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 Metal Enterprises 얘기가 나온 김에 한 장 더. Godzilla의 2집처럼 레이블이 자체적으로 짝퉁 밴드를 굴려서 찍어 내는 일을 많이 한 레이블이다보니 황당한 앨범도 그만큼 많이 나왔지만, 그 중에서도 이만큼 심각한 앨범은 찾기 어렵다는 게 사견. 정보를 찾을 수가 없으니(당장 인터넷에 밴드 사진 한 장이 없다) 장담은 못하지만 Godzilla가 그랬듯이 레이블의 나름의 기믹을 잡고 스튜디오 밴드 시켜서 만든 짝퉁이 아니련가 싶은데, 문제는 이 기믹이 ‘white power’였다는 것이다. ‘White Power’나 ‘Comrads in Arms’ 같은 곡명도 그렇고, 앨범 아트워크에도 은근슬쩍 들어가 있는 스킨헤드들은 이게 의도된 모습이었음을 알려주는데, 밴드명이나 앨범명, 앨범 커버는 정작 그런 기믹과 거리가 멀어 보이니 레이블도 만들면서 무섭기는 했나보다 하는 생각도 조금은 든다.
그런데 정말 괴악한 사실은 Fucker는 바로 2년 전에 나온 데뷔작에서 (물론 잘한다는 말은 못하지만)인종주의를 배격하는 가사를 담은 하드코어를 연주했던 밴드였고, 심지어 흑인 보컬을 앞세웠던 밴드였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음악 스타일도 적당한 공간감의 키보드 연주를 깔고 적당히 팝적인 멜로디를 심각한 보컬과 함께 풀어나가는 멜로딕 하드락 정도로 말하는 게 맞을 법한 모습인데, RAC 밴드 기믹으로 이런 음악을 한다는 자체도 좀 웃기기는 한데다, ‘Robot of Love’처럼 그냥 이것저것 모두 떠나서 곡 자체가 웃긴 사례도 있는만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만든 앨범인지 다시금 의심이 간다. 하긴 생각해 보면 레이블이 기획한 음반이니 아마 재정적 고려도 있었을진대 RAC 컨셉트를 잡는다는 자체가 이해가 되는 얘기는 아니다. 웃기려고 그런 걸까.
[Metal Enterprises, 1990]
잠깐이지만 여성보컬을 앞세운 재즈 물 먹은 브리티쉬 프로그를 모으던 시기가 있었는데 물론 아는 게 별로 없었으므로(뭐 지금도 딱히 많이 다르진 않음) 컬렉션도 그리 신통치는 못했다. 그 때 알게 된 뮤지션들이 대충 Babe Ruth나 Affinity, Catapilla, Frumpy 등이 있을 텐데 물론 시간이 많이 흘렀을지언정 나는 돈이 꾸준하게 없다는 공통점이 있는지라 Deram 릴리즈는 회사 이름도 이상한 데서 물건 한번 비싸게 나온다는 정도의 이미지가 남았을 뿐 가지고 있는 건 별로 없다. Room도 마찬가지인데, 요새는 툭하면 3천달러를 넘어가는 오리지널을 넘볼 수야 없으니 Esoteric반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예전에 시완레코드에서 나왔었지만 그때는 Room은 커녕 King Crimson도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딱히 Queen 팬이라고 얘기하고 다닌 적도 없는데 하도 보헤미안 랩소디 봤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많아서 생각난 김에 간만에 들어본 앨범. 냉정히 얘기해서 Queen의 앨범 가운데 자주 회자되는 편에 속하는 앨범은 아니지 싶지만 Queen의 앨범들 중 최애작이라면 나로서는 이 앨범이다. 만듦새의 수준을 떠나서 “A Night at the Opera”부터의 음악은 확실히 ‘브리티쉬’ 록 밴드에게 보통 기대하는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Queen을 높이 평가하는 이들은 바로 그 점 때문에 Queen이 대단한 밴드였다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메탈바보에 가까운 취향에 그런 얘기는 타당한지 여부를 떠나서 깊이 받아들여지는 내용은 아니다. 말하자면 “Sheer Heart Attack”은 Queen이 마지막으로 그나마 ‘브리티쉬’한 사운드를 들려주었던 앨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다.
포맷을 불문하고 요 근래 구한 앨범들 가운데 가장 신기하게 생긴 앨범이다. 두 밴드의 Coil 커버곡을 담은 이 EP는 원래 디지털로만 발표되었으나 레이블측에서 12인치 EP로 이렇게 제작하게 되었다…고 알고 있다. 동그랗지 않고 다른 모양으로 만든 LP야 그 전에도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아예 LP 중간에 구멍이 뚫린 형태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것 같다(왼쪽 커버그림이 사실은 커버가 아니라 LP의 모양이다). 그러니까 가장 자리 부분에만 음원이 들어가는 식인데, 어차피 2곡밖에 실려 있지 않으니 이렇게 모양새에 신경쓰는 게 좋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Ant-Zen에서 나오는 음악들을 굳이 찾아듣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나 싶기도 하고.
Architect의 입지는 Daniel Meyer의 다양한(하지만 보통은 포스트-인더스트리얼 정도로 다 묶이는) 프로젝트들 가운데 좀 덜 유명한 하나… 정도인 듯하다. 사실 어쨌든 그의 가장 유명한 프로젝트는 (Covenant를 제외한다면)Haujobb이고, Architect의 음악이 Haujobb과 많이 다른 스타일이냐면 그건 또 아닌지라 그런 입지에 앞으로도 개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그래도 사실 Daniel의 다양한 음악편력을 한번에 보여주는 프로젝트는 따지고 보면 또 Architect만한 것도 없다는 게 사견. 하긴 신스 팝에서 인더스트리얼까지를 아우르는 뮤지션은 생각해 보면 별로 없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