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throned Emperor “War Grind Hell”

누가 봐도 Celtic Frost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름이지만(멤버 중 한 명은 이름이 무려 T. Warrior다) 정작 음악은 그라인드코어를 연주하고 있는데다 멤버도 단촐하게 둘이서 이것저것 죄다 하고 있는 모습이 돋보이는 뉴저지 출신 밴드. 그런데 아무래도 이름 따라갈 수밖에 없어서인지 그라인드코어의 전형보다는 좀 더 스래쉬/데스의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는 음악을 연주하는 편이다. 그라인드코어를 많이 듣지는 않지만 듣다 보면 때로는 짧은 시간 동안 보여주려는 욕심이 과했는지 무지막지하지만 갈 길을 잃은 듯한 복잡하되 난삽한 리프가 난무하는 사례들을 은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들은 그보다는 훨씬 심플하고 직선적인 전개를 선택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War Grind Hell”은 metal-archives에 의하면 밴드의 첫 번째 EP인데, 테이프로만 나온데다 당연할 정도로 형편없는 음질을 생각하면 이걸 굳이 데모가 아니라 EP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지만, 그런 와중에 형편없는 음질을 뚫고 나오는 밴드 특유의 ‘그루브’와, Napalm Death나 Terrorizer 같은 장르의 클래식들을 연상케 하는 힘있는 전개는 그라인드코어가 조금은 낯설더라도 데스메탈에 단련되어 있다면 흥겹게 듣기에 충분해 보인다. ‘Comdemned System’ 같은 원곡에 충실한 커버곡이 자작곡들과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고 있다고 한다면 이 밴드의 스타일에 대한 설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런 밴드들이 많이들 그렇듯이 스플릿이다 EP다 몇 장 내다가 오래지 않아 망해버린 듯하지만 그저 그런 밴드들 중 하나로 넘겨버리기는 좀 아깝다. 개인적으로 아주 좋게 들었다.

[Self-financed, 2011]

Graveland “Creed of Iron”

Graveland의 다섯 번째 앨범. 사실 “Immortal Pride” 때부터 슬슬 선보였던 Graveland식 심포닉을 본격적으로 이어나가고 있지만, 밴드가 이전에 보여주던 비장미와 pagan 스타일을 제대로 찾아볼 수 있는 건 이 앨범까지가 아니었나 싶다. 이 앨범까지의 Graveland가 중세풍을 앞세워 그네들의 민족혼…을 지키는 피냄새 나는 전사의 모습을 그려내는 편이라면 “Memory and Destiny”부터는 갑자기 신화와 판타지의 세계로 침잠하면서 NSBM계의 Rhapsody를 노리는 듯한(솔직한 생각으로는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Graveland 신작이 나올 때마다 심심찮게 등장하던 NSBM 앨범을 구해서 듣는 것이 옳은 일인가? 얘기도 “Memory and Destiny”부터는 점점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런 면에서 블랙메탈 밴드로서 Graveland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고 생각한다. “Immortal Pride”이 밴드 기존의 스타일에 가까웠지만 심포닉해지면서 늘어지는 경향이 역력했다면 이번에는 (여전히 길긴 하지만)좀 더 짧아지고 극적인 면모도 강해졌다. 업계 최고의 왕따라는 Rob Darken의 명성…에 맞지 않게 이전의 앨범들은 어쨌든 Capricornus가 꾸준히 드럼을 맡아 줬는데, “Immortal Pride”에서 Capricornus의 드럼은 아무래도 잘 친다기는 좀 곤란했으므로….드럼머신을 썼다는 게 단점이라고 보기도 어렵겠다. ‘Tyrants of Cruelty’나 ‘White Beasts of Wotan’에서는 리프의 힘도 여전히 살아 있다. NSBM의 불한당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악당다운 모습을 보여준 앨범이었을 것이다.

[No Colours, 2000]

Nefastüs Diès “Urban Cancer”

몬트리올 출신 밴드의 유일작. Akitsa 이후 Tour de Garde의 발매작들을 위시해서 퀘벡 출신 블랙메탈 밴드들이 (내 주변에서)나름 주목을 받던 시절이긴 했지만 이 밴드는 퀘벡 출신이다 뿐이지 그런 밴드들과는 음악이나 멤버나 겹치는 구석이 없다. 하긴 앨범 커버도 그렇고 Candlelight에서 재발매하는 것도 그렇고 그렇게 착각하는 게 더 이상해 보이기는 한다.

정규작으로는 이 앨범 한 장만을 내놓고 이후 소식이 딱히 없지만 음악은 생각보다 수준이 높다. 퀘벡 출신이지만 음악은 At the Gates풍 스웨디시 멜로딕데스에 적당한 심포닉과 블랙메탈의 기운을 더한 스타일이라고 할 법한데, 심포닉이라곤 하지만 어쨌든 곡의 중심은 기타에 있고 사실 전형적인 심포닉보다는 조금 더 뒤틀린 류의 연주를 보여주는 편이다. 하긴 다양한 구성보다는 전반적으로 빠르게 몰아치는 구성을 보여주는만큼 이런 식의 건반이 더 어울려 보인다. ‘Primal Chaos Layers’ 같은 격렬한 구성의 곡들이 보여주는 에너지도 충분히 화끈하다. 말하자면 블랙메탈의 면모를 많이 가지고 있는 음악이지만 내가 듣기에는 사실 멜로딕데스 팬들에게 어필할 만한 부분이 더 많아 보인다.

그러니까 한 장 내고 망할 만한 밴드는 아니었다고 생각하는데 이후로는 소식이 없다. 하긴 당장 이 글조차도 Akitsa 얘기부터 나오는데 2006년에 퀘벡에서 이런 음악을 해서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북미라고 꼭 살기 좋은 건 아니었나 보다.

[Deepsend, 2006]

Tokyo Blade “No Remorse”

Tokyo Blade의 5집. 나름 NWOBHM에서는 누구나 안다고까진 못해도 무시할 수 없을 묵직한 이름이라지만 밴드명이나 등장한 시기나 모로 봐도 주목할 이유가 없어보여서였는지 이 밴드에 대한 얘기를 주변에서 들어본 적은 별로 없었고, 그 중에서도 이 앨범에 대한 얘기는 정말로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 하지만 내가 처음 접한 Tokyo Blade의 앨범은 하필 본작이었으니 아마도 밴드의 앨범들 중 국내에서 유일하게 라이센스된 앨범이기 때문일 것이다. Noise의 걸작들이 서울음반에서 심심찮게 나오던 시절이었다.

생각해 보면 라이센스가 돼서 그렇지 사람들이 이 앨범을 반길 이유는 딱히 없었던 것이 밴드의 클래식 라인업은 벌써 깨진 지 꽤 됐고 오리지널 멤버는 Andy Boulton밖에 남지 않았으며(말하자면 홍철만 남은 홍철팀 같은) 멤버를 떠나서 “Blackhearts & Jaded Spades”부터는 예전의 그 음악 어디 갔냐는 식의 혹평을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Andy Boulton이 다시 자기 빼고 멤버들을 다 갈아치웠는데… 데리고 온 멤버들이 Dead Ballerinas라는 알 수 없는 밴드의 멤버들이었으니 이거 멀쩡하기는 한 앨범인가 하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그래도 청자들의 분노가 묻어나는 앨범의 세평에 비해서는 나로서는 좋게 들었다. 이거 키보드는 자꾸 왜 들어가며 쓸데없이 고쓰풍인 보컬은 뭐냐는 게 대개의 얘기들일 텐데, 고쓰나 글램이나 키보드나 적당히 다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게 그리 문제될 건 없어 보인다. ‘Chains of Love’ 같은 곡은 어쨌든 거슬리는 보컬(어찌 들으면 Vince Neil 같기도 하다)만 제외하면 “Slide In It” 시절의 Whitesnake나… Joe Lynn Turner가 마이크 잡던 시절의 Rainbow를 연상할 만한 부분도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Iron Maiden 물 많이 먹은 류의 헤어메탈을 찾는다면 의외의 정답이 될 수 있어 보인다. 싸게 나온다면 일청을 권해본다.

[Hot Blood, 1989]

Limbonic Art “Opus Daemoniacal”

Limbonic Art의 간만의 복귀작. 사실 이 밴드가 무슨 음악을 하느냐 묻는다면 당연히 답은 심포닉 블랙메탈이겠지만 Morfeus가 나간 뒤 밴드의 음악은… 여전히 꽤 심포닉하긴 하지만 기존의 쏟아지는 건반의 향연에 가까운 스타일과는 꽤 거리가 멀어진 리프 위주의 음악이 되었다. 그런데 원래 Limbonic Art의 음악에서 곡을 이끄는 건 기타가 아니라 단연 키보드였고, 키보드가 이끄는 흐름을 옆에서 뒷받침하던 기타가 곡의 중심으로 나오는 게 그냥 리프가 좀 복잡하고 조밀해진다고 되는 건 아닐 것이다. 말하자면 Morfeus가 떠난 이후의 Limbonic Art는 과장 좀 보태서 기존의 그 밴드와는 가는 길 자체가 꽤 달라져버린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명은 Daemon이 Limbonic Art는 이제 자신의 원맨 밴드임을 재차 강조하는 느낌이다. 키보드의 비중이 적지 않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이건 분위기를 깔아주는 수준이고 곡의 메인은 전작에 비해서도 좀 더 노르웨이풍을 강조한 Dark Funeral풍의 리프라고 할 수 있다. ‘Deify Thy Master’나 ‘Consigned to the Flames’ 같은 곡은 아직 심포닉한 것도 할 줄 안다는 듯 뒤틀린 콰이어를 집어넣었지만, 결국 앨범을 듣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것은 Marduk에도 가깝게 들리는 ‘I Am Your Demon’ 같은 곡의 공격성이다. 결국 지난 두 장의 앨범처럼 웰메이드지만(사실 지난 두 장보다는 좀 더 좋게 들리지만) 밴드의 과거를 좋아했던 이에게는 시원치만은 않을 그런 앨범.

그래도 마지막의 ‘Ars Diavoli’는 밴드의 초창기 모습을 살짝 보여주는 면이 있다. 다음 앨범쯤에는 딱히 하는 것도 없겠다 Morfeus가 복귀해 줬으면 좋겠다.

[Kyrck,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