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world “Cyberdreams”

멤버들의 면면만 보면 업계를 호령해야 함이 마땅했고 우리의 지구레코드도 덕분에 1집을 라이센스했지만 단명하고 사라진 수많은 멜로딕 하드록 밴드들 중 하나가 돼 버린 Westworld의 마지막 앨범. 사실 이들의 앨범들을 들어보면 이런 운명을 맞게 된 것도 이해되는 것이 Tony Harnell의 수려한 보컬을 뺀다면 구리지는 않더라도 돋보이는 것도 딱히 없는 것이 애매하기 그지없다. 연주는 어쨌든 번뜩이는데 그 멜로디감각들 어디 갔는지 궁금해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보니까 난 세 장이 다 있다. 이유야 별 거 없고 저 멜로디감각 문제 덕분인지 싸게 잘 나와서 그렇다. 저 멜로디감각 문제 때문에 자랑할 곳도 별로 없다는 게 문제이긴 하다.

그런 면에서 “Cyberdreams”는 이제서야 밴드가 원래 갖고 있던 감각들을 제대로 살려내기 시작했던 앨범이다. Danger Danger풍 키보드에 수려한 멜로디를 얹어내는 ‘A Million Miles’, 귀에 꽤 잘 들어오는 발라드 ‘Look to See’, Vicious Rumours가 잘 쓰던 류의 경쾌한 분위기의 리프가 돋보이는 ‘When I Come Home’ 등 곡들이 각자 저마다의 매력을 갖고 있다. 앨범 초반에 비해 뒷부분이 꽂히는 맛이 덜하다는 게 아쉬움이겠지만 그렇다고 뒷부분 스킵하지 말라고 ‘Neon Knights’의 커버를 실어주고 있으니 앨범을 끝까지 돌려보게 할 재미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걸 낼 수 있는데 문 닫았다는 게 아쉽기도 하지만… 하긴 90년대 후반에 데뷔한 멜로딕 하드록 밴드가 뒤로 갈수록 앨범이 좋다는 점이 생존에는 별로 도움이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는 밴드의 팔자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물론 충분히 잘 나가는 이 멤버들에게 어울리는 얘기는 아니지만.

[Z Records, 2002]

EZO “Fire Fire”

이 밴드도 그렇고 Loudness 등을 위시한 일본 메탈 밴드들을 비교적 늦게 접한 편이다. 이유가 뭐 있겠냐마는 굳이 따진다면 일본 밴드들에게서 흔히 느껴지곤 하는 뽕끼가 싫었던 것도 있고, 앨범의 퀄리티를 떠나서 일본반은 어쨌든 확실히 비싸게 나왔으므로 지갑 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Loudness의 보컬로 먼저 접한 Masaki Yamada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던 터라 Masaki의 좋았던 시절이라는 EZO에 대해서도 굳이 접할 필요는 별로 느끼지 못했다. 물론 당연히 지갑 문제도 있었다. 이 앨범을 비싸게 주고 사기에는 살 게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뒤늦게 접한 앨범은 충분히 훌륭했다. Loudness 시절 욕 좀 많이 먹긴 했으나 사실 노래를 못한다기보다는 Loundness의 변해버린 스타일 탓도 있었다고 한다면, 기량도 기량이지만 Yamada가 자기 목소리에 맞는 밴드를 만났던 것은 이 시절일 것이다. 일본 밴드였지만 L.A 이민자들인가 싶을 정도로 미국 스타일에 근접한 사운드이기도 하다. 하긴 그러니까 Gene Simmons가 주목하기도 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그 시절 주류였던 헤어메탈보다는 좀 더 헤비한 정통 메탈 밴드에 가까운 밴드였고(하긴 외모를 보더라도 헤어메탈 밴드라기엔 많이 ‘지저분한’ 스타일이었다), ‘Black Moon’이나 ‘Fire Fire’를 80년대 헤비메탈의 근본 취급하는 아재들이 많은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Skid Row가 “United World Rebellion Chapter I”에서 ‘Fire Fire’를 커버곡으로 선택한 건 그런 면에서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Geffen, 1989]

Sarke “Endo Feight”

Darkthrone과 함께 Nocturno Culto가 보컬을 맡은 블랙메탈 밴드라고 하면 이 밴드에 대한 소개는 아마 충분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인재풀이 넓지는 않은지라 그때 이 밴드에서 봤던 그 분이 지금 보니 요 밴드에도 있네? 하는 일이 잦은 블랙메탈 씬에서 Nocturno Culto만큼 인지도 높으면서도 원래 하던 밴드 말고 다른 밴드의 작업에 이름을 비추지 않는 사례는 드문 편이다. 덕분에 이 밴드를 거쳐가는 멤버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Asgeir Mickelson이나 Cyrus, Athera 같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익숙한 이름들을 꽤 자주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밴드의 음악은 전형적인 블랙메탈과는 꽤 차이가 있다. “Aruagint”까지는 누가 뭐래도 어쨌든 블랙메탈이기는 했던 이 밴드는 점차 다양한 스타일을 받아들이고 템포도 느릿해지면서 꽤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냈는데, 이 앨범에 와서는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이지만 리프는 정작 꽤 미니멀한 류의 헤비메탈에 약간의 블랙메탈을 곁들인 류의 음악을 보여주고 있다. ‘Death Construction’의 화려한 키보드와 프로그레시브한 구성과 ‘In Total Allegiance’의 공격적인 블랙메탈이 때로는 하드록의 향내가 느껴지는 질감으로 앨범 하나에 같이 들어가 있다. 그러니까 이 밴드를 크로스오버 블랙메탈이라는 식으로 부르는 이도 있는 모양인데, 별로 메탈릭하지 않은 이 앨범에 어울리는 이름은 아닌 것 같다. 그저 노르웨이 블랙메탈풍 아트록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Dødheimsgard 같은 밴드가 너무 실험적이라서 힘들다고 느껴지는 이라면 일청을 권해본다.

[Soulseller, 2024]

Mütiilation “Black Metal Cult”

Mütiilation의 신작. 중간에 스플릿이다 라이브다 컴필레이션이다 나와서인지 오랜만이라는 느낌까지는 사실 없었는데 짚어 보니 “Sorrow Galaxies” 이후 17년만의 신작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찌 생각하면 해체했다는 얘기만 안 했을 뿐 생명력이 남아 있을까 자체가 의심스러운 밴드였으므로(일단 Meyhna’ch도 이제 50을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앨범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갑자기 Darkspace를 따라하려는지 대곡병 걸린 모습을 보여준 “Sorrow Galaxies”가 있긴 했지만 이 밴드야 한 번도 스타일이 바뀐 적이 없었고 원래 7분 넘어가는 곡 정도는 심심찮게 내놓았던 밴드인만큼 제목부터 블랙메탈 컬트를 외치는 앨범에서 스타일이 바뀌었을 리는 만무하다. 그래도 이 밴드의 리프메이킹이 아직 녹슬지 않았음은 충분히 엿볼 수 있는만큼(특히나 ‘The Fall of Islam’이나 ‘The Mirror of Disillusion’) 이 17년만의 복귀작에 기대가 과하지만 않았다면 만족하기 충분한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특이한 것은 이 앨범에서 Meyhna’ch가 하는 이야기이다. 보통 이런 류의 흑백 커버를 내세운 Mütiilation풍 블랙메탈의 가사에서 ‘Internet ruined everything, abandoned to stupidity’ 같은 내용을 기대하진 않을 것이다. 하긴 50 바라보는 분이니 요즘 세상 글러먹었다고 혀를 끌끌 차곤 하는 꼰대가 되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겠다만.

[Osmose, 2024]

Buddy Lackey “The Strange Mind of Buddy Lackey”

Devon Graves의 가장 잘 알려진 커리어는 단연 Psychotic Waltz와 Deadsoul Tribe일 텐데 사실 Deadsoul Tribe를 제외하면 Devon Graves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적은 내 기억에는 없었고 항상 Buddy Lackey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그렇지만 이 분을 Buddy Lackey라는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드니 생각하면 꽤 괴이하다. 뭐 Buddy Lackey보다는 Devon Graves가 메탈 뮤지션의 이름으로는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유야 알 수 없다.

“The Strange Mind of Buddy Lackey”는 Devon Graves가 Buddy Lackey의 이름으로 낸 (현재까지는)유일한 솔로작인데, Psychotic Waltz의 한창 시절 함께 나온 앨범인지라 이 앨범에서도 Psychotic Waltz의 그림자를 지울 수는 없다. 차이가 있다면 그래도 Psychotic Waltz보다는 이 쪽이 더 간명한 전개를 보여주는 편이라는 정도? 사실 Dream Theater와 방향성이 좀 달랐을 뿐 어디까지나 메탈 밴드였던 Psychotic Waltz에서 보여줄 수 없었던 Buddy Lackey의 프로그레시브 록 취향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 앨범이랄 수 있겠다. 그런데 왜 이쪽이 간명하냐 하면 그 레퍼런스가 Jethro Tull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이 앨범은 메탈 앨범이고, 저 Jethro Tull스러운 면모가 앨범의 묵직한 분위기를 좀 갉아먹는 감이 없지 않아 보인다는 점이다. 이걸 다양한 색채를 보여준다랄 수도 있겠지만 ‘Let’s Start a War’의 Psychotic Waltz의 앨범에서는 생각하기도 어려울 ‘조금은 유치한’ 리프를 듣자면 듣기 편한데도 조금은 귀에 거슬리는 드문 경험을 맛볼 수 있다. 어찌 보면 Psychotic Waltz와 Devon Graves가 훗날 보여줄 스타일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앨범이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솔직히 Psychotic Waltz의 팬이 아니라면 굳이 구할 필요까진 없어 보인다. 본전 생각 난다는 뜻이다.

[Dream Circle,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