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biscum “Christenblut”

오스트리아 블랙메탈 밴드 Vobiscum의 2집. 밴드는 유명하지 않지만 이 앨범만큼은 2004년을 강타한 희대의 개그작이 되어 많지는 않았지만 블랙메탈 듣는다는 이들에게 꽤 회자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저 엄청난 커버가 어떻게 CCP의 QC를 통과해서 앨범에 실제로 실려 나올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밴드의 중핵인 Count Grimthorn는 역시 CCP에서 나온 다크 앰비언트 프로젝트 Mittwinter를 굴리는 인물이기도 한데, 거기서는 멋질 것까진 없어도 평범하게 봐줄만한 커버를 내놓았는데 여기서는 왜 이러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정 사진을 찍어서 커버로 쓰고 싶다면 미소라도 짓지 말아야 했는데…. 이미 저렇게 나와버린 거 어쩌겠는가.

음악은 저 커버의 위력에 비해서는 무척 평범하다. 좋게 얘기하면 Burzum을 좀 더 스웨디시풍으로 변주한 리프에 밴드가 데뷔작에서 보여준 Dimmu Borgir를 의식했을 법한(하지만 화려하다기엔 좀 많이 애매한) 키보드를 얹어낸 듯한 스타일인데, 저 키보드도 꽤나 가난한 스타일인데다 리프도 썼던 거 계속 바꿔가며 쓰는 수준으로 반복적인지라 장르에 그래도 어느 정도 익숙한 이라면 금방 지루해지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특히나 이런 경향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14분이 넘어가는 ‘Vobiscum’인데, 연주가 연주이다보니 가끔은 곡을 좀 많이 못 쓰는 Graveland 같기도 하다. 물론 송라이팅을 빼놓고 보더라도 이쪽이 훨씬 가난한 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이 어떻게 CCP에서 나올 수 있었는지는 지금도 좀 궁금하다. CCP는 명작은 드물어도(이거야 뭐 어느 레이블이라도 대개 마찬가지겠지만) 일정 수준을 상회하는 결과물을 거의 항상 보여주는 레이블이라고 생각하는데 카탈로그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이 앨범이 유독 많이 튄다. Count Grimthorn이 사장 몸캠 비디오라도 손에 넣었던 것일까.

[CCP, 2004]

Pensées Nocturnes “Nom D’une Pipe!”

Pensées Nocturnes의 4집. 생각해 보면 꽤 독특한 밴드인 것이 Way to End에서 적당히 괴팍한(보통 아방가르드라 불리곤 하는) 블랙메탈을 들려줬던 Vaerohn이 본진과는 달리 클래시컬 무드를 머금은 DSBM으로 나타났다가 그래도 원래 하던 음악이 있는지라 슬슬 괴팍해지다가 이 앨범에서는 괴팍하면서도 카바레 뮤직이다 재즈다 클래식이다 다양한 스타일을 끌어들여 독특한 스타일을 구현하고 있다. 애초에 저 앨범명부터가 영어로 옮기면 ‘Holy shit’ 정도라니 기존의 이미지와는 영 맞지 않는다. 말이 4집이지 3집인 “Ceci Est De La Musique”는 Vaerohn이 주변의 지인들에게만 60장 한정으로 뿌린(그러므로 실물은 사진조차 본 적이 없는) 앨범이므로 이 앨범을 실질적인 3집으로 친다면 앨범마다 스타일이 아주 널을 뛰고 있다.

그러니까 밴드의 여정이나 이전/이후의 활동과 상관없이 앨범을 살펴보면 커버에 그려진 적당히 spooky하게 묘사된 빅 밴드가 펼치는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옮겨놓은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그 공연이 그리 멀쩡한 모양새가 아니라는 점은 첫 곡인 ‘Il a Mange le Soleli’부터 드러난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각하를 위해 우리나라 국가를 부르겠다는 멘트와 라 마르세예즈가 잠시 등장했다가 과장된 심포닉을 뒤로 하고 뒤틀린 코드가 중심이 된 연주가 시작되고, ‘La Marionnetiste’ 부터는 본격적으로 재즈와 카바레, 클래시컬 무드가 블랙메탈과 뒤섞이기 시작한다. 덕분에 다른 블랙메탈 밴드보다는 Devil Doll이 먼저 생각날 수밖에 없다. 굳이 블랙메탈 쪽으로 찾는다면 Diablo Swing Orchestra 정도랄까.

덕분에 구성은 무척 괴팍하면서도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과장된 심포닉을 이용해 낭만성을 과시하면서도 어쨌든 이 앨범은 블랙메탈이라는 듯 카바레 특유의 유머는 비껴가고 굵직한 리프로 서사를 풀어나간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스타일이 부딪히면서 사이사이에서 유발되는 촌극들이 때로는 성급하게 봉합되는 느낌도 없지 않지만 나로서는 즐겁게 들었다. 하지만 블랙메탈 팬보다는 Devil Doll이나 Estradasphere 같은 밴드들을 좋아하는 이에게 더 적합해 보인다…. 만, 하지만 그 분들은 이 블랙메탈 리프를 감당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Les Acteurs de l’Ombre, 2013]

Diabolical Masquerade “Nightwork”

Blackheim 얘기가 나온 김에 Blackheim의 원맨 프로젝트…라지만 사실 Dan Swano가 Blackheim만큼이나 많은 것을 맡고 있으므로 이쯤 되면 그냥 듀오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은 Diabolical Masquerade의 최고작? 하지만 커리어에 똥반이 없는 보기 드문 인물이기도 하고, “The Phantom Lodge”까지의 모습과 이 앨범에서의 모습은 사뭇 다른지라 사실 취향 문제라고 해도 무방하지 싶다(물론 그래도 이 앨범을 취향이라 고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거라고 예상은 된다). Adipocere를 떠나 Avantgarde Music에서 내놓는 첫 앨범이라는 점도 그런 변화에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Nightwork”는 밴드의 앨범들 중 가장 연극적인 형태의 심포닉블랙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우리의 Blakkheim(Blackheim은 유독 이 밴드에서는 ‘Blakkheim’으로 이름을 표기한다)이 전작까지 보여준 기타 중심의 심포닉블랙은 이 앨범에서 ‘eerie’한 분위기에 주력하는 건반이 중심이 되면서 계속해서 변칙적인 전개를 가져가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Blakkheim의 보컬도 래스핑에서 Dani Filth풍의 히스테릭한 목소리까지 상당한 진폭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많은 심포닉블랙 밴드들이 빠지곤 하는 과도한 낭만에 걸려들지 않는다는 게 이 밴드의 진짜 매력일 것이다. 이 음악을 아방가르드 블랙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꽤나 많은 듯한데, 그렇게 힘을 잃지 않고 긴장감을 유지하는 모습에서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지만 사실 이런 게 심포닉블랙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기타 리프 위에 그냥 키보드만 빵빵하게 얹고 심포닉블랙을 자처하는 수많은 밴드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보컬을 포함한 모든 파트들이 유기적인 인터플레이를 이루면서 극적인 분위기를 구현하는 정점에 가까운 심포닉을 보여준 블랙메탈 앨범이자 장르의 어떤 한 정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Riders on the Bonez’ 같은 곡에서 보여주는 은근한 유머는 덤이다. Peaceville 재발매반은 ‘Cryztalline Fiendz’가 보너스트랙으로 들어 있기는 하나… 그냥 creepy한 분위기의 키보드 소품일 뿐이고, 멋들어진 오리지널 커버에 어처구니없는 폰트로 앨범명을 박아넣은 커버가 확 깨는지라 이 앨범만큼은 Avantgarde반을 사는 게 낫지 않은가 조심스레 권해본다. 나도 보너스트랙 참 좋아하지만 이건 좀 너무했다.

[Avantgarde, 1998]

Bewitched(SWE) “Diabolical Desecration”

Vargher와 Blackheim이 굴리던 그 스웨덴 스래쉬 밴드의 대망의 데뷔작. Bewitched가 밴드 이름으로 흔히 쓰이는 이름은 아닌 듯싶고 비교적 알려진 사례로는 칠레 블랙메탈 밴드 Bewitched도 있겠으나 어쨌든 장르의 네임드라고 하면 이쪽일 것이다. 물론 이 이름으로 가장 유명한 사례는 그 아일랜드 걸그룹이 있겠으나(물론 그 분들은 B*witche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긴 했다) 이 블로그에 올라오실 만한 분들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말하고 보니 에스파도 올린 적이 있었는데 딱히 B*witched라고 해서 안 될 거 있나… 싶기도 하다. 각설하고.

Vargher와 Blackheim이 인물이 인물인지라 흔히 블랙스래쉬 밴드마냥 알려져 있지만 사실 블랙스래쉬보다는 80년대 초중반 흑마술 이미지를 써먹었던 스래쉬 밴드들의 사례들을 연상케 하는 음악이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당장 밴드의 소개문구도 ‘evil speed-rockin’ Hell metal’이기도 하고…. 사실 본격적인 스래쉬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보다는 80년대 초중반 NWOBHM을 위시한 헤비메탈의 기운도 강한 편이다. 그러니 이 음악을 블랙메탈과 연관지을 고리는 사실 멤버들의 면면과 여기저기서 느껴지는 Bathory나 Venom의 기운 뿐이다. 말하자면 Blackheim의 빛나는 커리어에 이끌려 이 밴드의 앨범을 구한 사람이라면 아마 실망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긴 그러다보니 나도 이 앨범을 2025년에야 와서 들어보고 있구나.

어쨌든 앨범은 견실한 헤비메탈을 담고 있다. ‘Burning Paradise’나 ‘Triumph of Evil’ 같은 곡은 한창 시절 Mercyful Fate 같은 밴드가 보여줬던 리프의 매력을 되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Diabolical Masquerade의 앨범에나 어울릴 법한 연주곡 ‘Firehymn’은 왜 앨범에 들어갔는지 모르겠으나 중간에 분위기도 환기할 겸 쉬어가는 느낌이라면 나쁘지 않아 보인다. 멋진 앨범이다.

[Osmose, 1996]

Hammerfall “Glory to the Brave”

Hammerfall라는 밴드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상은 In Flames와 Dark Tranquillity가 90년대 초중반 바야흐로 오리지널 예테보리 멜로딕데스를 연주하던 시절, 사실은 그 멜로딕데스 필드의 인물들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은 파워메탈이었다는 듯 새로운 밴드를 만들어냈는데, 자라오면서 생각보다 멜로딕 스피드메탈을 많이 들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덩치는 거한이었지만 목소리는 생각보다 청아했던 보컬 때문인지 결과물은 정작 멜로딕 스피드메탈 팬들에게 관심을 끌었던 기묘한 팔자의 밴드라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시작된 밴드는 본진에 못지않을 정도로 큰 성과를 거두었고, 덕분에 이젠 In Flames/Dark Tranquillity 출신의 멤버들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음에도 밴드는 여태까지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중간에 몇 년 빠지긴 하지만 Nuclear Blast에서 거의 30년을 끈질기게 버티고 있기도 하다. 대단한 성공사례인 셈이다.

“Glory to the Brave”는 그런 성공사례의 시작점인 셈인데, Jesper Strömblad에 Glenn Ljungström의 이름을 보고 그래도 In Flames를 기대하고 들었던 어느 고딩에게 Manowar의 외양으로 좀 템포 느슨해진 Helloween 같은 연주를 하는 음악은 적잖이 실망이었다. 아무래도 음악이 음악인지라 이런 리프 전개가 다음 In Flames의 앨범 스타일을 예기하는 건 아닌가 싶어 불안감도 없지 않았지만, “Clayman” 이후 초창기 스타일의 팬들에게는 욕도 적잖이 먹을 In Flames의 이후 행보를 생각하면 그래도 이 정도로 나아간 게 양반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따지고 보면 멜로딕 데스는 처음부터 파워메탈과 아예 떼어놓고 보긴 어려운 장르이기도 하고.

어찌 됐든 간만에 들어도 앨범은 만듦새만큼은 확실하고, 목소리는 아무래도 좀 아니었지만 Warlord의 ‘Child of the Damned’를 커버하는 모습은 이들이 Manilla Road식 에픽 메탈과 같은 구성미도 의식하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좀 길고 구성이 늘어지지만 ‘Glory to the Brave’는 시절을 좀 더 잘 만났다면 국내에서도 적잖은 반응을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파워 발라드였다. 그러니까 예테보리 멜로딕데스 씬의 쩌리같은 사이드 프로젝트로 치기에는 처음부터 지나치게 훌륭했던 셈이다. 이런 앨범이 실시간으로 라이센스될 수 있었으니 시절도 분명 훌륭했을 것이다. 그렇게 어느 아재는 추석을 핑계삼아 추억팔이를 한다.

[Nuclear Blast, 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