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fredo Tissoco & Gruppo Italiano Di Danza Libera “Kátharsis”

Katharsis라는 이름이 나온 김에 이 앨범도 간만에(a가 아니라 á라는 점은 넘어가도록 하자). 사실 그 블랙메탈 밴드가 암만 Norma Evangelium Diaboli의 좀 많이 묵은 총아인 것처럼 알려진들 결국 Katharsis라는 이름을 록/메탈 밴드와 관련해서 떠올린다면 첫손가락은 아무래도 Alfredo Tissoco의 이 솔로작이지 않을까? 물론 반드시 Alfredo Tissoco의 이름 때문에 유명한 앨범은 아니고, Franca Della Libera의 현대무용이 아니었다면 그 평가는 지금같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게 중평인 듯하지만, 무용이라면 저게 작품인지 막춤인지도 구별할 줄 모르는 입장인지라 그런 평가는 별 상관없을 일이다. 각설하고.

오히려 아쉬운 점이라면 바로 그 점 때문인지 이 앨범의 많은 부분은 이미 Opus Avantra의 곡들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예 Opus Avantra의 곡을 그대로 가져온 ‘Ira’는 물론, 세 가지 버전으로 실린 ‘Katharsis’도 “Lord Cromwell Plays Suite for Seven Vices”의 ‘Sloth’, ‘Gluttony’, ‘Envy’를 인용하고 있다. 말하자면 Opus Avantra의 음악으로 절반을 채우고 나머지는 다양한 클래식 소품들(쇼팽, 라흐마니노프, 드뷔시, 존 케이지 등)과 적당한 재즈풍으로 메꾼 앨범이라 할 수 있는데, PFM과 Nuova Idea의 손을 빌린 리듬 위에 무척이나 복잡한 연주를 끼얹은지라 솔깃하기에는 부족함이 없지만, 결국은 이게 음악만 듣자면 “Lord Cromwell Plays Suite for Seven Vices”와 꼭 별개로 나왔어야 하는 앨범인가? 하는 생각이 남는다.

뭐 그래도 Libera의 모습으로 채운 앨범 아트워크는 꽤 멋지다.

[Suono, 1975]

Current 93 / HÖH “Island”

어떤 의미에서는 Current 93의 가장 유명한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사실 음악만 따지면 Current 93의 앨범들 중에서는 꽤 이질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Hilmar Örn Hilmarsson은 일찌기 Psychic TV의 멤버로 합류하면서 영국의 인더스트리얼 씬에 발을 들여놓았고, Psychic TV와의 작업이 끝난 이후에는 David Tibet과 교류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본격 사타닉 인더스트리얼 밴드에 가까웠을 Current 93의 이미지는 그 때 즈음부터 슬슬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Current 93보다는 Nurse with Wound 생각이 더 나던 “In Menstrual Night”의 음악은 Tibet이 그간 해오던 것과는 많이 달랐고, 아마도 새로 합류한 Hilmar의 역할이 컸을 것이다.

이 앨범은 Current 93이 간만에 다시 Hilmar와 작업한 앨범인데, 이제 Current 93과 대등한 콜라보를 진행하기 때문인지 스타일은 또 다르다. 아마 Current 93의 앨범들 중 이만큼 신서사이저에 의존하는 것도 없지 싶은데, 특히나 ‘The Fall of Christopher Robin’의 뉴웨이브풍 연주나… ‘Falling’의 마냥 어둡지만은 않은 신서사이저 연주 – 거의 드림팝 수준 – 는 예전의 Current 93이라면 생각키 어려운 모습이다. 오컬트하다고 하기도 좀 어렵고, ‘Anyway, People Die’에는 무려 티벳의 Chimed Rig’dzin Lama를 참여시킨 것도 보면 조금은 뉴에이지 – 라기보다는 밀교 – 풍을 생각했는지도? 이게 티베트 불교와 뭐가 관련있는지는 전혀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Falling’의 아련한 코러스를 선사했던 그 보컬리스트는 이후 Current 93의 디스코그라피에서 이름을 다시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이후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개시하면서 굳이 Current 93을 떠올려야 할 필요도 여유도 없어 보일 정도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Bjork 얘기다.

[Durtro, 1991]

Various “Double Exposure”

그래도 굵직한 이름을 남긴 프로그레시브 뮤지션들을 분류하는 방법들은 여러가지겠지만 그 중 하나는 누구도 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그야말로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데 제대로 성공한 일군과,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설득력 있게 잘 엮어낼 줄 알았던 나머지로 분류하는 방식이라 생각한다. 아무래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을 많은 이들이 내놓은 뒤에야 음악을 시작한 후대라면 전자보다는 후자의 방식이 현실적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80년대 이후 프로그레시브 록의 최고의 거물은 Steven Wilson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쪽에서는 Quentin Tarantino) 뮤지션 이전에 유명한 컬렉터였던지라 주워들은 게 많아서인지 앨범에서 항상 아이디어가 넘쳐난다는(그리고 발견하면 은근 반갑다는) 장점은 쉬이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다.

“Double Exposure”는 Porcupine Tree로 슬슬 뮤지션 커리어를 시작할 즈음 Wilson이 직접 만든 컴필레이션인데, The Bond 같이 그 시절 네오 프로그레시브의 거물…까지는 아니고 한번쯤은 마주치게 되는 정도는 될 이름은 물론 Anthony Phillips나 Galadriel 같은 (준)거물들, 훗날 SI Music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의 하나가 될 Egdon Heath 등의 이름을 담고 있다. 말하자면 당대 영국의 현역 프로그 뮤지션들의 스타일들을 나름대로 망라하고 있는 컴필레이션인데(말하고 보니 Galadriel나 Egdon Heath는 영국 밴드가 아니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제 와서 주목받는 곡은 Steven Wilson 본인이 참여한 No Man is an Island(훗날의 No-Man)의 ‘Faith’s Last Doubt’라는 게 좀 우습기는 하다. 다른 앨범에 없다고는 하지만 내 귀에는 그리 돋보일 건 없는 발라드이니 이거만 가지고 이 컴필레이션을 구하기는 좀 본전 생각이 들겠거니 싶다. 사실 그렇게 싼 앨범도 아니고.

그래도 Steven Wilson이 그 시절 즐겨 들었던 네오프로그와, 1987년 영국 네오프로그가 대충 이랬었다는 식으로 살펴보는 데는 유익할 것이다. 사실 Steven Wilson의 이름이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오래 기억될 컴필레이션은 아닐 테니 어찌 생각하면 구매자의 목적만큼은 확실히 충족시켜 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을지도.

[Self-financed, 1987]

Hollywood Burns “Invaders”

Hollywood Burns라는 이름에서 80년대 헐리우드의 화끈함을 재현하려는 신스웨이브 프로젝트의 야망을 엿보았다면 헛짚어도 단단히 헛짚었음이 분명할 이 프랑스 프로젝트는 구성 자체에서 특이할 건 사실 별로 없지만 신스웨이브로서는 좀 신기할 정도로 인더스트리얼의 색채를 걷어내고 오케스트레이션을 전면…까지는 좀 부족하지만 사운드의 핵심에 포함시킨 보기 드문 스타일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헐리우드의 잡식성을 재현하려는 것인지 앨범은 상당히 다양한 소재들을 다뤄낸다. Carpenters Brut 식의 60년대 호러영화 OST를 의식했겠거니 싶은 ‘Scherzo No. 5 Death Minor’와 뜬금없는 UFO 이야기의 ‘Black Saucer’가 한 앨범에 나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덕분에 이 앨범에서 밴드의 일관된 컨셉트나 흐름을 읽어낼 수는 없는데, 이 장르의 많은 거물들이 다양한 스타일보다는 나름의 개성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라는 점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나 뉴로맨서풍 하드 SF 테마가 많이 등장하면서 땀내와는 거리가 멀지만 어쨌든 거친 사내들의 세계를 재현하려는 듯한 거친 신서사이저 연주와 효과음으로 승부하곤 하는 상당수의 밴드들과는 달리, 적당히 ‘스푸키’하면서 때로는 정말 헐리우드 영화음악(레이블 광고문구처럼 때로는 거의 Bernard Herrmann 수준)을 연상케 하는 오케스트레이션이 좀 호오가 갈릴 멜로디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매끈한 ‘팝송’을 만들어내는 모습이 돋보인다. 그러다가 좀 너무 나간 ‘Came to Annihilate’ 같은 곡도 있긴 하지만 재미있게 들었다. 사실 이 정도 되면 게임 OST로 써도 괜찮잖을까 싶다.

[Blood Music, 2018]

Culver / Seppuku “Dedicated to Soledad Miranda”

유럽 Exploitation물의 나름 잘 알려진 변태 감독 Jesus Franco의 페르소나였던 Soledad Miranda에게 바치는 두 노이즈-파워 일렉트로닉스 프로젝트의 스플릿. 특이한 건 저 앨범명은 앨범 어디를 봐도 쓰여 있지 않고 레이블 웹사이트에만 나와 있었다는 점인데, 뭐 커버가 저 정도 되고 보면(“Eugenie de Sade”의 한 장면) 이 정도 앨범명이야 그냥 생략해도 무리는 없겠거니 싶다. 각설하고.

Culver는 레이블의 말로는 영국에서 가장 과소평가된 ‘실험적인’ 뮤지션인 Lee Stokoe의 프로젝트인데, 이 앨범만 들어서는 그리 나쁘지는 않으나 과소평가 운운할 정도로 잘 하는지까지는 잘 모르겠다. 31분짜리 노이즈-드론 트랙인 ‘Traces of the Woman by the Lake’만을 싣고 있는데, Sutcliff Jugend를 좀 더 늘어뜨리고 덜 세련되게 만든 스타일에 노이즈를 더 끼얹으면 비슷하려나 싶다. 그래도 명징한(음질이 좋다는 의미는 아님) 베이스라인을 발판으로 인상적인 드론 사운드를 선보이는만큼 듣기 녹녹치는 않지만 괴이한 분위기만큼은 분명하다.

글래스고 출신 프로젝트라는 Seppuku는, 역시 레이블의 말로는 파괴적인 퍼포먼스가 돋보이는 이들인데, 사실 레이블 사장인 Alastair Mabon의 프로젝트이므로 광고문구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밴드가 수록한 2곡이 스타일이 판이하다는 점인데, ‘Inga’가 과격한 부류의 슬럿지 둠에 인더스트리얼을 얹어냈다면 ‘Emanuelle’은 좀 더 노이즈/인더스트리얼에 치우친 편이다. 그래도 ‘Inga’ 하나만으로도 Culver보다는 Seppuku가 좀 더 귀에 쉽게 다가오니 레이블 사장은 Culver 같은 이들을 계약할 것이 아니라 자기 음악이나 열심히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뭐 사실 도긴개긴이긴 하지만.

[At War with False Noise,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