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gelis “Blade Runner(Soundtrack)”

bladerunnerost매번 헷갈리는 것이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조인간들을 레플리컨트라고 하던가 안드로이드라고 하던가… 하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원작 소설 제목 덕분에 그렇지 싶은데, 사실 뭐로 얘기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은 (여태까지는)다들 찰떡같이 알아먹었기 때문에 문제된 적은 없었지만, 가끔 좀 많이 따지는 사람은 굳이 레플리컨트 아니냐고 정정해주기도 했던지라 잘한 거 하나도 없으면서도 괜히 뭔가 섭섭한… 그런 경험도 있었다. 하긴 생각해 보니 그 날의 섭섭함은 레플리컨트냐 안드로이드냐가 아니라 지적자가 술자리에 오면서 1500원밖에 들고 오지 않았던 사정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뒤늦게 든다.

어쨌든 생각난 김에 간만에 들어본다. 사실 영화음악가로서의 Vangelis의 기량이 만개한 앨범은 “L’Apocalypse Des Animaux” 라고 생각하는데(물론 못 들어본 앨범이 많아서 장담할 순 없음)… 아무래도 컨디션이 구리구리할 때 들으면 숙면으로 이어지기 쉬운 앨범인지라 노동요로는 부적절하다. 노동요라고 쓰고 보니 가사도 없는 앨범인지라 이 또한 부적절했다고 생각이 들지만 역시 다들 찰떡같이 알아들으셨을 테니 넘어간다. 뭐 그래도 적어도 ‘Tears in Rain’에서만큼은 다들 로이가 마지막 대사를 치는 그 장면을 떠올리실 테니 가사가 없는 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워낙에 유명한 영화인지라 OST가 여러 차례 발매되었지만, 의외로 유명하기 그지없는 이 오프닝 타이틀은 왠지는 모르지만 한 번도 공식 OST에 등장한 적이 없다. 그래서 아르헨티나의 부틀레거가 만든 ‘Esper Edition’ OST가 부틀렉이면서도 정식 앨범인 양 자랑스레 돌아다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하긴 저건 다른 부틀레거들이 소스로 쓰는 부틀렉이기도 하니 정규반이라고 해도 조금은 용납이 될지도. 그래도 착하신 분들은 되도록 정규반을 제 값 주고 삽시다.

[EastWest, 1994]

Wagabond “This is Life!/Wagabond”

wagabondVagabond 얘기가 나온 김에 한 장 추가하는 스웨덴 밴드 얘기. Vagabond도 스펠링부터 뭔가 짝퉁같은 느낌을 풍기는 판에 Wagabond에 이르면 일단 이 이름이 영어이긴 한가 생각이 들 정도이니 듣기 전부터 선입견은 확실하다. 이 7인치 한 장 말고는 아무런 활동이 알려져 있지 않은 밴드인만큼, 바야흐로 프로그레시브와 하드록이 손잡고 함께 망해가던 그 시절 애매하게 펑크 물을 먹어보려다가 소리없이 사라진 무수한 밴드들 중 하나라고 해도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이 7인치의 수록곡(이래봐야 2곡뿐이긴 한데)만 생각하면 그렇게 펑크 물을 먹어보려다 체한 밴드처럼 취급하기엔 좀 아쉬움이 남는다. 음악도 펑크 물을 많이 먹었다기는 좀 그렇고 살짝 펑크풍이 묻은 심플한 리프로 승부하는 하드록 정도로 해두는 게 더 맞을 듯한데, 정작 스웨덴에서는 좀 프로그레시브 물을 먹은 펑크 밴드로 알고 있는 이들도 많은 모양이더라. 뭐 생각하면 전자나 후자나 마냥 틀린 얘기는 아닐지니 문제될 건 없겠거니 싶다. 짤막한 가운데 나름 서사적인 면이 있는 타이틀곡이 그래도 좀 더 돋보이는 편.

[Grisbäck , 1979]

Vagabond “Vagabond”

vagabond1994많은 스칸디나비아 멜로딕 하드록 밴드들이 이름을 알렸지만 그래도 첫손가락에 꼽힐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밴드라면 사람마다 생각차는 있겠지만 아무래도 TNT가 첫손에 꼽힐 가능성이 꽤 높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핵심적인 멤버를 고른다면 역시 생각차가 있겠지만 이건 그래도 Ronni Le Tekrø라고 하는 게 맞을 법하다. 좀 더 이름이 친숙할 Tony Harnell이나 Tony Mills 등도 있겠지만 그래도 원년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멤버를 핵심이라고 해주는 게 아무래도 합당할 것이다. 물론 Diesel Dahl도 있지만 솔직히 TNT를 드럼 듣는 맛에 듣는 사람은 별로 없을테니 넘어간다.

Vagabond는 1993년 TNT가 잠시 휴지기를 갖는 틈을 타 Ronni와 Monty Black이 만든 밴드이니 결국 TNT의 패밀리 밴드 격인데, 아무래도 Tony Harnell이 마냥 TNT에 충성했던 멤버는 아니었으므로 새로운 보컬이 필요했었나 보다. 그렇게 구한 새 보컬이 성공적이었는지 생각하면 사실 좀 애매하다. 연주 스타일이야 사실 “Realized Fantasies”의 TNT와 크게 차이날 건 없었지만 David Coverdale을 의식한 듯 은근 블루지했던 보컬은 잘 부르긴 정말 잘 불렀지만 음악에 어울리는 스타일인지는 약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데가 있다(이를테면 ‘I Believe in Wonders’). 그만큼 안 어울린다기보다는 Tony Harnell과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렇게 이 앨범에서 노래하기에는 좀 아쉬움이 남았던 그 보컬은 이후 밴드를 떠나 잠깐 전직 블랙메탈 밴드에도 (이유야 모르지만)있었다가 지금까지 최고의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다. John Lande 얘기다.

[Parlophone, 1994]

LSD On CIA “Celestial Bodies”

celestialbodiesVelvet Music 발매작들을 그래도 거의 다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몇 년 안 하고 없어진 곳인만큼 비교적 전작 컬렉션도 해볼만한 곳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컬렉션을 하다 보면 마주치는 이름이 데스메탈 서브레이블인 Noise Solution인데, 말이 서브레이블이지 주소가 번지수까지 Velvet Music과 똑같으므로, 그냥 유재석이 유산슬 되듯 레이블명만 추가한 거라고 이해하는 게 맞을 것이다. 문제는 얼터너티브 메탈을 주로 내놓는 독일 레이블 Noise Solution이 있다는 점인데, 하필 둘 다 생긴 시기나 문 닫은 시기나 비슷해서 생각없이 구하다가는 엉뚱한 물건을 왕왕 마주하게 된다. 이 앨범도 그런 잘못된 구매의 대표사례.

뭐 잘못된 만남의 결과물이라서 그렇지 사실 만듦새만 본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2016년에 때로는 리프에서 그런지(굳이 짚는다면 Alice in Chains) 냄새까지 풍기는 얼터너티브 메탈을 열심히 내놓고 있으니 저 독일 레이블이라고 지금도 살아있을지언정 장사가 잘 될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Deathpop’ 같은 곡은 좀 더 복잡해진 리프와 변화 있는 구성이 (잘 나가던 시절은 조금 지나친 즈음의)Muse를 좀 더 칙칙하게 만든 모습을 떠올리게 하니 암만 그래도 벌써 1999년에 망해버린 그 데스메탈 서브레이블보다는 사정이 많이 좋을지도. 말은 이렇게 해도 솔직히 웰메이드라고 생각한다.

[Noise Solution, 2016]

Ollie Wride “Thanks in Advance”

thanksinadvance2010년 이후의 신스웨이브는 주로 두 가지 유형을 찾아듣는 편인데, 하나가 뉴로맨서(아니면 공각기동대 정도?) 원작으로 80년대풍 bgm을 만드려는 듯 꾸며내는 스타일이라면, 나머지는 80년대의 그 ‘건강한’ 신서사이저 톤을 풍성하게 늘어놓는 신스 팝 스타일이다. 전자의 최고봉이 Pertubator라면 후자의 최고봉은 아무래도 FM-84다…라고 하면 솔직히 내가 생각해도 좀 아니긴 한데, 그렇더라도 2016년에 나왔던 신스웨이브 앨범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즐겨 들었던 앨범은 분명히 FM-84의 “Atlas”였다. 신스웨이브 앨범에 이런 말을 붙이는 건 얄궂지만 그 앨범의 가장 큰 셀링 포인트는 아무래도 Ollie Wride의 보컬이었을 것이다. 솔직히 얼른 AOR로 떠나버려야 할 보컬이라고 생각하지만 뭐 어차피 이쪽에 있으나 그쪽에 있으나 하는 음악은 큰 차이 없을테니 계속 신스웨이브 라벨을 붙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그 Ollie Wride의 첫 솔로 앨범도 스타일은 결국 FM-84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르다면 아무래도 보컬리스트의 솔로작이다보니 기타의 비중도 늘어나고… 결국은 본격적인 AOR 앨범이 됐다는 건데, 앞서 얘기했다시피 나로서는 이런 방향이 더욱 만족스럽다. ‘The Rising Tide’의 (전자음 티는 꽤 나는)봉고 연주나 트리벌한 리듬을 듣자면 ‘Africa’의 인트로가 떠오를 지경이고, ‘I’m a Believer’에서 Dire Straits의 모습이 스쳐가는 건 나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신스웨이브 팬보다는 AOR 팬에게 더 알맞을 앨범이겠지만, 사실 이 정도면 그냥 누가 들어도 편하게 들을 수 있잖을까 싶다. 일단 난 열심히 듣고 있다.

[NewRetroWave,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