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gradation “Revelation in Blood”

degradation1994Degradtion도 E-X-E에 못지 않게 재발매가 되지 않고 있던 밴드였는데, 그래도 이들은 작년에 Divebomb에서 이 유일작이 재발매가 된 덕분에 그래도 빛을 보았다. E-X-E가 2집으로 커리어에 셀프로 관뚜껑을 덮은 경우였다면 Degradation은 그런 것도 아니었으므로 그래도 살아남을 친구들이 먼저 살아남았다고 해도 말이 되려는지도. 따지고 보면 Jim Morris와 Scott Burns가 Morrisound에서 녹음한 앨범인데다 음악도 충분히 다듬어진 테크니컬 스래쉬였으니 저 맥빠지는 커버 아트나 1994년이라는 발매 시점, 뭔가 밴드의 앞날을 예견한 듯한 부정타는 밴드명, 사실상 자주반이나 다를 바 없는 영세한 레이블(그런데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하더라) 등을 고려하더라도 이 정도로 묻혔다는 건 분명 아쉬운 결과이긴 하다. 적고 보니 묻힐 만한 이유가 더 많아 보이는 건 기분 탓만은 아닌 듯하지만 넘어가도록 하자.

음악은 Sadus에 좀 더 그루브를 강조한 스타일에 가까운데, 베이스 연주가 강한 탓인지 Iron Maiden 얘기를 하는 이들도 찾아보기 쉬우나 내 생각에는 차라리 Sacred Reich나 Forced Entry를 생각하는 게 더 적절하지 싶다. 하지만 ‘Eugenics’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점진적인’ 스타일의 데스메탈 연주는 왜 이 양반들이 Morrisound를 선택했는지를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무려 Jon Oliva와 Chris Caffery가 참여한 데모가 있다던데… 밴드의 스타일을 생각하면 별로 믿음이 가지 않으나 Savatage의 와일드했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또 괜찮을 것도 같아서 궁금해진다. 이 이름으로 뭔가가 또 나왔으면 좋겠다.

[D.E.G. Entertainment, 1994]

E-X-E “Stricken by Might”

exe1987사실 “Stricken By Might” 는 그 시절 작품들 중 그래도 잊지 않고 꼽아줄 만한 정도의 스래쉬메탈은 된다고 생각하는데… 3-4년 전에 재결성도 했겠다 재발매될 법도 싶은데도 아직 빛을 못 보고 있다. CD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앨범의 CD는 부틀렉이라는 게 너무 잘 알려진 얘기여서 웬만한 사이트에서는 아예 거래 자체가 금지되어 있는지라 그나마도 구하기 녹록지 않다. LP라면 무려 한때 Virgin에서 찍어준 덕인지 잘 보이고 가격도 저렴하지만 그래도 CD가 갖고 싶다. 과장 좀 섞는다면 어쨌든 완전히 지울 순 없었던 이 데뷔작의 싼티를 굳이 그래야만 했을까 싶을 정도로 극대화한 인상을 주었던 “Sicker Than I Thought!” 가 밴드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넣은 덕분인가 짐작해 보지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온몸에 싼티를 휘감았으면서도 뜬금없이 재발매된 많은 앨범들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말이 길어서 그렇지 아쉽다는 뜻이다.

Exciter 풍으로 가죽자켓 걸친 빈티나게 생긴 양반들이 연주하는 초창기 Slayer 스타일의 음악,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법한데, 외모부터가 그렇긴 했지만 베이에이리어의 스타일보다는 스피드메탈에 더 가까운 양상을 보여준다. 거의 Piledriver 수준으로 심플하게 지르는 ‘Metal Hell’ 과 ‘Slayer'(이렇게 연주하면서 이런 곡명을 갖다 쓰는 건 대범한 정도를 넘어선다고 본다)가 앨범의 대표곡이라 할 만한데, 다른 곡들도 스타일에 있어서는 대동소이하니 이 정도 얘기에 혹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만족할 것이다.

[Shatter, 1987]

Pungent Stench “Smut Kingdom”

smutkingdom2018.jpg지금이야 밴드 이름을 두고 선의는 별로 없어뵈는 진검승부를 계속 중이지만(그런데 Pungent Stench라는 이름이 그렇게까지 열심히 싸울 정도로 돈이 되는 이름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Alex Wank와 Martin Schirenc의 사이가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밴드는 2004년의 “Ampeauty” 이후 정규작을 낸 적이 없지만 이 앨범은 2006-2007년경, Alex와 Martin이 찢어지기 전에 녹음된 마지막 앨범이라고 하니, 흘러간 음원의 재발굴이기는 하지만 밴드의 ‘진짜배기’ 마지막 정규작이라고 해도 좋을지도. 사실 Dissonance Prod.는 Pungent Stench나 Hecate Enthroned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흘러간 스타일의 파워메탈 밴드들이 주로 앨범을 내는 곳인데, 그래서 그런지 Pungent Stench의 그간의 ‘더러운'(안 좋다기보다는 정말로 ‘더러운’) 음질보다는 녹음 면에서도 나아진 듯한 인상을 주는지라, 앨범 자체로도 정규작으로 봐주기에 큰 무리는 없다.

그래도 어쨌든 미발표음원 모음집이어서 그런지 앨범은 밴드가 그간 발표한 어떤 앨범에 견주어도 다양한 스타일들을 담아내고 있다. “Dirty Rhymes and Psychotronic Beats” 스타일의 프로토-스래쉬도 있고, 많이 해 왔던 클래식 데스메탈이나 하드코어/그라인드도 있고, ‘Planet of the Dead’ 에서는 Autopsy를 너무 많이 들었는지 둠 메탈의 향내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스타일에 손을 대도 결국은 90년대 그 시절 느낌이 묻어나도록 만드는 모양새가 결국은 밴드의 가장 큰 개성일 것이라 생각한다. 돈이야 될 리 없는 개성이건만 어차피 내 돈은 아닌지라 나로서는 기분좋게 들었다.

[Dissonance Prod., 2018]

Al Atkins “Victim of Changes”

alatkinsvictimofchangesAl Atkins는 Rob Halford 이전에 Judas Priest의 마이크를 잡았던 양반인데 Rob Halford도 “Rocka Rolla”부터 꾸준하게 밴드의 보컬이었으므로 이제 와서 Atkins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구석은 앨범 크레딧을 빼고는 별로 없다. 그러니 공룡 밴드의 미약하던 어느 한 철 스쳐 지나갔던 인연 정도로 Al Atkins를 기억한들 무리될 건 없겠거니 싶다. 굳이 내가 Atkins의 이름을 기억하는 건 “Rocka Rolla”의 재발매반들 중에는 ‘Caviar and Meths’ 의 Atkins 보컬 버전이 실린 판이 있다는 얘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물은커녕 인터넷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버전인데다 ‘Caviar and Meths’ 는 연주곡이었으므로 굳이 귀담아둘 만한 얘기는 아니,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Atkins가 Dave Holland의 도움을 얻어 Priest의 곡들을 다시 불러 만든 이 앨범에 ‘Caviar and Meths’ 가 실려 있다. 보컬리스트의 솔로 앨범에 연주곡을 넣다니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뭐 이거 말고도 연주곡이 더 있기는 하다만) Atkins가 노래를 하고 있으니 얼결에 말로만 듣던 그 곡을 찾았던 셈이다. Atkins에 의하면 70년대 초반에 Priest의 라이브의 대미를 장식하던 대곡…이었는데, 우리가 아는 버전은 2분짜리 짤막한 연주곡이니 은근 괴리가 심하지만 재미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사실 다른 곡들도 Priest의 곡들이다 보니 앨범 전체에서 버릴 부분은 별로 없는 편이고, Atkins도 Halford와 비교해서 그렇지 노래 못 하는 양반이 아니다. 참고로 나는 이 앨범을 꽤나 좋게 들었다.

[Neat, 1998]

Cromìa Oscura “My Heart in a Very Dark Place”

cromiaoscura2017창의력은 없지만 나 참 힘들고 외롭다고 울부짖고 싶어 보이는 앨범명인데 이 레이블이 원래 그렇듯이 지나친 저가정책이(사실 저가정책이라기보다는 그냥 레이블이 돈이 없는 거기는 하다) 밴드의 컨셉트를 깎아먹는 듯한 인상도 지울 수 없다. 이탈리아 출신이니만큼 여기에 적당히 애상적인 느낌의 멜로디 섞은 포스트락만은 얹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앨범명이 말해주듯 그렇게 창의적인 친구들이 아니어서인지 음악은 딱 그 예상대로 나아간다. 첫 곡부터 스크리밍 얹은 트레몰로 리프를 이어 나가다가 곧 어쿠스틱으로 전환하는 모습에서 Alcest를 떠올릴 수 있다.

그래도 스래쉬 리프도 좀 섞고 멜로디 자체도 90년대 중반의 노르웨이에 다가가 있는지라 통상의 블랙게이즈와 다른 부분은 있지만, 처음부터 너무 예상대로 나간 탓에 심심하다는 선입견이 귀를 가린다. 밴드도 이걸 알아서인지 9분 가량의 첫 곡을 제외하면 긴 곡도 딱히 없다(마지막 곡이 6분 좀 안 되긴 하는구나). 정해진 구성대로만 가도 딱 필요한 것만 배치한 셈인데 블랙게이즈 팬이라면 무난하게 들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66장 CDR 한정으로 나온 앨범이 아직도 무난하게 수급이 되고 있는 만큼 블랙게이즈 팬이라도 한번쯤은 자신의 취향을 의심해 보는 것도 좋을지도.

[Depressive Illusion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