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tacker “Battle at Helm’s Deep”

USPM 얘기가 나온 김에 한 장 더. 원래 장르의 구분이라는 게 반드시 간명하지만은 않은 법이라 하더라도 그 중에서도 특히 모호한 개념을 꼽는다면 거기에는 아마도 소위 화이트칼라 파워메탈/블루칼라 파워메탈의 구분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정도 되면 굳이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장르를 구분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장르라는 것이 음악을 설명하고 구분함에 있어 그 음악의 특성을 정확히 제시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으로 나온 것이라면, 그 음악에 대한 설명과 구분은 왜 해야 하는 것인가? 그 설명과 구분을 위해 공부를 너무 많이 해야 한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렇게까지 장르를 따진다면 아마 그러다가 꼰대 소리 듣기 십상일 것이다.

뭐 어쨌든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구분이니만큼 굳이 이런 식으로 설명한다면 Attacker는 80년대 중반 블루칼라 파워메탈의 중요한 밴드라고 할 수 있지만, 직선적인 스타일만은 아니고 나름의 프로그레시브 터치를 보여준 사례라는 점에서 개성이 있다. ‘The Wrath of Nevermore’ 같은 Rush풍 리프의 곡은 확실히 그 시절의 Jag Panzer 같은 밴드라면 절대 보여줄 수 없는 모습처럼 보인다. 물론 Jag Panzer나 Omen 같은 밴드에 비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클래식한 류의 파워메탈임은 분명하다. ‘Slayer’s Blade’나 ‘Disciple’ 같은 곡은 그 시절 장르의 모범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Conan the Barbarian이 아니라 반지의 제왕이 본격적으로 USPM에 등장한 것도 이 즈음이지 싶다.

그러니 굳이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Attacker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이 장르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게다가 현재까지 현역으로 활동 중이니 이들을 보고 본받아야겠다고 생각할 후배들도 있을 것이다. 뭐 돈이야 별로 못 벌었겠지만 지금도 메탈이 세상을 지배하리라 믿는 이들도 있을테니 말이다.

[Metal Blade, 1985]

Michael Bolton “Everybody’s Crazy”

젊은 시절 청운…까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천하를 호령하는 하드록/헤비메탈 전사의 꿈을 안고 음악을 시작했고, 또 따져 보면 그럴 만한 실력이 없는 것도 아니었으나 시원찮은 밥벌이에 결국은 꿈을 접고 평범한 대중가수의 길을 걸었다는 류의 이야기는 생각해 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꽤 흔한 편이다. 따지고 보면 80년대 한국 헤비메탈을 이끌었다는 말을 듣는 보컬리스트의 상당수는 결국은 그런 길을 걸었을 것이다. 한때 모던로크척결을 외치던 이라면 그런 모습을 두고 변절이란 말을 했던 경험이 있겠지만 따지고 보면 그들로서는 필요한 선택을 했을 뿐일 것이다.

어디 가서 물어보거나 알아본 경험은 없지만 저런 변절이니 아니니 하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에는 분명 Michael Bolton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분은 새로운 길로 가서 전에 없던 엄청난 성공을 거뒀으니 그래도 덜 아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만, 그래도 Michael Bolton이 마지막으로 제대로 하드록/AOR을 선보였던 이 4집을 보면 본인으로서는 그래도 많이 아쉬웠을 거라는 짐작이 든다. 전작과 달리 Aldo Nova는 빠졌지만 Bruce Kulick의 기타는 여전히 꽤 화끈하고, 뭔가 Paul Stanley스러운 전개에 얹히는 Paul보다 노래 훨씬 잘하는 Bolton의 보컬도 훌륭하다. ‘Can’t Turn It Off’나 ‘Don’t Tell Me That It’s Over’ 등은 멜로딕 하드록의 모범을 꼽는다면 꽤나 상위로 꼽을 만한 사례일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정도로 음악도 잘 하고 하는데 정작 자기가 곡 줬던 Laura Branigan은 붕 뜨고 자기는 메이저에 붙어 있긴 하지만 뭔가 간당간당해 보이니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슬슬 다른 길로 가지 않았을까? 그냥 짐작이 그렇다는 얘기다.

[Columbia, 1985]

Liege Lord “Master Control”

새해의 첫 앨범은 Liege Lord의 3집. 뭐 새해에 어울리는 음악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동안 클래식을 듣겠다고 얘기한 지 얼마 안 됐으므로 뭔가 클래식이랄 만한 걸 찾다 보니 이 앨범이 손에 잡힌다. 요새 세상이 세상이다 보니 ‘Master Control’이란 제목도 괜히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한다만 이들이 그런 뜻을 의도하고 쓴 것 같지는 않으므로 이만 넘어가고.

앨범 세 장으로 끝났지만 Liege Lord라면 Jag Panzer나 Omen 등과 같이 80년대 초반 USPM의 가장 공격적인 형태의 전형을 보여준 밴드래도 부족하지 않을진대, 그 중에서도 장르의 미덕들을 가장 고루 갖춘 사례라면 이 “Master Control”이 아닐까 생각한다. 파워메탈과 스래쉬(와 약간의 펑크)를 버무린 스타일인데, NWOBHM의 기운 강하면서 곡마다 개성 강한 리프들이 USPM식 코러스를 만나면서 ‘적당히 희망찬’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새로운 보컬인 Joe Comeau의 목소리는 묘하게 Bruce Dickinson과 King Diamond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밴드의 스타일에는 무척이나 어울리는 편이다. Rainbow의 ‘Kill the King’의 커버나 ‘Fallout’ 같은 곡은 장르의 정수를 보여준다고 해도 별로 부족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니까 아직은 메탈이 힘을 잃지 않았다고 대개 말하곤 하는 1988년에 나온 이 앨범이 별로 빛을 보지 못한 건 사실 좀 의외이기도 하다. 멋진 앨범이다.

[Metal Blade, 1988]

Absu “Barathrum: V.I.T.R.I.O.L.”

Barathrum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들어본 앨범…이지만 Barathrum과는 아무 상관없는 Absu의 데뷔작. 요새야 cascadian을 위시한 블랙게이즈도 이미 많이 등장했고, 언제부턴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들어봤다는 사람조차 별로 찾아볼 수 없었던 Blasphemy 류의 war-metal을 좋아한다고 자처하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미국 블랙메탈에 대한 관심도 확실히 예전보단 높아진 듯하지만, 블랙메탈이라면 당연히 스칸디나비아를 얘기해야 마땅하던 시절 미국 블랙메탈에서 몇 안되는 주목해야 할 밴드들에는 Absu의 이름이 빠지질 않았다. 블랙스래쉬는 아니지만 90년대 초반부터 활동한 여느 밴드들보다도 스래쉬하면서 오컬트한 사운드도 밴드의 개성이라 할 수 있겠다.

“Barathrum: V.I.T.R.I.O.L”도 그런 밴드의 초창기 음악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그래도 가장 스래쉬의 기운이 덜하고 오히려 Nocturnus식 데스메탈을 좀 더 스푸키한 분위기로 풀어낸 듯한 음악을 들려주는 점에서 이 밴드의 다른 앨범들과도 확실히 구별된다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음악을 프로그레시브하다고까지 하긴 어렵겠지만 앨범은 1993년에 나오던 여느 블랙메탈 앨범에 비해서도 확실히 복잡하고 테크니컬한 전개를 보여주고, 때로는 싼티가 좀 과하다 싶긴 하지만 오페라틱한 면모까지 보여주는 ‘Descent to Acheron(Evolving to the Progression of Woe)’ 같은 곡은 이 밴드가 멜로디가 그리 다양하진 않지만 이를 변주해 가면서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처음부터 솜씨가 좋았음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는 옛날 핫뮤직식 표현으로 Rotting Christ에 대한 (좀 뜬금없긴 하지만)미국의 대답 같은 앨범이라고도 할 수 있을지도? 키보드 얘기가 좀 거슬리는 이들도 있긴 하겠지만 1993년이면 키보드 좀 썼기로서니 블랙메탈을 배신했네 어쩌네 소리 듣기는 많이 이른 시대였을 것이다. 하긴 데모 몇 장 나오긴 했다지만 이게 데뷔작인데 대체 뭘 변절하고 할 게 있을까.

[Gothic, 1993]

Celtic Frost “To Mega Therion”

성탄절도 되고 해서 연말까지는 그간 자주 듣지 않았던 클래식들을 꺼내들어 보는 시간을 가지고자 간만에 돌려보는 앨범. 나도 그랬지만 “Morbid Tales”와 “Emperor’s Return” 때문에 이 앨범이 2집인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이 앨범이 Celtic Frost의 1집 앨범이었다. 아마 1집이라기엔 이미 장르의 정점에 가까워 보였던 탓도 있겠고, 이미 이전의 EP 때부터 많이 될성부른 떡잎이었다는 것도 있겠다. 그렇지만 밴드의 음악이 단순히 Hellhammer의 업그레이드판에서 벗어나 후대의 수많은 밴드들의 음악을 예기할 수 있는 그 모습을 띠기 시작한 건 이 앨범부터일 것이다. 말하고 보니 그 Hellhammer의 스타일을 따라가는 수많은 후배 밴드들은 뭔가 싶지만 일단 여기서는 넘어간다.

보통 Celtic Frost의 최고 역작이라 얘기되는 것은 “Into the Pandemonium”이지만, 이후 많은 익스트림메탈 밴드들이 수없이 써먹은 여성보컬과 남성보컬의 병치, 곡마다 개별성을 가지지만 동시에 특정 모티브를 중심으로 연계되어 있는 구성(‘Innocence and Wrath’의 모티브가 ‘Dawn of Megiddo’에서 등장하는 모습 등) 등은 이미 이 앨범에서 모두 찾아볼 수 있다. 밴드는 스피드에 그리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스래쉬하고 에너제틱한 곡을 만들 수 있었고, 동시에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들이나 컨셉트를 통해 메탈이란 장르 자체의 외연을 넓히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에는 지독한 실험이었겠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모습이기도 하고, 어찌 보면 “Into the Pandemonium”의 실험들은 이 앨범의 단초들을 좀 더 세련되게 다듬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앨범 최고의 미덕은 역시 실험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메탈 본연의 모습에 있다는 점이 이후의 앨범들과도 가장 구별되는 차이일 것이다. 솔직히 “Into the Pandemonium”이 메탈의 전형은 아니지 않나? 그런 면에서는 밴드의 가장 메탈다운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Noise가 멜로딕 스피드메탈이 아닌 유로피언 스래쉬의 전당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Noise, 19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