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sheim “Casting Shadows”

Depeche Mode 이후의 신스팝 밴드들이 대개 그랬듯 Depeche Mode 아류라는 식의 딱지를 떼어낼 순 없었지만 그렇게만 얘기하기에는 좀 많이 억울했을 독일 신스팝 듀오의 마지막 앨범. Depeche Mode도 “Some Great Reward”부터는 마냥 댄서블한 신스팝 밴드로 부르기엔 많이 어려워진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Wolfsheim의 음악은 처음부터 이미 그보다 더 어두운 스타일이었다. 딱히 팝적이지 않은 적도 없었지만 내놓는 앨범의 어느 정도는 항상 다크웨이브에 흡사할 정도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Casting Shadows”도 다르지 않다. 굳이 차이점을 찾는다면 전작에 비해서 은근히 다채로워졌다는 점인데, 은근히 트랜스도 섞여들어가고(‘Care For You’), 락스타를 꿈꾸던 Depeche Mode를 의식한 듯한 모습도 있으며(‘I Won’t Believe’) 원래 잘 하던 것도 잊지 않고 보여준다(‘Kein Rück’). 하지만 아무래도 이 듀오의 팬베이스의 절반은 Peter Heppner의 음울한 목소리일 것이고, 다양하다지만 결국 앨범을 관통하는 멜랑콜리함은 일관된만큼 막상 앨범을 다 듣고 나서 그런 차이점이 얼마나 다가올지는 의문이다. 가끔은 Human League의 업데이트된 버전 같았던 “Spectators”에 비해 이 앨범이 좀 더 심심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때문일지도? 하지만 21세기에 여전히 신스 팝(과 Strange Ways의 발매작들)을 듣는 이들이라면 그게 큰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Depeche Mode는 2001년 “Exciter”를 내놓고 바야흐로 커리어의 바닥을 찍고 있던 시절이었다. 적어도 이 앨범이 나오던 시점에서는 Wolfsheim이 Depeche Mode보다 세련된 사운드를 구사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라면 뭐 당신 말씀이 맞겠죠.

[Strange Ways, 2003]

Heavy Load “Riders of the Ancient Storm”

스웨덴 헤비메탈의 전설이며 훗날의 Candlemass나 Hammerfall같은 밴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던 밴드…라지만 난 국내에서 이 밴드가 참 좋더라 하는 사람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내 주변에서 그 원인을 바라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뉘었는데, 하나는 바야흐로 NWOBHM의 흐름이 힘을 얻어가던 시절 이 스웨덴 밴드가 주목받기에는 내노라 하는 밴드가 시장에 너무 많았기 때문에 유럽권도 아니고 국내에서 이 밴드를 주목하기는 쉽지 않았을 거라는 시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냥 이 블로그 주인장이 인간관계가 겁나게 좁아서라는 시각이었다. 후자에 대해 딱히 반박하긴 어렵긴 하지만 그래도 둘 중에 정답을 고른다면 전자일 것이다.

어쨌든 올드스쿨 헤비메탈 클래식으로 손꼽기 충분한 “Stronger than Evil” 이후 40년만에 나온 이 복귀작은 그래도 밴드의 한창 시절의 에너지를 잃지 않고 잘 보여주는 편이다. 레이블도 No Remorse이고 밴드도 최신의 경향 같은 데는 별로 관심없을 밴드인만큼 스타일도 80년대 초반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기본적으로 화끈함을 잊지 않은 ‘전형적인’ 류의 헤비메탈이지만, ‘We Rock the World’의 살짝 블루지한 기운을 끼얹은 Black Sabbath풍의 리프나, Deep Purple 스타일로 Amon Amarth풍의 테마를 풀어내는 듯한 ‘Walhalla Warriors’의 스타일, Tony Iommi와 Ritchie Blackmore의 그림자 역력한 솔로잉 등은 이 밴드가 관심 있는 분야는 40년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말하자면 흘러간 메탈 밴드의 40년만의 복귀작으로는 더할나위없는 앨범일 것이다. 하긴 Heavy Load를 기억하는 이들이라면 일단 여전히 귀에 잘 박히는 밴드 특유의 코러스만으로도 이 앨범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늙기 전에 몇 장 더 냈으면 좋겠다.

[No Remorse, 2023]

Sophie Lloyd “Imposter Syndrome”

Sophie Lloyd는 요새 여기 저기서 ‘성별을 떠나 가장 주목할 만한 신예 록/메탈 기타리스트’ 식으로 주목받는 여성 연주자다. 유튜브 구독자만 백만명이 넘고 최고조회수는 5백만도 훌쩍 넘어간다니(반면 이 블로그가 하루에 몇 명 들어오더라)는다니 그냥 인플루언서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앨범을 정말 내놓고 있으니 이 시대에 젊고 나름의 실력을 갖춘 뮤지션이 시장에 진입하는 또다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저 Autumn Records라는 곳도 인터넷에 의하면 Sophie Lloyd의 앨범 말고는 낸 게 없으니 그냥 자주제작일 것이고, 인플루언서가 아니라 ‘유튜브 잘하고 음악과 유튜브 중 뭐가 본업이 헷갈릴 정도지만 어쨌든 음악에는 진심인 뮤지션’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음악은 기대보다 더욱 괜찮다. 이 분이 노래실력이 어떤지는 잘 모르지만 일단 노래는 전부 다 게스트를 초빙하고 본인은 연주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돋보이고(그런 면에서 Yngwie Malmsteen과 Paul Gilbert는 가끔은 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 뮤지션이 블루스부터 헤비메탈까지 꽤 다양한 음악을 들어 왔음을 보여주는 부분도 다양하다. ‘Do or Die’의 기대 이상으로 메탈릭한 리프에 살짝 놀라고, 테크니컬하지만 또 과하지는 않게 넣어주는 솔로잉도 돋보인다. Trivium의 Matt Heafy가 마이크를 잡은 ‘Fall of Man’에서는 청자의 취향이야 어쨌건 스래쉬풍 묻은 리프와 출중한 보컬도 기대보다 귀에 잘 들어온다. 곡들이 전반적으로 클라이막스가 약해 보일 정도로 단조로운 면이 있다는 게 문제긴 한데, 뭐 젊으니까 다음 앨범을 기대하도록 하는 힘은 충분해 보인다.

다만… 자주제작이라 그런가 피지컬을 꽤나 비싸게 판다. 본인 생각이야 모르지만 이 분 정도면 부족하진 않을텐데 CD를 13파운드에 팔아먹으니 사는 입장에서는 본전 생각이 조금 드는데, 중고시장에서 앨범이 은근히 가격이 빨리 뛰는 편인만큼 큰 맘 먹고 한번 구해봐도 좋을지도.

[Autumn, 2023]

Negative Bias, The “The Seven Seals of Saligia”

사실 블랙메탈스럽지 않은 이름이다. 알고 있는 건 이 밴드가 Golden Dawn과 스플릿 앨범을 냈었다는 것과, Dreamlord가 1집에서는 베이스와 기타로 참여했었다는 점이다. 포지션만 봐도 알겠듯이 Golden Dawn처럼 라이브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스튜디오형 오스트리아 밴드로 보인다. 밴드명이 부정 편향성이라면 아무래도 공부 좀 한 인텔리들이 하는 밴드가 아니겠나 싶지만 의대 근처에도 못 가 봤던 Carcass의 가사가 어땠었는지 생각해 보면 함부로 단정하기 어렵다. 그런 면에서 인텔리 티 팍팍 내면서 가사 제대로 썼던 블랙메탈의 사례를 꼽는다면 단연 Solefald가 첫손가락이 아닐까 싶다. 각설하고.

밴드가 ATMF를 나와서 새로운 레이블에서 내는 첫 앨범인 이 3집도 기존 앨범들과 스타일은 크게 다르지 않다. Dreamlord와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사실 심포닉과는 별 상관이 없는 스타일인데, 그나마 ‘Among Dark Suns Incubations’ 같은 곡의 챈트에서 심포닉의 흔적을 볼 수 있지만 Golden Dawn과 달리 클래식한 기운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The Wage of Sin is Demise’ 같은 곡을 보면 꽤나 변화무쌍한 비트를 제외하면 노르웨이의 거목들에게 빌려온(달리 말하면 무척 전형적인 류의) 리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찌 들으면 Morbid Angel 물을 먹으면서 블랙메탈 리프를 버린 Behemoth가 블랙메탈의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전개는 지금처럼 복잡하게 나아갔다면 내놓았을 법한 스타일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특별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저 스타일을 깔끔한 녹음으로 무척 완성도 놓게 내놓고 있는지라 블랙메탈 팬이라면 고개를 끄덕이며 듣기에는 충분하다. 기대보다도 더욱 웰메이드라서 듣고 조금 놀랐다. 요새 Vendetta Records가 무척 좋아지고 있다.

[Vendetta, 2023]

Savage Grace “Ride Into the Night”

Hooked on Metal Records는 80년대 헤비메탈의 hidden gem을 다시 빛보게 만들겠다는 야심찬 기획으로 시작했지만 Savage Grace의 앨범들을 재발매한 이후의 활동은 누가 봐도 많이 지지부진해 보인다. 좀 더 근본적인 얘기를 하자면 Savage Grace는 hidden gem 소리를 듣기에는 꽤 유명한 편이니 이 쯤 되면 레이블의 기획은 좀 많이 머쓱해진다. 그래도 재고가 많지는 않아도 나쁘지 않은 앨범들을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팔고 있으니 쓸만한 디스트로라고 해주기는 충분하다. 레이블에다 발매작들은 좀 애매해도 가격은 싸다고 말하는 게 좋은 얘기인지는 잘 모르겠으니 그 얘기는 이쯤하고.

Savage Grace가 해체 전 마지막으로 내놓은 이 EP는 그래도 오리지널은 픽처디스크 뿐인데다 CD로는 Hooked on Metal 재발매가 유일하므로 Savage Grace의 발매작 중 hidden gem이라는 명칭에 가장 걸맞는 사례일 것이다. 사실 Savage Grace가 앞서 내놓은 앨범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아쉬운 퀄리티인 건 분명한데, 그래도 ‘The Healing Hand’의 극적인 구성(스피드메탈에선 이런 건 생각보다 흔치 않다)과 Chris Logue의 걸출한 보컬만으로도 앨범의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이 밴드가 재결성 이후 ‘이럴거면 뭐하러’ 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점을 생각하면 밴드가 마지막 기운을 짜내서 만든 앨범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CD 재발매반에는 존재도 몰랐던 1983년 데모까지 보너스로 들어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장쯤 구해보는 것도.

[Flametrader, 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