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Abstract Illusion “The Sleeping City”

An Absract Illusion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Willowtip에서 한 2-3년 전부터 열심히 밀어주고 있는 살풋 블랙메탈 분위기가 묻은 프로그레시브 데스를 연주하는 스웨덴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아무나 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이런 류의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을 보는 일이 그렇게 드물지도 않은 스타일인데, 그래도 2022년의 “Woe”는 개인적으로 최근 몇 년간 접했던 프로그레시브 데스메탈 류에서는 손꼽힐 정도의 앨범이었다. 사실 이런 류의 밴드들은 극적인 구성에 대한 강박 때문인지(아니면 지나친 화려함의 추구 때문인지) 온갖 장르들을 편집증적으로 꿰매맞춘 듯한 정신없는 음악을 들려주는 사례도 왕왕 발견되는 편인데,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갈팡질팡하지 않고 프로그레시브 데스의 ‘전형적인’ 형태에 집중하는 모습이 오히려 2022년에 와서는 밴드의 매력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잘 하는 거 확실하게 갈고 닦았다는 느낌이랄까.

“The Sleeping City”도 여전히 프로그레시브 데스의 전형을 따르고 있지만, 전작들에 비해서 강화된 심포닉(일렉트로닉한 면모만 뺀다면 때로는 거의 In Vain 수준), 클린 보컬은 물론이거니와 때로는 흐느끼기까지 할 정도로 연극적인 면모도 보여주는 보컬, 소위 포스트메탈을 많이 들었는지 전작들에 비해 확실히 ‘모던해진’ 모습도 보여주는 ‘Like a Geyser Ever Erupting’ 같은 곡을 보자면 이 밴드가 스타일의 확장을 꾀하고 있음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니 밴드의 나름대로 우직함을 미덕처럼 여겼던 나로서는 우려가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사실 이런 모습을 최근에 가장 완성도 높게 보여준 밴드는 아마도 Ne Obliviscaris일 것인데, “Citadel” 이후 점차 재미없어졌던 모습을 생각하면 An Abstract Illusion이 그 전철을 밟지 않으리란 보장은 적어도 아직은 없어 보인다.

그래도 앨범 자체만 보면 충분히 즐겁고 듣기 좋다. 앨범의 전면에 심포닉을 흩뿌리지만 막상 듣다 보면 (물론 전작들보다는 무딘 편이지만) 리프의 공격성을 갉아먹을 정도로 과한 부분은 찾기 어렵다. 이 줄타기가 언제까지 성공적일지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Willowtip, 2025]

Cozy Powell “The Best of Cozy Powell”

90년대 매달 나오는 음악잡지들과 앨범을 사면 끼어 있는 해설지들을 보면서 록의 역사에 대하여 ‘공부’했던 경우들이라면 Cozy Powell에 대한 이미지는 아마도 불멸의 헤비메탈 드러머일 가능성이 높을 것이고, 이 분이 Rainbow와 Black Sabbath에서 참여했던 앨범들의 면면들을 보면 맞는 얘기이기도 하지만, 막상 이 분의 커리어에서 본격 헤비메탈 드러머였던 적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알게 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흘렀다. 덕분에 옷만큼은 Motörhead에 갖다놔도 어울릴 정도로 입고 사진을 찍었지만 정작 음악은 파워풀하면서도 수려한 재즈퓨전에 가까웠던 이 분의 솔로작에 적응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았다. 생각해 보면 이미지가 헤비메탈이라 그렇지 ELP의 Carl Palmer의 땜빵 역할을 훌륭히 수행했고 Keith Moon과 John Bonham 사후 그 빈자리를 메꿀 유력한 후보였던 분이니 당연한 얘기이겠다.

이런 분의 커리어를 베스트앨범 한 장으로 확인하는 데는 무리가 있겠지만 재즈퓨전/프로그레시브 뮤지션으로서의 Cozy Powell의 면모를 단적으로 확인하는 데는 사실 이만한 앨범이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분 솔로 커리어의 정점은 “Over the Top”부터 “Octopuss”까지일 것이고 그걸 알아서인지 이 세 장 말고는 과감하게 생까버린… 트랙리스트는 덕분에 Cozy Powell 솔로 커리어의 엑기스를 제대로 담아낸 결과물이 되었다. 원래 앨범을 그리 일관된 색깔로 가져가는 분은 아니었으니 서로 다른 앨범의 곡들일지언정 섞어놔도 그리 이질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Over the Top’의 ELP풍 연주나 ‘The Big Country’의 심포닉을 듣고 있자면 사실 이 분의 본령은 헤비메탈보다는 ELP나 Colosseum II 스타일의 연주(특히 “Strange New Flesh” 시절의)에 있었다고 해도 맞아 보이고, 과장 조금 섞는다면 이 분이 Yes에서 Bill Bruford의 빈자리를 메꿨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저 드럼스틱으로 맘에 안 드는 후배를 때릴지도 모를 것 같은 인상의 커버 사진은 Cozy Powell의 면모를 별로 담아내고 있지 못할 것이다. 거칠지만 자기 음악만큼은 더없이 정교하고 섬세하게 하셨던 분의 연주를 실제로 들어볼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끝내 아쉽다. 좀 오래 사셨으면 한국에서 한 번은 봤을 것 같은데..

[Polydor, 1997]

Midnight Betrothed “Dreamless”

Midnight Betrothed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찾아보면 나오는 건 기껏해야 호주 출신의 원맨 프로젝트라는 얘기이고, 그 외에는 스스로의 음악을 ‘sombre romantic black metal’이라고 소개하고 있다는 정도? 그렇지만 일단 로맨틱이라는 수식어가 블랙메탈에 붙었다는 자체에서 이거 대체 뭐하는 음악인가 하는 의구심을 갖기는 충분해 보인다. 예전에야 녹음을 하자면 어쨌든 악기와 앰프, 최소한 4트랙 레코더라도 갖고 있어야 지하실에라도 박혀서 뭔가 만들고, 그렇게 녹음한 크롬 테이프를 여기저기 공짜로 뿌려대며 이 음악을 누군가 알려주기를 기대해야 했지만 이제는 적어도 후자의 작업은 인터넷 업로드로 쉽게 대체될 수 있게 되었고, 덕분에 그 골방 프로젝트들 중 웰메이드를 찾기보다는 정신나갔다는 말보다 더 적절한 설명을 찾기 어려운 사례를 발견하기가 훨씬 쉬워 보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이 프로젝트에 대한 기대는 진지함보다는 개그감의 발로에 가까운 무언가였다는 뜻이다.

그런 기대에 비해서는 음악은 생각보다 멀쩡한(달리 표현하면 평범한) 편이다. 골방 프로젝트답지 않게 생각보다 깔끔한 녹음도 눈에 띄는데, 사실 녹음을 잘 했다기보다는 피아노를 전면에 내세우고 지글거리는 기타 리프는 볼륨을 확 낮춰서 뒤로 밀어놓은 덕이므로, 이런 결과는 녹음이 잘 됐다기보다는 애초에 블랙메탈이라기엔 던전 신스에 많이 다가간 스타일 때문이라는 게 맞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블랙메탈다운 지글거림’만큼은 계속 유지하고 있는 저 리프와 DSBM풍의 보컬이 이건 블랙메탈 앨범이라고 계속 강변하고 있고, 가끔은 Dimmu Borgir의 “For All Tid”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는 저 피아노의 멜로디만큼은 확실히 솔깃한 편이다. ‘Bygone Fortunes’ 같은 곡은 골방 프로젝트치고는 극적인 면모도 보여주는 편인지라 좀 더 돈 들인 스타일로 편곡을 한다면 꽤 멋질 것 같다는 예상도 든다.

하지만 암만 좋게 얘기해도 B급이라 해주기도 좀 저어되는 이 음악을 쉽게 추천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Osculum Infame 같은 음악에서 건반이 너무 화려한 게 걸렸던 이라면 한번쯤 들어볼만 할지도? 그렇지만 이런 사람이라면 애초에 심포닉블랙이 취향이 아닐 거 같으므로 어쨌든 추천까지는 차마 안되겠다. 그저 호기심에 모든 것을 맡긴다.

[Northern Silence, 2021]

Gryla “The Redeemer’s Festering Carcass”

Gryla는 예전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전형…을 의식한 모습이 역력한 신예 노르웨이 블랙메탈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겠다. Torbjørn Kirby Torbo라는 뮤지션의 원맨 프로젝트인데, 도통 생소한 이름이므로 찾아보니 2007년생의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젊은 뮤지션이다. 나는 과연 2007년에 뭐하고 있었는가? 되돌아 보면 딱히 좋은 기억은 별로 없으므로 굳이 생각하지 않더라도, Arcturus의 “Shipwrecked in Oslo” 라이브를 흥미롭게 봤던 게 2006년이었던 걸 생각하면 이제 나와 세대 자체를 달리하는 신예들이 씬을 주도할 날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이 새삼 다가온다.

이런 우울한 얘기를 뒤로 하고 음악 얘기를 한다면 Gryla의 음악은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스타일을 띠고 있지만 그 나름대로 꽤 독특한 구석을 많이 가지고 있다. Gorgoroth풍의 전개가 기본이 되지만 중간중간 Dødheimsgard풍의 ‘twist’를 더한 리프가 청자를 자극하고, 이런 리프에 따라오는 변칙적인 전개 사이에서 튀어나오는 그루브가 밴드의 개성을 이루며, 자칫 생경하게 들릴 이런 전개를 지극히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전형에 가까울 멜로디로(이를테면 가장 Dark Funeral의 가장 멜로딕한 지점) 담아낸다. 사실 이렇게 ‘밀당’을 잘 하는 그 시절 블랙메탈 밴드라면 단연 Beherit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면에서는 노르웨이의 질감으로 보여주는 핀란드 블랙메탈? 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보컬마저 Darkthrone 스타일인지라 핀란드를 운운하는 게 맞나 싶지만 어째 Beherit이나 Behexen의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그래도 분명 Gorgoroth의 오마주일 ‘Banners Soaked in Crimson Essence’가 앨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90년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클래식한 스타일이 모던하게 재현될 경우의 모범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이래서 노르웨이 블랙메탈을 놓을 수가 없다.

[Iron Bonehead, 2025]

Omega Experiment, The “The Omega Experiment”

미시간 출신 프로그레시브 메탈 듀오 정도로 알려져 있는 The Omega Experiment의 데뷔작. 나름대로 발표 당시에 많은 관심을 모았다고는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들어본다. metal-archives에는 아예 올라와 있지도 않은 걸 보면 이걸 메탈이라 부를 수 있는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하는 그 경계선상의 음악인가 짐작이 들지만 Listenable에서 나온 앨범인데 그 정도이려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게 접한 음악은 2명이서 만든 음악이라기엔 생각보다 훌륭했고 화려한 편이었다. 이런저런 밴드들을 언급하는 글들이 많아 보이지만 결국은 Devin Townsend에서 특유의 위트를 좀 덜어내고 좀 더 전형적인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기운과 약간의 일렉트로닉을 더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듣기 편한 멜로디와 화려한 건반 덕에 먼저 생각나는 앨범은 “Epicloud”였지만 ‘Furor’ 같은 곡의 Fear Factory스러운 리프와 ‘Karma’의 달달하다 못해 때로는 Styx 같은 사례를 떠올릴 수 있는 코러스는 이 음악이 어쩌다가 metal-archives에 올라가지도 못하는 사례가 되었을지를 짐작케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 음악을 메탈이 아니라고 하긴 좀 어려울 것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달달함을 부정할 수 없지만 Opeth나 Dream Theater의 기운도 분명하고, 똘끼가 좀 부족해 보일 뿐 사실 Devin Townsend rip-off라고 불러도 할 말 없을 법한 지점들도 많이 보이는지라 이거 그렇게까지 차별대우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게 사견. 그리고 솔직히 ‘Gift’나 ‘Stimulus’의 희망차고 에너제틱한 분위기에다가 내놓고 눈살을 찌푸릴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출장 갔다 돌아오는 심야 고속버스에서 문득 들었다가 쓸데없을 정도로 힐링되는 경험을 해서 하는 얘기다.

[Listenable,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