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뛰어난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도 어쨌든 80년대에는 먹고 살아야 한다고 기존의 스타일을 버리고 아재들의 길티 플레저가 되어 버린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Greg Lake도 마찬가지여서 King Crimson과 ELP 이후 80년대에는 솔로 활동(Emerson, Lake & Powell도 있긴 했는데)을 하면서 예전 스타일을 기대한 이들을 뜨악하게 하는 음악을 내놓았다. 나쁘다는 건 아니다. Gary Moore도 참여했던 이 앨범의 기타 연주는 때로는 가장 후끈하던 시절의 Jake E. Lee를 연상케 할 정도로 인상적인 면모가 있다. 커리어는 내리막길에 들어섰을지언정 어쨌든 아직은 뜨거운 마음을 가진 사내들이었던 셈이다.
사실 80년대의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의 앨범들은 예외도 있지만 내놓고 복잡하지도 않고 완전히 팝도 아니고 해서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Toto 멤버들도 왕창 참여하고 있는 걸 보면 Greg Lake는 자신의 팝 센스에 대해서는 확실히 별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아쉬운 솔로 커리어에 비교해 본다면 Greg Lake의 그런 스스로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그러니까 나도 스스로를 항상 돌아보면서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쩌다 Greg Lake 얘기에서 자아성찰로 이어지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역시 Gary Moore의 에너제틱한 연주가 돋보이는 ‘Nuclear Attack’이 앨범의 백미.
[Chrysalis, 1981]
Biscaya는 은근 메탈 팬들에게 이름이 알려져 있는 밴드이기도 하고, 가장 잘 알려진 데뷔작 커버부터가 이렇게 생긴 앨범이 메탈이 아니면 뭐겠냐 싶은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이 밴드의 곡들 중 헤비메탈이라 할 만한 곡은 많지 않다. 물론 밴드 자신의 기량이 받쳐주는데다 데뷔작부터 ‘Howl in the Sky’ 같은 걸출…하다고도 할 수 있는 헤비메탈 트랙을 담고 있는 만큼 관심가질 가치는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Silver Mountain 앨범 마냥 본격 헤비메탈 앨범을 기대하고 앨범을 구했다간 꽤 허탈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저런 다양한 스타일을 무난하게 소화해 냈던 스웨디시 하드록 밴드, 정도로 생각하는 게 안전할 것이다.
Der Blutharsch는 잘 알려져 있듯이 “The Philosopher’s Stone”을 마지막으로 기존의 네오포크를 더 이상 연주하지 않고 있다. 하긴 밴드는 그 전부터 보통의 네오포크보다는 더 로큰롤에 근접한 사운드를 연주하고 있었긴 했지만, 저 앨범부터는 ‘martial’ 느낌을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다는 게 문제렷다. 그게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니 요새는 포스트-네오포크 소리까지 나오는 모양이지만, 안 그래도 분류 어지러운 네오포크에 새로운 레떼르를 붙이는 게 그리 환영받을 일은 아닐 거라 예상된다. 그러니 이 앨범이 좋은 소리 못 듣는 것도 이해는 간다. Der Blutharsch의 앨범에 포스트-네오포크 같은 광고문구를 붙여놓고 있으니 이 레이블이 돈 못 버는 이유는 팔고 있는 음악을 떠나서 그네들의 능력부족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Eis & Licht는 네오포크 레이블로 알려진 곳들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포크’에 근접한 음악들을 발표하던 곳이었다. 바꿔 말하면 사실 네오포크 레이블이라기보다는 유럽색 짙은 잔잔한 ‘포크’ 레이블이라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를 레이블이었다. 그런 면에서는 메탈을 내지 않는다는 점 외에는 Prophecy Prod.와 궤를 같이하는 곳이라 할 수 있겠는데, 물론 좀 더 듣기 편한 앨범을 많이 냈다고 해서 판매고에 딱히 도움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레이블은 2010년에 시원하게 문을 닫았다. 하필 마지막에 나왔던 앨범이 Leger Des Heils(독일어로 구세군이라는 뜻임)의 앨범인지라 구글링했더니 불우이웃을 돕자는 얘기만 왕창 나오던 기억이 난다. 물론 Leger Des Heils도 괜찮은 음악을 했지만… 네오포크 하면서 구세군을 검색어 순위에서 이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Cynfeirdd는 네오포크/밀리터리 팝을 주로 하는 프랑스 레이블 겸 팬진으로 알려져 있는데, 카탈로그 초기 넘버 발매작들이 죄다 CDR 포맷인 걸 보면 처음에는 팬진 구독자들 대상으로 데모 좀 찍다가 좀 일이 커진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게 아닌가 짐작한다. 그래도 발매작들 가운데 H.E.R.R.이나 The Joy of Nature 같은 장르의 거물들이 끼어 있는 거 보면 나름 감식안만큼은 확실했던 편이고, Tony Wakeford의 CDR을 낼 수 있었던 거 보면 그래도 이 장르의 ‘인싸’에 가까웠던 이들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2015년 이후에는 별 활동이 없어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discogs에서는 열심히 재고떨이하는 모습이 오늘도 보이는만큼 뭔가 또 꾸미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 섞인 짐작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