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iphal “For a Glory of All Evil Spirits, Rise for Victory”

폴란드 심포닉블랙 밴드. 뭐 보통은 심포닉블랙이라고까지 불리는 것 같진 않지만(사실 그 전에 이제는 이 밴드 얘기 자체를 찾아볼 수 없긴 하지만) Emperor나 Limbonic Art식 노르웨이 심포닉블랙의 그림자가 이 정도로 분명한 음악을 심포닉이라고 부르지 못한대서야 곤란하지 않나 싶다. 애초에 Darzamat의 Flauros와 Abigor가 중심이 된 밴드인만큼 이 음악을 들으면서 머릿속에서 Darzamat을 지우고 듣는 것도 쉽지 않다. 지금이야 둘 다 찾아듣는 이 없지만 Darzamat은 그래도 한 때 국내에서 블랙메탈 듣는다는 사람은 한번쯤 꼭 들어봐야 할 밴드로 추천되곤 하는 밴드였다.

그런데 이런 스타일로 연주하는 폴란드 밴드라면 사실 Darzamat 이전에 Christ Agony가 있었고, Darzamat이 좀 그랬지만 몰아치는 분위기보다는 거칠지만 적당히 리버브 먹이고 분위기 살리는 류의 블랙메탈인만큼 이 음악이 무척 인상적이라고까지는 못하겠다. ‘Winds of Stakes’ 에서처럼 멜로디가 돋보이지만 감출 수 없는 싼티는 적응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조금은 극복하기 어려워 보인다. 뭐 하긴 2024년에 Mastiphal을 찾아들을 이라면 그 정도 싼티에는 단련되어 있을 테니 큰 문제까진 아닐 것이다. Nuclear War Now!가 아직 선구안이 살아있던 2015년에 재발매했으니 구하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Baron, 1996]

Camerata Mediolanense “Atalanta Fugiens”

클래시컬 다크웨이브에서 Camerata Mediolanense는 가장 무거운 이름들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야 80년대 중반부터 혼자 이런 음악을 하고 있었던 Ataraxia와 Peter Bjärgö가 이끄는 Arcana 같은 사례들이 있겠지만, 클래식보다는 낭만성 짙은 던전 신쓰에 가까워 보이는 저 둘에 비하면 밴드 편성도 그렇고 좀 더 클래시컬한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호전적인 비트로 역동성을 이끌어내는 모습으로 나름의 개성을 보여준만큼 Camerata Mediolanense도 장르를 선도한다 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그러니까 사실 이 밴드의 음악을 설명함에 있어 굳이 포스트펑크를 끄집어내는 얘기들은 틀렸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더라도 오해의 여지가 무척이나 짙은 셈이다). 뭐 장르를 선도한다기엔 따라오는 이들이 별로 없다는 게 문제겠지만 그걸 이 밴드들 탓을 할 수는 없으니까.

이 밴드야 데뷔 때부터 이런 스타일 자체는 비교적 일관되게 가져온 편이었지만 그래도 전작인 “Le vergini folli”가 연주보다 보컬 하모니에 좀 더 기울어지면서 그나마의 공격성을 상당히 걷어낸 앨범이었다면 “Atalanta Fugiens”는 밴드의 기존 스타일로 다시 돌아갔다고 할 수 있겠다. 다시금 강해진 퍼커션의 힘은 ‘Corallus’의 위계 넘치는 사운드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는 편인데, 미니멀하지만 점차 고조되는 구성으로 힘을 보여주는 ‘Embryo Ventosa’ 도 있고, 확실히 파워풀해야 할 지점에서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편이다. 그런 면에서는 현재까지 나온 Camerata Mediolanense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Prophecy가 돈 쓴 티 나는 매끈한 레코딩 덕에 ‘싼티 심한 신서사이저에서 무슨 중세풍이란 말이냐’ 식의 비판도 해당하진 않을지니 그런 걱정을 하는 이라면 이 앨범을 한번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을지도.

[Prophecy, 2024]

Michael Moorcock & The Deep Fix “The New Worlds Fair”

Michael Moorcock 얘기가 나왔으니 이 분이 하시던 밴드도 간만에. 물론 이 분이야 작가로서 쌓아올린 커리어가 꽤나 묵직한 분이므로 이 분의 음악 활동을 그만큼 주목하긴 어렵지만 원래부터 Hawkwind 같은 밴드와 공연도 같이 하던 분인만큼 이 분의 음악 활동을 어느 작가의 잠시의 외도 정도로 치부… 하기는 좀 망설여진다. 하지만 록/메탈에서 소드 앤 소서리가 얼마나 중요한 소재인지를 생각하면 엘릭 사가와 이터널 챔피언 시리즈를 반지의 제왕만큼이나 금과옥조처럼 떠받들던 밴드들에게는 이 분이 직접 참여하는 앨범이라고 하면 외도고 나발이고 ‘오오 무어콕 오오!’ 하며 떠받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Michael Moorcock이 자신의 이름을 내세워 내놓은 이 밴드의 멤버들 면면도 그리 만만치 않다. 마치 자기 밴드마냥 대거 몰려온 Hawkwind의 멤버들(Nik Turner, Dave Brock, Simon House, Alan Powell, Simon King 등등)에 Snowy White 같은 거물도 빠질세라 이름을 올리고, Robert Calvert는 본인이 빠진 게 아쉬웠는지 무려 아내를 앨범에 참여시키는 인상적인 행보를 보여준다. 덕분에 음악은 당연할 정도로 Hawkwind의 기운이 강하지만, 그래도 사실 ‘Starcrusier’ 정도를 제외하면 Hawkwind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는 곡도 없어 보인다. ‘Come to the Fair’의 짤막한 포크록이나 ‘You’re a Hero’의 독한 유머를 섞어낸 컨트리, Simon House의 멜로트론에 힘입어 좀 더 프로그의 전형에 다가가는 ‘Dude’s Dream’ 처럼 생각보다 다양한 스타일들이 있다. 하긴 철저히 Moorcock이 쓴 이야기에 맞춰진 음악이니 그게 반드시 Hawkwind의 스타일일 필요는 없겠다.

그런 만큼 사실 가사를 읽지 않으면 재미는 반감되는 앨범이고, 솔직히 연주만 들어서는 화려한 멤버들의 면면이 조금은 아쉬워지는 수준이니만큼 한 번은 시간 내서 가사까지 읽어보며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긴 애초에 “Deep Fix”라는 이름부터가 Moorcock의 단편집 제목이니까 말이다.

[United Artists, 1975]

Maryson “Master Magician I”

Music is Intelligence 레이블을 꽤 좋아하는 편인데, 레이블 이름이 저래서 그렇지 딱히 지적이라고까지 느낀 발매작을 봤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적당히 프로그하면서도 듣기 편한 네오프로그나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주로 내놓았던 레이블인데, 사장이 애초에 평론가로 업을 시작했어서인지 대단한 명작까지는 안 나와도 망작 없이 일정 수준 이상의 앨범들을 열심히 내놓았던 곳…이라는 게 개인적인 평가다. 1999년에 망했으니 지금보다 음반점 돌아다니기는 훨씬 좋았던 시절에 활동했던 레이블이었고, 그러니까 이 인기 없었던 곳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각설하고.

물론 이 레이블의 최고 성공작은 Lanvall의 앨범들일 것이고, 그 다음으로는 Ivanhoe나 Anyone’s Daughter의 앨범들이겠지만, 만듦새로 본다면 Maryson이 내놓은 앨범들도 후보에 들 수 있어 보인다. 사실 스타일 자체로만 본다면 90년대 초중반 그리 돋보일 건 하나 없는 듣기 편한 류의 네오프로그였고 밴드도 두 장만 내고 잽싸게 망해버렸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멜로디나 심포닉을 두루 갖춘 네오프로그는 지나간 시절의 공룡 밴드들을 제외하면 그리 흔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애초에 작가였던 W.J. Maryson이 자기가 쓴 소설 “Master Magician” 시리즈를 소재로 만든 음악이니만큼 동시대에 이만큼 뛰어난 이야기꾼인 밴드도 드물었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는 수많은 프로그 뮤지션들 중에서 이 밴드를 이길 수 있는 경우는 대체 이 분이 왜 음악까지 손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Michael Moorcock 정도뿐이지 아닐까 싶다.

물론 원작 소설을 읽어보진 못했고, 심포닉하긴 하지만 사실 극적인 구성과는 좀 거리가 있는(달리 말하면 지나치게 잔잔한) 이 앨범이 프로그의 참맛을 보여준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나름 안정적인 리듬 섹션에 얹히는 단정한 멜로디, 그래도 가끔은 나름 ‘esoteric’한 분위기까지 내주는 키보드와 오케스트레이션은 네오프로그를 찾아듣는 이들이 원하는 구석을 잘 짚어주는 편이다. ‘The Legend Comes Alive’ 나 ‘Rad’s Song’처럼 단정한 어쿠스틱이 돋보이는 곡을 듣자면 중간중간 지나치게 늘어지는 키보드 소품들만 좀 줄였어도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긴 그게 될 거 같았으면 앨범 좀 더 내다가 망했겠거니 싶긴 하다만.

[Music is Intelligence, 1996]

Rainer Landfermann “Mehr Licht”

Rainer Landfermann이란 이름은 생소하지만 조금만 찾아보면 Bethlehem의 “Dictus Te Necare”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인물임을 알 수 있다. 물론 Bethlehem을 거쳐간 보컬들 중 가장 유명한 건 “Dark Metal”의 Andreas Classen이겠지만(Shining에서 보여준 모습도 있고), 그래도 가장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줬던 것은 “Dictus Te Necare”의 그 미친놈 보컬을 보여준 Rainer Landfermann이 아닐까 생각한다. 블랙메탈 한다고 그 사람도 음악마냥 사악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Dictus Te Necare” 시절의 Rainer의 보컬을 듣는다면 이 사람은 정말로 제정신은 아니지 않을까 생각할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이 무지막지한 개성의 보컬리스트는 그 개성 때문이었는지 이후 별다른 활동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아무래도 Bethlehem 시절의 인상을 지우면서 저렇게 튀는 보컬을 감당할 만한 밴드를 찾기는 어려워서이지 않았을까? Rainer는 2018년에 솔로로 나서서야 비로서 활동다운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고, 음악은 메탈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Bethlehem의 그것과는 무척이나 판이한 스타일이었다. 뜬금없을 정도로 재즈(만이 아니라 이것저것 다양한 장르들)물을 듬뿍 먹은 이 음악은 블랙메탈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었고, 덕분에 앨범에 대한 하마평들도 많지는 않았지만 시끄러운 편이었다.

아마 신보 이전의 워밍업일 이 EP도 그런 방향에서는 다르지 않다. 물론 의도적일 정도로 메탈을 배제한데다 전작의 전반에 감돌던 재즈물을 걷어내고 대신 고쓰를 더한 ‘Mehr Licht’가 전작과 비슷하다 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애초에 여러 가지 스타일이 괴팍하게 혼재하는 음악을 했던 만큼 이런 행보를 눈에 띄는 변화라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고쓰풍에 앞서 괴팍하게 휘몰아치는 모습을 보여주는 ‘Originalstimme’에서 전작의 모습을 지울 수 없는 것도 분명하다. 그런 만큼 Rainer의 솔로 활동을 즐겼던 이라면 이 EP를 즐기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다만… 2곡에 10분도 안 되는 EP가 38유로라니 본전 생각을 안 할 순 없는데, 어차피 잘 안 팔리겠다 고급스럽긴 했지만 CD를 30유로에 팔아먹던 전작에 비해서는 사정이 좀 나을지도? 가격은 가격이고 일단 앨범 자체는 예쁘게 잘 나왔으므로 넘어간다.

[Self-financed,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