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ír “De stilte van God”

네덜란드 출신 원맨 밴드의 데뷔작. 전혀 몰랐던 이름이었고 인터넷의 힘을 빌려도 나오는 게 많지는 않다. 그나마 알려진 내용은 Blood Tyrant에도 참여했던 The Specter가 하는 밴드라는 정도? 뭐 이것도 정보냐 하겠지만 애초에 이 앨범을 샀을 이들의 대다수는 Tour de Garde의 이름을 보고 샀을 것이고, 그 중의 또 상당수는 Blood Tyrant를 들어 봤을 테니 그래도 나름 홍보 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장사야 될 리 없건마는 Tour de Garde도 이제 20년을 넘게 살아남은 블랙메탈 레이블이다.

음악은 기대 이상으로 출중하다. 물론 새로울 것은 하나 없는 스타일이지만 이만큼이나 90년대 초중반 노르웨이 블랙메탈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례도 요새는 드문 편인데, 굳이 특이점을 찾는다면 Darkthrone이나 Burzum의 정형을 그대로 따라가는 이들에 비해 이 밴드는 ‘Aerie Descends’를 긁어대던 시절의 Thorns를 떠올리게 하는 편이라는 정도? 하지만 그 지글거림이 피곤해질 때쯤 ‘Morgenster’ 같은 Bathory풍의 호방함을 만나볼 수 있고, Blood Tyrant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밴드에서도 그 시절 블랙메탈의 뒤에서 분위기 깔아주는 풍의 신서사이저 연주에 일가견이 있음을 다시금 보여주기도 한다. 말하자면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을 좋아했던 이라면 이 앨범을 반기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별 기대 없이 샀는데 거의 올해의 앨범 급으로 만족하고 있는 중이다.

[Tour de Garde, 2024]

Barathrum “Überkill”

Barathrum의 2024년 신보. 뭐 Beherit과 더불어 핀란드 블랙메탈의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거물임은 말할 필요 없겠지만, 이래저래 스타일도 계속 바뀌고 당혹스러운 전자음악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는 Beherit에 비해 좀 더 일관된 모습을 보여준 건 이쪽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좋게 얘기하면 적당히 구수한 스타일로 둠의 그림자 짙은 블랙메탈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화끈한 맛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이 음악을 즐겨들을 이는 아무래도 별로 없어 보인다. 늘 그랬던 것처럼 리버브 잔뜩 먹인 사운드로 가득했던 “Fanatiko” 이후 이 앨범이 나오기까지는 7년이 걸렸다.

사실 이 밴드의 동시대 밴드들과의 가장 큰 구별점이라면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딱히 큰 차이 없는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동시대에 활동하던 노르웨이의 불한당들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인데, 하긴 베이스 두 명이 붙은 음악이 일반적인 블랙메탈과 같을 리 없겠지만 둠의 그림자는 물론 때로는 헤비메탈이나 하드코어의 느낌까지 엿보이는 이 앨범만큼 들으면서 다른 밴드들이 연상되던 사례는 이들의 앨범들 중에서는 없었던 것 같다. ‘Spark Plugs of Purgatory’의 드라이브감이나 스래쉬의 기운이 강한 ‘Denial of God’, 펑크의 기운 강한 ‘Black Magick Rites’ 같은 곡들은 Barathrum의 다른 앨범이었다면 약간의 이질감도 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래도 앨범에 깔린 분위기 자체는 일관되는데다, 따지고 보면 Mortuary Drape나 Denial of God 같은 밴드들이 Barathrum을 듣고 받은 영감으로 만들고자 했던 게 이런 스타일이 아니었을까 싶고, 또 이들만큼이나 ‘스웜프’ 스타일의 블랙메탈 리프를 만들 수 있었던 밴드는 없었으니 나로서는 반갑게만 들린다. 몇 번 더 들으면 생각이 바뀔 거 같긴 한데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Hammer of Hate, 2024]

Runner “Falling Hearts”

악명높은 희지레코드는 지금 생각하면 참 괴이쩍은 앨범들을 많이 내놓았는데 원체 이상한 편집반을 많이 내놓은지라 어쩌다가 편집반 아닌 앨범을 발견하게 되면 되게 신기하다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물론 편집반 아니라고 부틀렉이 아닌 건 아닌데다 어떤 장르의 어떤 앨범을 내건 간에 기복 없이 (안 좋은 의미로)놀라운 퀄리티를 보여주는 레이블의 꾸준한 모습이 음악보다는 웃음을 기대하며 이 레이블의 발매작을 구하는 사람들을 생겨나게 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앨범들까지 수집의 범위에 놓는 이들을 진짜 컬렉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쯤 되면 이건 환자의 영역이라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그런 사람들 듣기 좋게 부르라고 만들어 둔 단어가 컬렉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 알 수 없는 밴드의 유일작은 놀랍게도 1991년 당시 희지레코드에서 단독 발매되는 기현상을 보여주었는데, 유명한 멤버 하나 없는 이 밴드의 1986년 녹음을 희지레코드가 무슨 수로 혼자 발매했는지도 의문인데다, 그래도 어쨌든 데뷔작인데 대체 이게 뭔가 싶은 커버는 들어보기 전부터 앨범의 슬픈 운명을 짐작케 한다. 솔직히 좋다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드라이브감 있는 ‘We Gotta be Free’나 잔잔하게 분위기 잡아주는 ‘Falling Hearts’ 같은 발라드는 아쉬운대로 나름 괜찮았다. 희지레코드의 적당히 저렴했던 가격 덕분에 본전 생각도 덜 나는 편이었고, 헤비메탈이라기는 좀 약했지만 적당히 글램 메탈 물 먹은 소박한 스타일의 하드록 정도로 얘기하긴 부족함이 없었다. 돈 없는 학생이 지갑 털어 사기에는 꼭 나쁘지만은 않았던 선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직접 밥벌이도 하고 희지레코드의 얼척없는 레거시도 익히 알고 있는 이제 와서 이 앨범을 굳이 구해야 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알 수 없는 희귀반이라고 오리지널 CD가 대단히 비싸게 팔리는 앨범 중 하나인데, 그런 컬렉터들을 걱정해서인지 드디어 2022년에 Steelheart Memories라는 이탈리아 회사에서 재발매가 됐더라. 물론 모르긴 몰라도 이것도 부틀렉일 것이다.

[희지레코드, 1991]

Black Dawn “Blood for Satan”

2000년대 초반 우리도 장르의 선구자들만큼이나 사악하고 무시무시하다고 과시에 혈안이 된 듯한(하지만 정작 접하는 청자들은 보고 피식하는 경우가 많은) 커버를 내세운 많은 사례들 중 하나로 기억나는 핀란드 밴드의 1집. 사실 말이 1집이지 이미 1992년부터 활동했고 1993년에 Black Dawn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동명의 미국 밴드와 분쟁이 붙어 이름을 ‘True Black Dawn’으로 바꿔 내놓은 데뷔작…이 바로 이 앨범이라는데, 앨범의 어디를 봐도 그냥 Black Dawn이라고 쓰여 있을 뿐 ‘True’를 찾을 수가 없는데, 어차피 돈 벌기는 글렀고 소송 걸린다고 물어줄 것도 별로 없을테니 배 째고 그냥 쓰는 건가 싶다. 각설하고.

음악은 정말 장르의 클리셰를 집약해놓은 듯 익숙하지만 무자비하게 후려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드럼을 맡은 Cauldron은 …And Oceans와 Throes of Dawn에서 연주했던 그 분이라는데, 트레블 바짝 걸린 기타 리프만큼이나 강렬하게 달려주는지라 다른 밴드 활동하면서 조금 답답했었나 싶기도 하다. 유머를 뺀 Impaled Nazarene과 Immortal을 적당히 섞은 듯한 스타일인데, Glen Benton 생각이 나는 보컬 덕분에 때로는 Deicide가 떠오르기도 한다. 중간중간 나오는 영화 샘플링은 너무 유명한 영화들에서 따 와서(“Exorcist”나 “Children of the Corn” 등) 저작권 클리어는 하긴 했나 걱정되지만 어쨌든 곡들과는 잘 어울리는 편이다. ‘Of Blackest Witchcraft’ 같은 곡은 그 시절 어떤 매력 때문에 블랙메탈을 찾아들었는지를 떠올리게 해 주는 힘이 있다.

커버만 저 모양이 아니었다면(어디 가서 꺼내기가 창피하다)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듣지 않았을까 싶은 좋은 앨범이다.

[Necropolis, 2001]

Perdition Temple “Merciless Upheaval”

Perdition Temple의 2022년작. 지금도 사실 이게 EP인지 정규반인지 헷갈리는데 대개는 이 앨범이 정규 4집이라고 소개되는 듯하다. 하지만 스플릿이나 “Sovereign of the Desolate” EP에서 선보인 Blasphemy 커버 말고는 커버곡 자체를 잘 하지 않았고 송라이팅이 딸리지도 않던 이 밴드가 갑자기 앨범의 절반을 커버곡으로 채워서 낸 이 앨범을 정규반으로 내놓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뭐 나야 그냥 찾아듣는 입장이니 창작자의 의사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사실 (몇 장 안 되긴 한다만)내놓은 모든 앨범이 장르의 정수를 보여주는 밴드인지라 우열을 논하기도 쉽지 않은데, 여태까지 내놓은 앨범들 중에서는 드럼이 가장 전면에 나오면서(특히 스네어) 타이트한 전개를 과시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원래도 그리 길지 않았던 리프는 조금은 더 짧아지고 간결한 형태로 곡을 이끌어가는데, 그런가하면 ‘Redemption Abbatoir’에서처럼 테크니컬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무척 Morbid Angel스럽게 들리는 Gene Palubicki의 보컬도 곡에 꽤나 잘 어울린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의 스타일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은 Morbid Angel의 ‘Blood on My Hands’ 커버일 것이다. 하필 “Covenant”의 수록곡을 커버한 데는 아무래도 이유가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실력 있는 밴드라면 커버곡이 절반을 채우는 정규반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무래도 아쉬울 수밖에 없다. 잘 팔리면 다음에는 자작곡으로 꽉 채워오려나 싶기도 한데, 따져 보면 이제 지천명을 넘긴 Gene Palubicki인지라 그냥 이렇게 활동만 해주셔도 다행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음악은 무척 마음에 든다.

[Hells Headbangers,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