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wkwind “The Machine Stops”

themachinestops.jpgHawkwind를 스페이스락의 Fairport Convention이라고 하는 걸 본 적이 있었는데… 멤버 무지하게 바뀌고 앨범 무지하게 많이 냈다는 점 외에는 Fairport Convention과 Hawkwind의 공통점이 뭐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이 실러캔스처럼 오랫동안 살아남은 밴드는 여전히 생명력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엄밀히 말한다면 Dave Brock이 나름대로 계속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것인데, 그래도 Brock이 별도의 솔로 앨범을 따로 내고 있는 걸 보면 Hawkwind의 이름으로 하고 싶은 음악이 따로 있음은 분명하다. 사실 Brock의 솔로작들도 내 귀에는 Hawkwind 붕어빵처럼 들리는지라 의도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모양새가 그렇다는 거다.

2016년작의 이 앨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곡은 ‘All Hail the Machine’이었는데(좋다기보다는 이 양반들이 ‘Sonic Attack’ 자가복제를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서), 그렇다고 내놓고 약 빨고 우주로 날아가는 듯한 곡을 싱글로 세우긴 어려웠나 보다. 밴드가 앨범에서 싱글로 세운 곡은 가장 스트레이트한 로큰롤이었던 ‘Solitary Man’이었고, 확실히 그래도 기억에 가장 남는 곡은 그 곡과 ‘Synchronized Blue’다. 그렇지만 밴드 나름의 스페이스 오페라의 야심이 드러나는 ‘The Machine’ 같은 곡이 인기는 더 끌지 않으려나 싶다. “Warrior on the Edge of the Time”을 좀 더 모던하게 만든 스타일이라고 하는 찬사가 괜히 나온 건 아니다. 1990년 이후의 Hawkwind에서 한 장을 고른다면 꽤 고민을 안겨 줄 만한 앨범.

[Self-financed, 2016]

Van Halen “Fair Warning”

vh-fairwarning.jpgVan Halen은 개인적으로는 록 밴드의 ‘전형’ 처럼 생각했던 밴드이다. 나야 그 세대가 아니니 잘 모르지만, Led Zeppelin을 최고의 밴드였다고 회자하는 희끗해진 머리칼의 아재들이 호방하면서도 뛰어난 보컬과 금발의 테크니컬 기타리스트, 스테이지를 울리는 베이스와 드럼의 화려한 무대를 얘기할 때 내가 직관적으로 떠올린 이미지는 Van Halen이었다는 뜻이다(말하고 보니 금발에서 걸리는구나). 물론 그런 외양의 하드록/메탈 아레나 밴드가 등장할 수 있었던 건 1980년대가 아마 거의 마지막이었기도 했을 것이고, 이후 점점 구리구리해져 가는 취향사를 돌이켜 보면 Van Halen은 내게는 어떤 의미에서 동시대를 경험한 ‘마지막’ 슈퍼스타 밴드였던 셈이다. 뭐 난 당시 초딩이었으니까 이렇게 얘기하기 민망한 구석이 없지는 않다. 각설하고.

“Fair Warning”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Van Halen의 앨범이다. 이유야 꼽는다면 ‘Mean Street’가 있기 때문이고, 들으면서도 때로는 마냥 긍정적인 아메리칸 하드록으로 달려가는 감이 있는 밴드가 Van Halen이라면 이 앨범에서는 짙지는 않아도 분명 조금은 그림자가 있는 사운드를 연주했기 때문이겠거니 싶다. ‘So This is Love?’ 정도를 제외하면 그 이전작들과 비슷한 곡은 별로 없다. ‘Unchained’만큼 헤비메탈스러운 리프를 가진 Van Halen의 곡들을 내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는 점도 있을 것이다. 뭐 그렇다 보니 나처럼 굳이 이 앨범을 밴드의 최애작으로 꼽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종일 ‘Jump’와 ‘Panama’만 흘러나오는 세상이라면 라디오 듣다가 너무 질려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드는만큼 ‘Unchained’를 버릴 수가 없다. 뭐 이것도 충분히 미국적이기는 하지만.

[Warner, 1984]

IT & My Computer “Musiques Pop”

musiquespop.jpg밴드명의 it가 대명사일지 Information Technology의 약자일지 궁금하지만 당연히 여기서 그리 중요한 얘기는 아니므로 넘어가도록 한다. IT & My Computer는 Alexandre Gand라는 프랑스 양반의 일렉트로닉 프로젝트인데, 나로서는 처음 접하나 discogs의 기록에 의하면 수많은 프로젝트들을 굴리고 있다고 한다. Citizens Paralleles라는 레이블도 나로서는 생소한데, 좀 더 찾아보면 Invasion Planete Recordings의 서브레이블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시나 싶어 좀 더 찾아본 결과 Invasion Planete의 보스인 ‘A//’는 Alexandre Gand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뒷골방 일렉트로닉 덕후의 수많은 습작들의 이미지가 눈앞에 스쳐지나가지만, 에이 그렇게까지 형편없지는 않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가져본다.

그 결과는?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다. 굳이 말하자면 Kraftwerk에 약간의 댄스 플로어 뮤직을 미니멀하게 섞어낸 듯한 음악인데, 기본적으로 그리 차갑지 않은 멜로디를 테마로 하여 반복시키고, 때로는 슈게이징 분위기도 덧칠해 가면서 나름의 다양성을 보여주려 한다. 요새 같아서는 집에서 컴퓨터 한 대로 혼자 만들어도 될 정도로 조금은 싼티나면서도 추억어린 80년대풍 신스팝에 가까운 톤의 사운드가 반갑기도 하다. ‘Mainstream De L’Amour’ 같은 곡은 ‘힙’하신 취향의 소유자들에게도 좋게 들릴 만한 곡인데, 하긴 그 분들이 이런 레이블의 발매작에 관심 가질 것 같지는 않다. 얼척없는 커버도 그렇고 개인적으로는 재미있게 들었다. 700장 한정 12인치.

[Citizens Paralleles, 2001]

Lauren Harris “Calm Before the Storm”

LaurenHarris_CalmBeforeThe_Storm.jpgJudas Priest 얘기가 나온 김에. Lauren Harris는 이름과 얼굴에서 짐작했을 수도 있겠지만 바로 그 Steve Harris의 딸이다. 물론 아버지와는 하는 음악이 아주 다르지만 피가 피인지라 어린 시절부터 클럽 공연을 하던 Lauren을 눈여겨 본 Russ Ballard(Argent에 계시던 그 분)가 데뷔로 이끌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 데뷔작에서 기타를 치던 양반이 Richie Faulkner였다. 딸이 앨범 낸다는데 가만히만 있을 수 없었는지 Steve Harris는 이 앨범의 4곡에 베이스로 참여하는 등 확실한 서포트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후 Glenn Tipton에게 새 기타리스트로 Richie를 추천한 것이 Steve Harris였음을 생각하면 음악을 떠나서 Richie Faulkner에게는 그야말로 인생의 한 장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각설하고.

음악은 Iron Maiden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관없는 멜로딕 하드록 스타일인데, 당장 첫 곡부터 Gun의 ‘Steal Your Fire’ 커버인만큼 Avril Lavigne 류의 사운드를 생각할 필요는 없다. ‘Come On Over’ 같은 곡은 과장 섞으면 좋았던 시절의 UFO를 연상시킬 정도의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 곡이 Richie의 신의 한 수 같은 경력 한 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그 외 다른 곡들은 딱히 귀에 들어오는 편은 아닌데, Avril Lavigne까지는 아니지만 사실 충분히 미국스러운 사운드이기 때문에 이야 다른 사람 딸도 아니고 이 분이 이래도 되나…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래도 ‘From the Bottom to the Top’ 같은 곡을 듣자니 노래가 안 되는 분이 아니고 그 정도로 쉬이 넘겨버리기는 좀 그렇기는 하다. 다음 앨범을 기대하게 하는 힘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Judas Priest 얘기하다가 왜 맨 처음 생각난 게 하필 Lauren Harris였을까?

[Demolition, 2008]

Vanitas “World’s End”

vanitas-worldsend.jpg이왕 Golden Dawn 얘기가 나온 김에 Dreamlord 얘기를 조금 더 해 본다면, 사실 나 같이 “The Art of Dreaming”을 좋아했던 경우가 아니라면 굳이 Dreamlord의 활동에 관심가질 이유가 있을까 정도로 활동상은 지지부진한 편이었다. 그나마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밴드는 Wallachia겠지만, Wallachia야 확고부동한 보스가 있는 팀이니 Dreamlord가 게스트 건반 주자 이상의 의미를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지지부진한 활동상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작품을 꼽는다면(왜 꼽느냐고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음) 바로 이 데모가 될 텐데, 이 메탈 뮤지션의 커리어에서 유이하게 메탈이 아닌 작품(나머지 하나는 Sturmpercht)이라는 점이 그래도 눈에 들어올지 모르겠다. 다른 외견상 특징이 있다면 데모면서 레이블에서 나왔다는 것과, 그 레이블이 뜻하지 않은 탈세 이슈로 망해버린 Chanteloup Creations이란 정도.

지지부진하지만 거의 심포닉 외길인생을 걸어온 Dreamlord의 솔로작 답게 데모 또한 어쨌든 ‘심포닉’하긴 하지만, 사실 싼티나는 일렉트로닉스를 전면에 내세운 덕에 사운드는 신스웨이브에 가까운 편이다. 원래 하던 음악 스타일이 있는만큼 일렉트로-고딕 소리도 듣기는 하지만 그리 어두운 느낌도 거의 없는 편이다. “The Art of Dreaming”과 비슷한 시기에 나왔다는 게 흥미로울 지경인데, 하긴 터미네이터 2 나온지 오래지 않은 시기인 만큼 핵으로 망해버리고 스카이넷이 지배하는 세상을 흥겨운 템포로 그려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Cyborgs of the Darkside’ 같은 곡에서 느껴지는 인상도 그렇고). 물론 앨범에 쓰여 있는 것도 사람들이 얘기하는 것도 없으니 창작자의 진의야 알 수 없다. 하긴 사람들이 굳이 그 진의를 궁금해할 만한 음악은 아니라는 게 진짜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리 큰 재미는 없는 신스웨이브, 정도면 충분한 얘기일 것이다.

[Chanteloup Creations,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