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rtar Lamb는 Toby Driver와 Mia Matsumiya가 주축이 된 프로젝트이다. 그리고 앨범 제목인 “Sixty Metonymies” 의 ‘metonymy’ 를 환유, 식으로 해석한다면 이미 이 앨범의 방향의 상당한 부분을 예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Lacan을 잘 모르지만)Lacan 식으로 환유를 얘기할 때, 대충 이는 인접성을 갖는 기표들의 연쇄일 것이다. 그러니까 Toby Driver가 일찌기 “Dowsing Anemone with Copper Tongue” 에서 보여 준 ‘명확한 구성을 배제하는’ 작풍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식의 예상은 많이 틀리지는 않다. Mia의 바이올린이 중심이 되고 주변에서 이를 Toby의 기타가 뒷받침하는 연주가 주가 되는데, Andrew Greenwald의 퍼커션과 Tim Byrnes의 호른이 그런 연주 중간중간에 액센트를 준다. 물론 그런 ‘액센트’가 극적인 효과를 이끌어내는 것은 아니고, 그보다는 거의 앰비언트풍으로 서로를 변주하는 듯한 기타와 바이올린의 어우러짐 사이에 분위기를 환기하는 정도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고조시킨 분위기를 굳이 터뜨리지 않는다는 것도 기존 Kayo Dot의 앨범과는 차이점이다. 11분이나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이를 해소시켜 주지 않는 ‘Incensing the Malediction Is a Lamb’는, 그런 면에서 (많은 경우)서사를 강조하는 일련의 ‘프로그레시브’ 한 작품들과는 거의 대척점에 있는 작풍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사실 각각의 파트는 철저하게 계산된 코드 프레이징을 보여주고, Toby의 기타가 보여주는 은근히 다양한 사운드, 가끔은 괴팍할 정도의 변화를 보여주는(특히 ‘The Lamb, the Ma’am, and the Holy Shim-sham’) 바이올린을 보자면 보통 생각하는 앰비언트와도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걸 앰비언트풍의 비-앰비언트 음악 정도로 얘기할 수 있으려나? 확실한 건 이 음악을 정확히 설명하긴 어렵겠지만 앨범에 몇 번의 기회를 준다면 다른 앨범들에서 얻을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Self-financed,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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