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옛날 블랙메탈 듣던 시절 얘기 한 김에 한 장 더… 라고 말하고 보니 블랙메탈이 아니어서 좀 그렇긴 하지만 어차피 이 앨범을 알고 듣는 이들과 그 시절 블랙메탈 애호가들은 결국 거기서 거기일 테니 크게 문제되진 않을 거라 믿는다. 각설하고.
이 폴란드 둠-데스 밴드의 데뷔작은 포니캐년도 아닌 삼포니가 아직 살아서 계속해서 메탈 앨범을 수입하던 시절 야심작이었는지 국내 매장에서도 자주 보였었고 지금도(그 시절에 나온 다른 앨범들이 비해서는) 그런 편이며 제대로 재발매가 되고 있지 않음에도 여태 가격도 도통 비싸지지 않는 보기 드문 모습을 보여주는 앨범인데, 그런 안타까운 모습에 비해 담겨 있는 음악은 꽤 준수한 편이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까지 망할 밴드는 아니지 않나 싶은데, 1996년이면 생각건대 고딕 메탈이라는 레떼르에 사람들이 조금은 넌더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Lacuna Coil처럼 무게감을 많이 덜어낸 모습의 슈퍼스타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고, 매니아를 자처하는 이들은 아무래도 이런 류의 둠-데스보다는 블랙메탈을 좀 더 선호하는 게 보통이던 시절이었다. 별 근거 없이 하는 얘기다만 시절의 탓이 아닐까 하는 얘기다. 레이블도 Metal Mind이니 아무리 좀 더 헝그리한 시절이었을지언정 장사를 할 줄 모르는 곳은 아니었고.
말이 많지만 나름대로 박력있는 전개에 여성보컬을 앞세운 90년대 중반 둠-데스의 모범을 보여주는 ‘Passover 1944’나, 심포닉한 건반에 지지 않는 묵직한 리프를 내세워 나름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On the Verge’ 같은 곡은 90년대 초중반 브리티쉬 둠-데스의 좀 더 건조한(달리 말하면 고쓰 물을 쏙 뺀) 분위기를 고집하는 이가 아니라면 확실히 청자를 수긍케 하는 구석이 있다. Amorphis의 포크풍이 당혹스러울 정도의 뽕끼처럼 느껴지던(달리 말하면 젊은날의 과오라고 하겠다) 어느 짧은 귀의 학생에게는 확실히 이쪽이 좀 더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을 것이다.
[Metal Mind,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