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stapo 666 “Satanic Terrorism”

계엄이란 제도가 있는 줄은 알고 있었으나 이걸 실제로 써먹는 모습을 볼 줄은 몰랐는데 생각도 못했던 이벤트가 실현된 날을 기념하여 간만에. 사실 기념할 만한 사건도 절대 아니고 이 앨범을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어째 계엄이라고 하니까 이 앨범의 ‘Martial Law’가 생각이 나더라. 안 그래도 밴드명에 게슈타포가 들어가니 이미지도 뭔가 잘 들어맞아 보인다.

활동한 지는 꽤 됐지만 그래도 리프의 힘이 느껴지던 “Nostalgiah” 정도를 빼면 딱히 좋게 들은 앨범은 없었고, 프랑스의 이런저런 블랙메탈 불한당들이 알려질 때쯤 곁다리로 함께 알려진지라 굳이 주목받을 이유도 없어보이는 이 밴드를 그래도 관심갖게 소개한다면 Celestia와 Mortifera의 핵심인 Noktu가 하는 또 다른 밴드라는 정도? 그리고 좀 더 격렬하긴 하지만 다른 프랑스 밴드들에 비해서는 좀 더 Satanic Warmaster 같은 핀란드 블랙메탈 분위기가 짙은 편이라 듣기에는 이쪽이 더 익숙하게 들릴 수 있겠다.

“Satanic Terrorism”은 그런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그런 경향이 짙은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Werwolf와 만나고 Drakkar와 계약한 다음이어서인지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그럴듯한 음질인데다 거친 질감을 걷어내고 조금은 멜랑콜리하기까지 하다가 블래스트비트와 함께 달려가는 ‘전형적인’ 전개(특히 ‘Summon the Spirit of War’)를 보면 이 밴드가 이렇게 웰메이드 스타일의 블랙메탈을 했었나 하는 생각까지도 든다. 극우에 반유대주의, 반기독교, 반무슬림 등 어그로 끌기 좋은 소재는 몽땅 갖다쓰는 모습만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좀 더 좋은 대접을 받았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긴 “Nostalgiah”가 나올 때만 해도 이 밴드에 대한 광고문구는 Satanic Warmaster와 Celestia가 힘을 빌려준 블랙메탈 올스타급 듀오… 정도였다. 이 밴드의 그간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좋게 들었다.

[Drakkar, 2022]

Bad Religion “Into the Unknown”

펑크 얘기 나온 김에 간만에 들어보는 앨범이긴 한데… 하필 그렇게 꺼낸 앨범이 Bad Religion의 자타공인 최고 패망작이라는 게 내가 생각해도 좀 뭔가 싶긴 하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계속 활동하면서 수많은 앨범을 내놓은 장르의 터줏대감이자 사업적으로도 가장 성공한 사례에 꼽힐 이 레이블 사장님 밴드의 앨범을 정작 내가 몇 장 들어보질 못했으니 보기에 좀 얄궂어도 어쩔 수 없다. 좋게 생각하면 이 거물 밴드의 정규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구하기 힘든 앨범이기도 하다. 모든 발매작들이 벌써 여러 차례 재발매가 되었지만 이 앨범만큼은 한 번도 재발매된 적이 없고 밴드 스스로가 공언하길 앞으로도 재발매될 일이 없다니 컬렉션 완성을 위한 마지막 키 같은 앨범이란 정도로 의미를 부여하면 좀 나으려나? 하지만 Bad Religion은 정규앨범만 20장은 되는지라 그 컬렉션을 완성할 만한 이가 얼마나 될지는 또 모를 일이다. 각설하고.

그렇게 악명이 자자한 밴드의 이 두 번째 앨범은 옹골찬 펑크였던 데뷔작 이후에 무슨 생각이었는지 직선적이었던 리프를 걷어내고 어쿠스틱과 신서사이저 등을 더하여 전작과는 판이한 Bad Religion식 프로그레시브 록(!)을 담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펑크 밴드였던 가닥이 어디 가는 건 아닌지라 여전히 흥겨운 분위기와 귀에 잘 박히는 멜로디를 만날 수 있고, 방향은 다르지만 에너제틱하고 때로는 나쁘잖은 솔로잉까지 보여주는 기타(거의 Peter Frampton 수준)는 이 앨범을 꽤 화끈한 구석이 있는 아레나 록 스타일로 만들어낸다. ‘Billy Gnosis’의 묘한 흙내음은 Bufallo Springfield 같은 밴드의 스타일까지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때로는 지독한 1983년식 농담같이 느껴지는 문득문득 튀어나오는 어두운 분위기의 전개와 꽤 변칙적인 곡을 끝내 소화하지 못하는 부실한 리듬 파트, 노래 잘 하는 거 뻔히 아는데 왠지 가끔은 삑사리까지 선보이는 듯한 보컬은 이 앨범의 악명을 뒷받침해 주는 만큼 이 앨범을 Bad Religion을 모르는 사람에게 들어보라고 추천은 못하겠다. 그냥 꿈도 희망도 없는 절대망작같은 일반적인 평과는 그래도 꽤 거리가 있는 앨범, 정도로 해두는 게 낫겠다. 잘 보이지도 않고 보여도 부틀렉이 아닌 한 가격도 무지막지하니 그 정도가 안전할 것이다.

[Epitaph, 1983]

Cultus Sanguine “Dust Once Alive”

Cultus Sanguine을 어디 가서 좋아하는 밴드라고 얘기해 본 적은 아무래도 한 번도 없는 듯싶고, 둠-데스와 블랙메탈에 조금은 고색창연한(그리고 용쓰고 있음에도 자연스레 묻어나는 싼티를 지울 수 없는) 키보드가 어우러진 이 스타일을 개성적이라 할 수는 있겠지만 장르의 A급들에 비해서는 분명 산만하게 들린다는 것도 어쩔 수 없어 보인다. 덕분인지 밴드는 뭐 한 장 나올 때마다 레이블이 달라져 있었고, 초창기 Wounded Love나 Season of Mist의 카탈로그를 채우는 데는 불가결한 앨범들이었지만 애초에 저 카탈로그를 채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를 생각하면 애매한 입지이긴 매한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24년만에 세 번째 앨범이 나왔다는 건 꽤나 의외였는데, 시절이 지났지만 좀 더 80년대풍 강해진 리프와 무척이나 옅어진 블랙메탈의 색채는 이 밴드를 이제 분위기 정도를 제외하면 더 이상 익스트림메탈의 범주에서 생각하기 어렵게 한다. 원래부터 회화적인 경향이 강한 스타일이었지만 이제 이 음악을 듣고 먼저 생각나는 밴드들은 Goblin이나 Devil Doll이 될 것이고, 스크리칭에서 크루너까지 다채로운 스타일을 보여주는 Joe Ferghieph의 보컬이 이 연극적인 분위기를 더욱 부각시킨다. 사실 기존 앨범들의 산만함도 이 ‘다채로운’ 보컬 스타일 탓인 면이 있는데, 이제는 꽤 변화가 잦은 흐름에서 홀로 떨어지는 느낌은 적어도 들지 않는다. 오히려 ‘The Greatest of Nothing’나 ‘Gli uomini vuoti’의 드라마틱함은 이들이 24년동안 꽤 스스로를 갈고 닦았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멋진 앨범이다.

[BadMoonMan Music, 2023]

Lacuna Coil “Karmacode”

원래 Lacuna Coil 류의 소위 ‘팝고딕’ 음악을 딱히 좋아하지 않고 사실 이런 음악들에 고딕 레떼르를 붙이는 자체가 좀 아니지 않나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쨌든 ‘고딕 메탈’ 분야의 최고 락스타를 꼽는다면 Lacuna Coil을 제쳐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Evanescence 같은 밴드에까지 고딕 얘기가 나오게 할 정도로 ‘고딕’을 대중화시킨 장본인들 중 하나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Evanescence는 내가 생각하는 고딕과는 백만년은 거리가 있는 밴드인지라 그 대중화가 좋은 것이었다는 생각은 잘 들지 않으니 이래저래 내가 판장사 할 팔자는 아니었던 건 더욱 분명해 보인다. 각설하고.

그래도 “Comalies”까지는 멜랑콜리를 강조하면서 스타일은 많이 달랐지만 Sirenia 같은 밴드들과도 비교할 구석이 있던 음악을 보여주었던 Lacuna Coil이 본격적으로 고딕의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했던 것은 “Karmacode”라고 생각한다. 앨범 시작부터 드롭 C 튜닝으로 코어 리프를 갈겨주는 모습을 보면 대중화의 장본인 정도가 아니라 Evanescence에게 고딕 얘기가 나오게 한 것은 바로 Lacuna Coil의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절창이라고는 못해도 견실한 보컬을 들려주는 Cristina Scabbia와 Andrea Ferro의 보컬이 빛나는 순간들이 있지만(‘You Create’와 ‘What I See’) 이제 이 밴드는 Family Values 투어에 합류하더라도 이상해 보이지는 않을 밴드가 되었다.

그래도 멜로디만큼은 여전히 쉬이 귀에 들어오니 저 코어 리프에 거부감이 없는 이라면 편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고, 다른 곡들은 넘어가더라도 ‘Enjoy the Silence’의 커버만큼은 한번쯤은 들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가끔은 여성보컬 세운 Alice in Chains 같기도 하니 90년대였다면 얘기가 좀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하긴 2024년 말엽으로서는 의미없는 얘기이긴 하다.

[Century Media, 2006]

Traumatic Voyage “Traumatic…”

West Virginia Records는 꽤 웃기는 곳이다. 이름이야 웨스트 버지니아지만 카탈로그는 스래쉬와 데스로 점철된 이 독일 레이블은 Holy Moses나 Deathrow 같은 꽤 중요한 이름들을 담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독일 메탈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곳이었다라기엔 좀 부족해 보인다. 알고 보면 Morbid Music과 함께 Holy Moses의 그 부부가 만든 레이블인데, 이 곳도 1993년 이후 나온 앨범을 찾아볼 수 없는 거 보면 아마도 그 즈음 Morbid Music과 함께 사이좋게 망해버린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고 보면 이 분들은 한 개도 아니고 레이블 여러 개를 만들었다 한번에 다 말아먹어 버렸으니 과연 어떻게 비즈니스를 끌고 나갔던 걸까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이 레이블이 그 짧은 기간 동안 내놓은 나름 견실한 카탈로그를 보면 어쨌든 보는 눈은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하긴 음악으로 밥 먹은 시간이 헛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Traumatic Voyage는 이 레이블의 기간에 비해서는 그리 짧지 않은 카탈로그 가운데 가장 특이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시절이 시절이어서인지 Darkthrone풍 블랙메탈의 기운을 받아들인 독특한 데스메탈을 선보이는데, 당대의 데스메탈에 비해서도 확실히 ‘차가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편이기 때문에 이건 데스메탈이 아니라 그냥 데스메탈의 기운 강한 블랙메탈이라고 할 이도 많아 보인다(사실 그놈이 그놈이다 싶긴 하다). 그 자욱한 분위기가 노르웨이풍도 아니고 사실 약 냄새 강한 스타일인데, 덕분에 이 1992년의 음악을 DSBM에 비교하는 이들도 있어 보인다. 그러고 보면 밴드의 개성만큼은 더없이 검증된 셈이다. 음질마저도 이런 류의 음악에 통상 기대하는 수준 이상으로 깔끔한지라 청자로서는 호오를 떠나서 확실히 지루할 겨를이 없다.

하지만 그 엄청난 개성이 나로서는 사실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때로는 “Into the Pandemonium”을 많이 의식했구나(특히나 ‘Soulwinter’) 싶으면서도 사운드 샘플이나 적당히 스푸키한 키보드가 흐름을 갉아먹는 지점에서는 밴드가 너무 욕심이 많았구나 싶기도 하다. 하긴 밴드 입장에서는 장사는 어차피 망했으니 음악적 욕심이라도 확실히 챙겨가는 게 실속있는 선택이었을지도.

[West Virginia Records, 1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