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ath in June “Essence!”

deathinjune_essence.jpg뭔가 꾸준하게 나온 것 같은 느낌이 있지만 이 앨범 전에 Death in June이 컴필레이션이나 라이브가 아닌 ‘제대로’ 신작을 발표한 것은 2010년의 “Peaceful Snow”가 마지막이었으니 꽤나 오랫만에 나온 앨범이었다. 하긴 이 밴드가 계속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많았던 걸 생각하면 과작의 활동이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런 와중에 갑자기 2018년에 신작이 툭 튀어나왔으니 의외인 감도 없지 않다.

경험상 이렇게 거물 밴드가 오랜 텀을 두고 툭 내놓은 앨범은 보통 기존의 모습을 결산하는 형태를 많이 보여주는데, 이 앨범도 예외는 아니다. 어찌 들으면 조금 더 어두워진 모습의 “The Rule of Third”처럼 느껴지지만 ‘The Humble Brag’의 묘한 발랄함은 “Nada!” 시절의 그것에 가깝다. 하긴 ‘God A Pale Curse’부터 “I’ve forgotten all that I done, I remember all that I did”라고 노래하고 있으니 분명 의도된 경향일 것이다. 그 경향을 우리가 기대했던 것보다 좀 더 풍성하고 두터운 사운드로 연주하고 있는 앨범이라고 하면 아마 꽤 정확한 설명일 거라고 본다. ‘What Will Become of Us?’에서 밴드의 잘 나가던 시절의 모습을 떠올린 건 나만은 아닐 것이고, 별로 기대들 하지 않았던 모습일 것이다. 생각보다 훨씬 잘 살고 있었나 보다.

[NER, 2018]

Michael Cashmore “The Doctrine Of Transformation Through Love 1”

michaelcashmore_thedoctrineoftransformationthroughlove1.jpgMichael Cashmore의 이름에서 떠오르는 이미지와 앨범명부터가 그리 잘 어울리는 편은 아니지만 사실 이 양반의 행보를 보다 보면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아무래도 “The Snow Abides”를 지나갈 수 없는데, 2007년에 David Tibet과 Anohni가 함께 참여한 앨범을 만든다는 점부터가 Cashmore가 잘 알려진 ‘네오포크의 투사’격 뮤지션들과는 좀 궤를 달리하는 인물임을 짐작케 한다. 뭐 커리어의 태반이 Current 93으로 이루어졌으니 그래봐야 Current 93의 스타일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겠거니 싶긴 한데… Current 93부터가 가끔은 네오포크는 커녕 아주 막 나가는 밴드였던만큼(이를테면 Harry Oldfield와 만든 “Crystal”) 짐작되는 스타일의 폭도 꽤나 넓다.

그래도 이 정도의 다크-테크노, 일렉트로닉 등이 마구 뒤섞인 앨범은 확실히 의외는 의외다. 과장 좀 섞는다면 메인스트림의 방식이었다면 David Bowie의 90년대를 연상할 수도 있었을 법한 음악인데, 물론 Cashmore의 레퍼런스는 Coil이나 Psychic TV 등인지라 그보다는 훨씬 괴팍하고 어두운 구석이 있다. ‘The Sacred Revolving Formula of Opposites’는 신스 팝까지 참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사실 이미 많은 실험을 거듭한 테크노 뮤지션들을 접한 상황에서 그리 실험적일 것까지는 없는 사운드이지만, 그래도 네오포크 거물에게 쉬이 기대할 음악은 아니다. 나쁘지는 않지만 한 대 맞은 느낌이다.

[Klanggalerie, 2019]

Catherine Wheel “Happy Days”

happydays4Catherine Wheel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보컬인 Rob Dickinson이 Bruce Dickinson(Iron Maiden의 그 분)의 사촌이라는 얘기에서였다. 그렇게 처음 듣게 된 앨범이 “Ferment”였는데, 물론 Catherine Wheel의 음악은 Iron Maiden과 판이했으니 앨범은 바로 CD장으로 직행할 수밖에 없었다. 듣기로는 Rob은 그 시절 ‘나는 슈게이저가 되기 위해 태어났어요’ 식으로 징징대곤 했다고 하니 제대로 잘못 짚은 셈이다. 사실 “Ferment”는 지금 생각해 보면 비슷한 시절 다른 슈게이징 앨범들에 비해서는 터뜨려 주는 맛도 있고 해서(말하자면 슈게이징의 하드락 버전이랄까나) 더 귀에 쉬이 꽂힐 만도 했는데… 뭐 내가 음알못이다 보니 그랬다고 하자.

그런 의미에서… 나는 “Happy Days” 를 “Ferment”나 “Chrome”보다 더 좋아했다. 일단 “Ferment”같은 거 만들던 양반들이 갑자기 3년만에 본격 그런지 밴드가 돼서 나타났으니 욕을 사발로 들이키는 거야 어쩔 수 없었겠다만, 듣다 보면 Soundgarden 생각도 나고 하니 묵직한 걸 좋아하는 귀로서는 이게 더 나을 것이다. 가끔 들으면 Life of Agony 생각도 나려고…하다가도 Keith Caputo와 Rob의 보컬이 판이한지라 듣다 보면 그런 생각은 싹 달아나는 편이다. 사실 영국 양반들이 만든 그런지라는 점에서는 Bush가 더 비슷하게 들릴지도.

[Mercury, 1995]

Ostara “Kingdom Gone”

kingdomgone.jpgOstara는 사실 지금 얘기되는 것보다는 좀 더 좋은 대접을 받을 만한 밴드라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이 밴드 특유의 팝적인 면모를 기꺼워하지 않았던 이들이 많았는지 이들에 대한 세평은 내 생각만큼은 아닌 것 같다. 하긴 이렇게 말하면 네오포크 밴드를 두고 기대만큼 안 팔려서 아쉽다는 얘기를 하는 모양인지라 좀 그렇긴 한데 난 이것보다는 더 장사가 될 줄 알았다(판장사 할 팔자는 아닌 셈이다). Strength Through Joy가 그리 팝적인 밴드가 아니었으므로 이런 면모가 실망스럽게 비춰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KAPO!의 음악을 생각하면 이게 그리 예상 못 할 만한 음악은 그때나 지금이나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네오포크-팝(또는 혹자들의 표현으로 ‘pagan pop’)’밴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앨범은 “Secret Homeland”이겠지만 그래도 그런 스타일의 정점으로 딱 하나만을 고른다면 이 앨범의 ‘The Trees March North’다. Ostara보다는 후대의 밴드들이 더 잘 써먹는 요소지만 낭만성 짙은 첼로와 정말 ‘건강한’ 느낌의 코러스, 간혹 Johnny Marr 생각도 나는 기타 등은 다른 네오포크 밴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모습들이다. 보통 기억하는 Ostara의 모습은 사실 이 곡보다는 ‘Sword of Reverie’가 낫겠지만 밴드의 팝적인 모습을 기꺼워했던 이들이라면 이만한 곡이 있었을까 싶다. 딱히 버릴 만한 곡은 없지만 이 한 곡 만으로도 이 앨범은 가치가 있다…는 게 사견. 뭔가 시원해 뵈는 바람이 부는 봄날에 어울리는 곡이 아닐까 한번 생각해 본다. 나가 놀기만 하면 되겠다만 하긴 그게 안 되고 있으니 컴퓨터 앞에 있는 걸지도. 그러니까 이 글을 보신 분이라면 지금이라도 집에만 있지 말고 바람 한 번 쐬고 오심을 권해본다. 얘기가 왜 이렇게 흐르냐…

[Eis & Licht, 2002]

 

Arthur Brown “Dance with Arthur Brown”

dancewitharthurbrown.jpg평범한 메탈헤드와 메탈바보의 경계선상에 있는 이들이 부딪히는 딱히 중요치 않은 논쟁거리들 중 하나는 과연 콥스페인팅을 처음으로 시도한 뮤지션은 누구이냐는 것이었다. 이런 논쟁들의 거의 대부분은 누구의 라이브러리가 가장 깊고도 넓느냐를 견주는 (역시 딱히 중요치 않은)경쟁으로 환원되기 마련이고, 콥스페인트에 대한 논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얼굴에 회칠이라면 80년대부터 Mayhem이나 Celtic Frost가 했다고 하는 이가 있으면, 곧 무서워 보이질 않아서 그렇지 칠이라면 뒤지지 않는다는 Kiss나 King Diamond를 들먹이는 이가 등장하고, 무섭다기보다는 지저분해 보이는 데 가까워서 그렇지 어쨌든 ‘시체화장’임은 분명해 보였던 Misfits나 Alice Cooper의 얘기가 뒤를 잇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다. 여기에 조금 경쟁에 불이 붙는다면 등장하는 것이 Arthur Brown이고, 조금 과하게 올라가면 Screamin’ Jay Hawkins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그만큼, 메탈 뮤지션은 아니었지만 Arthur Brown은 메탈 팬들에게 친숙한 구석이 있는 뮤지션이었다. 일단 본인 목소리부터가 웬만한 메탈 보컬리스트들을 주눅들게 할 만큼 시원시원한데다, 지금 봐도 확실히 맛이 가 보이는 가사나 퍼포먼스가 눈길을 끈다.

그런 만큼 “Dance”는 흔해빠진 스타일이야 아니었지만 이 아저씨 왜 이렇게 됐냐는 우려를 불러올 만한 앨범이었다. Keith Tippet이나 Roger Bain 같은 양반들도 등장한 앨범이었으니 대략 청자들이 예상하는 견적이 있었는데, Brown의 커리어에서 다시 없을 정도로 소울/블루스 느낌이 진하게 묻어나는 앨범에 황당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Mann & Weil에게 곡을 맡긴 ‘We’ve Got to Get Out of This Place’이 황당함의 정점일 텐데, 이걸 앨범의 오프너로 써먹었으니 Kingdom Come을 듣던 양반들이 무슨 생각을 했을지는 짐작에 맡긴다. 갓 오브 헬파이어가 장화에 청청패션으로 소울/블루스를 부른 덕분인지 앨범의 판매고는 과히 좋지 않았고, Arthur Brown의 위키피디아 페이지는 무려 Brown의 첫 솔로 앨범이었던 이 앨범은 아예 페이지조차 개설하지 않고 있다. 난 매번 화장하고 불이나 뿜어야 한단 말이냐 하는 Brown의 한탄이 들리는 듯하지만 보통 당혹감에 취한 청자들은 그런 목소리에는 관심이 없기 마련이고, Brown이 나름 가다듬고 보여주었던 소울/블루스 싱어로서의 면모는 그렇게 묻혔다. 이후로도 Arthur Brown은 현재까지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가지만, 이 시절의 팝적이면서도 소울풀한 스타일은 다시는 전면에 나서지 못한다. 세평은 아니지만, 맥주 마실 때 이 앨범을 곧잘 듣는 나로서는 아쉬움이 없지 않은데,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또 있었으면 좋겠다.

[Gull, 19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