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담의 파놉티콘에서 이름을 가져오긴 했지만 정작 파놉티콘과는 별 상관없어 보이는 음악을 연주하는 이 테네시 출신 블랙메탈 밴드가 데뷔하던 2008년만 하더라도 이들이 소위 ‘cascadian’이라는 나름 새로운(그렇지만 정말로 금방 사그라든) 블랙메탈 조류를 이끄는 사례가 될 거라고 생각한 이는 별로 없었을 것이다. 사실 포스트록식 지글지글 사운드는 블랙메탈에서 그리 보기 드문 모습은 애초에 아니었으니, ‘cascadian’은 새로운 조류도 뭣도 아니고 그냥 Darkthrone에서 시작된 어떤 스타일을 포스트록에서 흔히 써먹곤 하는 스케일로 리버브 자욱하게 걸고 연주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여지도 다분했을 것이다. 꼬장꼬장하게 따진다면 ‘atmospheric black metal’ 외에 별도의 용어를 만들어 줄 필요는 전혀 없을 수 있을 것이다.

앨범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얘기들이 “Social Disservices”까지의 대체적인 경향이었다면 “Kentucky”는 ‘cascadian’이 그렇게 공허한 얘기만은 아닐 수 있다는 사실과, 이 밴드가 동시대의 다른 블랙메탈 밴드들과 같이 뭉뚱그려질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그리고 이 밴드가 블랙메탈 밴드라고 불리는 것에 별 욕심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일단 블랙메탈 앨범 제목이 켄터키라는 것부터가 나 같은 선입견 짙은 청자에게는 조금 당혹스럽고, 앨범명에 걸맞게 그 어느 때보다도 짙어진 컨트리와 블루그래스의 향내는(아예 앨범의 절반은 컨트리 송이다) 이것이 유럽식 포크 블랙에 대한 미국의 대답인가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한다. 생각해 보면 90년대 초반부터 북미에 블랙메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Absu나 Blasphemy 같은 걸물들도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지역색을 드러냈던 사례는 딱히 떠오르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러면서 흥미로운 점은 이 밴드가 앨범에서 풀어놓는 이야기가 그리 가볍지 않은 얘기고(미국 역사의 어두운 단면을 다루고 있는만큼) 그런 만큼 비장한 분위기도 지울 수 없지만 피들이나 밴조를 이용한 흥겨운 블루그래스, 샘플링과 함께 등장하는 프로테스트 포크가 신기할 정도로 블랙메탈과 잘 어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Killing the Giants as They Sleep’에서 Jean Ritchie의 커버곡인 ‘Black Waters’로 넘어가는 모습이 단적인 사례일 것이고, 이런 음악은 모르긴 몰라도 미국 밴드가 아니면 만들 수 없을 것이다. 그 당혹스러운 흥겨움을 즐길 수 있다면 무척 멋진 앨범일 것이고, 아니라면 잘 나가다가 자꾸 이상한 컨트리로 분위기 깨뜨리는 괴상한 앨범일 것이다. 내 생각은 전자에 가깝다…만, 그래도 커버는 지금도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거 가뭄 왔을 때 적당히 말라버린 소양강 아닌가?

[Pagan Flames, 2012]

Panopticon “Kentucky””의 2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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