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탱고

크러스너호르카이 라슬로가 노벨 문학상을 탔다고 하기에 책장에 꽂힌 채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책을 덕분에 간만에 꺼내보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는 힙한 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한강 작가가 상을 탔을 때도 그랬지만 이 지독한 작가의 책이 노벨상 좀 탔다고 해서 나 같은 장삼이사들에게 관심을 끌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몇 권 못 읽어봤지만 하나같이 느슨한 템포로 잿빛 분위기를 그려내면서도 난해함을 보여주는지라 몽매한 독자로서는 쉬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작가의 첫 작품이라는 이 책도 저런 특징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배경부터가 공산 헝가리의 어느 농촌이라지만 ‘false prophet’ 역할을 하는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가 돌아오는 그 공간이 어쩌다 그 지경에 이르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나오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공산 체제의 붕괴를 예견한 듯 해설을 쏟아내고 있지만 1985년에 다른 곳도 아니고 어쨌든 나름의 개혁개방을 추진해 나가던 헝가리를 두고 거의 묵시록에 가까운 풍경마냥 묘사하는 건 쉽지도 않아 보이거니와 나 같은 우매한 독자는 이 풍경이 ‘헝가리’라는 것조차 알기 쉽지가 않다. 호흐마이스 지대의 외진 소성당이 남서쪽으로 4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집단 농장스러운 마을이 배경이라지만 딱히 공산주의 체제의 부조리함이 원인이 되어 세상이 이렇게 돼버렸는지도 책에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어 보인다.

그런지라 작가가 체제비판을 목적으로 이 묵직한 이야기를 써내려갔을 지는 잘 모르겠다. 그보다는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철저할 정도로 망해버렸고 거의 피카레스크에 가까울 정도로 긍정적이거나 선량한 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마을의 사람들은 황폐해진 공간에서 지독하게 소외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리미아시와 페트리너를 마주하고 그들을 구세주라고 여기며(또는 여기고 싶어하며) 전혀 유쾌하지 않은 사건으로 나름의 ‘기적’도 일어난다. 우리의 ‘false prophet’ 이리미아시는 어쨌든 그들을 어딘가로 인도하고, 무기 구매가 암시되는 부분도 있지만 예언자이면서도 허무주의에 찌들어 있는 모습이 역력한 이 인물이 혁명가일지 사기꾼일지도 모호하다. 그렇게 구세주의 등장에도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절묘할 정도의 수미쌍관으로 결말은 소설의 처음과 이어지면서 이 서사의 지독함을 완성한다.

그러니 이 책을 읽고 인상적이었다고 하면 모를까 감명깊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나처럼 시네필이 아닌 문외한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보다는 현실에 현현한 묵시록이 무엇일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독자로 하여금 질문하게 하는 이야기라 하는 게 나아 보인다. 어쩌다 세상이 이렇게 망해버렸는가? 책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자신들의 사유지에 갇히고 돈줄도 말랐으며 국가의 지원도 끊겨버렸다는 현실은 어떻게 벌어진 것일까? 독자는 우화라기엔 너무도 길고 지독하지만 현실적인 이 이야기를 통해서 대체 뭐가 잘못되었는가? 그런데 우리의 지금은 뭐가 다른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거 읽고 힙해지기는 글렀다. 오늘도 힙한 남자는커녕 이 잿빛 분위기에 어울리는 블랙메탈은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책을 덮는다.

[크러스너호르카이 라슬로 저, 조원규 역, 알마]

Diabolical Masquerade “Nightwork”

Blackheim 얘기가 나온 김에 Blackheim의 원맨 프로젝트…라지만 사실 Dan Swano가 Blackheim만큼이나 많은 것을 맡고 있으므로 이쯤 되면 그냥 듀오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Diabolical Masquerade의 최고작? 하지만 커리어에 똥반이 없는 보기 드문 인물이기도 하고, “The Phantom Lodge”까지의 모습과 이 앨범에서의 모습은 사뭇 다른지라 사실 취향 문제라고 해도 무방하지 싶다(물론 그래도 이 앨범을 취향이라 고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예상은 된다). Adipocere를 떠나 Avantgarde Music에서 내놓는 첫 앨범이라는 점도 그런 변화에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Nightwork”는 밴드의 앨범들 중 가장 연극적인 형태의 심포닉블랙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우리의 Blakkheim(Blackheim은 유독 이 밴드에서는 ‘Blakkheim’으로 이름을 표기한다)이 전작까지 보여준 기타 중심의 심포닉블랙은 이 앨범에서 ‘eerie’한 분위기에 주력하는 건반이 중심이 되면서 계속해서 변칙적인 전개를 가져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Blakkheim의 보컬도 래스핑에서 Dani Filth풍의 히스테릭한 목소리까지 상당한 진폭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많은 심포닉블랙 밴드들이 빠지곤 하는 과도한 낭만에 걸려들지 않는다는 게 이 밴드의 진짜 매력일 것이다. 이 음악을 아방가르드 블랙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꽤나 많은 듯한데, 그렇게 힘을 잃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실 이런 게 심포닉블랙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기타 리프 위에 그냥 키보드만 빵빵하게 얹고 심포닉블랙을 자처하는 수많은 밴드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보컬을 포함한 모든 파트들이 유기적인 인터플레이를 이루면서 극적인 분위기를 구현하는 정점에 가까운 심포닉을 보여준 블랙메탈 앨범이자 장르의 어떤 한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iders on the Bonez’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은근한 유머는 덤이다. Peaceville 재발매반은 ‘Cryztalline Fiendz’가 보너스트랙으로 들어 있기는 하나… 그냥 creepy한 분위기의 키보드 소품일 뿐이고, 멋들어진 오리지널 커버에 어처구니없는 폰트로 앨범명을 박아넣은 커버가 확 깨는지라 이 앨범만큼은 Avantgarde반을 사는 게 낫지 않은가 조심스레 권해본다. 나도 보너스트랙 참 좋아하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Avantgarde, 1998]

Bewitched(SWE) “Diabolical Desecration”

Vargher와 Blackheim이 굴리던 그 스웨덴 스래쉬 밴드의 대망의 데뷔작. Bewitched가 밴드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이름은 아닌 듯싶고 비교적 알려진 사례로는 칠레 블랙메탈 밴드 Bewitched도 있겠으나 어쨌든 장르의 네임드라고 하면 이쪽일 것이다. 물론 이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그 아일랜드 걸그룹이 있겠으나(물론 그 분들은 B*witche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긴 했다) 이 블로그에 올라오실 만한 분들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에스파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딱히 B*witched라고 해서 안 될 거 있나…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Vargher와 Blackheim이 인물이 인물인지라 흔히 블랙스래쉬 밴드마냥 알려져 있지만 사실 블랙스래쉬보다는 80년대 초중반 흑마술 이미지를 써먹었던 스래쉬 밴드들의 사례들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당장 밴드의 소개문구도 ‘evil speed-rockin’ Hell metal’이기도 하고…. 사실 본격적인 스래쉬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보다는 80년대 초중반 NWOBHM을 위시한 헤비메탈의 기운도 강한 편이다. 그러니 이 음악을 블랙메탈과 연관지을 고리는 사실 멤버들의 면면과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Bathory나 Venom의 기운 뿐이다. 말하자면 Blackheim의 빛나는 커리어에 이끌려 이 밴드의 앨범을 구한 사람이라면 아마 실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긴 그러다보니 나도 이 앨범을 2025년에야 와서 들어보고 있구나.

어쨌든 앨범은 견실한 헤비메탈을 담고 있다. ‘Burning Paradise’나 ‘Triumph of Evil’ 같은 곡은 한창 시절 Mercyful Fate 같은 밴드가 보여줬던 리프의 매력을 되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Diabolical Masquerade의 앨범에나 어울릴 법한 연주곡 ‘Firehymn’은 왜 앨범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으나 중간에 분위기도 환기할 겸 쉬어가는 느낌이라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멋진 앨범이다.

[Osmose, 1996]

Hammerfall “Glory to the Brave”

Hammerfall라는 밴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In Flames와 Dark Tranquillity가 90년대 초중반 바야흐로 오리지널 예테보리 멜로딕데스를 연주하던 시절, 사실은 그 멜로딕데스 필드의 인물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은 파워메탈이었다는 듯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냈는데, 자라오면서 생각보다 멜로딕 스피드메탈을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덩치는 거한이었지만 목소리는 생각보다 청아했던 보컬 때문인지 결과물은 정작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기묘한 팔자의 밴드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작된 밴드는 본진에 못지않을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고, 덕분에 이젠 In Flames/Dark Tranquillity 출신의 멤버들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음에도 밴드는 여태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간에 몇 년 빠지긴 하지만 Nuclear Blast에서 거의 30년을 끈질기게 버티고 있기도 하다. 대단한 성공사례인 셈이다.

“Glory to the Brave”는 그런 성공사례의 시작점인 셈인데, Jesper Strömblad에 Glenn Ljungström의 이름을 보고 그래도 In Flames를 기대하고 들었던 어느 고딩에게 Manowar의 외양으로 좀 템포 느슨해진 Helloween 같은 연주를 하는 음악은 적잖이 실망이었다. 아무래도 음악이 음악인지라 이런 리프 전개가 다음 In Flames의 앨범 스타일을 예기하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Clayman” 이후 초창기 스타일의 팬들에게는 욕도 적잖이 먹을 In Flames의 이후 행보를 생각하면 그래도 이 정도로 나아간 게 양반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따지고 보면 멜로딕 데스는 처음부터 파워메탈과 아예 떼어놓고 보긴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고.

어찌 됐든 간만에 들어도 앨범은 만듦새만큼은 확실하고, 목소리는 아무래도 좀 아니었지만 Warlord의 ‘Child of the Damned’를 커버하는 모습은 이들이 Manilla Road식 에픽 메탈과 같은 구성미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좀 길고 구성이 늘어지지만 ‘Glory to the Brave’는 시절을 좀 더 잘 만났다면 국내에서도 적잖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파워 발라드였다. 그러니까 예테보리 멜로딕데스 씬의 쩌리같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치기에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훌륭했던 셈이다. 이런 앨범이 실시간으로 라이센스될 수 있었으니 시절도 분명 훌륭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아재는 추석을 핑계삼아 추억팔이를 한다.

[Nuclear Blast, 1997]

Naked Whipper “Chapel Defilement”

Naked Whipper라는 이름은 무척 생소하다. 이름만 봐서는 뭔가 SM스러운 코스튬을 입고 채찍을 휘두르는 이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커버는 사실 그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고, 레이블의 설명에 의하면 그 생소함과 상관없이 이미 1993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독일 블랙메탈의 오래된 이름의 하나라고 한다. 어쨌거나 나는 처음 들어보니 이래저래 참 갈 길이 멀다.

음악은 커버에서 엿보이는 대로 Blasphemy풍의 war-metal이다. 사실 Blasphemy와 똑같진 않고 war-metal이 데스메탈/블랙메탈/펑크(라기보단 그라인드코어)의 요소가 어우러진 류의 스타일이라고 할 때, 그런 면모들이 서로 각자의 개성을 좀 더 강하게 드러내는 형태의 음악이라 할까? 그런 면에서는 꽤나 예전 스타일의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사실 proto라는 말을 붙일 수도 있어 보이고, 때로는 무척 스래쉬한 리프는 80년대 스래쉬메탈에서 갓 넘어온 초창기 데스메탈의 기운도 엿보인다. 데스메탈의 리프를 블랙메탈의 질감과 그라인드코어의 템포로 최대한 거칠게 연주한다랄 수도 있을 것이다. (좋게 얘기하면 완급조절이긴 한데) 때로는 사실 좀 느린 감도 없진 않지만 어쨌든 war-metal의 팬에게 호소할 수 있는 음악임엔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류의 밴드에게 드문 모습인데, A사이드와 B사이드를 고려해서인지 인트로 트랙이 2개나 있고, 거칠게 밀어붙이는 통에 잠깐 쉬어가기에는 딱 좋은 타이밍에 등장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war-metal을 입문하려는 이에게 권할 만한 앨범이랄 수도 있겠다. 입문이란 게 의미가 있는 장르인가 싶긴 하지만 뭐 그렇다.

[Iron Bonehead,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