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gotten Gods “Memories”

클래식 록과 네오프로그에 일렉트로니카와 포크를 버무린 음악을 자처하고 있는 영국 밴드의 데뷔작. 그런데 Dream Theater 짝퉁 밴드들이 예산부족으로 가내수공업으로 적당히 커버 때우면서 흔히 쓰곤 하는 저 폰트가 무척 눈에 거슬린다. 사실 Dream Theater도 저 폰트도 이 점에 있어서는 죄는 없겠고, 앞서 이 데뷔작을 들어봤다는 이에 의하면 Rush 좋아하면 꽤 괜찮을 것이라는데 어쨌든 첫인상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하필 또 영국 출신인지라 앨범을 파운드화(와 가볍잖은 배송료)로 사야 한다는 단점도 있다. 현실은 이렇게 대개 냉혹하다.

그런데 음악은 기대보다 괜찮다. 사실 Rush를 갖다 댈 것은 아닌 것 같고 스타일상으로는 “Beware of Darkness” 시절의 Spock’s Beard와 Big Big Train(또는 좀 더 밝은 분위기의 IQ) 같은 음악을 잘 버무린 듯한 음악인데, ‘Pillars of Petra’ 같은 중동풍 짙은 곡을 제외하면 아무래도 둘 중에서는 후자에 가까워 보인다. Mark Cunnigham의 보컬이 Neal Morse보다는 좀 더 AOR풍에 가까운 덕분도 있을 것이다. ‘Vigil’ 같은 곡의 서정에서는 Camel의 그림자를 떠올리는 이도 있겠다. 말하자면 잘못하면 서정에 가라앉아 징징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는 스타일인데, 그래서인지 댄서블할 정도의 에너제틱한 전개에 잠시 서정을 뒤로 하고 고음을 질러주는 Cunningham의 보컬이 돋보이는 ‘Rose and Pink’ 가 앨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이 밴드가 주목받을 가능성은 어쨌든 낮겠지만 돈을 건다면 주목받는다에 걸고 싶다(만 돈이 없구나). 꽤 즐겁게 들었다.

[Self-financed, 2024]

Nina & Ricky Wilde “Scala Hearts”

Nina Boldt와 Ricky Wilde 듀오의 첫 앨범. 물론 둘 다 잘 모르겠으므로 이렇게 소개하면 정말 하나마나한 얘기일 것이고… Nina Boldt는 그래도 독일에서는 꽤 이름 높은 팝/뉴웨이브 뮤지션이라 하고, 영화 “Drive” OST에도 참여했다고 하니 나름 인정받는 이름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그래봤자 나로서는 이 분이 이 레이블에서 나오는 이런저런 신스웨이브 앨범들에 자주 목소리를 빌려주신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만.. 그 앨범들의 퀄리티들을 생각하면 어쨌든 이 이름에 신뢰를 보낼 이유는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정말 대체 누군가 싶은 Ricky Wilde는 Kim Wilde의 남동생…이고, 나야 전혀 몰랐지만 위키에 의하면 70년대 초반 겨우 11살에 데뷔 싱글을 내고 Donny Osmonds에 비교되기도 했으며 Kim Wilde의 성공적인 활동을 뒤에서 떠받쳤던 인물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좋게 보더라도 한때 화려했지만 지금까지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을 80년대풍 ‘숨겨진 실력자’ 정도로 말하면 맞으려나? (Kim Wilde에 대해 내가 아는 바가 그 정도다) 말하자면 어쩌다가 이 둘이 듀오로 묶였는지부터가 사실 좀 궁금해진다. 레이블 컨셉트에 맞으면서 너무 비싸지 않고 하지만 이름만으로도 관심받을 만한 조합을 궁리한 결과물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음악은 특별할 것까지는 없는 80년대풍 팝 록의 향기 강한 신스웨이브…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첫 곡부터 Trevor Horn이 참여한 그 시절 디스코 트랙의 커버인데다 ‘Causeway’ 같은 곡은 듣자마자 Roxette 같은 그룹을 떠올리게 하고, ‘Living In Sin’은 보컬만 제외하면 좀 더 어두운 분위기로 무게잡는 Bryan Adams처럼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니 저 ’80년대풍 신스웨이브’를 좋아하는 이라면 반길 만한 스타일을들 두루 갖춰놓은 앨범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런 면에서는 타겟 소비자군을 정확히 겨냥한 결과물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 타겟 소비자군이 얼마나 되는지는? 그거야 나도 모르겠다. 이 앨범에 대한 얘기가 잘 안 보이는 걸 보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하긴 기대도 안 하긴 했지만 아쉬운 일이다.

[NewRetroWave, 2023]

They Eat Their Own “They Eat Their Own”

They Eat Their Own의 유일작. 메탈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Nirvana 등을 위시한 얼터너티브의 물결이 바야흐로 몰려올 시점이었다랄 1990년에 나온 인디/얼터너티브 밴드지만 그렇다고 이 앨범이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는 광경은 딱히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인터넷의 힘을 빌어 보아도 일단 밴드명이 저렇다보니 검색 자체가 잘 되는 편이 아닌 데다, 어쩌다 보이는 흔적들도 인기는 되게 없었지만 그래도 음악은 괜찮았다 식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정작 이 앨범에 대해 할 수 있는 얘기를 생각해 보면 저 정도 수준에서 더 나아갈 만한 게 별로 없어 보인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채식주의자 여성보컬 Laura B.의 카랑카랑함이 돋보이는 LA 출신 밴드이다보니 아무래도 연상되는 것은 “Los Angeles” 시절의 X이고(물론 노래는 Laura B.가 훨씬 잘한다), Ray Manzarek의 유려한 오르간 같은 건 찾아볼 수 없지만 대신 좀 더 하드록의 기운이 깃든 후끈한 리프가 있다. 어쨌든 ‘Like a Drug’ 원히트원더가 아니냐고 한다면 반박할 건 없지만 1년만 늦게 나왔더라도 그래도 앨범 한두 장은 더 낼 수 있었을 만한 밴드였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런 음악에서 펑크물 좀 빼고 차트에서 먹힐 만한 달달함을 더한다면 Goo Goo Dolls 같은 스타일이 나오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이들의 34년간의 판매고를 끌어모아 봐야 Goo Goo Dolls의 발끝에도 비비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앨범의 백미를 꼽는다면 단연 ‘Like a Drug’겠지만 사실 ‘Better Now’나 ‘Cancer Food’ 같은 곡이 에너제틱하다는 면에서는 더 나아 보이고, ‘Locked Up’의 은근 트리키한 연주도 메탈바보로서 그리 거부감이 없다.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Relativity, 1990]

Pestilence “Malleus Maleficarum”

Pestilence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데스메탈 팬으로서 그렇다랄 수밖에 없고 이 밴드가 데스메탈의 역사에서 중요한 밴드라는 점에 이견이 있는 사람도 아마 ‘거의’ 없겠지만(뭐 투표마다 반대표를 던지곤 하는 반골은 있는 법이니까) 이 밴드의 음악이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한 데스메탈이라 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아무래도 밴드가 데뷔했던 1988년은 스래쉬메탈의 힘이 살아 있는 시절이었기 때문일 것이고, 그러니 이 앨범이 데스메탈의 전형보다는 차라리 스래쉬메탈과의 경계선에 가까워 보이는 음악을 담고 있는 건 그리 이상할 일도 아니다. 하지만 데스메탈 팬으로서 Martin van Drunen의 데뷔작을 데스메탈 앨범이 아니라고 하는 말이 입에서 잘 안 떨어지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고로 내 기준에선 이 앨범은 엄연한 데스메탈이다. 물론 아니라고 한다면 당신 말씀이 맞겠습니다만 일단 넘어가고.

밴드의 지적인 접근이 가시화된 “Testimony of the Ancients” 이전의 이들의 사운드는 테크니컬하지만 원초적인 형태의 데스래쉬에 가까운 편인데, 그런 면에서 가장 흔히 비교되는 앨범은 Sepultura의 “Schizophrenia”이지만, “Morbid Visions”의 블랙적인 면모가 사라지지 않은 “Schizophrenia”에 비해서는 “Malleus Maleficarum”이 좀 더 장르의 전형에 가까우면서 세련된 진행을 보여주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밴드는 ‘Parricide’나 ‘Subordinate to the Domination’같은 장르의 클래식과 ‘Chemo Therapy’ 같은 어쿠스틱 인스트루멘탈을 같은 앨범에 위화감 없이 담아낼 수 있었고, 이런 점은 밴드가 향후 이어 나가는 새로운 시도들을 약간은 예기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Commandments’의 (프로그레시브하지는 않지만)드라마틱한 구성은 앨범의 전체를 망라하고 있는 모습이지만, 동시에 “Testimony of the Ancients” 이후 Pestilence가 나아갈 방향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Roadrunner, 1988]

Wampyrinacht “Night of the Desecration”

그리스 블랙메탈의 거물…이라고 하면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잠깐 들지만 거물이 아니라고 한다면 좀 더 곤란해 보이는 Necrolord(Naer Mataron과 Acherontas의 그 분)가 씬의 정력적인 워크호스 V.P.Adept를 끌어들여 굴리고 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 사실 아무래도 이 두 분의 가장 잘 알려진 활동은 Acherontas가 아닐까 싶고, 이거저거 열심히 하지만 그렇다고 A급이냐고 묻는다면 사견으로는 20%씩은 부족해 보이는 분들인지라 2017년의 “We Will Be Watching: Les cultes de Satan et les mystères de la mort”가 되게 좋았다는데 나로서는 이 2집이 처음이다. 하긴 정규반이라고는 딱 두 장 나왔으니 크게 문제될 것까진 없을 것이다.

단적으로 말한다면 그리스 블랙메탈에서 꽤 흔한 편인 헤비메탈의 그림자 강한 기타 리프 중심으로 오컬트한 분위기를 풀어나가는 류의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하긴 Naer Mataron 때부터 이런 리프에는 꽤 일가견을 보여준 Necrolord였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할지도? 하지만 정작 이런 스타일의 전형이랄 수 있는 ‘Thorns for My Damnations’에서는 쇼팽의 장송행진곡을 그대로 가져오고 있는데다, 소프라노 보컬에 바이올린까지 곁들이는 연주, 과장 좀 섞으면 뒤틀린 해먼드 연주를 재현하는 듯한 신서사이저를 동반한 분위기 스푸키한 프로그레시브 록처럼 들리기도 하는 ‘Night of the Desecration’ 같은 곡들은 이 밴드가 나름의 ‘헤비메탈풍’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음을 짐작케 한다. 그런 면에서는 그리스 블랙메탈의 전형같은 요소들을 전형적이지 않게 조합한 류의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Naer Mataron의 연주로 Septic Flesh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듯하다고 한다면 과장이려나? 확실한 건 이 밴드가 극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 꽤 일가견이 있다는 점이다. 멋진 앨범이다.

[Iron Bonehead,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