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an Deviation : Four Decades of Progressive Metal

meandeviation.jpg프로그레시브 메탈 라이센스반들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면 으레 Rush와 Metallica가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Watchtower, Queensryche, Fates Warning 정도의 밴드들을 잠깐 훑고 지나갔다 결국은 이 밴드는 Dream Theater의 따라쟁이더라로 끝맺는 해설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Dream Theater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한 밴드들을 Dream Theater 따라쟁이라고 표현한 게 잘못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해설지가 그 얘기를 찬찬히 해 주고 있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드는 생각의 하나는 해설지 참 쓰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럼 좀 더 근본적인 질문, 프로그레시브 락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아니면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대체 어떤 음악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Dream Theater 비슷한 음악입니다’가 아니라 그에 대해 나름의 설명을 해 놓았던 글은 내 기억엔 딱히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많은 프로그레시브 락에 대한 책들이 그런 것처럼 장르의 철학적, 시대적인 배경이 어쩌고 하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지만, 이 장르가 어떤 기린아들을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단순히 ‘Rush와 Metallica의 만남’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많은 해설지들에서 이름만 스치고 지나갔던 밴드들이 어떠한 류의 음악을 했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메탈헤드를 자처한다면 사실 그리 생소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 익숙한 얘기를 Thought Industry와 Fates Warning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꺼내던 사례는 별로 본 적이 없다. 프로그레시브한 부류의 스래쉬메탈(또는 Watchtower의 후예들)에 대해서도 꽤 열심히 다루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Anacrusis야 익숙한 편이겠지만 Obliveon이나 DBC의 이름을 프로그레시브 메탈 책에서 보는 건 의외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이 책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어떤 음악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지도 않고, 판돌이들에게는 익숙할 범위 이상의 앨범들을 소개하고 있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넓게 보면 이러저러한 밴드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 소개하면서 그 개념이 포괄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나름 알려진 밴드들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책이고(그래서 책 제목이 표준편차인지도), 덕분에 이 책을 접하고 어우 대단하다고 생각할 이들은 그리 많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헤비메탈 일반도 아니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대해서만 다루면서 King Crimson부터 Meshuggah까지 함께 등장하는 책을 써서 팔 생각을 한다는게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아는 얘기라도 우리가 모르는 일화들을 인용하며(이를테면 Paul Masvidal이 Scott Burns를 음악도 잘 모른다는 투로 씹는 등의 이야기들) 하고 있으니 재미를 찾기에는 충분한 편이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Jeff Wagner 저, Bazillion Points]

나를 보내지 마

neverletmego.jpg언제나 짧은 소양의 나로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름은 낯설다. 물론 이 일본스러운 이름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더라는 얘기는 쉬이 들을 수 있었지만 장차 생전 시간을 낭비한 죄로 지옥에 간다면 그 죄목의 한켠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아 읽었던 시간이 끼어 있으리니 생각하는 나로서는 언제부턴가 작가명에 일본식 이름이 적혀 있으면 우선순위를 주욱 밀어내버리는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습벽이 생겨버렸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6세에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계 영국인이라니 꽤 억울할 노릇이겠지만… 생각해 보니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게 딱히 억울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확신범들이 하는 얘기와 맞닿아 있는 듯하지만 넘어가고.

제목만 봐서는 뭔가 연인을 떠나보내는 듯한 얘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처럼 이 제목을 영화 “나를 찾아줘”(영어 원제야 물론 꽤 틀리다)와 헷갈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소설의 내용은 굳이 영화에 비교한다면 그 국내에서만 인기 많았던 “아일랜드”에서 온갖 역동적인 부분들을 모두 덜어낸다면 조금은 비슷할 것이다(영화화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영화 ‘나를 보내지 마’와 똑같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을지니). 학교 형태의 생체 장기 은행에서 양성되는 복제품으로서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자각하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의 팔자가 팔자이다보니 결국은 그 불안하기 짝이 없던 인생에서도 잔재미들을 찾아내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려간다.

결국은 앞이 안 보이는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사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비슷하고, 어떻게 보면 어쨌든 이 등장인물들은 ‘원본’보다도 더욱 인간성에 대해 절실히 깨닫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보다도 낫다! 는 식의 얘기가 각종 시상식에서의 챠밍 포인트였으려니 싶다. 물론 그래도 읽고 나서 기분좋을 일은 딱히 없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각자 뭔가 잘하는 거 하나씩은 있었던 등장인물들도 이리 의미없이 생을 마치는데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나는 뭐냐…는 반응을 실제로 한 번 봐서 하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저, 김남주 역, 민음사]

컬러의 말 :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

187696327.jpg부족한 수입을 쪼개 옷을 사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럴 때 선택하는 옷의 색깔은 보통은 (취향의 문제를 떠나서)검정색이나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었다. 생활의 습관이라는 면이 컸겠지만 그런 색깔의 옷들이 무심한 스타일의 사람으로서 관리하기 편하다는 것도 분명한 요인이었다. 물론 그런 면들은 아마 그 옷을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도 분명 고려됐을 것이다. 일정 정도 이상 패션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은 이들이 입는 일상복에서 색깔은 분명 실용성과도 연관된 부분이고, 그렇게 색깔은 단순히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로 상품의 영역에 들어온다. 디자인 부서가 선택한 색깔로 염색을 하자니 먼저 그 색깔의 염료부터 조달해야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색깔에 대한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오고 있지만, 그 표지를 들춰보면 갖가지 색깔에 대한 상품화의 역사와 그에 대한 저자의 간단한 코멘트 정도가 합쳐진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빨간색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도 될 법한 색깔을 저자는 굳이 스칼렛, 코치닐, 버밀리온, 로소 코르사, 헤머타이트, 매더, 드래곤스 블러드의 7가지나 서술하고 있고, 그 각각의 색깔은 결국은 좀 더 다른 빨간색에 대한 시장의 요구, 원료 조달의 어려움에 따른 비싼 가격 등 여러 가지의 요인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다른 색깔로 취급되면서 시장에 등장한다. 가격이 울트라마린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프러시안 블루가 고흐나 모네 등 많은 화가들에게 선호되었던 색깔이 된 것이 오로지 그네들의 미적 감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부제로 붙은 말은, 사실은 “모든 색에는 상품명이 있다”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 책 스스로도 그런 책의 내용을 잘 실천하고 있다. 도트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여백 많은 페이지 가장자리의 색깔들과, 이 책에 실린 색깔들을 이용한 챕터와 챕터 사이의 공백들은 그 색감으로 챕터를 구분하고 페이지에서 설명하는 색깔이 대체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런 ‘기능적’ 측면보다는 그 색깔들이 이루는 디자인에 좀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하긴 디자인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표지를 제외한)이 책의 디자인은 꽤 예뻐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솔직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트렌디하면서도 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 마디를 짜내는 소재로도 유용할 것이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 이용재 역, 윌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