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Kat, The “Satan Says”

이왕 The Great Kat 들은 김에… The Great Kat의 가장 뛰어난 한 장을 고른다면 아마도 이 EP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The Great Kat이 처음으로 내놓은 앨범이기도 하고, 외관만 봐서는 뭔가 기타 인스트루멘탈을 기대하게 만드는 정규 데뷔작과는 달리 뭔가 뒤틀리고 싼티나는 스피드/스래쉬메탈 앨범으로서의 정체성은 이 EP의 커버에서 더 분명해 보인다. 암만 피칠갑을 하고 있지만 이후 보여주는 광년이다운 모습도 좀 더 순진하던 시절이어서 그런지 확실히 덜해 보인다.

게다가 이 3곡뿐인 12인치 EP의 수록곡은 The Great Kat이 여태가지 발표한 셀 수 없이 많은 곡들(물론 그 중에 1분 30초 넘어가는 곡은 별로 없을 것이다) 중 가장 ‘유명한’ 부류에 속한다. 사실 The Great Kat의 곡들 중 유명한 게 있나 싶긴 한데… 일단 클래식 물이 확실히 덜한 자작곡 스피드메탈로만 구성되어 있다보니 The Great Kat 하면 떠오르는 무절제한 테크닉의 남발도 덜하다. 확실히 이 시절의 The Great Kat은 바야흐로 떠오르는 젊은 스래쉬 신성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다. “Worship Me or Die!”에도 있는 곡이지만 ‘Metal Messiah’의 무지막지한 스윕피킹과 아르페지오에서 전례없는 여성 스래쉬 기타 히어로를 기대한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정규앨범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밴드의 가장 유명한(좋다는 얘기는 아님) 곡들 중 하나인 ‘We Will Arise’도 여기에 실려 있다. 정규반에는 빠졌다는 게 어찌 보면 시작부터 벌써 뭔가 안 풀리고 있었다는 징조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이 많이 풀리지도 않은 EP를 어린 시절 추억마냥 얘기하는 영미의 이제 중년을 넘어 슬슬 노년의 초입에 진입하는 메탈헤드들도 좀 있어 보인다. 그래서인지 보통 시장에서 자기 앨범이 좀 과하게 비싼 값에 팔리면 보통 뮤지션들은 그렇게 하면 내 음악을 많은 사람들이 듣지 못할 거 아니냐는 식으로 싫어하는 게 보통이건만 우리의 The Great Kat 여사는 어쩌다 창고에서 발견된 이 EP의 먼지쌓인 재고를 싸인해서 199달러에 팔아먹고 있다. 이왕 망한 거 푼돈이라도 땡기자는 의도였을지는 알 수 없다. 아 여사님 왜 그러시는 걸까요.

[Death Rec., 1986]

Great Kat, The “Worship Me or Die!”

정말 재미없었는지 방금 TV로 보고 있었는데 제목도 기억이 안 나는 B급영화 어느 한켠에 나오던 무명의 조연과 닮은 덕에 간만에 들어보는 The Great Kat의 데뷔작. 솔직히 쉬지 않고 싱글이나 EP는 엄청나게 내놓고 있으나 1990년 이후에 딱히 의미있는 작품을 냈다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하고, Dominatrix 컨셉트가 정신을 지배했는지 정말로 모든 인터뷰에서 일관된 이미지를 보여주다 못해 막 나가는 음악과 어우러져 바야흐로 헤비메탈 업계 최고의 ‘광년이’를 한 명 뽑는다면 가장 유력해 보이는 후보들 중 하나가 되었다(허나 쟁쟁한 후보들이 있으므로 수상은 장담할 수 없음).

뭐 그래도 알고 보면 줄리어드를 나온 전도유망한 바이올린 연주자 출신의 기타리스트가 메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Roadrunner와 계약하고 앨범을 내놓았으니 레이블의 기대가 없지 않았음은 능히 짐작이 되고(하긴 “Stars on Thrash” 컴필레이션에도 이름을 올렸다), 일단 기타 연주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기 때문에 Roadrunner가 아니라 Shrapnel로 갔다면 훨씬 나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미 데뷔작 커버에서부터 넘쳐흐르는 똘끼를 넘어선 광기를 보면 Mike Varney가 절대 픽하지 않았겠구나 싶다. 맥락과 상관없을 정도로 자주 튀어나오는 솔로잉을 제외하면 기타 인스트루멘탈보다는 스피드메탈의 컨벤션을 변태적으로 뒤튼 스타일(이를테면 Sadistik Exekution이나 G.I.S.M이랄지)에 가까운 이 앨범이 Shrapnel 카탈로그에 어울릴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전형적인 헤비메탈이나 기타 인스트루멘탈을 기대한 이라면 들을 필요가 전혀 없겠지만 이 데뷔작만큼은 그래도 나름의 재미를 찾기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기타가 워낙 종횡무진 활약하는지라 꽤 괜찮은 테크니컬 스래쉬처럼 들리는 부분도 여기저기 보인다(듣기 좋다는 얘기까진 아니므로 과한 기대는 금물이다). 노래만 직접 안 불렀다면 더 좋았겠지만 굳이 마이크를 잡는 모습이 끝내 아쉽지만 Yngwie를 생각하니 기타 좀 치는 분들은 원래 그런 경향이 좀 있나? 싶어서 일단 넘어간다.

[Roadrunner, 1987]

Bergthron “Neu Asen Land”

이 밴드가 아직 살아있었다는 게 조금 놀라운 2025년 신작. 2010년작 “Expedition Autarktis” 이후 15년만의 신작이라는데, 나로서는 72분짜리 앨범을 CD 3장으로 나누어 내놓는 미친짓을 보여준 “Leben und Lebenswille” 이후 이 밴드를 거의 잊고 있었으므로 더욱 새롭게 느껴진다. 만듦새를 떠나 Bergthron 이름을 달았으면서도 블랙메탈 기운을 거의 빼고 내놓은 앨범이라 실망했던 것도 없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나온 앨범은 일단 블랙메탈이다. 그로울링이 살짝 나오긴 하지만 어쿠스틱한 포크와 어떻게 봐도 블랙메탈이라 하긴 어려워 보였던 Rammstein풍 클린 보컬의 헤비메탈(처음 듣고 솔직히 뭐하는 짓인가 싶었음)이 어우러진 “Leben und Lebenswille”를 생각하면 어쨌든 밴드의 초창기 맛이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던전 신스풍 건반이 돋보이는 Atmospheric 블랙의 전형에 가까운 초창기에 비해서는 훨씬 현대적인 사운드이다. ‘Gefangene der Polarnacht’ 같은 곡의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은 기존의 앨범에서 볼 수 없었던 면모이기도 하다. 이 앨범을 다룬 블랙메탈 웹진보다 프로그레시브 웹진이 훨씬 많이 보인다는 사실은 생각하면 좀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밴드의 초창기 모습을 잘 모르고 소위 아방가르드 블랙메탈을 좋아하는 이라면 즐겁게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밴드의 과거를 떠나서 일단 웰메이드인 건 맞긴 맞으므로 한번쯤은 기회를 줘봐도 좋을지도.

[Trollzorn, 2025]

화성의 포드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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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라인의 작품들 중에서는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긴 한데… 하인라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을 찾아보매 이 부분에서 세상 사람들 생각이 별로 나와 비슷한 것 같지는 않다. 굳이 따지면 청소년 SF로 분류되는 작품이기도 하고… 초기 설정이 “우주복 없음, 출장 가능”과 비슷한지라 그런 류의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이라면 이젠 번역서를 구하기도 어려운 이 책을 굳이 고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뭐 그래도 “우주복 없음, 출장 가능”의 공부는 그냥저냥이지만 천재적인 아빠를 닮아서인지 기계에는 일가견이 있는 너드에 가까워 보이는 주인공에 비하면, 예쁘고 머리도 좋으며 심지어 착하기까지 한 우리의 포드케인이 SF의 주인공으로는 좀 더 의외인 데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책은 저 “우주복 없음, 출장 가능” 같은 청소년 SF를 생각하면 황당할 정도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마지막 금성 부분의 세 가지 결말 중 출판사의 진라면 순한맛식 엔딩을 제외한 나머지는 독자의 뒤통수를 꽤 세게 휘갈기는 데가 있다(특히 하인라인 버전). 묵직한 성인용 SF를 쓰려다가 출판사의 요구로 청소년 SF로 바꾸면서 쌓였던 불만이 결말부에서 터지기라도 했을까? 응당 그래도 희망찬 내일을 보여줘야 했을 청소년 SF의 엔딩은 어디 가고 암울하기 짝이 없는 결말이니 이걸 처음에 봤을 편집자의 당혹감은 으레 짐작이 된다. 이 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인라인은 3년 뒤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의 그 엔딩을 내놓게 되지 않았을까… 라고 하면 과하려나? 그만큼 강렬한 결말을 선보이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도 결말이 그래서 그렇지 책은 하인라인 특유의 모험 활극적인 장면도 가득하다. 지구에 화성에 금성까지(거기다 달도 살짝) 빼먹지 않고 그려내면서 한창 발전 도상에 있는 활기 넘치는 풍경이 배경인고로 모험을 떠나기엔 딱 적당해 보인다. 생각해 보면 전후 발전을 거듭하던 1963년이었으니 가능했던 상상력이라는 생각도 들고, 결말이 시궁창이라서 그렇지 뭐든지 주인공보다 더 잘 하는 동생만 빼면 주인공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도 모두 청소년 SF다운 당찬 캐릭터들이다. 생각해 보면 출판사 엔딩 버전이라면 청소년 관람가로 영화화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이야기기도 하다.

하지만 절판 이후 번역본도 안 나오고 있는 책에다가 할 얘기도 아닌 것 같고, 스타쉽 트루퍼스 영화를 보고 이름모를 주인공이 데니스 리처드와 천재소년 두기와 함께 스페이스 바퀴벌레를 잡는 영화라고 평하던 누군가를 생각하면 그냥 영화 안 나오는 게 나을지도. 결론은 그래서 책을 읽읍시다.

[로버트 A. 하인라인 저, 안태민 역, 불새]

Havukruunu “Tavastland”

Havakruunu의 금년 신작이 나왔더라. 흔히 pagan black 정도로 소개되는 밴드이긴 한데… 이 정도 음악이면 그냥 바이킹메탈이라 부르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지만 정작 이 밴드를 바이킹메탈이라 부르는 사례는 별로 본 적은 없다. 물론 직접 바이킹 얘기를 하는 밴드는 아니지만 가사 말고는 바이킹메탈의 전형에 많이 다가가 있는 음악인데다, 언제부턴가 꽤나 느슨한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 저 장르명을 굳이 이들에 대해 빡빡하게 적용하는 것도 아닐 일이라는 게 사견. 물론 애초에 이런 거 갖다 논쟁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싶으므로 이 얘기는 여기까지.

“Tavastland”도 그런 스타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징이라면 밴드의 오리지널 보컬이었던 Humö가 돌아왔다는 점인데, 그동안 실력이 늘어서 왔는지 데뷔작 시절보다는 확실히 좀 더 역동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밴드의 현재를 잘 받쳐주는 탄탄한 베이스 연주를 선보인다. “Havulinnaan”까지만 해도 솔직히 때로는 엇박자가 느껴지는 리듬 파트가 거슬리는 때가 있었던 밴드임을 생각하면 오랜 음악 생활을 하면서 나름대로 테크니컬해졌다 할 수 있을지도? ‘De miseriis fennorum’의 파워메탈풍과 함께 어우러지는 베이스 연주가 그런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긴 원래 헤비메탈 기운 강한 밴드였으니 당연한 얘기일는지도.

그래도 어쨌든 이 밴드는 블랙메탈 밴드이다. ‘Kuolematon laulunhenki’나 ‘Havukruunu ja talvenvarjo’의 휘몰아치는 연주와 Havakruunu로서는 웬일인가 싶을 정도로 차가운 분위기, 그러면서도 Bathory의 앨범들이나 Mercyful Fate의 앨범들 어딘가에서 그대로 따왔을 법한 리프, ‘Unissakävijä’의 스래쉬 리프 뒤에 등장하는 전형적인(그리고 ‘건강한’) 바이킹 코러스는 바이킹메탈을 왜 찾아 듣게 되었는지를 다시금 되새겨 준다. 멋진 앨범이다.

[Svar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