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 Halen “The Best of Both Worlds”

Van Halen의 정규작은 다 가지고 있으니 이런 컴필레이션은 사실 큰 의미가 없겠지만 워낙 히트곡이 많은 밴드인만큼 앨범 여러 장을 다 갖고 다니면서 들을 수도 없는 일이고 이렇게 친절하게 모아 놓은 앨범 하나쯤 구비해 놓는 건 적어도 편의성의 취지에서는 좀 괜찮지 않은가 생각한다. Sammy Hagar 시절에 좀 기울어진 선곡을 보여준 “Best of Volume 1″보다는 앨범명부터 David Lee Roth와 Sammy Hagar를 적절히 안배하고 있는 이 앨범이 그래도 밴드의 면면을 더욱 잘 보여주는 편이라고도 생각한다. 일단 시절부터 2004년이니 밴드의 디스코그라피가 거의 완성된(솔직히 “A Different Kind of Truth”는… 그냥 그랬다) 이후에 나온 컴필레이션이기도 하고. 미발표곡도 이 앨범의 ‘It’s About Time’ 등이 ‘Me Wise Magic’보다 나으니 나로서는 이 앨범에 한 표를 준다.

문제가 있다면 “Best of Volume 1″도 그렇지만 이 앨범에도 ‘Mean Street’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싱글 커트가 안 된 곡도 아니고 ‘Unchained’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는 곡이 왜 베스트에는 번번히 빠져 있나 싶은데 그래도 밴드의 팝적인 면모와 호방한 아메리칸 하드록을 가장 두루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Jamie’s Cryin”은 이번에는 들어가 있으니 그거로 일단 만족해야 할지도. 뭐 결국 이런 공룡 밴드 컴필레이션에 대한 호오는 선곡에 대한 의견에 달려 있을게다. 밴드의 모든 곡이 그렇지만 어느 하나 쉬이 넘길 것이 없고, Edward Van Halen의 연주(기타만이 아니라 신서사이저도) 또한 ‘당연히’ 빛난다. 이번 부고는… 꽤 타격이 있다. 밴드 말고 나 말이다.

[Warner, 2004]

Moon Far Away “Athanor Eurasia”

퀄리티를 떠나서 어쨌든 판매고는 그냥 그랬던 이 아르한겔스크 네오포크 밴드가 Prophecy에서 앨범을 내게 됐으니 확실히 뜨긴 했나보다. 뭐 그러기 충분할 만큼 매번 중량감 있는 앨범을 내놓았기도 했고, 러시아 밴드이긴 하지만 애초에 그렇게 지역색이 강한 밴드는 아니었던만큼 Prophecy에서 손대기 딱 적당해 보이는 사례이긴 하다. Moon Far Away는 곡 자체는 심플하게 가져가면서도, 보컬 라인이나 앰비언트, 약간의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사운드와 연주를 덧붙여 풍성한 들을거리를 만들어내는 게 보통이었으니(그런 면에서 Current 93과 확실히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좀 더 주머니 두둑한 레이블에서 어떤 걸 보여주려나 하는 기대도 자연스럽다.

그런 면에서는 앨범은 좀 의외다. 일단 앨범의 절반 가량은 러시아어로 가사를 쓰고 있고, 사운드도 그런 ‘다양한 사운드와 연주’를 걷어내고 포크 본연에 집중하고 있고, 곡들 대부분도 그 아르한겔스크 지역 포크 송을 반영해 작곡되었다고 한다. ‘The Song of The Five Lakes Watermills’에서는 정말 물레방아 소리가 나오는 정도인데, 물레방아 소리와 재즈 드럼을 한 곡에서 같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이 앨범에서 밴드가 확실히 방향을 이전과 달리 가져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Tony Wakeford가 참여한 ‘Celebrate!’에서는 과장 섞으면 Frank Zappa가 소시적에 했던 동유럽풍 포크 사운드도 떠오르기도 한다. 말하자면 어쿠스틱 기타/베이스, 퍼커션, 보컬로 구성된 ‘포크 밴드’로서 자신들의 곡으로 정면승부한다는 셈인데, 빠지는 곡 하나 없는 느낌이니 그런 시도는 나름 성공적이지 않았나 싶다. ‘The Blueberry Song’이 개인적인 앨범의 백미.

[Auerbach, 2019]

Kirlian Camera “Invisible Front. 2005”

Kirlian Camera의 음악이 호오는 갈릴지언정 만듦새가 허접했던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이 거의 40년이 되어 가는 뿌리깊은 일렉트로닉 밴드는 2000년에 Elena A. Fossi를 보컬로 맞이하면서 비로소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게 사견이다. 보컬도 보컬이지만 Angelo Bergamini 말고도 고쓰 스타일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송라이터가 한 명 더 생겼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자기 목소리여서인지 Elena가 쓰는 곡들에서 밴드 특유의 퇴폐 자욱한 스타일이 잘 살아난다고 생각한다. 이탈로 디스코 리듬에 제대로 퇴폐를 얹을 수 있는 밴드는 적어도 내가 아는 범위에서는 많지 않다.

“Invisible Front. 2005″는 오랜 커리어 덕분에 풍성한 게스트는 물론, Elena 가입 이후의 앨범들 중 가장 그런 매력이 잘 드러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댄스 플로어 뒤에 등장하는 부유하는 신서사이저 연주에 얹히는 보컬만으로도 이들의 스타일을 대변하는 밴드의 최대 히트곡(뭐 히트곡을 따진다면) ‘K-Pax’를 위시하여, 좀 더 밴드의 초창기 사운드에 가까운(바꿔 말하면 Kraftwerk 느낌이 더 남아 있는) ‘Dead in the Sky’도 있고, 혹시나 피로했을지 모를 귀를 배려했을까 싶은 단정한 피아노 연주의 ‘Recorded Memory’도 있다. 사실 고쓰 묻은 전자음악을 얘기한다면 앨범의 모든 부분들을 빼놓을 수 없을 앨범이니만큼 이렇게 몇몇 곡들을 골라내는 식으로 얘기함은 적절하지 않다. 재발매된 김에 한 장 장만을 권해본다.

[Trisol, 2005]

Dynatron “Aeternus”

Dynatron은 많은 신스웨이브 프로젝트들 가운데 좀 더 ‘감상용’에 적합한 부류에 속한다. 흔히 2010년 이후에 주목받은 많은 프로젝트들이 디스토피아 컨셉트에 거칠거나 또는 꽤 절도있는 묵직한 비트를 발판삼아 곡을 이끌어 나가는 스타일에 가깝다고 한다면, Dynatron은 그보다는 Harold Faltermeyer나 Jan Hammer에서 뉴에이지 물을 뺀 모습에 더 비슷해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스페이스한 분위기를 끼얹은 Klaus Schulze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말하자면 “Body Love”가 에로영화 OST였다면 Dynatron의 음악은 SF영화 OST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물론 우주에서의 다양한 이벤트들보다는 우주라는 공간 자체의 묘사에 가까울 음악이다. 그래도 앨범 초반 중력을 극복하는 과정의 경쾌함을 묘사했던 “Escape Velocity”보다도 좀 더 어두운 앨범인데, ‘Escape’처럼 에너제틱한(그래봐야 앰비언트에 하우스를 좀 덧붙인 정도이긴 하다만) 곡도 없지는 않으니 그리 걱정할 필요까진 없겠다. 사실 ‘The Outer Rims of Traversed Space’ 등에서는 John Carpenter를 거의 오마주에 가까울 정도로 따라하는지라 듣기 편하면서도 귀에 걸리는 감이 있는데, Carpenters Brut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으로서 하긴 그게 뭐 단점인가 싶기도 하다. 신스웨이브의 팬이라면 일청을 권한다.

[Blood Music, 2015]

Rosetta Stone “Seems Like Forever”

최근 알게 된 지나간 소식들 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Rosetta Stone의 재결성이었다. 뭐 말이 재결성이지 Porl King이 다시 그 드럼머신 ‘Madame Razor’를 데리고 시작한데다, Porl이 90년대 말에 혼자 굴리던 포스트펑크 프로젝트 Miserylab의 곡들의 재녹음이라니 본격적인 활동을 다시 개시했다기는 좀 그런데, 금년에 또 새 앨범을 준비 중이라니 어쨌든 20년만의 이 재결성이 나름 아주 야심찬 움직임이었긴 했나보다. 물론 그렇게 얘기하긴 누가 봐도 이거 재탕이려나 싶은 앨범명에 정말로 예전 곡들을 재녹음하고 있는 모양새가 좀 민망하긴 하지만, Rosetta Stone을 21세기에 듣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국 추억 맛을 잊지 않고 있을지니 그게 꼭 이해가 안 되는 모습은 아닐지도.

그렇다고는 해도 시절이 시절인만큼 예전 Rosetta Stone의 음악과는 좀 달라졌다. 고쓰라지만 쟁글쟁글 펜타토닉에 페달을 가끔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써먹던 기타 팝에 가까웠던 모습이 밴드의 초기였다면, ‘Children of the Poor’ 같은 확실히 예전보다 미니멀한 구성의 곡들은 Miserylab이 포스트펑크 프로젝트였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반면, 신서사이저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신스 팝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Making A Bomb’의 위악스러운 발랄함은 이 밴드가 예전의 기타 팝을 좀 더 현대적이지만 기괴한 모양새로 풀어가는 단초를 보여준다.

물론 그래도 사실 익숙한 사운드이기는 하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고 하면서 가져오는 게 포스트펑크라는 데서 이미 많이들 짐작했을 것이다. 하긴 80년대 고쓰 밴드의 재결성을 두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힐난하는 바보는 드물게다.

[Cleopatra,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