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herontas “Black Blood Ceremony”

그리스 블랙메탈의 거물… 이라고 말한다면 그 정도까진 좀 아니지 않나 생각이 앞서지만 정작 따지면 이 밴드 이상 가는 그리스 블랙메탈 밴드도 별로 없는데다 생각보다 관록의 멤버들이 모여 있어 조금은 흠칫 사람을 놀래키곤 하는 밴드의 2014년 라이브앨범. 단연 밴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을 V.P. Adept는 본진이야 Acherontas겠지만 그보다는 Stutthof의 활동으로 더 유명할 것이고(일단 훨씬 오래되기도 했고) 대체 무슨 앨범에 참여했던 건지는 도통 모르겠으나 Nocternity에도 이름을 올렸었다고 하니 커리어만큼은 나름 확실히 검증된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거의 한 해도 쉬지 않고 정규든 뭐든 어떻게든 뭔가를 내놓는 근면함도 갖추고 있다.

음악도 딱 그런 밴드에게 기대하는 것만큼은 충분히 보여준다. 사실 Necromantia 같은 밴드로 대표되는 그리스 블랙메탈 특유의 ‘구릿한’ 느낌은 별로 느껴지지 않고(물론 ‘Legacy of Tiamat’ 같은 예외도 있다), 그보다는 Ofermod나 Ondskapt 같은 좀 더 우리에게 익숙한 블랙메탈의 원형에 가까워 보이는 음악이다. 이런 류의 밴드의 라이브앨범에 음질을 기대하는 건 아닐 말이지만 정규반에 가까울 정도로 녹음 상태도 괜찮은 편이다. 사실 앨범 막바지를 제외하면 라이브앨범이라는 티 자체가 별로 안 나는 편인데, 그런 면에서는 Acherontas의 베스트 앨범처럼 생각하는 게 더 나을지도.

[New Era, 2014]

Sadus “The Shadow Inside”

Sadus의 17년만의 신보. 하지만 “Out for Blood”에 만족했던 팬들이 별로 없어서였는지 이 신보에 대한 기대감을 얘기하는 이는 별로 없어 보인다. 게다가 Steve DiGiorgio까지 빠져버렸으니 이 밴드의 특징을 어지러울 정도의 테크니컬함 사이에서 보여주는 그루브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The Shadow Inside”도 그런 스타일 자체는 분명히 유지되고 있다. ‘Scorched and Burnt’ 같은 곡은 Steve가 없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Morbid Angel이 생각날 정도로 테크니컬한 면모를 과시하기도 하고, ‘Ride the Knife’처럼 적당히 잡아놓은 공간감을 테크니컬한 리프로 강렬하게 찢어발기는 모습도 보여준다. 어찌 보면 “Out for Blood”가 망해서 그런지 정말 예전 스타일로 간다는 데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한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도 ‘The Devil in Me’ 같은 곡은 한창 시절의 Sadus 같았으면 템포 늦추지 않고 끝까지 달려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인상도 주는지라 아쉬움이 없지는 않다. Steve DiGiorgio의 부재 때문인지 확실히 미드템포의 곡들은 그루브를 살리기보다는 조금은 김이 빠진 데스래쉬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좋은 얘기는 별로 없긴 하다만 그렇다고 못 만든 것까지는 아닌 것 같다. “A Vision of Misery”를 정말 좋아했던 때문도 있을 것이고, 솔직히 “Elements of Anger”나 “Out for Blood”보다는 더 좋게 들린다. 2023년에 Nuclear Blast에서 나오는 데스메탈 앨범에서 현실적으로 기대할 만한 수준, 을 딱 맞춰주는 앨범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좀 박한가?

[Nuclear Blast, 2023]

En Force “The Final Sign”

한창 시절 Queensrÿche와 Crimson Glory를 적당히 짬뽕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이 밴드는 1990년과 1991년에 두 장의 데모만을 내놓고 망해버렸다고 한다. 우리의 Divebomb은 이런 밴드를 어찌 알고 저 데모 두 장에 라이브 음원을 보너스로 더해 한 장의 컴필레이션으로 내놓았으니 이 한 장으로 이 밴드의 컬렉션은 굳이 오리지널을 모으려고 하지 않는 한 완성될 것이다. 모으는 입장에서야 좋다지만 밴드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인 셈이다.

아무래도 Queensrÿche를 떠올릴 지점은 Geoff Tate가 생각날 수밖에 없는 Lonnie Fletcher의 보컬이겠지만(동급이라는 얘기는 아님) 음악은 사실 프로그레시브 메탈 또는 USPM의 전형과는 조금은 거리가 있고, 특히 1991년 데모의 ‘So Far Away’ 같은 발라드를 보면 메탈이라고 하기도 좀 뭣할 ‘클래식’ 하드록의 면모도 있다. 그래도 앨범의 주류는 Shrapnel의 한창 시절을 연상케 하는 살짝 먹먹한 음질과 적당히 테크니컬한 솔로가 어우러지지만 “Rage for Order” 같은 앨범에 비해서는 역동적인 맛은 좀 떨어지는 류의 스타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A Time of Change’ 같은 곡은 Queensrÿche의 미발표곡이라고 해도 믿을 만한 정도의 기량을 보여주기도 하고… 사실 90년 데모의 수록곡은 Queensrÿche나 Crimson Glory의 팬이라면 적어도 납득할 수준은 된다. 개인적으로 Divebomb bootcamp 시리즈 중에서는 제일 마음에 든다.

[Divebomb, 2014]

Saturnus “Paradise Belongs to You”

Saturnus의 대망의 데뷔작. 둠이 뭔지 잘 알지도 못했던 시절(뭐 지금이라고 잘 안다는 얘기는 아님) 멜랑콜리한 둠 메탈을 원한다면 이 앨범을! 식의 광고문구에 혹해서 구하게 됐던 이 앨범이 담고 있는 음악은 내가 알고 있던 둠 메탈의 모습 – 퓨너럴 둠 – 과는 이걸 둠이라고 불러도 되는 건가 싶을 정도로 무척 달랐다. 예테보리의 그 밴드들을 멜로딕 데스라고 부르고 있던 시절이었으니 이 음악을 멜로딕 데스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용어를 꼭 거기에만 쓰지 않는다면 여유 있는 템포만 빼고 생각한다면야 이 음악을 ‘멜로딕 데스’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뭔가 싶기도 하다. 하긴 둠 메탈이라고 적당한 박력이 있으면 안된다는 법이야 없으니 그래도 멜로딕 둠 정도로 부르는 게 더 맞아 보이긴 한다. 각설하고.

앨범의 핵심은 역시 Kim Larsen이 이끄는 기타 멜로디와 여기에 어우러지는 키보드가 만들어내는 멜랑콜리한 분위기일 것이고, 꽤나 자주 등장하는 새소리와 어두운 듯 마냥 차갑지는 않은 분위기는 바로 저 커버와 무척이나 어울린다. Chris Reifert 수준으로 묵직한 Thomas Jensen의 보컬이 이 음악이 둠 메탈임을 상기시켜 주지만, ‘Christ Goodbye’ 같은 곡에서 드러나듯 멋진 클린 보컬을 보여주는 분인지라, 사실 마냥 둠 메탈이라고만 하기는 좀 그렇고 어느 정도는 네오포크의 경향(‘죽음’이라는 주제에 탐미적으로 천착하는 모습이 역력한 가사도 그렇고)을 담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Kim Larsen부터가 이후 Of the Wand & The Moon으로 활동하게 되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그런 면에서 둠 메탈 중에서 어떤 ‘분위기’를 이만큼 짙게 머금었던 앨범과 밴드는 별로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긴 그러니까 둠 메탈 클래식이라고 불리고 있겠지.

[Euphonious, 1997]

Xoth “Exogalactic”

요새 테크니컬하다는 평을 듣는 밴드들이 대개 그렇듯이 어느 하나로 딱 집기 어려운 이거저것 뒤섞인 스타일을 보여주는 시애틀 출신 밴드의 근작. 프로그레시브 스래쉬라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결국은 Voivod나 Coroner를 참고한 흔적이 많으면서 은근히 블랙메탈 스타일이 많이 묻어나는 보컬을 보유한 테크니컬 데스… 정도로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러니까 사실 특별하다고 할 건 없는 스타일이고, 위의 두어 줄 정도에 나온 것 말고도 중간중간 등장하는 네오클래시컬 어프로치나 통상의 테크니컬 데스보다 훨씬 뚜렷한 멜로디(그러니 Arsis나 Exmortus 같은 이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Reptilian Bloodsport’ 같은 곡에서 묻어나는 Black Dahlia Murder풍의 면모는 소위 ‘모던한’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마냥 달가운 모습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이 밴드의 특징이라면 은근히 파워메탈의 전형에 가까운 전개들을 보여준다는 것인데, 특히나 보컬만 빼면 곡 전체가 그렇게 나아가는 ‘Saga of the Blade’나 ‘Reflective Nemesis’의 Dragonforce 뺨칠 도입부는… 니네가 이러고도 데스냐 할 사람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듣다 좀 질리는 감은 사실 없지 않지만)나쁘지 않게 들린다. 가끔은 Blind Guardian 같다는 생각도 들곤 한다.

멜로딕 스피드메탈을 즐겨 들으면서 래스핑 보컬에 마냥 거부감이 있는 이가 아니라면 이만한 입문작도 보기 드물어 보인다.

[Dawnbreed,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