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rd of Chaos : The Bloody Rise of the Satanic Metal Underground

lordofchaos.png원래 1998년에 나온 이 책에 대해서는 사실 그리 많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저자인 Michael Moynihan부터 이 책 외에도 Blood Axis에서의 활동 등으로 충분히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고… 헐리웃에서 영화까지 나온 마당이니 더욱 그렇다. 그런 사정들 말고도 이 책은 노르웨이 서브컬쳐 씬 하에서의 이런 저런 사건들에 대해서, 아마 가장 많이 다루고 있는 책 중 하나일 것이다. 잘 알려진 Mayhem의 Dead나 Euronymous의 사망 및 Varg와의 관계, 일련의 교회의 방화, Faust의 살인 사건 등과 같은. 물론 여기에는 이와 관련된 인물들의 인터뷰도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그 시절 노르웨이 블랙메탈 씬에 대한 ‘crime journalism’ 정도가 될 것이다. 밴드 얘기들이 나온다고 해서 본격 음악 책이라긴 좀 곤란한 셈이다.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그 시절 사건들과 관련한 뮤지션들의 가쉽거리나 인터뷰들 말고도 Neo-paganism과 Satanism의 영역, 거기에 National Socialism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크리스트교가 지배하던 북유럽이지만, 이는 엄연히 ‘외부’ 에서 유입된 종교이고, 그 대지에 살던 이들이 처음부터 원하던 것은 아닌 것. 그에 대한 저항의 일환으로서의 교회의 방화의 존재 등의 설명을 확인할 수 있다. 즉, 교회의 방화 등의 사건은 크게 볼 때 ‘Protestantism’ 과 ‘Norwegian folk’ 간의 문화적 거리감에서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사타니즘에 대한 설명 및 Anton Lavey의 인터뷰도 나오는데(아마도 Michael Moynihan이 저자니까 가능했을 것이다), 좀 겉돈다는 느낌이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재미는 있다. 인물들의 심리적 분석을 통해 네오나치즘과 국가사회주의의 내용과 연결시키는 부분도 내용이야 공감 못하겠다만 이런 식의 논고를 다른 곳에서 본 적은 없었던지라 충분히 흥미롭기도 하다. 유감스럽게도 이런 분석을 세밀하게 펼치고 있다고까지는 못할 것 같다. 진술들은 약간은 지나칠 정도로 파편적이고, 저자들은 인물 하나하나의 분석을 하기에는 주제를 너무 크게 벌려 놓았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좀 느낌이 틀렸던 것 같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확실히 Michael Moynihan의 시각이 상당히 ‘현격히’ 드러나는 책이다. 블랙메탈을 다루는 책이지만 이 책에서 블랙메탈은 단순 음악 장르로서보다는 철학을 나타내기 위한 ‘도구’ 로서 표현되고 있기에 그 비중은 생각보다는 크지 않고, 음악 책이라기보다는 어디까지나 ‘저널리즘’에 가까운 책이기도 하니,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블랙메탈을 잘 모르는 이들이 읽는다면 장르에 대한 뒤틀린 편견만 안겨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기도 한다. ‘저널리즘’인만큼 그런 이들도 쉽게 읽기에는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게 이 책을 읽은 이들이 블랙메탈이란 음악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뭐 그런 실용성을 떠나서 책은 충분히 재미있긴 하다만.

[Michael Moynihan & Didrik Sorderlind 저, Feral House]

Mean Deviation : Four Decades of Progressive Metal

meandeviation.jpg프로그레시브 메탈 라이센스반들을 구입한 경험이 있다면 으레 Rush와 Metallica가 어쩌고 저쩌고 하다가 Watchtower, Queensryche, Fates Warning 정도의 밴드들을 잠깐 훑고 지나갔다 결국은 이 밴드는 Dream Theater의 따라쟁이더라로 끝맺는 해설지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뭐 Dream Theater의 자장을 벗어나지 못한 밴드들을 Dream Theater 따라쟁이라고 표현한 게 잘못은 아니지만 거의 모든 해설지가 그 얘기를 찬찬히 해 주고 있다보니 독자의 입장에서 드는 생각의 하나는 해설지 참 쓰기 쉽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럼 좀 더 근본적인 질문, 프로그레시브 락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구별되는 지점은 어디입니까, 아니면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대체 어떤 음악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그건 바로 Dream Theater 비슷한 음악입니다’가 아니라 그에 대해 나름의 설명을 해 놓았던 글은 내 기억엔 딱히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 책은 많은 프로그레시브 락에 대한 책들이 그런 것처럼 장르의 철학적, 시대적인 배경이 어쩌고 하는 내용은 담고 있지 않지만, 이 장르가 어떤 기린아들을 참고해서 만들어졌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단순히 ‘Rush와 Metallica의 만남’이 아니라 다양한 요소들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있었으며, 많은 해설지들에서 이름만 스치고 지나갔던 밴드들이 어떠한 류의 음악을 했는지를 담아내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메탈헤드를 자처한다면 사실 그리 생소한 내용은 아니겠지만, 그 익숙한 얘기를 Thought Industry와 Fates Warning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꺼내던 사례는 별로 본 적이 없다. 프로그레시브한 부류의 스래쉬메탈(또는 Watchtower의 후예들)에 대해서도 꽤 열심히 다루고 있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Anacrusis야 익숙한 편이겠지만 Obliveon이나 DBC의 이름을 프로그레시브 메탈 책에서 보는 건 의외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이 책은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어떤 음악이라고 나름의 정의를 내리지도 않고, 판돌이들에게는 익숙할 범위 이상의 앨범들을 소개하고 있지도 않는다. 그보다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은 넓게 보면 이러저러한 밴드들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라 소개하면서 그 개념이 포괄하고 있는 다양한 모습들을 나름 알려진 밴드들을 중심으로 설명하는 책이고(그래서 책 제목이 표준편차인지도), 덕분에 이 책을 접하고 어우 대단하다고 생각할 이들은 그리 많지만은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하고 보니 헤비메탈 일반도 아니고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대해서만 다루면서 King Crimson부터 Meshuggah까지 함께 등장하는 책을 써서 팔 생각을 한다는게 사실은 정말 대단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아는 얘기라도 우리가 모르는 일화들을 인용하며(이를테면 Paul Masvidal이 Scott Burns를 음악도 잘 모른다는 투로 씹는 등의 이야기들) 하고 있으니 재미를 찾기에는 충분한 편이다. 꽤 재미있게 읽었다.

[Jeff Wagner 저, Bazillion Points]

나를 보내지 마

neverletmego.jpg언제나 짧은 소양의 나로서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이름은 낯설다. 물론 이 일본스러운 이름의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더라는 얘기는 쉬이 들을 수 있었지만 장차 생전 시간을 낭비한 죄로 지옥에 간다면 그 죄목의 한켠에는 무라카미 하루키를 찾아 읽었던 시간이 끼어 있으리니 생각하는 나로서는 언제부턴가 작가명에 일본식 이름이 적혀 있으면 우선순위를 주욱 밀어내버리는 (그리 바람직하지는 않은)습벽이 생겨버렸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6세에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계 영국인이라니 꽤 억울할 노릇이겠지만… 생각해 보니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게 딱히 억울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뭔가 확신범들이 하는 얘기와 맞닿아 있는 듯하지만 넘어가고.

제목만 봐서는 뭔가 연인을 떠나보내는 듯한 얘기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처럼 이 제목을 영화 “나를 찾아줘”(영어 원제야 물론 꽤 틀리다)와 헷갈리는 경우도 있겠지만, 사실 소설의 내용은 굳이 영화에 비교한다면 그 국내에서만 인기 많았던 “아일랜드”에서 온갖 역동적인 부분들을 모두 덜어낸다면 조금은 비슷할 것이다(영화화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내용은 영화 ‘나를 보내지 마’와 똑같다는 식으로 얘기할 수는 없을지니). 학교 형태의 생체 장기 은행에서 양성되는 복제품으로서의 인간들이 자신들의 운명을 자각하고 나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인데,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의 팔자가 팔자이다보니 결국은 그 불안하기 짝이 없던 인생에서도 잔재미들을 찾아내고 그 시절을 되돌아보는 식으로 이야기가 풀려간다.

결국은 앞이 안 보이는 시절을 살아가는 우리네 인생사와 소설의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보면 비슷하고, 어떻게 보면 어쨌든 이 등장인물들은 ‘원본’보다도 더욱 인간성에 대해 절실히 깨닫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보다도 낫다! 는 식의 얘기가 각종 시상식에서의 챠밍 포인트였으려니 싶다. 물론 그래도 읽고 나서 기분좋을 일은 딱히 없을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각자 뭔가 잘하는 거 하나씩은 있었던 등장인물들도 이리 의미없이 생을 마치는데 딱히 잘하는 것도 없는 나는 뭐냐…는 반응을 실제로 한 번 봐서 하는 얘기다. 그런 면에서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

[가즈오 이시구로 저, 김남주 역, 민음사]

컬러의 말 : 모든 색에는 이름이 있다

187696327.jpg부족한 수입을 쪼개 옷을 사야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럴 때 선택하는 옷의 색깔은 보통은 (취향의 문제를 떠나서)검정색이나 회색 등 무채색 계열이었다. 생활의 습관이라는 면이 컸겠지만 그런 색깔의 옷들이 무심한 스타일의 사람으로서 관리하기 편하다는 것도 분명한 요인이었다. 물론 그런 면들은 아마 그 옷을 만드는 생산자의 입장에서도 분명 고려됐을 것이다. 일정 정도 이상 패션의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은 이들이 입는 일상복에서 색깔은 분명 실용성과도 연관된 부분이고, 그렇게 색깔은 단순히 디자인의 차원을 넘어서 그 자체로 상품의 영역에 들어온다. 디자인 부서가 선택한 색깔로 염색을 하자니 먼저 그 색깔의 염료부터 조달해야 했을 것이다.

이 책은 색깔에 대한 에세이의 형식을 빌어 오고 있지만, 그 표지를 들춰보면 갖가지 색깔에 대한 상품화의 역사와 그에 대한 저자의 간단한 코멘트 정도가 합쳐진 내용을 담아내고 있다. 빨간색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해도 될 법한 색깔을 저자는 굳이 스칼렛, 코치닐, 버밀리온, 로소 코르사, 헤머타이트, 매더, 드래곤스 블러드의 7가지나 서술하고 있고, 그 각각의 색깔은 결국은 좀 더 다른 빨간색에 대한 시장의 요구, 원료 조달의 어려움에 따른 비싼 가격 등 여러 가지의 요인으로 인해 비슷하지만 다른 색깔로 취급되면서 시장에 등장한다. 가격이 울트라마린의 10분의 1에 불과했던 프러시안 블루가 고흐나 모네 등 많은 화가들에게 선호되었던 색깔이 된 것이 오로지 그네들의 미적 감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책의 부제로 붙은 말은, 사실은 “모든 색에는 상품명이 있다”의 또 다른 표현인 셈이다.

이 책 스스로도 그런 책의 내용을 잘 실천하고 있다. 도트는 그리 크지 않지만 여백 많은 페이지 가장자리의 색깔들과, 이 책에 실린 색깔들을 이용한 챕터와 챕터 사이의 공백들은 그 색감으로 챕터를 구분하고 페이지에서 설명하는 색깔이 대체 시각적으로 어떻게 보이는지를 명확히 설명해 주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은 그런 ‘기능적’ 측면보다는 그 색깔들이 이루는 디자인에 좀 더 관심을 가질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 하긴 디자인에 문외한인 나로서도 (표지를 제외한)이 책의 디자인은 꽤 예뻐 보인다. 그런 면에서는 생각보다 훨씬 솔직한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적당히 트렌디하면서도 지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한 마디를 짜내는 소재로도 유용할 것이다.

[카시아 세인트 클레어 저, 이용재 역, 윌북]

Critic for Burzum’s Ambient

272f043852483db007초기의 거친 음악을 연주했던 Burzum이 본격적으로 ‘앰비언트’ 의 색깔을 비치기 시작했던 것은 아무래도 1994년의 “Hvis Lyset Tar Oss” 앨범부터일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은 블랙메탈 앨범이지만 앨범에는 아마도 Burzum 최초의 앰비언트 트랙일 ‘Tomhet’ 이 수록되어 있었다. 1994년에 나왔다는 것 때문에 사실 음악을 들어 보면 전혀 상관없는 스타일이지만 바로 이 ‘앰비언트’ 는 같은 해에 나왔던 Aphex Twin의 “Ambient Works Volume II” 와 은근히 비교되었던 것을 생각보다 자주 보았던 기억이 난다. 둘 다 앰비언트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는 점만큼은 동일하겠지만, Aphex Twin과 Burzum이라는 두 이름 사이에 놓인 간극은 ‘다들 아시다시피’ 메워지기가 쉽지 않다(심지어 커버는 Aphex Twin이 더 괴악하다). 그렇지만 확실히 ‘Tomhet’ 이 서양 앰비언트 뮤직의 전통에서 비껴나가 있다고 볼 만한 건 아니었다. 사실, ‘Tomhet’ 은 1970년대 크라우트록 거물들의 앰비언트, 즉, Tangerine Dream이나 Klaus Schluze 같은 이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Filosofem” 에서 25분짜리 앰비언트를 수록하는 시도가 있었던 뒤에, Burzum은 잘 알려진 바대로 (뭔가 납득하기 어려운 면이 많았던)두 장의 앰비언트 앨범을 발표했다.

하필 이 두 장의 앨범이 Euronymous 사후에 발표되었고, 생전에(친하던 시절에) Varg의 음악적 ‘멘토’ 를 자처했던 Euronymous가 크라우트록 씬의 전자음악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대표적인 에피소드라면야 Euronymous가 베를린에 갈 기회가 있었을 때 (이제는 고인이 된)Conrad Schnitzler를 찾아가 Mayhem의 앨범에 실을 곡을 달라고 했던 것일 것이다. 흥미롭게도 Conrad는 정말 곡을 주었고, 바로 그게 “Deathcrush” 에 실렸던 ‘Silverster Anfang’ 이었다. 이 자의식 강하던 뮤지션들이 앨범을 만들면서 정작 그 인트로를 다른 뮤지션의 곡을 받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Burzum의 ‘앰비언트’ 작곡은 사실은 Euronymous, 더 올라가면 크라우트록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뭐, 그렇지만 사실 Burzum의 ‘앰비언트’ 시기는 개인적으로는 Burzum 음악의 가장 취약했던 시기라고 생각한다(앰비언트에서 다시 벗어난 지금이 그렇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아무래도 내가 Klaus Schulze와 Tangerine Dream의 음악 중 많은 부분을 그리 즐기지 않는지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자의식 강하기로는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뮤지션인 Varg가 자신의 색깔이 아닌, 오로지 남의 색깔을 비추어 내는 음악을 했던 것이 그 시절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Filosofem” 까지의 Burzum은 간혹 앰비언트로 외도를 하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블랙메탈 밴드였고, Burzum의 블랙메탈이 매우 독창적이었으며 후대에 어떠한 ‘장르’ 를 형성한 스타일이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Burzum의 그 싸구려 키보드로 연주했을 앰비언트(앨범이 들려주는 사운드의 퀄리티도 그렇거니와, 감옥에서 앨범을 만들면서 얼마나 좋은 장비를 쓰기를 기대할 것인가?)가 보여줬을 영향력은,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이미 80년대에 등장한 많은 유럽의 전자음악 거물들을 기억하고 있지만, 전자음악을 얘기하면서 Varg Vikernes를 얘기하는 경우는 아직 본 적이 없다.

241C3F3452483E3435.jpg그리고, 명확한 컨셉트를 가지고 있더라도 사운드의 ‘발명’ 내지는 ‘실험’ 에 중점을 두었던 크라우트록 뮤지션들에 비해 Varg의 음악에서는 사운드가 가져오는 명징한 ‘분위기’ 는 있을지언정 새로운 음향의 이용 등의 측면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사실, 잘 알려져 있듯이 Varg가 갑자기 블랙메탈에서 앰비언트로 음악을 전환한 동기는 좀 뜬금없는 이야기이다 – 블랙메탈 또한 일종의 록 음악으로서 아프로-아메리칸 음악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러니까 Varg가 ‘블랙메탈’ 을 그만둔 동기는 있었어도 사실 ‘앰비언트’ 를 선택한 동기는 별 게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Burzum이 그 전의 앨범에서 앰비언트적 요소를 조금씩 보여 준 적이 있었어도, 이후의 본격 앰비언트 앨범이 이전의 앨범들과 음악적 연속성을 전혀 갖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억지스러운 표현이겠지만, Varg에 난자당해 죽었던 Euronymous는 정작 은연중에 자신이 Varg에 미쳤던 음악적 영향력을 통해서 나름의 복수를 행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