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tiis “Spirit of Rebellion”

mortiis2020항상 저게 트롤인가 고블린인가 많은 얘기가 나오는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Mortiis가 한때 Emperor의 베이스(키보드도 아니고 베이스)였다는 건… 뭐 다들 아는 얘기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래서 뭐?라는 얘기가 나와도 이상치 않을 정도로 이후의 커리어는 블랙메탈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었다. 말이 다크웨이브/던전 신쓰지 “The Smell of Rain”부터는 Mortiis 본인도 일렉트로팝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고, 이후의 몇 장은 Velvet Acid Christ풍의 인더스트리얼을 살짝 얹은 키보드 뮤직이라 하는 게 맞을지 모르겠다. “The Perfect Reject”가 정말 앨범명과 잘 어울리는 반응을 얻어낸 건 뭐, 그런 시각에서 보자면 당연한 현상이었던 셈이다.

그런 면에서 근작은 간만에 Mortiis가 던전 신쓰로 돌아온 앨범이다. “Ånden som gjorde opprør”을 현대적으로 재녹음한 앨범…이긴 한데, 아무래도 마냥 키보드로 던전 신쓰를 연주하던 1995년이 아닌지라 좀 더 풍성하고 깔끔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은근슬쩍 1995년보다 10분 이상 늘어난 러닝타임이 어디서 붙은 것일지 그냥 들으면 무심코 넘어갈 정도로 흐름은 자연스럽다. “Visions of an Ancient Future”는 그래도 한 때 인더스트리얼 좀 했다는 티를 내긴 하는데, 원곡이 원곡인지라 초반을 넘어가면 다시금 우리의 예상대로의 흐름으로 돌아온다. 하긴 재녹음 앨범에서 새로움을 과하게 요구하는 것도 좀 아닐 것이다. Cold Meat Industry에서 나오면 딱이었겠다 싶은 앨범을 들어보는 것도 간만이라 반갑기도 하다. 기대보다 더욱.

[Dead Seed Prod., 2020]

Andrew King / Rose Rovine E Amanti / Sol Invictus “A Mythological Prospect on The Citie of Londinium”

solinvictussplit2006세 거물 네오포크 밴드/뮤지션의 스플릿!이라고 홍보되는 앨범이지만 사실 Andrew King이 그 본령을 Sol Invictus에 두고 있던 뮤지션인 점을 생각하면 그냥 Sol Invictus와 Rose Rovine E Amanti의 스플릿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지 싶다. 그러고 보면 고대 시대의 런던 얘기를 하면서 굳이 왜 이탈리아 밴드를 끼워 넣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말하자면 ‘낙양 이야기’ 앨범을 만들면서 중국 밴드들 사이에 뜬금없이 필리핀 밴드를 끼워 넣는 듯한 모양새인데, 요새야 네오포크가 많이 수그러들었다지만 2006년만 해도 지금 같지는 않았을진대 어울리는 영국 뮤지션을 달리 찾을 수 없었는지 의문스럽다. 기획력이 기묘하다.

그런 의문들 때문인지 정작 앨범에서 가장 힘을 준 듯한 수록곡들은 Rose Rovine E Amanti의 곡들이다. Von Thronstal의 Josef K.까지 데려와서 부르는 곡이 하필 ‘Roma (Fulcro Dell’Impero)’라는 것도 좀 기묘하나 만돌린과 바이올린을 솜씨 좋게 곁들인 발라드를 듣자면 런던 얘기를 꼭 영국 사람만 해야 하나?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오히려 Andrew King의 ‘Polly on the Shore’ 같은 곡이 Changes마냥 컨트리 느낌도 나고 덜 ‘영국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렇게 치면 곡들의 퀄리티야 둘째치고 기획은 확실히 좀 망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결국은 Sol Invictus가 그 ‘망한 듯한’ 기운을 다 수습해 낸다. 영국은 겁나 재밌는 동네지만 때론 엄청 무섭다는 얘기를 음험하게 풀어내는(‘Down the Road Slowly’) 모습에서 두려움 없는 코크니의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겠지만(생각해 보니 내가 영국을 가 본 적이 없다), 그 거짓말이 꽤 잘 먹힐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Cold Spring, 2006]

Skeldos “Ilgės – Caretakers of Yearning”

skeldos2019.jpgSkeldos는 소위 포스트-인더스트리얼 류의 프로젝트들 가운데 가장 주목받는 이들의 하나였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나름 주시해 왔던 밴드이긴 하다. 일단 리투아니아 인더스트리얼을 들어보는 일이 드물고, 포스트-인더스트리얼이라고는 하지만 이들만큼 앰비언트풍을 잘 이용해서 ‘관조적인’ 사운드를 주조하는 뮤지션은 드물다고 생각한다.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비교할 만한 좀 더 유명한 이름은 Yen Pox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그래도 ‘멜로디컬’하다고 말할 수 있는 앰비언트 밴드와 비교되니만큼 이 정도면 꽤 듣기 편한 음악이 아닌가 얘기해 본다. 양심상 이지리스닝이라고는 얘기 못하겠지만 말이다.

사실은 재작년에 나왔지만 작년에야 한 곡 추가해서 나온 뒤 그나마 조금 빛을 본(어디까지나 재작년에 비해서) 세 번째 앨범은 그 ‘멜로디컬’ 앰비언트에 네오포크의 터치를 더한 음악이라고 하는 게 그래도 적절할 법하다. 일렉트로닉스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앨범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것은 바이올린이나 어쿠스틱 기타고, 덕분인지 황량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리는 데가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특히나 ‘Fading Garden’의 바이올린은 (과장 좀 섞으면)Sieben의 가장 서정 어린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데가 있다. 이 한 곡 만으로도 Skeldos를 기억할 가치가 있다고도 생각한다. 뭐 다른 곡들이 빠진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The Epicurean, 2019]

Mega Drive “199XAD”

199xad.jpgMega Drive라고 하면 아무래도 슈퍼겜보이를 떠올릴지니 뭔가 업그레이드된 칩튠을 연주해야 할 것 같지만 이 프로젝트는 신스웨이브 중에서도 손꼽을 만할 정도로 거친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 그런 인상과는 확실히 거리가 있다. 거친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EBM을 연상할 정도로 강한 비트를 보여주기도 하는데, 덕분에 ‘industrial darksynth’ 정도로 부르는 이들도 있지만… 딱히 정확한 설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비트 말고는 딱히 인더스트리얼스러운 부분은 찾기 힘들다. 주로 다루는 테마도 SF이다 보니 오해의 여지는 충분하긴 하다만 그렇다고 Pertubator 등을 인더스트리얼이라고 하진 않는다. 각설하고.

아마 이 프로젝트의 가장 잘 알려진 앨범일 “198XAD”의 시퀄 격인 앨범인데, 원래 어두운 신스웨이브의 대표격인 앨범의 시퀄인만큼 이 앨범도 분위기는 충분히 묵직하다. Pertubator 등처럼 구체적인 세계관을 설정하지는 않지만 가사를 통해 하는 얘기를 들여다보면 거의 코즈믹 호러 수준인데, 이런 가사를 때로는 투베이스 드럼 부럽잖은 비트에 실어내니 확실히 메탈헤드들이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다. 특히 ‘Gun Hag’ 같은 거친 스타일의 곡은 Suicide Commando 같은 이들까지 떠올릴 법한데, 그러다가도 ‘Nikita’ 같은 사이버펑크 발라드를 중간중간 끼워넣으니 OST처럼 써먹기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디지털로만 나왔다가 생각보다 인기가 무척 많다 보니 최근에 피지컬로도 나왔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늦기 전에 한 장 장만해 보심도.

[FixT Entertainment, 2019]

Lustre “Lustre”

lustre1996.jpg이 밴드의 인지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실은 Lustre라는 이름을 보고 밴드를 떠올린다면 이 밴드가 아니라 보통 스웨덴 블랙메탈 밴드 Lustre를 떠올리곤 한다는 점이다. 뭐 세평이 좋긴 하다지만 ‘앰비언트 블랙’을 연주하는 밴드에게 파워 팝 밴드가 인지도에서 밀린다니 어지간히 망하긴 했나보다. 하긴 시간도 많이 지났고, 1996년은 이미 얼터너티브가 확실히 힘이 빠지긴 했던 시절이었다. 아무래도 Teenage Fanclub이나 Husker Du 같은 거물들과 비교되기에는 좀 많이 밀리는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이거 한 장 내고 망하기는 아까운 밴드였다고 생각하는데 하긴 그 시절 한 장 내고 망한 밴드가 이들만은 아니렷다.

망했다고는 하지만 이 앨범은 내가 들어본 그 시절의 얼터너티브, 또는 파워 팝 앨범들 중에서는 손꼽힐 정도로 인상적인 ‘훅’을 보여준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귀에 잘 박히는 리프도 그렇고, 앨범의 수록곡들도 나름대로 꽤 다양한 스타일들을 보여준다. 그래도 아직은 장르에 돈맛을 기대할 만했던 시절이었는지 A&M에서 나온 앨범인지라 음질도 나쁘지 않다. Robert Christgau가 C-를 준 게 한이 됐는지 검색하면 나오는 얘기의 절반은 저 C- 점수 얘기이지만… 뭐, 나라면 B+은 주지 않았을까 싶다. ‘Kalifornia’도 그렇고, 재발매반 B-Side로 들어간 ‘Great’도 충분히 흥겹다. 중고음반값 3달러로 맛보기에는 훌륭한 음악이다.

[A&M,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