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isk “…un torügg bleev blot Sand”

동프리슬란트의 이야기를 블랙메탈로 풀어낸 보기 드문 밴드였던 Friesenblut을 굴리던 멤버들이 와신상담 끝에 다시 손잡고 만든 밴드! 라는 게 대충 레이블측의 설명이긴 한데 일단 Friesenblut를 못 들어봤고 동프리슬란트가 뭐가 특이한 동네인지 도통 모르는 이에게 저런 설명은 사실 하나마나한 얘기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Friisk를 검색해 보면 북프리슬란트를 얘기하는 단어로 보이는데 소개에는 왜 동프리슬란트 얘기만 나오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저 레이블이나 나나 둘 중의 하나는 꽤 심각한 헛다리를 짚고 있는 셈인데, 모두의 예상을 깨고 밴드 본인들이 애초에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하면 꽤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음악은 기대 이상으로 준수하다. 스타일은 사실 독일풍의 ‘Atmospheric’ 블랙메탈에서 그리 벗어나지는 않는데, 꽤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로 극적인 맛을 낼 줄 안다는 게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일 것이다. 두터운 트레몰로와 블래스트비트로 곡을 이끌어가다가 어쿠스틱과 미드템포를 이용해 ‘멜랑콜리’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말이 미드템포지 이 앨범이 사실 꾸준히 밀어붙이는 편에 가까운 음악임을 생각하면 그만큼 멋진 리프를 보여주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겠다(어떤 부분은 거의 Lunar Aurora 수준). 그런 면에서 앨범의 백미는 미드템포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다가 잠깐의 휴지기를 갖고 터뜨리는 전개를 보여주는 ‘Fiebertraum’일 것이다. 블랙메탈의 좋았던 시절 무척 흔했던 스타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만큼 두드러지는 사례를 보기도 쉽지 않은데, 적어도 이들은 꽤 훌륭한 경우에 속한다. 멋진 펜드로잉을 보여주는 커버도 꽤나 마음에 든다.

[Vendetta, 2021]

Dolores O’Riordan “Are You Listening?”

Cranberries의 바로 그 분의 2007년 솔로작. 시절이 시절인지라 이 분은 물론 Cranberries의 좋았던 시간은 이미 지나간 지도 좀 된 시점이었고, 그러니 이 앨범을 많은 이들이 기대에 부풀어 기다렸다고 하기엔 좀 애매하겠다. 그런 면에서는 Richard Ashcroft의 솔로 앨범과도 비슷하다 할지도? 그러니 이 앨범도 나오자마자 라이센스로 등장하던 그 시절도(물론 가장 좋았던 시절과는 한참 거리가 멀지만) 생각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도 든다. 처음부터 이런 얘기로 시작하니 나이먹은 티가 너무 나므로 각설하고.

Cranberries 이후 시간은 꽤 지나 나온 앨범이지만 음악은 Cranberries 시절의 스타일과 크게 차이는 없다. 애초에 Cranberries의 송라이터면서 밴드의 색채(와 각종 사건사고)를 대표했던 분이니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한데, 그걸 본인도 알고 있어서 일부러 의도했음인지 앨범은 Cranberries의 앨범보다는 좀 더 다양한 모습들을 담고 있다. 싱글 커트한 ‘Ordinary Day’는 안전하게 Cranberries 스타일이지만, 살짝 트립합 느낌을 담은 ‘Human Spirit’이나 Evanescence를 살짝 따라한 듯한 ‘In the Garden’이나 ‘Black Widow’ 등은 Cranberries의 전형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물론 그래봐야 Dolores의 보컬이 영락없는 Cranberries의 b-side 같은 인상을 덧칠하긴 하지만, 이 분이 그리 노래 못하는 분도 아니고 결국은 타고난 목소리 때문인 것을 뭐라고 하긴 좀 그렇지 않은가.

‘Loser’의 철 지난 발랄함은 차라리 없었으면 나았겠다 싶긴 하지만 썩 괜찮게 들었다.

[Sequel, 2007]

Bulldozer “Alive…. in Poland”

Bulldozer는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는 꽤 많은 라이브앨범을 남긴 밴드인데, 그래도 ‘Dance Got Sick!’으로 스스로 관뚜껑에 못질하기 전 내놓은 라이브앨범은 이 앨범이 유일하니 밴드의 한창 시절을 담고 있는 라이브앨범은 이것 뿐이라고 해도 대충 맞을 것이다. Roadrunner에서 쫓겨났다지만 어쨌든 아직은 이탈리아 메탈의 명가 Discomagic에서 앨범을 내고 있었으니 퇴물 취급받는 신세도 아니기도 했다. 하기야 암만 이 장르가 강력한 체력…을 요구한들 30줄도 되지 않은 멤버들을 두고 퇴물이라고 하기는 좀 많이 그렇겠다. 각설하고.

밴드의 1집부터 4집까지의 주요 넘버들을 대충 망라하고 있는(빠진 것도 많다는 뜻이다) 이 라이브앨범은 3집부터는 흑마술 컨셉 좀 빼고 확실히 좀 유쾌해진 밴드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포르노 스타 Ilona Staller에 대한 팬심을 과시하는 ‘Ilona the Very Best’ 다음에 나오는 ‘Impotence’, 스포츠토토를 하며 세리에 A를 살펴보던(돈은 물론 못 땄음)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The Derby’로 꾸리는 전반부는 왔다갔다 하는 믹싱 상태와 어우러져 꽤 정신없는 공연장의 분위기를 재현한다. 청중들의 반응도 꽤나 좋기 때문에 분위기만큼은 확실하다.

밴드 초반의 적당히 펑크적이고 흑마술 컨셉으로 나가던 모습이 잘 담겨 있지는 않은지라 Bulldozer를 모르는 이가 듣기에는 애매해 보이지만, Bulldozer를 이미 접해 봤다면 즐길거리는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원곡보다 좀 더 빠르게 연주되고 있는 만큼 스래쉬메탈 라이브의 박진감을 느끼기에도 더 좋을지도.

[Metalmaster, 1990]

Asia “Fantasia – Live in Tokyo”

80년대 초반 프로그 씬이 더없이 지리멸렬해지고 씬의 거물들이 결성했던 팝스 지향형 밴드들을 되게 좋아하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단연 엄지손가락의 자리에는 역시 Asia가 있을지어다. 일단 브리티쉬 프로그 근본 중의 근본에 가까운 멤버들이 모여 만든 밴드인지라 개개인의 기량도 그렇고, 걸출한 프로그 밴드들 출신답지 않게 약간의 프로그 레떼르가 녹아 있긴 하다만 비슷한 다른 밴드들보다도 더욱 명료한 구성의 팝을 연주한지라 본진의 팬들에겐 욕을 먹었을지언정 나 같은 귀 짧은 이들을 사로잡기에는 더할나위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25년만의 Asia의 원년멤버들이 다시 모여 가진 라이브를 담은 이 앨범은 그 자체로 눈길을 모으고, 이 멤버들이 라이브에서 내놓은 셋리스트는 Asia의 주요 넘버들만이 아니라 멤버들이 거쳐 온 브리티쉬 프로그레시브의 핵심 밴드들의 명곡들을 아우르고 있다. ‘Roundabout’이나 ‘In the Court of Crimson King’, ‘Fanfare for the Common Man’ 같은 곡이 셋리스트에 자연스레 끼어들 수 있다는 게 이 슈퍼 밴드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일 것이다. Geoff Downes 덕에 ‘Video Killed the Radio Star’까지 끼어드는 셋리스트는 이걸 현장에서 봤다면 되게 뜻깊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아무래도 힘이 빠져도 많이 빠진 John Wetton의 목소리와 밴드의 확실히 예전같지 않은 에너지는 이 앨범을 ‘nostalgia trip’ 이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무슨 이유에서였는지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되는 ‘Don’t Cry’ 등 “Alpha”의 수록곡들은 이 힘 빠진 공룡의 처진 어깨를 더욱 부각시키는 듯하여 많이 아쉽다. 그나마 John Wetton과 Carl Palmer가 Chris Squire와 Bill Bruford의 한창시절을 따라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역력한 ‘Roundabout’에서 어느 정도의 힘을 느낄 수 있지만, Asia 앨범 얘기를 하면서 이 앨범의 장점을 ‘Roundabout’이라고 하는 것도 좀 그렇지 않나.

본전 생각까진 아니지만 아쉬움을 지울 순 없을 라이브 앨범이다.

[Eagle, 2007]

Cyan “Pictures from the Other Side”

SI Music의 발매작들 가운데에서는 가장 높은 금액대에 거래되곤 하는 앨범이긴 한데 애초에 SI Music 발매작들을 그 돈 주고 모으려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면 저게 말이 되는 가격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걸 한 20년 전 중고로 만원 주고 샀던 건 그때야 몰랐지만 꽤 좋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받아줄 이는 별로 없겠다만 자랑으로 하는 얘기다.

훗날 Magenta의 핵심으로 이름을 날리…는 정도까진 아니지만 브리티쉬 프로그의 주목할 만한 이름 정도로는 명함을 내밀었던 Robert Reed의 원맨 프로젝트인데, 훗날 Magenta에서도 마이크를 잡게 되는 Christina Booth가 여기서도 Nigel Boyle와 함께 보컬을 맡고 있다. 이 Nigel Boyle은 Just Good Friends의 보컬로도 활동했던 나름 잔뼈 굵은 인물이라는 게 넷상의 설명인데, 나로서는 전혀 생소한 이름인지라 그냥 Robert Reed가 이름값 무일푼이던 시절 나름대로 실력자들을 발굴해서 만든 프로젝트…정도로 이해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음악은 비교적 70년대 프로그의 그림자가 짙었던 Magenta와는 달리 좀 더 80년대 네오프로그에 다가간 스타일에 가깝다. 마냥 듣보잡인 것처럼 소개해서 그렇지 저 Nigel과 Christina의 보컬도 준수하고, 적당히 팝적이고 과장되어 있지만 심포닉한 기운도 잊지 않은 건반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특히나 Marillion 따라잡기를 꽤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Solitary Angel’이나 심포닉 네오프로그 밴드로서의 지향점을 명확히 보여주는 ‘The Guardians’가 인상적인 편인데, 그러다가 앨범의 마지막 ‘Nosferatu’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프로그메탈 연주는 준수하면서도 갑자기 왜 이런 게 나오나 하는 어리둥절함을 던져준다. 힘쓴 건 알겠는데 나 같으면 다음 앨범에 넣었을 것이다. 말하고 보니 다음 앨범이 나올 거라 장담하긴 좀 어렵긴 했겠구나.

[SI Music,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