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wood “Heimat & Jugend”

darkwood-2nd.jpg이 앨범을 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내 정규 고교 교육과정에서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마지못해)선택하고 이 앨범 제목을 ‘소년이여 하이마트에 가라’로 해석하면서 현재까지 택배업 외길인생을 걷고 있는 지인이고, 두 번째는 뜬금 인더스트리얼 사운드에 당혹스러워하던 내 모습이다. Darkwood를 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꽤 멋들어진 포크 송으로 가득했던 데뷔작 이후의 이 앨범은 포크는커녕 앰비언트/인더스트리얼 트랙으로만 이루어졌으니 부정기적인 수입의 사내로서는 본전 생각이 나기 마련이었다. 그러고 보면 ‘apocalyptic soundscape’를 의도했다는 밴드의 의도는 어떤 면에서는 목표를 초과달성한 셈이다. 적어도 (나를 포함한)어떤 청자들은 충분히 apocalyptic해진 기분을 맛봤을 것이다.

물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앨범은 사실 충분히 훌륭했다. 좀 더 호전적인 태도로 가다듬은 Allerseelen을 연상할 법한 ‘Nachtgawitter’가 백미이겠지만, 포크만 빼고는 꽤 다양한 스타일을 모두 담아내고 있는 앨범이니 개인들의 선호는 다양하겠거니 싶다. 말이 앰비언트지 사실 Cyclic Law 류의 앰비언트보다는 훨씬 오케스트럴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듣기에는 좀 더 편한 편이고, 인더스트리얼 트랙 사이사이에 이런 ‘화려한’ 앰비언트를 끼워넣은 만큼 앨범 전체로도 꽤 수월하게 귓가를 흘러가는 편이다. 결국은 포크라고 생각하지만 않으면 충분히 멋진 앨범인데, 하긴 말하면서도 Darkwood를 네오’포크’가 아닌 다른 스타일로 생각하는 게 쉽지는 않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Darkwood의 앨범들 가운데에서도 이후로는 이만큼 전자음 섞인 앨범을 찾아보기 어려운지도.

[Heidenvolk, 2002]

Rosetta Stone “Foundation Stones”

foundationstones.jpg사실 Rosetta Stone이 딱히 주목해야 할 정도로 훌륭한 음악을 했느냐 묻는다면 자신있게 네라고 하기는 조금 망설여지는 밴드이긴 하다. 게다가 The Sisters of Mercy도 안 팔리는 마당에 Rosetta Stone의 초기작 컴필레이션이 장사가 될 리는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꾸준하게 중고매장에서만 얼굴을 디미는 앨범이었는데, 암만 아류일지언정 1984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오랜 구력의 밴드임을 생각하면 조금은 운수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때이지만 Daniel Lazarus가 프로듀스를 눈독들일 정도로 가능성을 인정받기도 했던 이들이다. 바꿔 말하면 나름 메인스트림에서도 인정받을 만한 구석이 있었다는 건데, 확실히 이 앨범의 ‘초기작’들을 들어 보더라도 어떤 부분이 ‘먹힌다’ 고 생각되었을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솔직히 얘기해서 The Sisters of Mercy의 영향을 받은 정도가 아니라 거의 표절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도 있다(예를 들면 ‘Heartland’를 너무 갖다 썼다 싶은 ‘Cimmerian’). 이 밴드의 개성 중의 하나는 Madame Razor라는 이름의 ‘드럼머신’인데, 당연히 드럼머신을 안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그것도 마이너스다. 하지만 사실 적당히 ‘댄서블’ 하면서도 쟁글거리는 리프와 멜로디가 귀에 생각보다 잘 박히는 것도 분명하다. 솔직히 80년대 후반부터의 영국 고쓰 씬이 만들어낼 수 있었던 ‘팝송’의 준수한 예들이라고 생각한다. ‘Heartland’를 몰랐다면 ‘Cimmerian’도 사실 꽤 명곡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가성비만큼은 확실한 앨범인데, 또 절묘하게 밴드의 가장 잘 알려진 곡들은 잘 피해가고 있어서 정규작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그만큼 가치가 있을지도.

[Cleopatra, 1993]

SPK “Zamia Lehmanni – Songs Of Byzantine Flowers”

spk-zamia.jpg사실 초창기 인더스트리얼 밴드들 대부분의 이미지는 나사 좀 많이 빠진(아니면 너무 많이 박힌) 전위예술가에 가까울 법한데, SPK는 그 중에서도 좀 더 과격해 보이는 이미지를 가진 밴드였다(고 생각한다). 워낙 유명해진 화염방사기 쑈라든가 네크로필리아라든가… 아무래도 음악만 따지고 본다면 그래도 확실히 ‘사람다웠던’ Cabaret Voltaire나 Throbbing Gristle에 비해 더 거칠었던 사실도 중요했을 것이다. 그래도 잘 알려져 있듯이 이 무지막지한 밴드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냥 과격할 수는 없었고, 곧 밴드는 사실상 Graeme Revell의 솔로 프로젝트로 재편되면서 신스 팝 물을 먹은 다크 앰비언트 밴드가 되어 갔다.

보통 이게 SPK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글들의 내용인데, 그래도 SPK 음악의 정점이라면 이런 ‘솔로 프로젝트’로서의 첫 번째 앨범이었던 본작이 아니려나 싶다. 인더스트리얼이 90년대의 다크웨이브/앰비언트로 이행되는 방식을 여실히 보여주기도 하고, 많은 후대들이 저지르는 것처럼 자칫 징징대는 분위기로 나아가지 않고 적당히 클래시컬하면서도 적당히 ‘주술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준다. 간혹은 Jon Hassell마냥 좀 뒤틀어서 편곡된 Dead Can Dance 같다는 느낌도 주는데, ‘Romanz In Moll(Romance In A Minor Key)’ 같은 곡의 과격함이 적당히 청자들의 주의도 환기해 준다. 원래 꽤 애 먹어가며 구했던 앨범인데, 이번에 Cold Spring에서 17년만에 재발매가 됐으므로 없으신 분들은 이 기회에 한 장 꽂아 두심도 좋겠다. 그냥 미친놈 밴드가 아니다.

[Side Effects, 1986]

Young Turk “N.E. 2nd Ave”

youngturk1992세계사를 필수과목으로 배우던 시절 청년 투르크 당을 영어로 하면 영턱스 클럽이 된다는 돌아보매 별로 재미없는 드립이 유행이었는데, 이 밴드명의 뜻이 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그 드립대로 생각한다면 밴드명을 ‘투르크 싸나이’ 뭐 이런 식으로 지은 셈이다. 물론 80년대 미국 싸나이들이 저런 드립을 알고 이름을 지었을리는 만무하고, 앨범에서 터키나 중동풍은 정말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만큼 이런 얘기는 정말 뻘드립이다. 워낙에 알려진 사실이 없는 밴드이고 앨범인만큼 청자로서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많다…는 의미없는 변명을 덧붙여 본다.

음악은 전체적으로 블루지한 면이 강한, Aerosmith를 좀 더 진정시킨 듯한 스타일의 하드록이다. 보컬은 사실 80년대 헤어메탈에 어울릴 법한 목소리이다보니 은근히 떠오르는 건 Poison인데(“Native Tongue”), 괜찮은 연주이지만 감히 Richie Kotzen에 비할 바는 아니기도 하고, 펑키한 맛도 덜한만큼 Poison보다는 덜 화려한 스타일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Love American Style’ 같이 짧지만 인상을 남기기엔 부족하지 않은 솔로잉 정도는 꾸준하게 나와주는만큼 그리 심심한 음악도 아니다. 요새는 보통 1유로…미만의 가격으로 팔리는 앨범인만큼 가성비만큼은 확실한 앨범이다. 그런데 요새 가성비 생각하고 CD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려나?

[Virgin, 1992]

Peter Bjärgö “Structures and Downfall”

structures_and_downfall.jpg“As Bright as a Thousand Suns”는 확실히 Arcana의 앨범 치고는 ‘판에 박힌’ 진행을 보여준 앨범이었고, Peter Bjärgö 본인도 안되겠다 싶었는지 이후로는 Arcana의 앨범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물론 음악 자체를 쉬는 게 아니어서 솔로작을 띄엄띄엄 내고 있긴 한데, “Animus Retinentia”는 괜찮은 앨범이었지만 Arcana보다는 일렉트릭 기타를 좀 더 많이 쓴 Sophia(에다 앰비언트 물을 좀 더 끼얹은) 스타일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Arcana 특유의 ‘spiritual’한 스타일과는 조금은 차이가 있는 편이었는데, 뭐 원래 Sophia와 Arcana가 얼마나 서로 구별되는 스타일이었냐 생각하니 별 의미없는 설명이긴 하다. 각설하고.

계속 Cyclic Law에서 앨범을 내서 그런지 이 두 번째 솔로작은 앰비언트 성향이 더욱 짙어졌고, “Animus Retinentia”보다 확실히 ‘spiritual’한 느낌도 강하다. 하긴 첫 곡인 ‘Inner Cathedral’부터 아예 테마를 그 쪽으로 잡고 나가다 보니 불가피한 결과였을지도. 그렇지만 전작이 너무 땅 꺼지는 분위기였다고 생각했는지 이 ‘영적인’ 테마 가운데 은근슬쩍 배치된 희망찬 멜로디가 앨범의 분위기를 꽤 환기시킨다. 에스닉한 리듬 파트보다는 피아노와 기타가 그런 분위기를 이끄는 편인데, 전체적으로 미니멀하기는 하지만 그런 면에서는 Peter Bjärgö의 앨범들 중에서는 비교적 듣기 편한 축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When Thoughts Become Your Enemy’는… 올해 가을의 감명깊은 순간에 분명히 속했을 것이다. Cyclic Law가 앰비언트만 줄창 내면서도 안 망하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Cyclic Law,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