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una “Running Red Lights”

aruna2005.jpgCynic(물론 그 시절에는 Portal)의 “The Portal Tapes”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Aruna Abrams는 사실 이후의 커리어를 생각하면 어떻게 밴드에 참여할 수 있었는지가 의문일 인물이다. 아무래도 가장 잘 알려졌을 활동은 Ferry Corsten이나 Armin van Buuren과 함께한 싱글들인지라, 굳이 말하자면 트랜스/EDM 등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주로 목소리를 비춘 보컬리스트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그나마도 Aruna가 본격적으로 일렉트로닉 싱글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2007년부터이니, 어찌 생각하면 Portal에서의 활동은 Aruna의 젊은 날의 과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저도 메탈을 좋아했지만 나이 먹으니까 다른 게 좋더군요, 뭐 이런 것이다. 물론 짐작일 뿐이니 이 얘기는 여기까지.

그렇지만 Aruna는 적어도 꽤 오랫동안 밴드 음악에 중점을 두고 커리어를 끌고 나가려 했던 모양인지 Portal 이후 2005년 이 데뷔작 “Running Red Lights”를 자주제작으로 발표했다. 물론 그렇다고 메탈을 했다는 건 아니고… 앨범은 팝 차트에서 당시 드물잖게 발견할 수 있었던 부류의 팝 락 스타일의 음악을 담고 있었다. 듣다 보면 Vanessa Carlton 같은 이의 인상을 지울 수 없는데, 아무래도 자신의 연주에 자신이 있었는지 건반의 비중이 높았던 Carlton에 비해서는 좀 더 락적인 구석이 있고(이렇게 써서 그렇지 Aruna도 건반을 연주하긴 한다만), 잘 박히는 멜로디를 만들 능력도 확실히 보여주는지라, 그래 당신이 Portal에 계속 있을 필요는 없었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앨범이 지금까지도 찾아보면 중고로 보이는지라(자주제작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문제가 심각하다) 그냥 Portal에 있는 게 돈벌이에는 좀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싶으면서도, 아 이 분 Ferry Corsten하고 노는 분이구나…하고 현실을 인식하고 다시 정신을 차린다.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냐.

[Self-financed, 2005]

Moral Order “Freedom Locked”

freedomlocked.jpgMoral Order는 이 데뷔작을 작년에 발표했다고 하나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고, 근래 Tesco에서 나온 네오포크 아닌 앨범들이 대개 그렇듯이 거친 인더스트리얼-노이즈를 연주하는 프로젝트이다. 물론 이런 류의 음악도 스타일이 있는지라, 거칠고 절도있는 리듬감에 힘을 실어주는 이들이 있는가하면, 꽉 찬 노이즈의 활용을 통해서 ‘월 오브 사운드’를 그네들의 방식으로 구현하는 이들도 있다. 물론 많은 개성들이 있을진대 나의 좁다란 경험으로는 아직 보이지 않는 부분이니 그건 별론으로 하고.

Moral Order는 후자에 속한다. 이런 류의 음악에서 리듬을 거칠지 않게 가져가는 밴드가 있겠냐마는, 리듬 위에 얹어내는 드론 사운드나 때로는 앰비언트마냥 자욱한 분위기를 흩뿌리는(특히나 ‘Thirst of Death’) 부분도 있다. 말하자면 레이블메이트 중에서는 Deathpanel 같은 프로젝트와도 비교할 만한데, 이 프로젝트를 굴리는 Fernando O. Paino가 원래 Da-Sein에서 가끔은 댄서블하기까지 한 일렉트로닉스를 보여줬던 점을 생각하면 Da-Sein의 사운드에서 일말의 경쾌함을 걷어내고 묵직한 분위기를 얹어낸 음악이라 할 수 있을지도. 하긴 그 경쾌함의 역할을 Da-Sein에서 Kas Visions가 맡았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이해도 된다. 그러니만큼 만듦새는 나쁘지 않지만 손을 뻗는 데는 좀 고민을 할 필요도 있다. 쉬이 귀에 들어오는 앨범은 아니다.

[Tesco, 2018]

Phantom’s Divine Comedy “Phantom’s Divine Comedy Part 1”

PDC-Pt.-1.jpg미스테리한 앨범이다 어떻다 하는 글이 넘쳐나는 앨범이지만 사실 음악만 떼어 놓고 보면 아서 왕 이야기를 컨셉으로 잡은 70년대 초중반 그 시절, Doors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미국 사이키델릭 록이라고 하면 충분할 만한 앨범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실 굳이 단테의 작품을 빌어 온 앨범제목도 우습다(파트 2가 나온 적도 없는데 파트 1이라고 써둔 점도 마찬가지다). 오컬트한 맛이 있긴 하지만 뭐, 굳이 아서 왕 이야기에 지옥 얘기를 섞어서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나온 때가 때인지라 Jim Morrison이 죽은 게 아니라 사실 이 밴드의 보컬이 아니냐 식의 얘기도 있었던 모양이지만, 그거야 사실 레이블 쪽에서 일부러 흘렸던 얘기라고 한대도 믿을 만한 수준의 루머이겠거니 싶다. 일단 내 귀에는 목소리 자체가 Jim Morrison보다는 메탈 보컬이 되기 전의 Dio와 더 비슷하다고 본다. 각설하고.

그렇지만 어쨌든 앨범의 스타일 자체는 “L.A. Woman”의 Doors와 확실히 비슷한데다 ‘Tales from a Wizard’ 같은 곡은 보컬도 상당히 Jim Morrison의 그것과 유사하게 들리고, ‘Half Life’ 같은 곡은 사이키델릭 록이라기보다는 좀 더 괴팍한 형태의 머더 발라드 같은 구석이 있다(Nick Cave 비슷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Crawling Kingsnake’ 같은 곡에서 죽음의 냄새를 꽤 짙게 풍긴(다는 평가를 받곤 한) Doors이고 보니 이런 식의 변종이 나오는 것도 하긴 자연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보니 썸네일의 사진부터가 Ray Manzarek과 같이 찍은 사진이니 그래도 변종으로서는 성공적인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성공한 그 시절 덕후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Capitol, 1974]

Egdon Heath “Him, The Snake and I”

egdoheath1993.jpgSI Music 얘기가 나온 김에 한 장 더 얘기하는데 그래도 이 레이블이 제일 잘 나가던 1990년에서 1995년 사이까지의 시절, 고만고만한 가운데서도 그래도 좀 더 빛나는 이들이었던 Aragon이나 Shadowland 등의 소수를 제외하고 단 한 장을 꼽는다면 그래도 Egdon Heath의 이 3집이 아니겠는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뭐 그런데 이 레이블에서 저 빛나는 소수들을 제외하면 뭐 볼 게 있냐… 하면 또 그게 아주 틀린 말은 아닌지라, 그런 분들에게 이 한 장을 권하기는 어쨌든 조심스러운 감이 있다. 기본적으로 이 레이블에서 나오는 Marillion 다운그레이드 스타일의 네오 프로그레시브를 그래도 좋게 들은 적이 있는 이를 생각하고 하는 얘기다.

Marillion 짝퉁이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공부 열심히 하는 독창성 없는 후배들이 많은 레퍼런스들을 보여주듯이… IQ나 Shadowland, 그 외 80년대 AOR의 느낌도 많이 풍기는 음악이다. 특히 새로운 보컬인 Maurits Kalsbeek의 목소리 때문인지 가장 자주 생각나는 밴드는 Saga인데, Freddie Mercury급이라는 Progarchives의 혹자의 평은 좀 많이 거짓말이라고 생각하지만 ‘Witness’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확실히 Saga의 좋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헤비 프로그에서 AOR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확실히 ‘epic’한 키보드를 과시하는 ‘Gringo’가 가장 기억에 남는 편이다.

[SI Music, 1993]

Cawatana “Advocation for Privileges”

cawatana2010.jpg어느 정도는 확실히 팝적인 네오포크를 줄창 내다가 소리없이 망해버린 Eis & Licht의 발매작 중에서도 가장 팝적인 한 장을 꼽는다면 개인적으로는 Cawatana의 이 EP라고 생각한다. 일단 어쿠스틱 기타에 플로어 탐, 스네어, 키보드의 단촐한 구성부터가 깔끔하게 건반 깔아주는 기타 포크를 하겠다는 모양새다. 뭐 이 레이블의 발매작 중 이런 포크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많이들 아시다시피(?) 원래 Cawatana는 이렇게 착한 스타일의 네오포크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이전작들까지 많지는 않더라도 꾸준하던 인더스트리얼이나 밀리터리 팝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비교될 만한 밴드는 Sturmpercht나 Ostara다. 물론 어쿠스틱 포크를 넘어 민속음악을 노리는 듯한 모습까지 간혹 보여주는 Sturmpercht에 비해서 ‘에스닉’한 모습은 확실히 많이 덜하고, 팝적이긴 하지만 Ostara의 (간혹 과장되기도 하는)낭만성 짙은 사운드는 찾아볼 수 없다. 하긴 심플한 멜로디의 포크 자체에 집중한 앨범이니만큼 당연한 귀결일지 모르겠다. 파스텔뮤직 같은 곳에서 나와도 될 법할 수준의 커버도 음악과 잘 어울리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목가적인 분위기가 엿보이는 ‘Over Stray Thoughts’가 개인적인 앨범의 백미.

[Eis & Licht,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