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uardians of Time “Edge of Tomorrow”

바로 그 In the Woods…의 현 보컬리스트인 Bernt Fjellestad가 소시적 재직했던 파워메탈 밴드의 데뷔작. 지금도 생각하면 이 앨범이 어떻게 라이센스될 수 있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S프로덕션에서 라이센스된 해외 메탈 앨범들은 장르도 그렇고 꽤 다양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이미 이름을 알린 밴드의 신작이나 유명한 구작을 내놓은 다른 장르에 비해 멜로딕 스피드나 파워메탈에서는 신진 밴드의 데뷔작이 많이 나온지라(Fairyland도 그렇고 Altaria도 그렇고) 적어도 그 장르에서만큼은 사장님 선구안이 많이 괜찮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럼에도 이 앨범은 지금까지도 중고시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S프로덕션 악성재고의 대명사…격처럼 되어 버렸고(당장 오늘 검색해도 4500원짜리가 나오더라), 들어보면 좋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내돈주고는 사기 싫게 생긴 저 커버도 그렇고, 20대 초중반이지만 시간을 지키다가 홀로 세월을 얻어맞은 양 지나치게 노련한 밴드의 외양도 아마 그런 결과에 한몫했을 거라는 생각까지도 드니 지금 이 앨범을 두고 선구안 어쩌고 하는 모습을 보면 사장님은 지금 놀리냐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진심이다. 해체하긴 했지만 데뷔작 이후 꽤 오랫동안 인정받은 밴드이기도 하고,

어쨌든 각설하고 음악 얘기를 한다면 앨범은 커버로는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수려한 파워메탈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파워메탈보다는 좀 더 Stratovarius풍 멜로딕 스피드메탈 스타일에 기운 편인데, 듣다 보면 Hammerfall도 들리고 Avantasia도 들리고 하는 것이 밴드의 개성이랄 수도 있겠지만, 달리 말하면 저 Hammerfall스러운 부분이 일반적인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에게는 그리 와닿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Soul Reaper’나 ‘High Octane’ 같은 곡의 수려한 리프는 4500원에 팔리기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In the Woods…가 “Diversum”부터 보여준 묘한 파워메탈스러움이 여기에서 나왔구나 생각하면 더욱 흥미롭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근데 파워메탈 팬이 In the Woods…를 들을 것인가? 하면 역시 의문을 감출 수 없으니 진짜 망할 운명의 밴드였던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아 불쌍하니까 한번 들어봐요 좀.

[Shark, 2001]

In the Woods… “Otra”

In the Woods…가 노르웨이 블랙메탈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꽤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보통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1세대처럼 여겨지지는 않지만 밴드는 1991년에 벌써 그 시작을 딛었으니 시기적으로도 앞서갔던 이들임은 분명하고, 앨범마다 변화의 폭도 무척 크다 못해 이들의 커리어에는 블랙메탈은 물론 둠/데스메탈에 프로그레시브 록까지 고루 섞여 있으니 이 밴드에 비견할 만한 사례를 찾기도 쉽지가 않다. 그런 의미에서 2016년 재결성한 이후의 밴드는 분명 수준 이상의 음악을 하고 있지만 그 ‘독특한’ 기운은 확실히 잦아들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멤버 변경이 있어서인지 일개 청자가 쉬이 점칠 수는 없겠다만 좀 더 평이한 스타일로 나아갔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도 “Pure”와 “Cease the Day”가 Green Carnation풍 둠-데스의 바탕에서 좀 더 묵직한 리프에 비중을 둔 편이었다면 “Diversum”부터는 무려 파워메탈(이거 라이센스도 됐었다. 관심 있으시면 Guardians of Time의 데뷔작을 참고하시길) 부르던 분을 새로운 보컬로 맞아들이면서 좀 더 보컬에 기운 스타일로 나아갔다. 솔직히 이렇게 더 멜로우한 스타일로 갈 거면 굳이 파워메탈 하던 분을 불러올 필요가 있었을까 싶을 정도인데, 듣다 보면 Ulver와 2010년 이후 Amorphis의 보컬을 잘 섞어놓은 듯한 목소리인지라 어울리기는 잘 어울리고, 꽤 다양한 스타일들을 소화하는만큼 앨범을 좀 더 역동적으로 만드는 부분도 있다.

덕분에 앨범은 새로울 건 하나 없지만 2000년대 노르웨이 블랙/데스메탈을 기억한다면 여전히 흥미롭게 들을 수 있다. Amorphis를 좀 더 어둡게 만든 듯한 ‘A Misinterpretation of I’, Green Carnation 특유의 멜랑콜리를 옮겨온 듯한 ‘The Crimson Crown’, 그 시절 둠-데스 밴드들이 앨범에 한두 곡씩은 넣곤 하던 로큰롤풍 전개를 보여주는 ‘Come Ye Sinners’ 등 이 앨범에서 기대 이상으로 많은 이름들을 떠올릴 수 있다. 밴드는 이제 초창기의 아방가르드함은 더 이상 보여줄 수 없겠지만 대신 잘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찾아 앨범에 채워놓은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In the Woods… 초기의 팬보다는 Green Carnation의 팬에게 더 알맞을 법한 앨범이다. 하긴 “Pure” 부터는 밴드의 모든 앨범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어쨌든 구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Prophecy, 2025]

High Parasite “Forever We Burn”

My Dying Bride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럼 이 30년만의 아시아투어에 불참했던 Aaron Stainthorpe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가? 대충 인스타그램을 살펴보니 Darkher나 Unto Ashes 같은 후배들 공연에 목소리를 빌려주기도 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현역인지라 High Parasite라는 밴드로 공연들을 다닌 모양이더라. My Dying Bride 투어 중에 이러고 있었으니 사이가 엔간히 틀어지기는 했나보다 짐작이 든다. 지금이라도 화해했으면 좋겠다는 게 팬심이지만 이 에고 강하실 분들이 그게 쉬울 리는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언제 샀는지도 사실 기억 잘 안 나는 High Parasite의 앨범도 간만에 들어본다. 사실 멤버들의 면면을 보면 Aaron이 씬의 아직은 배고픈 후배들 모아다 본인의 크루너 보컬을 내세울 수 있는 가벼운 고딕 록/메탈 앨범을 만들었다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Greg Mackintosh를 프로듀서로 끌어들인 것도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소시적의 과오처럼 돼버렸고 “Host” 같은 앨범은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One Second”는 그래도 꽤 괜찮았다고 생각하는 나 같은 이에게는 Aaron과 Greg이라는 이름만으로 이 앨범을 구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그래서인지 곡은 Aaron의 보컬이 얹힌 Paradise Lost풍 고쓰 메탈(이라기엔 많이 가볍지만)처럼 들리고, Aaron의 보컬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앨범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여성보컬과 앨범 전반에 깔려 있는 고쓰 파티의 분위기는 My Dying Bride의 진지함을 생각하면 많이 당혹스러울 것이다. ‘Wasn’t Human’의 사냥을 앞둔 뱀파이어 주인공의 이야기를 보고 잠깐이지만 Buffy the Vampire Slayer 생각이 났다. 게다가 ‘We Break We Die’의 일렉트로닉 비트를 듣자면 아… Greg이 아직 “Host” 시절의 스타일을 포기하지는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밴드 본인들도 자신들의 음악을 ‘데스 팝’이라 부르고 있으니 그 정도의 기대로 듣기에는 흥겹고 좋아 보이지만, My Dying Bride 공연 갔다 와서 듣기에는 역시 당혹스럽다. 그러니까 Aaron도 아쉬운 게 있더라도 그냥 적당히 하고 화해해서 My Dying Bride나 계속하고 후배들의 복지는 다른 방법으로 챙겨줬으면 좋겠다. 적어도 오늘 생각은 그렇다.

[Candlelight, 2024]

My Dying Bride “The Angel and the Dark River”

My Dying Bride의 어떤 의미에선 역사적이라고 해도 좋을(아시아투어 자체가 30년만이라니) 내한공연이 있었다. 사실 이 밴드를 다른 둠-데스 밴드들과 구별짓게 해 준 면모는 바이올린과 Aaron Stainthorpe의 연극적이라고 해도 좋을 보컬이 만들어내는 어두우면서도 퇴폐와는 사실 거리가 있는 류의 낭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피셜 발표만 나지 않았지 Aaron와의 결별이 멀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못내 아쉽다. 각설하고.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앨범은 “Turn Loose the Swans”이지만, 그 시절의 묵직한 둠-데스와 밴드의 현재는 어쨌든 거리가 있고, 그런 경향의 시작점은 아마도 이 앨범일 거라고 생각한다. Aaron Stainthrope가 크루너로만 승부하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하고, Martin Powell의 바이올린과 건반이 감초 역할을 넘어서 곡의 중심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앨범이기도 하다. ‘The Cry of Mankind’는 그런 밴드의 새로운 모습을 대변하는 곡으로서 장르의 클래식이 되었다. 말하자면 둠-데스인데 그로울링은 어디다 팔아먹고 클린 보컬로만 승부하는 많은 밴드들의 대부분은 아마도 이 앨범을 듣고 그 길을 걷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Two Winters Only’ 같은 곡이 보여주는 빛나는 낭만은 이런 방향을 아무나 따라할 수는 없음을 재차 보여준다. 후대의 화끈한 맛도 없고 그저 징징거리기만 하는 아류 밴드들에게 좌절을 안겨주는 지점일 것이다.

그러니까 어제의 내한공연은 ‘The Cry of Mankind’와 ‘From Darkest Skies’를 라이브로 들은 것만으로도 어쨌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관객 수를 보니 다신 안 올거 같긴 하지만 또 왔으면 좋겠다.

[Peaceville, 1995]

Ründgard “Stronghold of Majestic Ruins”

칠레 블랙메탈계의 근면성실의 대명사 Lord Valtgryftåke의 또 다른 밴드. 이 분의 분주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음악 여정을 좀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은 90년대풍 클래식 스타일 블랙메탈에 적당히 신서사이저를 곁들인 류의 음악을 밴드 이름만 바꿔가면서 계속 내고 있는지라 이 쯤 되면 굳이 밴드 새로 파가지고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들지만, 만드는 분이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어쩌겠는가? 퀄리티를 떠나서 일단 저 근면함만큼은 생활인으로서 경의를 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그래도 어쨌든 무슨 이름으로 만들더라도 명반까진 아닐지언정 준작이라 부르기엔 부족함 없는 결과물을 항상 보여주는 분인지라 이 앨범도 나쁘지 않다. 굳이 다른 프로젝트들과 비교하자면 Darkthrone풍 리프에 던전 신스를 얹어놓은 듯한 다른 프로젝트들에 비해서 이 Ründgard가 좀 더 극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할 수 있겠다. 덕분에 다른 프로젝트들(특히 Lord Valtgryftåke나 Winterstorm)에 비해서는 좀 덜 노르웨이스럽고, pagan한 면모는 찾아볼 수 없지만 “Grom”까지의 Behemoth의 모습을 닮아 있는 데가 있다. ‘Descending from the Southern Skies’ 같은 곡이 이런 면모가 두드러지는 편인데, 정말 바이킹스러움만 조금 더해졌다면 소시적의 Satyricon 생각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좋다는 얘기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영광의 이름들에 비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즐겁게 들었다. 그렇지만 되게도 안 팔리는지 2021년에 100장 한정으로 찍었다는 앨범이 지금도 절찬리…에 팔리고 있으니 좀 안타깝다. 이 글을 보고 사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잘 팔렸으면 좋겠다.

[Signal Rex,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