앨범을 꼽으라면 가장 유력한 후보일 것이다. 뭐, 이 EP로 밴드를 첫 선을 보이는데 이만큼 어그로를 끌었다면야 어쨌든 충분히 성공적인 거 아닐까.

[I, Voidhanger, 2020]

Jeff Austin Project, The “Go Big or Stay Home”

광고문구로는 한 시절을 풍미한 명 프로듀서의 복귀 프로젝트! 식으로 써 놓긴 했는데 과연 Jeff Austin이 대체 어떤 활동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없거니와 찾는다고 나오지도 않는다. 그러니까 광고문구야 어쨌던 접하는 입장에서는 활동 기간은 오래됐지만 사실 무명에 다름아니던 뮤지션의 출사표 프로젝트에 가까웠던 셈인데, 그래서인지 앨범명도 나가서 대박 터지거나 아니면 집에 있어라…는 식으로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역시 사람이 말이 씨가 된다고 2002년에 나온 AOR 앨범에 대박을 기대하긴 사실 어려웠고, Jeff Austin이라는 이름을 이후에 다른 앨범 크레딧에서라도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 ‘풍미했던 시절’에 그랬듯이 활동은 계속했겠지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렇긴 하지만 이 앨범은 2002년과는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았던 ‘웰메이드’ AOR 앨범이었다. B급 또는 그 이하를 달리는 AOR 밴드가 그 자리에 있게 되는 데는 시절의 문제도 있지만 보통은 A급을 따라잡을 수 없는 멜로디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덕분에 이런 밴드들이 앨범 중간중간에 발라드 1~2곡을 끼워넣는 모습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마냥 빠르진 않더라도 굳이 발라드를 끼워넣지 않는 패기도 그렇고, 사실 어느 하나 떨어지는 곡도 없었기 때문에 편하게 듣기는 더할나위 없는 앨범이었다. 달리 말하면 킬러 트랙도 없기는 했지만, ‘Caught Up in Ecstasy’는 좋은 시절 Survivor를 떠올리게 하는 데도 있고, Van-Zant의 극복이 안 되는 뽕끼를 쏙 뺀 ‘I’m a Fighter’의 커버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Journey의 “Frontiers”를 의식했을 ‘Too Late for Love’는… 아마 노래방에 있었다면 한번 불러보지 않았을까 싶다. 없으니까 하는 얘기다.

[Frontiers, 2002]

21st Century Schizoid Band “Live in Japan”

잘라 말한다면 Robert Fripp 없는 King Crimson이다. 말하자면 홍철 없는 홍철팀 같은 셈인데… 그래도 Jakko Jakszyk를 제외하면 멤버 전원이 정말로 King Crimson의 ‘클래식’ 시절 멤버이기도 하고, Jakko 본인도 커리어 내내 King Crimson의 그림자 아래 활동한(그리고 하고 있는) 인물이니 아쉬운대로 껴줄만 할지도. 뭐 Billy Sherwood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Yes에 비교한다면 이 정도 멤버라면 Robert Fripp이 클래식 멤버들과 함께하지 않는(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 현재 그런대로 만족할 만 하지 않은가 싶다. King Crimson의 공연을 본 적 없는 이로서 그래도 오리지널보다 좀 더 저렴할 이 분들은 더 부르기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다. 물론 부르는 입장이 아니므로 막말하는 거다.

클래식 멤버들이 모인 이상 흥미로운 지점들도 여기저기 있다. 일단 Ian McDonald가 썼지만 정작 녹음에는 참여하지 못했던 ‘Cat Food’의 Ian McDonald 버전을 들을 수 있다는 것도 그렇고, ‘Moonchild’ 빼고는 King Crimson 데뷔작의 모든 곡을 담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 불만이 있다면 “Lizard”에서는 한 곡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건데… 이 멤버들이 밴드를 떠났던 시기들을 생각하면 뭐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Let There be Light’나 ‘If I Was’처럼 King Crimson 레퍼토리 밖에서도 일부 선곡이 되고 있는데, 뭐 이분들도 King Crimson 말고도 많은 활동을 해 왔던만큼 그 정도는 자연스러울 것이다. 멤버도 그렇고 King Crimson보다는, King Crimson을 포함한 패밀리 밴드들의 레퍼토리를 나름대로 집대성한 라이브앨범일 것이다.

그래도 앨범의 백미는 ’21st Century Schizoid Man’이다. Jakko가 Billy Sherwood와는 격을 달리하는 뮤지션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Mel Collins의 색소폰에 이어지는 솔로잉에 솔직히 조금 감명받았다. 상으로 오늘은 Tangent 앨범도 간만에 들어봐야겠다.

[Self-financed, 2003]

Hawkwind “Hawkwind 50 Live”

데뷔 50주년 기념 투어 같은 건 Rolling Stones 같은 어르신들이나 하는 줄 알았는데 Hawkwind도 급기야 작년에 돌았던 50주년 투어 라이브앨범이 나와버렸다. 뭐 Rolling Stones가 어쨌든 나이가 있다보니 신보는 안 나오고(“Blue & Lonesome”을 신보라긴 좀 그렇지 않나?) 흘러간 클래식들을 리바이벌하면서 이어가는 밴드에 가깝다면 Hawkwind는 가끔 노환으로 투어를 쉰다는 뉴스가 들릴지언정 쉬지 않고 매년 신보를 내고 있다는 중요한 차이가 있는만큼 50주년 라이브를 대하는 느낌도 좀 다르다. 뭐 젊은 피 수혈이 있긴 했지만 어차피 예전부터 Hawkwind는 Dave Brock의 밴드고, 일단 알려진 유명 멤버들은 많이들 돌아가셨으니까.

선곡은 당연히 나쁘지 않다. 일단 매년 신보 내는 어르신들인만큼 2019년작 “All Aboard the Skylark”에서도 다섯 곡을 골랐는데, 이 들어보지 못한 2019년작의 곡들부터가 괜찮은데다 자리는 부족하지만 밴드의 기나긴 커리어에서 나름 고르게 곡들을 골라냈다. 눈에 띄는 건 ‘The Watcher’인데, 부를 수 없는 Lemmy 대신 Phil Campbell을 게스트로 불러(‘The Welsh Wizard!’)내는 모습이, 노회했지만 여전히 정력적이고 유쾌한 공룡을 보는 듯한 느낌이 있다(삑사리 몇 번 나긴 했지만 넘어가기로 하자). “Electric Tepee”의 팬으로서 ‘The Right to Decide’가 들어 있는 것도 반갑다. 공연을 갈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Master of the Universe’까지 듣고 나면 이 분들 라이브도 엄청 재미있겠구나, DVD를 사자! 하는 생각이 드니 라이브앨범으로서는 목적을 초과달성하는 게 아닐까. 물론 이 글을 쓰는 이가 이미 더없이 관대하게 앨범을 듣고 있으니 이 글은 리뷰로서는 아마 용도폐기 수준이겠지만.

… 그런데 당연히 같이 나왔을 것 같던 DVD가 안 나왔더라. Cherry Red가 돈냄새 맡는 데는 나름 기가 막힌 곳인데도 이러니 아마 밴드의 뜻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그래, 이 분들 돈 버는 데는 재주 없었다.

[Cherry Red, 2020]

Yurei “Working Class Demon”

Blitzkrieg Baby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Porcus Norvegicus”는 Kim Solve만큼이나 드럼 세션인 Bjeima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 앨범이었고, 뭐 경력으로 인정받아 들어간 건 아니었겠지만 Bjeima는 Fleurety의 세션으로 노르웨이 메탈 씬에 이름을 디밀기 시작했으니 실험성 짙은 노르웨이 재야의 실력파 뮤지션! 정도로 표현하기 부족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씬에 등장한 Bjeima는 Kim Solve와 함께 음침하기는 블랙메탈이라고 하기에 부족하지 않지만 정작 그렇게 부르자니 뭔가 주저하게 되는 묘한 스타일들을 계속해서 선보여 왔다. 그러니 본인에겐 유감스럽겠지만 Kim Solve와 떼어놓고는 별로 얘기할 게 없어지는 뮤지션인 셈이다.

Yurei는 Bjeima의 프로젝트들 중 Kim Solve가 참여하지 않은 매우 드문 사례인데, 레이블이 Kim이 운영하는 곳임을 생각하면 이게 진짜 Bjeima만의 음악이다!라고 강조할 필요도 없지만 그래도 21세기에 노동계급 유령 같은 이름을 붙이는 패기를 믿고 앨범을 돌려보면 원맨 밴드치고는 꽤나 정교하게 세공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Ved Buens Ende나 Virus, Fleurety를 짙게 의식한 리프들이지만 곡의 구성들이나 사운드의 배치는 전혀 메탈적이지 않다. 때로는 빅 밴드나 RIO(내지는 Sonic Youth의 괴팍한 시절), 때로는 Angelo Badalamenti풍 영화음악에 가깝기도 하다. 말하자면 일찌기 Ved Buens Ende가 정립한 컨벤션을 블랙메탈 외의 영역으로 확장한 듯한 스타일인데, 그렇다 보니 이걸 좀 더 시네마틱하게 변주한 King Crimson의 아류라고 못할 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둠이나 블랙메탈 딱지를 달고 이런 음악을 연주한다는 건 대단한 개성이라 생각한다.

Ved Buens Ende에서 시작됐을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어떤 계보학을 논한다면 반드시 짚어봄직한 앨범이다. 문제는 저 계보학이 블랙메탈 중에서도 특히나 인기없을 만한 영역을 다룬다는 점이고, 특히나 이 앨범은 메탈처럼 생겼지만 정작 메탈 앨범은 아니라는 점이 더욱 걸린다. 그래도 기본적인 재미만큼은 분명한 앨범이니 머리쓸 일 없는 날에 일청을 권해본다. 머리쓸 일 없는 날에.

[Adversum,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