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이 세상을 지배할 것이라고 별 근거 없어 보이는 호언장담을 하는 이들까지 보이는 시절인지라 드디어 이 뒷골방 블로그에도 본격 케이팝 앨범이 등장하는 날이 왔다. 안 그래도 앨범 제목이 “Whiplash”라서 저거 Metallica스럽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바로 앞서 얘기한 Hekseblad의 Bruxa가 2024년의 앨범들 중 하나로 이 앨범을 꼽았더라. 그러니까 이 앨범은 짧다면 짧지만 어쨌든 자신의 20대를 블랙메탈 외길인생으로 지낸 이제 이립을 앞둔 어느 메탈 뮤지션의 귀를 잡아끈 케이팝 앨범인 것이다.

음악은 생각보다는 들을만했다. 이런 앨범을 들으면서 블랙메탈식 화끈함을 기대할 수야 없겠지만 SMP(나는 이게 대체 무슨 스타일을 두고 말하는 용어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SM엔터테인먼트가 써먹는 브랜드 아닌가 싶다)의 상례를 비껴나간다는 잿빛 전자음은 가끔은 인더스트리얼…은 좀 과장이고 Covenant식 EBM의 뭔가와도 맞닿는 데가 있잖을까 싶다. 확연한 하우스 리듬을 뺀다면 적어도 앨범 초반부는 근래의 EDM보다는 좀 더 어두운 부류의 EBM, 가끔은 Pertubator 류의 신스웨이브와도 닿는 구석이 (아주 조금은)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스타일을 패션쇼 런웨이에 어울릴 법한 분위기로 풀어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팝’이라는 레떼르에는 더 어울릴 법한 앨범의 후반부는 오히려 이 앨범의 분위기와 맞아 보이지 않는다. 18분짜리 앨범에 전반과 후반을 나눠서 호오를 말하는 게 뭐하는 짓인가 싶긴 하지만 그만큼 차이가 있어 보인다는 뜻이다.

그래도 어느 미국 메탈바보가 뜬금없이 케이팝 앨범을 왜 좋다고 했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아마 이 음악을 20대 초반의 아리따운 4명의 여성이 아니라 무채색으로 갖춰 입은 4명의 아재들이 하면서 어그로를 끌었다면 이 음악의 분류는 케이팝이 아니라 EBM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든다. 그런데… 그렇게 나왔으면 이 앨범 나오기 전에 에스파는 이미 해체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지도.

[SM Entertainment, 2024]

에스파(aespa) “Whiplash””의 2개의 생각

Grimloch 에 답글 남기기 응답 취소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