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vy of None “Envy of None”

Neil Peart가 2020년 세상을 떠난 이후에 Rush의 앞날은 잘 모르지만 아마 밴드가 계속 이어지기는 쉽지 않겠다는 예측이 많은 편이었고, 대체 불가능해 보였던 드러머를 잃은 나머지 둘도 원래부터 Rush 말고 다른 이름으로 활동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데다 어쨌든 연세도 많이 드셨으니 이제는 노후를 즐길 수도 있겠다… 는 예상도 없지 않았다. 그러니까 Alex Lifeson이 프로그레시브와는 별 상관없어 보이고 실제로도 Rush의 흔적 같은 건 찾아보기 어려운 이 밴드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은 이래저래 의외다.

그래도 앨범은 굳이 프로그를 기대하지 않는다면 즐거운 면모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Maiah Wynne은 위키에 의하면 Florence and the Machine, Radiohead, Beatles, Norah Jones의 영향을 언급하는 96년생 여성 싱어송라이터… 라는데, 이전의 작품들을 들어보지 못한 관계로 정확한 스타일은 점칠 길 없으나 이 앨범의 공간감 있는 연주와 어우러지는 보컬은 흡사 Cocteau Twins의 그것과 비슷하게 들린다. 이런 공간감은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편인데, 덕분에 묵직한 리프를 보여주는 ‘Liar’나 ‘Dog’s Life’ 같은 곡들도 Rush보다는 Porcupine Tree에 가깝게 들린다. 그런가하면 ‘Dumb’ 처럼 포스트펑크에 가까운 전개를 보여주는 곡도 들려주는지라 은근히 Steve Howe 스타일의 손맛이 묻어 있는 기타가 아니라면 프로그 팬들은 대체 이게 뭘까? 라는 반응을 보일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그러니까 밴드가 스스로의 음악을 ‘아트 팝’ 정도로 소개한 것은 퍽 솔직한 얘기였던 셈이다.

어쨌든 경력이 경력인지라 프로그 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는 화려하진 않지만 수려하다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기타를 동반한 4AD풍 포스트펑크… 라고 하면 좀 단순하려나. 그래도 4AD와 Projekt의 발매작들도 간혹 꺼내 듣는 나로서는 기분좋게 들었다. 하지만 Alex Lifeson이라는 이름에서 자연스레 떠오르는 류의 연주를 기대한다면 아쉬움이 적지 않을테니 주의가 필요하다.

[Kscope, 2022]

LeBrock “Fuse”

하드록/AOR에 많이 경도된 류의 신스웨이브/드림웨이브 사례들은 이쯤 되면 장르의 숙명이다 싶을 정도로 많은 편이다. 당연히 레이블들이 소개하는 그런 음악들의 매력 포인트는 강렬한 기타 연주와 어우러진 청명하고 희망찬 신서사이저 연주! 인 경우가 많은데, 그럴 거 같으면 사실 이 그룹은 왜 밴드음악을 하지 않고 신스웨이브로 빠졌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Kristine처럼 본인은 보컬만 하는데 신스웨이브 그룹들에 목소리를 빌려주다 보니 장르의 대표격까지 올라간 사례는 그렇다 쳐도 아예 본인들이 밴드음악과 신스웨이브의 경계선마냥 음악을 하는 경우들은 더욱 그렇다.

LeBrock은 그런 ‘경계선’상에 있는 사례들 중 대표격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아닌게아니라 신스웨이브보다는 레트로 팝/록 듀오 마냥 소개되는 경우도 많아 보이지만 같이 어울리는 이들도 그렇고 본인들의 자기소개도 그렇고 신스웨이브라고 하는 게 일단은 맞아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멜로딕 하드록/AOR과 이런 류의 신스웨이브/드림웨이브를 구별하기 위한 징표들 중 하나라면 드럼머신의 쓰임새라고 생각하는데, 전자가 현실적인 여건상 드럼머신을 사용하더라도 최대한 실제 연주에 가깝게 사용하려고 한다면 후자는 이게 진짜 드럼 연주가 아니라는 걸 전혀 감출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은 편이고, LeBrock은 그런 면에서도 훌륭한 신스웨이브 듀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앨범은 전형적인 80년대 하드록에서 기대할 만한 매력들을 고루 가지고 있다. 메탈이랄 것까진 아니지만 점점 하드해진 탓에 우리가 알고 있는 웬만한 80년대 하드록/AOR 밴드들보다 파워풀한 면모를 보여줄 수 있고, 이왕 이렇게 만든 거 정말 제대로 된 밴드답게 테크니컬한 맛도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한 대로 멜로디만큼은 명확하게 살려주는 기타, 한창 시절 John Parr 같은 이들을 떠올리게 해 주는 Shaun Phillips의 보컬, 때로는 캠퍼스에서 만난 10대들의 사랑을 그린 류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러브송처럼 들리는 ‘Heartstrings’ 같은 곡에서 등장하는 직관적인 멜로디를 듣자면 아예 베이스와 드럼 구해서 밴드를 할 것을 왜 둘이서 이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재차 떠오른다. 그렇게까지 하기엔 기타를 못 쳐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만 어차피 화려한 기타 솔로로 승부할 거 아니면 크게 상관없지 않을까?

[FiXT Neon, 2021]

Supertramp “Crime of the Century”

지난 6일 Rick Davies가 돌아가셨다기에 간만에. 사실 Supertramp의 좋았던 곡이 있었지만 이 밴드를 좋아했느냐 묻는다면 솔직히 좀 애매했다. Genesis에 뒤질세라 인상적인 심포닉 프로그를 보여준 데뷔작 이후에 밴드가 그만큼 프로그레시브한 앨범을 내놓은 적은 없었고, 프로그레시브 레떼르를 아예 떼버리긴 좀 그렇다 하더라도 이후의 메가 히트가 그 프로그한 맛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어지간한 공룡 프로그 밴드들이 이미 망했거나 한창 망해가고 있던 1979년에 “Breakfast in America”를 터뜨릴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면에서 Supertramp라는 밴드의 핵심은 적당히 프로그한 맛도 있는 고급스러운 팝을 만들 수 있었던 것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Breakfast in America”는 취향상 좀 너무 나갔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이들을 위한 한 장이라면 아마 이 3집이 아닐까? 프로그레시브 록다운 면모가 엿보이긴 하지만 어느 하나 팝적이지 않은 곡이 없고, 이후 밴드를 상징하는 Rick Davies의 팔세토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Hide in Your Shell’ 같은 오케스트럴하면서도 프로그한 발라드가 있지만 ‘Dreamer’ 같은 본격 팝송이 있고, 라이브 떼창에도 적절해 보이는 코러스와 멋진 토크박스 연주를 선보이는 ‘Bloody Well Right’가 있다. 이게 무슨 프로그냐고 하는 이도 있겠지만 슬슬 팝송 좀 들어보겠다고 이것저것 찾아다니던 어느 돈없는 학생에게 이렇게 고급진 대중가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해 준 앨범이기도 하다. 그러고보면 Supertramp가 최애 밴드였던 적은 없지만 이 앨범은 인생디스크 중의 한 장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앨범과 Alan Parson를 듣고 나서 그 돈없는 학생의 인생은 (그 전이라고 꼭 괜찮은 건 아니긴 했지만) 뭔가 급격하게 꼬여가기 시작했으나 말이다.

[A&M, 1974]

Anneke van Giersbergen & Agua de Annique “Pure Air”

The Gathering을 들었으니 Anneke의 솔로작을 듣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기에는 Anneke의 솔로작을 굳이 찾아들을 이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 같지 않으므로 좀 애매하기 하다. 이미 둠-데스보다는 프로그레시브나 심포닉, 또는 좀 더 보컬이 중심에 가는 팝송에 관심이 많아 보이는 행보를 보여주었으니 굳이 Anneke 시절의 The Gathering의 팬이 이 음악을 찾아갈 이유까진 없었고, 저 프로그레시브/심포닉 테이스트는 Ayreon이나 Devin Townsend의 앨범을 통해서도 맛볼 수 있었으니 대체재가 생각보다 많았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까 소시적 The Gathering을 좋아했다고 말하는 메탈헤드라면 이런 행보가 꼭 맘에 들지만은 않을 가능성이 높겠다. ‘미녀와 야수풍 고딕메탈’의 전형같은 보컬은 아니었지만 장르의 황금기를 상징하는 걸출한 보컬에 대한 아쉬움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래도 나처럼 프로그 팬을 자처하는(잘 안다는 얘기는 아님) 메탈헤드에게는 이후의 Anneke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사실 남성보컬과는 구별되는 여성보컬의 면모를 그대로 드러내면서도 이만큼 파워풀한 보컬은 드문데다, 어찌 생각하면 종전보다 훨씬 보컬의 힘에 의존하는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으니 Anneke 본인으로서는 이쪽이 훨씬 만족스러울 수도 있어 보인다.

그런 면에서 Anneke의 커리어 중에서도 가장 본인의 취향과 보컬리스트로서의 기량을 잘 드러낸 한 장이라면 이 어쿠스틱 커버 모음집이 아닐까? 어쿠스틱 라이브이다 보니 사실 파워라는 면에서는 기대할 것 없겠지만 애초에 솔로작에서는 메탈과는 담 쌓은 스타일을 보여준 Anneke이므로 파워를 기대할 일은 없어 보이고, Ayreon이나 John Wetton의 커버야 충분히 예상가능한 범위지만(Arjen Lucassen과 John Wetton 본인이 직접 참여하고 있기도 하고)Alanis Morisette나 Damien Rice의 커버를 발견한 이들은 아마 꽤 당혹스러울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만큼 보컬 본연의 매력은 충만한 앨범이고, 충만하다 못해 화려한 게스트진이 이럴거면 굳이 참여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기도 한 수준인만큼 Anneke의 팬이라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Ayreon의 심포닉 프로그를 포크로 바꿔놓은 ‘Valley of the Queens’이 앨범의 백미… 인데, 생각해 보니 이건 원곡부터가 Anneke가 부른 곡인만큼 커버라고 하긴 좀 그렇겠구나.

[Agua Recording, 2009]

Gathering, The “Home”

처음에는 메탈로 시작했었지만 이제는 The Gathering을 메탈 밴드라고 부르는 게 맞을까? Anneke van Giersbergen 본인이야 항상 (꼭 이 밴드가 아니더라도) 메탈에 발을 담그고는 있었지만 정작 The Gathering은 메탈을 연주하지 않은 시간이 메탈을 연주한 시간보다 훨씬 길어져 버렸으니 그렇게 말하기는 좀 무리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밴드의 가장 빛나는 시절은 “Mandylion”부터 “Nighttime Birds”까지일 테니, 이제는 ‘메탈 밴드 The Gathering’은 밴드 본인들보다는 밴드를 둘러싼 청자들의 욕망의 결과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무리까지는 아닐 것 같다.

밴드가 메탈을 포기한 이후의 앨범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한 장이라면 아무래도 이 “Home”일 것이다. 이미 “How to Measure a Planet?”에서부터 시작된 새로운 스타일을 향한 밴드의 갈짓자 행보가 비로소 정리된 앨범이기도 하고, 기존의 ‘고딕’적인 분위기 대신 적당히 우울하지만 도회적인 – 이렇게 얘기하니 Anathema 생각이 나기도 한다 – 기운으로 빈자리를 메운다. ‘Shortest Day’부터 ‘Alone’까지의 앨범 초반 심플한 전개의 곡들에서 이러한 모습들이 두드러지는데, 어찌 보면 항상 어느 정도는 프로그레시브한 스타일에 닿아 있던 Anneke의 커리어에서 가장 프로그레시브와 거리가 있는 순간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래도 – 어쨌든 메탈은 아니지만 – 밴드가 여전히 흥미로운 리프를 만들 수 있음을 입증하는 ‘The Box’같은 곡이 있고, Anneke의 여전히 힘있는 보컬만으로도 기존 스타일을 좋아한 이들이라도 실망할 정도까진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이 앨범을 아주 좋게 들었다.

[The End,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