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lfclub “Canyons”

Wolfclub의 2024년작. 이런저런 매체들에서 지금의 트렌드는 바로 이거라는 듯 틈만 나면 레트로를 부르짖으며 신스웨이브를 조명하던 시절은 어느새 지나가버린 듯한데 그래도 Wolfclub은 어쨌든 살아남아 꾸준히 앨범을 내고 있다. “Just Drive” 연작과는 달리 부클렛도 없어지고 달랑 CD 한 장만 들어 있는 단촐한 디지팩이지만(바이닐은 안 사서 어떤지 모름) 어쨌든 나왔다는 게 중요하다. 솔직히 이 장르에서 바이닐이나 미니디스크가 아니라 CD가 띄엄띄엄 소량이라도 나오는 뮤지션은 정말 보기 드문 편인데 그런 면에서 아직은 CD는 레트로 소리를 들을 만큼 오래된 매체라고 보지는 않는가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신스팝보다는 AOR에 근접했던 “Just Drive” 연작과는 달리 다시 신스 팝에 근접한 음악을 보여주는데(달리 말하면 그만큼 80년대 느낌이 덜하다는 얘기도 된다), 특히나 ‘Inside Your Stars’나 ‘Take the Night’ 같은 일렉트로닉한 곡은 최근의 Wolfclub의 음악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모습이다. 하지만 ‘Good for Nothing’나 ‘Meet You After Midnight’처럼 기타의 비중은 줄다못해 거의 없어지긴 했으나 노골적으로 AOR스러운 곡도 없지는 않다(아무래도 The Police 느낌도 없지 않다). 결국 이 정도면 멜로디 멋들어지는 일렉트로닉 팝 정도로 얘기하는 게 더 알맞겠다 하는 생각도 드는데, 장르의 바람이 빠져갈지언정 아직은 아이튠즈 차트 등의 최상단에서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만큼 이 듀오의 팝 센스만큼은 이제 꽤 검증된 셈이 아닌가 싶다.

다만… 리버브 먹은 특유의 분위기 때문인지 드림팝이라는 얘기를 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인데 전혀 상관없는 음악이므로 그런 걸 기대했다면 그냥 넘어가도 좋을지도.

[NewRetroWave, 2024]

Another Life “Memories from Nothing”

Another Life는 우리에게는 Ribspreader나 Paganizer의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기는커녕 요새는 Magnus Karlsson의 짝퉁처럼 기억되기도 하는 Andreas Carlsson의 프로젝트이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밴드가 시작될 때부터 Andreas의 이름을 보고 이 밴드를 주목한 이는 적어도 내 기억에는 별로 없었다. 이 밴드가 시선을 끌었다면 Dan Swano가 리드기타에 키보드, 드럼에 마스터링까지 맡고 있다는 것이고, 역사는 꽤 오래 됐지만 활동은 거의 없다가 갑자기 2008년께부터 정력적으로 퀄리티 있는 앨범들을 내놓기 시작한 Vic Records에서 나왔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말하면서도 이런 것까지 그 때 뭐하러 샀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지만 어디 그런 앨범이 한둘이던가… 생각하면 크게 문제될 얘기는 아닐 것이다.

음악은 은근히 말랑말랑하고 감성적인 면을 강조하는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다. 특히나 Andreas의 낮은 톤이지만 누가 들어도 메탈 보컬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목소리 덕분에 적당히 밋밋하지만 듣기는 편한 전개가 돋보이는데, 그런 밋밋함을 극복하기 위함인지 중간중간 등장하는 솔로잉은 꽤 번뜩이는 데가 있다. 말하자면 그 시절 꽤 흔했던 고딕 무드가 강조된 평이한 전개의 프로그레시브 메탈… 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딱히 빛나는 곡도 없지만 딱히 떨어지는 곡도 없이 꽤 일관된 분위기를 유지한다는 점만은 앨범의 강점이라 할 수 있어 보인다. 어쿠스틱한 연주에 빛나는 솔로잉을 더해 분위기를 환기하는 ‘The End of Days’ 같은 곡이 밴드의 기량을 단적으로 보여주긴 하지만 2008년이면 사실 이런 정도 분위기를 멋들어지게 보여준 밴드는 이미 많이 경험한 이후였다.

그래도 나는 꽤 좋게 들었다. 사실 이 정도 역할 분배라면 Andreas가 아니라 그냥 Dan Swano의 프로젝트라고 하는 게 맞지 않나… 싶기도 한데, 데스메탈 외길인생 커리어에 외도 한 번 했는데 그거 다른 사람 거라고 하면 많이 속상할 테니 Andreas의 프로젝트라고 정리하는 게 맞아 보인다. 인터넷상에서 좀만 뒤지면 5천원(물론 배송료 별도)… 이하로 구할 수 있으니 관심있는 분은 한번쯤은 들어보는 것도 좋을지도.

[Vic, 2008]

Disincarnate “Soul Erosion”

이따금 얘기한 적이 있긴 하지만 나는 James Murphy가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데스메탈 기타리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이 분의 커리어가 대개 데스메탈에 편중되어 있기도 하고 그 중에는 데스메탈 역사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앨범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Cause of Death”나 “Spiritual Healing”, “Death Shall Rise”처럼) 그 앨범들에서 James Murphy의 역할은… 중요하긴 하지만 대체 불가한 역할은 아니었으며 결국은 훌륭한 솔로잉 능력도 겸비한 세션맨 수준 이상을 벗어나진 못한다는 게 사견. 그렇다면 이 저니맨 형님의 커리어에서 드물게(라기보단 사실상 유일하게) 자기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데스메탈 앨범이라면 결국은 “Dreams of the Carrion Kind”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Disincarnate마저도 James Murphy의 프로젝트성 밴드냐, 아니면 다른 사례들과 같이 원래 있던 밴드가 월드와이드 레벨로 보더라도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데스메탈 인력풀 가운데 마침 시간도 되고 실력도 되는 사람을 찾자니 James Murphy가 또 걸려든 것인지 논란이 없진 않은 듯한데, 밴드의 데모 녹음에까지 참여한 인사를 그냥 일개 세션맨이라고 한다면 좀 너무하지 않은가 싶다. 어쨌든 이번에 재발매가 돼 준 덕분에 이젠 나 같은 사람도 데스메탈의 그 소소한 역사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것만으로 일단 의미는 충분하지 싶다.

뭐, 데모라지만 Scott Burns가 프로듀스하기도 했고 음질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편이고, Alex Marquez(Malebolent Creation의 그 분)이 맡아 준 드럼 덕분에 데뷔작보다도 드럼은 좀 더 화끈한 구석이 있어 보인다. 데뷔작에서 다 들어본 노래이긴 하지만 데모답게 적당히 좀 더 거칠게 녹음된 연주도 그 시절 데스메탈에는 잘 어울리는 편이다. 애초에 “Dreams of the Carrion Kind”를 별로 안 좋아한 이라면 아무래도 그 ‘지나친 프로그함’이나 ‘밋밋한 보컬’이 이유일 테니 그런 이에게는 이 데모가 더 취향에 맞을지도. 재발매반에는 ‘Deadspawn’의 라이브도 보너스로 끼어 있으니 더욱 반갑다. 그 보너스까지 합해야 4곡에 20분 정도라서 본전 생각은 어쩔 수 없다는 게 문제긴 한데… 아마 그건 2024년에 Disincarnate의 이름을 보고 신난다고 앨범을 사는 사람 문제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넘어간다.

[Self-financed, 1992]

Leatherwolf “Street Ready”

데뷔 이래 지금까지 언제 빛본 적이 있었나 생각하면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캘리포니아 헤비메탈 밴드…라지만 은근히 살펴보면 생각보다 많은 유명인사들이 짧게나마 몸담았고 음악도 동시대의 최고였다기엔 뭔가 아쉬우면서도 웰메이드 소리를 듣기에는 충분했던 Leatherwolf가 그래도 가장 빛 좀 봤던 시절을 꼽는다면 이 3집일 것이다. “Endangered Species” 이후 메이저 맛을 잠깐이나마 보던 시절이기도 했고, 그런 덕분이었는지 소위 블루컬러 파워메탈에 가까웠던 음악은 이 앨범에 와서 적당히 헤어메탈 물을 먹으면서 좀 더 ‘차트 친화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긴 레이블이 Islands인데 계속 예전같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헤어메탈 얘기를 하긴 했지만 어쨌든 밴드의 본진은 정통 헤비메탈이었고, 트리플 기타 덕분인지(무슨 Iron Maiden도 아니고) 질주감이라는 면에서는 스래쉬까지는 아니더라도 여타 메탈 밴드들을 뛰어넘는다. 그러면서도 적당히 글램 분위기 깃든 탁월한 튠을 보여주기도 한다(‘Hideaway’나 ‘Thunder’). 그런 면에서는 W.A.S.P의 좀 더 착해 보이는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사실 ‘Rule the Night’ 같은 스피드메탈(이라기보다는 Accept풍)이나 뛰어난 헤비메탈 인스트루멘탈인 ‘Black Knight’ 같은 곡을 듣자면 왜 앨범을 굳이 이런 스타일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레이블은 좋아했을지 모르지만 Crimson Glory나 Fifth Angel 같은 류를 기대한 이에게는 다음 앨범부터는 안 사도 되겠다는 뼈아픈 감상을 얻었을 법한 구석도 있다.

그래도 나처럼 메탈이라면 줏대없이 이거저거 다 좋게 들리는 이에게는 이만한 앨범도 많지 않다. 멋대가리 없는 커버 덕분에 중고매장 악성재고로 오랫동안 먼지 뒤집어쓰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가성비도 훌륭하다 할 수 있겠다. 요새라고 비싸게 팔리고 있을 리 없으므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장 장만해 보심도.

[Islands, 1988]

Maria Barton “Rainful Days”

유명한 앨범 얘기 하는 김에 장르를 바꿔서. 물론 오리지널은 못 살 것 까지는 아니지만 일단 매물이 잘 안 나오는데다 나오더라도 LP 한 장에 150파운드를 호령하는 물건이므로 별로 생각 없었고… 하지만 이 시절 브리티쉬 싱어송라이터를 꼽는다면 으레 들어가곤 하는 앨범임은 들은 바가 있었다(어디서 들었는지는 기억 안 남). 말하자면 2012년에 Beyond the Moon에서 재발매되지 않았더라면 나 같은 사람은 아마도 들어볼 일 없었을 앨범이라는 얘긴데, 그러고 보면 재발매라는 영역에서는 한국이 다른 나라들에 견주어도 돋보이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하긴 그것도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니 이제 어디 가서 이런 얘기 하면 꼰대 소릴 면치 못할지어다. 여기까지 하고 넘어간다.

사진상으로는 80년에 웬 모드족인가 싶은 바가지머리 헤어스타일이 돋보이는 그냥 으레 볼 수 있었던 브리티쉬 여류 싱어송라이터처럼 보이지만 담긴 음악은 출중하다. Maria Barton의 어쿠스틱 기타와 보컬만으로 이루어진 ‘단정한’ 스타일의 포크인데, 이게 포크보다는 하드록/헤비메탈로 먹고 살던 레이블에서 나온 것도 의외지만(뭐 포크가 아예 안 나오는 곳은 아니었으니) 이 소박한 음악에서 허전함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의외다. 러브송도 있지만 그저 로맨틱함으로만 승부하는 앨범이 아니라는 점(‘One Time I went to Holland’이나 ‘When I’m a Spaceman’)도 마음에 든다. 메탈헤드 인생을 살다가도 가끔은 일반인 코스프레가 필요할 때라면 더할나위없는 선택이기도 한데… 뭐 그런 실용적인 측면을 떠나서 나는 아주 좋게 들었다. 감명받았다는 게 맞을 것이다.

[Airship, 1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