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Y “Pain is Love”

painislove.jpg토이라면 역시 유희열이 아니라 이들이 먼저라고 한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개드립이라겠지만 어쨌든 1992년에 결성된 밴드인데다… 90년대 이후의 신스팝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밴드이니만큼 저렇게 얘기해도 솔직히 괜찮지 않나 생각해본다. 그런데 유희열을 좋아하는 이라면 솔직히 이런 류의 적당히 어두운 신스팝을 좋아하려나 생각하니 참 쓸데없는 생각이긴 하다. 뭐 그래도 DDR(그 리듬게임 말하는 거 맞음) 사운드트랙에 납품까지 했던 밴드인만큼 유희열로 검색해서 이 포스트에 이른 분들이 계신다면 얘네도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정도로 덧붙이고자 한다.

뭐 거물이긴 하지만 이 앨범이 14년만에 나왔던 앨범이니 사실 21세기에 들어서는 충분히 지지부진하긴 했지만 앨범은 충분히 들을만하다. 14년만이라는 냉동인간급 커리어 덕분인지 음악은 정말 밀레니엄 갓 지난 시절을 떠올릴 만한(그리고 적당히 차가운) 톤의 신서사이저에 Volker Lutz 특유의 보컬을 얹어내는 스타일인데, ‘Read to Tell’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냉소가 이들의 개성인지라 익숙한 스타일이라는 점이 딱히 문제되진 않는다. 뭐 그리고 어쨌든 팝 차트를 공략하셔야 되는 분들이니 ‘Pain is Love’같은 적당히 따스한 발라드도 잊지 않는다. ‘But Not Today’ 같은 곡은 영락없는 Depeche Mode 카피인데, 뭐 이들을 듣는 사람이라면 Depeche Mode도 당연히 좋아할 테니 듣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보너스일지도.

[Nordhausen Schallplatten, 2017]

Der Blutharsch And The Infinite Church Of The Leading Hand “Wish I Weren’t Here”

derblutharsch2019.jpg(아직 안 끝났지만)바쁜 한 해기도 했고 사실 (그리 신나지는 않은)로큰롤 밴드가 되어버린 뒤에는 어쨌든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감이 없잖았던 Der Blutharsch인데 그래도 해가 거의 다 가도록 신작이 금년에 나왔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사실 의외다. 이런 류의 얘기에서 복기가 무슨 의미가 있겠냐마는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이제는 네오포크에서 많이 엇나가버린 밴드의 스타일도 한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뭐 몇 없는 네오포크 매체들이라지만 언제부턴가 Der Blutharsch의 이름이 주로 등장하는 건 보통은 사이키델릭 록 웹진들이었다. 사이키 밴드 프론트맨 Albin Julius는 아직까지도 별로 적응되는 모습은 아니다.

그래도 앨범은 꽤 흥미롭다. “Sucht & Ordnung”이 크라우트록 식 사이키델리아였다면 그보다는 좀 더 연극적이고, 신서사이저의 역할은 여전하지만 근작들보다는 좀 더 보컬에 무게가 실린 스타일이다. 그래서인지 사실 크라우트록보다는 Spacemen 3 생각이 나지만… 뭐 밴드가 FX먹인 기타를 쓰는 게 처음도 아니다 보니 그렇게 얘기하는 건 좀 과하다 싶기도 하다.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곡이 역시 Bain Wolfkind의 기타가 돋보이는 ‘Make me See the Light’라는 것도 그렇고. 하지만 ‘Just Because I Can’의 Velvet Underground스러움은 내가 지금 듣는 게 Der Blutharsch 맞나 하는 생각도 들도록 한다. 하긴 그런 어리둥절함도 이젠 꽤 오래된 얘기기는 하구나.

[WKN, 2019]

Neal Morse “Neal Morse”

nealmorse1999Neal Morse가 있던 시절 Spock’s Beard는 꾸준하게 심포닉 프로그레시브의 클래식들을 재현하는 방향성을 보여주었지만 따져 보면 앨범마다 생각나는 클래식들은 분명 조금씩 차이가 있었지 싶다. 결은 좀 다르지만 누가 뭐래도 Gentle Giant를 따라가는 모습이 역력했던 초기에서 “V”에 이르러서는 어느덧 Gentle Giant 물은 많이 빠지고 “Drama” 시절의 Yes를 잠시 연상시키다가 “Snow”에 이르러서는 “And the Lamb Lies Down on Broadway”의 Genesis가 되었다. 아마도 Morse가 당시 주로 들었던 음악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하는 근거없는 짐작을 하는데, 뭐 원래 개성이 없는 밴드는 아니었고 어떤 밴드를 따라가도 결국은 브리티쉬 심포닉 프로그레시브 워너비일지니 그래도 나름 일관된 행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앨범마다 그래도 좀 달랐다는 얘기를 하면서 일관된 행보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으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긴 하지만 일단 넘어가고.

그런 면에서 Neal Morse의 이 첫 솔로 앨범은 의외라면 의외일 앨범이다. 물론 모든 곡이 프로그레시브의 향내를 풍기지만 사실 Spock’s Beard 마냥 본격적으로 프로그레시브한 곡은 ‘A Whole Nother Trip’ 뿐이다(뭐 이 곡이 앨범의 거의 절반이긴 하지만). ‘Lost Cause’ 같은 곡은 누가 미국인 아니랠까봐 프로그레시브한 ‘컨트리’를 발견할 수 있고, 그 외의 곡들도 이거 너무 심플해서 Spock’s Beard 앨범에 들어가려다 만 거 아닐까 싶은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좋게 얘기하면 의외의 심플한 팝송을 이 앨범에서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역시나 멋대가리 없는 커버와 시너지를 일으켜 반응은 별로였지만, 그래도 “Octane”의 뭔가 애매한 스타일보다는 이런 식의 팝송이 Spock’s Beard에게는 더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도 있다. 생각보다 좋게 들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Metal Blade에서 앨범을 냈을까?

[Metal Blade, 1999]

Eloy “Metromania”

Eloy_Metromania.jpgEloy도 나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밴드인데, 사실 Eloy의 80년대 음악은 대부분의 (아마도 이제는 거의 아재가 되었을)프로그레시브 록 팬들에게 길티 플레저도 아니고 그냥 길티에 가까운 존재일 것이고, 따지고 보면 Eloy의 ‘좋았던 시절’부터 그런 낌새는 어느 정도 있어 왔다. Eloy는 1970년대에도 여타 ‘스페이스록’ 밴드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멜로딕하고 적당히 싼티나는 심포닉으로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음악을 연주했고, 앨범의 컨셉도… 뭐, 재밌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게는 거의 H. G. 웰즈의 적당히 싼티나는 데드카피처럼 보였다. 말하자면, 동시대의 다른 ‘프로그’ 밴드들에 비해서 무게잡고 음악하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좀 멀어 보였다는 뜻이다.

그렇다 보니 “Metromania”를 괜찮은 프로그레시브 앨범이라고 굳이 얘기할 생각은 없지만, 프로그레시브 밴드가 만든 80년대의 멋들어진 AOR 튠 정도로는 말할 수 있을 듯하다. 솔직히 ‘Escape to the Heights’는 백투더퓨처 같은 데 들어가도 어울리겠다 싶은데, 앞서도 말했지만 이 밴드의 문제점은 팬들이 백투더퓨처보다는 블레이드 러너를 좋아할 만한 사람들이었다는 점. 확실히 데커드가 뿅뿅 신서사이저 연주에 박자 맞춰서 레플리컨트를 쫓아다니는 모습은 별로 보고 싶진 않다. 그래도 ‘Follow the Light’ 같은 곡의 직관적인 멜로디는 밴드가 욕을 먹을지언정 어쨌든 저력은 남아 있었다는 인상을 확실히 주는 편이다. 솔직히 가끔은 저 멜로디가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EMI, 1984]

Sol Invictus “Death of the West”

solinvictus1994.jpgTony Wakeford가 네오나치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꽤 많은 얘기들이 도는 편이지만 1994년에 슈펭글러라니 이 양반은 네오나치보다는 그냥 시대착오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에 가까울 것이라 짐작하는 편이다. 따지자면 역사의 진보에 대한 부르주아적 낙관주의를 배격하는 시각이니 정치적 올바름과는 별개로 지금의 세상이 그런 눈에 썩 좋아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적어도 이 시절의)Tony는 스스로를 서구의 몰락이 이미 예정된 운명임을 세상에 일깨우는 ‘영웅적인 스피커’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이런 앨범을 내지 않았을까…라고 생각한다. 하긴 20세기 초반 어느 독일 공상가의 역사 비극은 확실히 비장해 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Sol Invictus의 여러 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네오포크의 전형에 가까운 앨범이다. 어떻게 들으면 혹시 트래디셔널이 아닐까 싶을 정도인데, 내놓고 중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Come, Join the Dance’나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 아래 고즈넉한 숲을 그려내는 듯한 ‘In the Rain’ 같은 곡이 가장 좋은 예시일 것이다. 밴드의 다른 앨범보다도 확실히 따뜻한 기타 톤(약간은 “Burial” 시절의 Death in June 생각도 나는 편이다)과 Tony의 목소리, 적절히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오보에나 브라스 등도 좀 괴팍하지만 그런대로 고즈넉한 – 다 망해서 고즈넉해졌다에 가까울 – 분위기에 일조한다. 그러니까 이 장르를 찾아듣는 이가 원하는 바를 제대로 짚어내는 셈이다. 클래식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Tursa,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