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eam Theater “Parasomnia”

Dream Theater의 바야흐로 16집. 사실 이젠 이 밴드의 신보가 나왔다고 시끌시끌해지는 분위기는 확실히 아닌 듯하지만(뭐 그건 꼭 밴드의 탓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지금까지 정규작이 라이센스될 수 있다는 게 밴드의 저력을 방증하는 점일지도. 그렇게 간만에 나온 메탈 라이센스작인데다 Mike Portnoy의 간만의 복귀작이라는 것도 관심을 끌기에는 적절해 보인다. 어찌 보면 “Images and Words”의 흑화된 버전처럼 보이는 커버도 눈길을 끈다. 과장 좀 섞는다면 이쯤 되면 커버의 저 여자분의 이름이 사실은 Alice나 Abigail이라더라도 믿을 만해 보인다.

음악은 기대보다 들을만했다. 실력이야 이미 더없이 검증된 밴드인만큼 기준점은 꽤 높은 편이고, Portnoy의 복귀작답게 Mike Mangini 시절의 앨범들에 비해서는 확실히 헤비한 편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James Labrie의 음역대가 예전같지 않은 이상 Labrie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연주도 어느 정도 묵직하게 가는 게 불가피할지도? 게다가 Portnoy가 참여했던 마지막 앨범이었던 “Black Clouds & Silver Linings”의 오프닝이었던 ‘A Nightmare to Remember’의 테마를 확장한 컨셉트 앨범이라고 한다. 덕분인지 곡을 끌어가는 방식 자체는 확실히 파워메탈스러워진 부분들(특히 ‘Midnight Messiah’의 후반부는… 이 분들 요새 Helloween 들으시나 싶기도 하다)을 제외하면 밴드의 최근작들과 많이 달라 보이지 않음에도 앨범의 전반적인 인상은 뭐가 됐든 밴드가 그네들의 ‘좋았던 시절’을 지금에 와서 다시 선보인다는 것이다. Jordan Rudess가 이만큼 자제하는 밴드의 앨범도 생각해 보면 꽤 오랜만일 것이다.

말하자면 “Train of Thought” 이후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어두운 분위기의 앨범이고, Portnoy의 복귀작에 가질 법한 기대감만큼은 충족시킬 수 있어 보인다. 얘네는 늘 똑같다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런 이들은 아마 이 앨범을 사지 않았을 테니 그냥 웬만하면 좋게 넘어가자. 잘 팔려야 앞으로도 라이센스가 되지 않을까.

[Inside Out, 2025]

Defeated Sanity “Chronicles of Lunacy”

2024년은 평소보다 데스메탈을 좀 덜 들었던 해인 것 같은데 어쨌든 내 짧은 편력 안에서 2024년의 데스메탈 한 장이라면 아무래도 이 앨범이다. 아무래도 1집이 나온 게 2004년인지라 데스메탈의 선구자들과 보통 같이 얘기되는 편은 아니지만 활동 기간만 보면 그래도 이제 30년을 넘어가는 이 관록의 독일 밴드는 “The Sanguinary Impetus”를 마지막으로 Willowtip을 떠나 Season of Mist에서 앨범을 내기 시작했으니 이제는 바야흐로 이 장르에서는 메이저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례라고 할 수 있을지도? 물론 이 무지막지한 스타일에 메이저란 단어를 그냥 갖다붙이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다. 그만큼 많은 이들이 주목한다는 의미 정도로 해 두자.

이 밴드의 특징은 테크니컬데스와 브루털데스가 적절히 뒤섞인 류의 음악을 하면서도 근래의 많은 밴드들과는 달리 데스코어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인데(물론 올드스쿨 스타일도 아니긴 하다), 그런 방향성은 동일하지만 이번 앨범에서는 좀 더 극적인 구성을 가져가면서 브루털함은 좀 덜어냈다는 느낌이 든다. 말하자면 “Reign in Blood”를 듣다가 “South of Heaven”을 들었을 때의 이질감과 비슷하려나? 그렇다고 느슨해졌다는 뜻은 아니고, “Disposal of the Dead / Dharmata”때부터 보여준 프로그함과 “The Sanguinary Impetus”의 아방가르드 스타일, 밴드 초창기의 좀 더 전통적인 크로매틱 스케일의 데스메탈 스타일(특히 ‘Heredity Violated’) 등 다양한 모습들이 꽤 변화무쌍하게 등장한다. ‘Amputationsdrag’ 같은 곡은 밴드의 커리어를 통틀어서도 가장 변화무쌍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이기는 한데… 아예 프로듀서까지 Colin Marston(Gorguts의 그 분)을 모셔온 거 보면 아예 이런 쪽으로 나가버리려나 하는 걱정도 된다. 암만 그래도 Defeated Sanity가 브루털데스가 아닌 프로그레시브를 연주하는 건 별로 듣고 싶지 않다. 워낙 잘 뽑혀서 드는 노파심일 것이다.

[Season of Mist, 2024]

Skramasax “Dark Powers”

이름을 뭐라고 읽어야 하는지도 애매한 이 체코 밴드는 1991년에 본작만을 내고 해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밴드 페이스북 페이지가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는 걸 봐서는 해체까지는 아니고 앨범만 못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아니면 친목상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었을지도). 그래도 이젠 Shah나 Torr 정도로 나름 그 동네에선 레전드 소리 듣는 밴드들은 이런저런 얘기들이 꽤 알려져 있지만 이런 밴드는 알려진 게 딱히 없다. 후대의 청자로서는 그저 저 맥락 없이 붕 뜬 얼굴이 인상적인 커버를 보면서 대체 뭔 생각으로 앨범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짐작할 뿐이다.

음악은 사실 뻔하다. 이 시절 독일 스래쉬가 상대적으로 헤비함이나 공격성에 치중했다고 하면 체코의 이 시절 스래쉬는 좀 더 스피드에 치중한, 말하자면 스피드메탈과 스래쉬메탈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법한 형태를 자주 보여주는 편이고, 이 밴드도 그런 면에서는 그리 다르지 않다. 굳이 개성을 찾는다면 체코 밴드답지 않게 Metallica의 그림자(그 중에서도 “Ride the Lightning”)가 더 짙다는 정도? 하지만 Metallica의 서사적인 구성력 같은 건 전혀 따라가지 못하므로 지나친 기대는 곤란하다. 다만 심플한 전개의 곡을 인상적인 멜로디와 적당한 트리키함을 두루 갖춘 리프로 뭔가 있어보이게 풀어내는 능력(특히 ‘Smrtící znamení’)은 확실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이 밴드의 MVP는 혼자서 다른 밴드의 트윈 기타에 딱히 밀리지 않을 정도로 역할을 해낸 기타리스트 David Macek일 것이다.

고음은 잘 올라가지만 아무래도 연주와는 겉도는 Josef Puškáš의 보컬만 참아낼 수 있다면 어지간한 스래쉬 팬이라면 일청을 권할 만한 재미는 분명할 것이다.

[S&M, 1991]

Stranger Vision “Faust – Act I Prelude to Darkness”

Stranger Vision은 이탈리아 멜로딕 파워 메탈 밴드…정도로 얘기하는 게 맞을 것이다. 요새 보면 James Labrie가 게스트로 참여했다는 게 주요 광고 포인트인지라 프로그레시브 메탈인가 착각하곤 하고, 그런 구석이 아예 없는 거 아니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음악을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 부르는 건 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이래저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신경쓴 기색이 있는 멜로딕 파워메탈 정도로 얘기하는 게 맞아 보인다.

그래도 “Faust – Act I Prelude to Darkness”가 여태까지 나온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프로그한 축이라는 것도 분명해 보인다. “Poetica”도 T.S. Eliot의 작품을 소재로 했다고는 하지만 이번에는 아예 괴테의 그 파우스트를 컨셉트로 내세우는데, ‘Strive’의 리프부터가 파워메탈과 프로그레시브 메탈의 경계선에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Look Into Your Eyes’ 같은 곡이 이 밴드의 본업은 프로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지만 ‘Dance of Darkness’처럼 좀 더 복잡한 구성을 보여주는 곡에서는 또 생각이 좀 달라진다. 정작 이 곡에는 James Labire가 참여하고 있지 않은데, ‘Nothing Really Matters’가 아니라 이 곡에 참여해서 제대로 소화했다면 진짜 회춘 소리를 들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전반부가 좀 더 스트레이트하다면 후반부는 극적인 구성을 가져가는 데 신경쓰는데, 딱히 앨범에 일관된 분위기까지는 잘 모르겠는지라 이 앨범이 컨셉트 앨범으로서 괜찮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결국 암만 괴테를 내세워도 그냥 웰메이드 파워메탈 정도로 소개하는 게 맞을 것이고, 사실 그 정도만으로도 앨범을 즐기는 데는 충분할 것이다.

[Self-financed, 2025]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

김동인은 “광염 소나타”에서 살인에 이르기까지 별별 범죄를 다 저지르면서 걸작을 남기는 예술가의 모습을 그리면서 걸작을 낳는 예술가의 광기에서 비롯된 범죄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날렸다. 그러면 더 나아가서 그 예술가가 예술이라고 펼쳐놓은 행위가 범죄에 해당한다면 어떠할 것인가? 우리의 토머스 드 퀸시는 당대의 이름을 날리던 탕아답게 논쟁의 여지가 없도록 그 범죄를 살인으로 설정해 놓았다. 굳이 특정 사회적 배경에서가 아니라 아마도 거의 모든 시대와 사회에서 범죄로 볼 것이 분명할 사례는 살인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럼에도 이 수기스러운 소설의 화자는 살인 애호가일 뿐, 스스로는 절대적 도덕성을 추구한다고 말하고 있다는 점이고, 그러면서도 ‘뛰어난 살인’은 ‘웅대하고 숭고한 경지’에 이르는 예술이라고 밝히면서 ‘띄어난 살인’을 판단하기 위한 기준과 그에 해당하는 다양한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며, 그 판단 기준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의 사례와 많이 닮아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방향은 다르지만 “감시와 처벌”에서 푸코가 제시하는 스펙터클과도 비슷한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오늘날 TV에서 가상의 이야기일지언정 그런 류의 스펙터클을 쉽게 볼 수 있다. OTT만큼 자극적인 맛을 따라다니는 것도 없다.

하지만 맛있는 거 찾아 먹다 보면 이거 건강에 안 좋은 건지 신경쓰이기 마련이라,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요구가 상식처럼 얘기되는 세상이 머릿속에 함께 떠오르고, 그러다 보면 애초에 저 요구가 정언명령처럼 되는 과정에서 나왔어야 할 이런저런 물음이나 충돌들이 어느 정도는 생략되어 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결국 심연을 들여다보다가 심연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경계를 놓치지 않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 어디까지 해야 잡아먹히지 않는가? 그걸 답하지 못한 많은 사례들이 결국 악인에게 서사를 주지 말라는 요구를 만들어냈을지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는 이 출판사가 내놓은 많은 역서들 중에서 시의성이라는 면에서는 본작만한 사례가 없을지도.

그런데 이런 책 읽고 시의성을 말하고 있으니 난 출판 쪽 일 하면 정말로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토머스 드 퀸시 저, 유나영 역, 워크룸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