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in June “Nada!”

Death in June의 포스트펑크 시절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Death in June이 포스트펑크 밴드의 모습을 걷어내고 슬슬 이후의 네오포크를 끄집어내기 시작한 앨범은 바로 “Nada!”라는 게 중론이다. 때문에 정작 따져보면 세 번째 풀렝쓰인 “Nada!”를 밴드의 데뷔작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꽤 잦은 편인데(뭐 사실은 별로 듣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라는 게 더 정확하겠지만), “The Guilty Have No Pride”와 “Burial”이 고쓰/포스트펑크(굳이 짚는다면 Joy Division이나 Bauhaus)의 컨벤션을 그리 벗어나지 못한 앨범이었으니 ‘네오포크의 알파이자 오메가'(뭐 이건 너무 나간 표현이긴 하다)로서 데뷔작은 “Nada!”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지도.

그런 때문인지 오늘날 Death in June의 대표곡이라고 얘기되는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앨범도 바로 이 “Nada!”부터다. ‘Leper Lord’와 ‘Behind the Rose(Fields of Rape)’가 그렇고, 일렉트로닉이 가미된 네오포크의 단초를 보여주는 ‘The Honour of Silence’ 또한 밴드의 과거이자 현재로서 지금껏 셋리스트에 등장한다. 사실 이 일렉트로닉은 Douglas P.보다는 Patrick Leagas의 작품일텐데, Sixth Comm에서는 은근 New Order스러운 댄서블함까지 비추던 Patrick이 Death in June에서는 Douglas의 음울한 색채에 그런 스타일을 맞춰나가는 모습도 흥미롭다. 아마도 그 단적인 예는 ‘Carousel’일 것이다. 자, 여기까지만 해도 벌써 이후의 네오포크 스타일의 많은 부분이 드러난다. 그러니 이 85년작을 클래식의 반열에 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New European Recordings, 1985]

Crisis “Holocaust Hymns”

1976-77년경 영국에서 쏟아져 나오던 일군의 펑크 밴드들 중 하나로서 SWP와도 연계된 활동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되)던 이 밴드가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좌파는커녕 오히려 파시스트로서의 혐의를 진하게 받는 Death in June의 활동을 통해서였다. “Nada!” 시절만 해도 포스트펑크의 면모를 강하게 보여주던 Death in June이 이후 네오포크의 ‘구루’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면서, 어떻게 그 포스트펑크 밴드가 군복 입고 유고 내전 당시 크로아비아 야전병원에서 자선공연을 하게 되었는지는 많은 이들의 연구 대상이 되었다.

이제는 컴필레이션도 몇 나왔지만 그래도 밴드의 1978년부터 1980년까지의 활동을 이만큼 망라해 둔 앨범은 이게 유일하다. 흔히 The Clash와 Crass와 비교되는 밴드이지만 음악은 뭐 The Clash 정도의 팝 센스도, Crass 정도의 공격성도 없는, 초창기 포스트펑크와 아나코-펑크 사이의 어딘가에 둘 법한 스타일이다. 앨범은 밴드가 그런 ‘팝 센스’의 공백을 메꾸기 위해서 이 시절 이미 포크를 선택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아직은 분명히 붉은 기운이 남아 있지만, ‘Back in the USSR’의 가사는 이미 이들의 생각이 조금씩 뒤틀려가고 있음을 은근히 암시한다. (Don’t rebel, you won’t get thanked, you’ll just get run over by a tank) 그러니 후대의 입장에서 흑백에 상관없이 연대를 부르짖는 노래의 제목이 ‘White Youth’라는 게 얼마나 기묘하게 보이겠는가? 음악도 음악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흥미보다는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앨범이다.

[Apop, 2005]

Ostara “Eclipse of the West”

네오포크를 그야말로 유럽적인 장르라고 얘기한다면 이젠 꽤 많은 반례를 찾을 수 있긴 하지만 이 장르의 많은 밴드들이 범유럽주의의 경향에서 자유롭지 못함은 잘 알려져 있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 Ostara는 장르의 ‘네임드’ 중에서는 가장 동떨어진 부류에 속한다. “Operation Valkyrie” 데뷔 싱글부터 발키리 작전을 통해 보수 혁명 얘기를 하더니(그런데 Claus von Stauffenberg가 그런 부류의 보수주의자였는지는 모르겠다) “Napoleonic Blues”까지 꾸준히 음울한 시각을 이어가는 모습은… 네오포크에서 그리 흔한 모양새는 아니다. 말하고 보니 이런 류의 니힐리즘이 드문 것까지는 아니지만, Spengler식 서구의 몰락 담론을 소재로 삼는 네오포크는 아직까지는 못 본 것 같다.

“Eclipse of the West”는 그런 면에서 의미심장한 제목인데, 사실 가사나 앨범 초반의 말랑말랑한 포크 사운드를 듣자면 니힐리즘보다는 좀 더 거슬러 올라간 시절의 낭만주의를 연상케 한다. 달이 차면 해가 지는 비유로써 나름 ‘몰락’의 이미지를 구현하려고 애쓰는 듯한 타이틀곡도 네오포크의 컨벤션에서 그리 벗어나는 곡은 아니고, Changes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Wayland’s Sons’도 라그나록의 비유를 써먹는 것만 제외하면 그리 어두운 스타일은 아니다. 게다가 다양한 레퍼런스(미시마 유키오, 조지 오웰, J.D. 샐린저, 성경 등)를 통해 이런저런 얘기를 늘어놓으면서도, 가사의 끝단에는 황량한 잿빛 풍경에 생경한 듯 어울리게 ‘사랑’ 한 꼭지를 항상 박아넣는다. 그런 면에서는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서구의 몰락 모티브를 줄줄 늘어놓다가 그래도 우리에게는 사랑이 있어! 하는 게 나름의 낭만주의일지는 모르겠으나 네오포크 밴드에게 보통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다.

아, 그런데 이거 Ostara의 앨범이구나. 하긴 그런 생경한 모습이 밴드의 개성이긴 하다.

[Soleli Moon, 2020]

La Maison Moderne “Day After Day”

Albin Julius의 사이드 프로젝트가 한 두개는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특이한 사례를 꼽는다면 아마도 첫손…까지는 모르더라도 꽤 상위권에 속할 만한 프로젝트. 그 점을 생각하면 Hauruck!의 2000년 발매작이라는 것도 꽤 놀랍다. Hauruck!에서 이렇게 애시드 냄새 짙은 음악이 나온다는 건 생각키도 어려울 시절이었다. 그러고 보면 Der Blutharsch의 사이키델릭 로큰롤 밴드로의 변화는 이미 여기에서 징조를 보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다고 요새의 ‘로큰롤 밴드’ Der Blutharsch의 음악과도 사실 많이 다른 음악이다. 단적으로 표현하면 Albin Julius가 하는 테크노/트랜스 음악 정도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고, 이 앨범을 취급하는 대부분의 디스트로들도 ‘뜨거운 밤을 위한 일렉트로닉 댄스뮤직’ 정도로 앨범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그래도 만든 사람이 사람인지라 댄스 플로어 뮤직과는 거리가 멀다. Der Blutharsch 특유의 사운드 샘플링을 들을 수 있는 ‘Spiel Süßer’도 그렇고, ‘Sea of Love and Hate’의 손풍금 소리 루핑이나 질펀한 펍 분위기까지도 떠올릴 법한 괴팍한 유머감각은 과장 좀 섞으면 Cabaret Voltaire 생각도 조금은 난다. 말하자면 Albin Julius식의 뒤틀린 유머감각을 잔뜩 섞은 조금은 ‘고풍스러운’ 분위기까지 묻어나는 전자음악이다. 그러니 재미는 충분하지만 Albin의 이름에서 당연히 martial 스타일을 기대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와닿지 않을지도.

[Hauruck!, 2000]

Wolvennest featuring Der Blutharsch and the Infinite Church of the Leading Hand “WLVNNST”

Der Blutharsch의 이름을 걸고 사이키델릭 블랙메탈이라고 광고한 덕분인지 수준 이상의 블랙메탈을 기대키 어려울 멤버들의 이력에도 불구하고 이 밴드는 꽤 많은 관심을 얻어낼 수 있었다. 문제라면 광고문구는 블랙메탈이었으나 사실 음악은 블랙메탈의 기운을 약간 머금은 둠메탈에 가깝다는 점이었는데… 뭐 애초에 앨범 커버도 그렇고 저 광고문구의 핵심적인 부분은 ‘사이키델릭’일 테니, 앨범에 관심을 가졌던 이들에게 크게 문제될 부분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미 Der Blutharsch가 사이키델릭 로큰롤 밴드가 된 지도 오래 된 2016년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Der Blutharsch and the Infinite Church of the Leading Hand는 2015년에 “The Wolvennest Session”을 발표했다. 그러니 결국은 말이 피쳐링이지 Der Blutharsch의 사이드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지도.

사이키델릭한 둠메탈이라고 하면 개인적으로 먼저 떠오르는 건 Esoteric이지만 사실 그런 스타일은 아니고, 굳이 비교하자면 Aluk Todolo 같은 밴드를 떠올릴 수 있겠지만 어쨌든 거친 질감의 ‘포스트록’ 밴드에 가까웠던 Aluk Todolo에 비해서는 이들이 좀 더 메탈릭하고 친숙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는 간혹 괴이한 애시드 향내를 풍기던 Der Blutharsch보다도 듣기 편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Marthynna의 보컬이 특히 돋보이는 ‘Out of Darkness Deep’이 단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이렇게 얘기하기에는 수록곡들 전부가 비슷한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Ván,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