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ürgeist “Reinvigorated Terror”

Natürgeist는 Morris Kolontyrsky라는 친구가 굴리는 원맨 블랙메탈 프로젝트이다. 이 Morris Kolontyrsky의 활동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Blood Incantation의 기타라는 점인데, 그 외에도 Spectral Voice에서도 묵직한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으니 마당발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 정력적인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주고 있는 뮤지션이다. 하지만 현재까지 프로젝트의 유일작인 이 데모를 구하게 된 건 그런 사실들을 다 알아보거나 했던 것은 아니고, 밴드 이름도 있겠다 자연인스러운 모습을 추구하는 게 자연스럽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도가 (많이)지나쳐 보이는 저 커버 때문이었다. 적당히 초점 날려 찍지 않았더라면 USBM 역사에 길이 남을 불멸의 커버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음악은 기대 이상으로 출중하다. “Transylvanian Hunger”를 연상케 하는 리프가 꽤 귀에 잘 들어오지만 곡을 이끌어나가는 건 꽤 자욱한 분위기의 사이키델리아를 구현하는 트레몰로다. 그러면서도 템포는 거의 느슨해지지 않고 심플하지만 단단한 베이스 위에서 나름대로 극적인 면모를 이끌어내는 모습이 숙련된 송라이터로서 Morris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Catatonic Stupor’가 보여주는 ‘eerie’한 분위기는 요새 블랙메탈에서 흔히 보이는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들었던 블랙메탈 데모들 중에서는 가장 인상적인 사례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Blood Incantation이나 Spectral Voice의 이름을 보고 그런대로 쓸만한 테크닉 등을 기대했다면 그 정도로 와닿지는 않을지도.

[Electric Assault, 2021]

Various “Ancient Meat Revived : A Tribute to Cold Meat Industry”

Cold Meat Industry는 블랙메탈 듣는다는 사람은 한번쯤은 손대보곤 하지만 정작 나오는 음악들은 메탈과는 그리 상관이 없는 곳이었으니, 이 블랙메탈 외길인생 레이블 둘이 뭉쳐 Cold Meat Industry 트리뷰트를 만든다는 건 전혀 이해 못할 것까진 아니긴 하지만 왜 굳이 쟤네 둘이… 정도의 생각은 든다. 뭐 지금이야 Roger Karmanik이 그간 만들었다가 그냥 쟁여뒀던 결과물들을 찔끔찔끔 내놓는 용도로 살아있는 수준이긴 하다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문 닫은 레이블도 아닌 만큼 이런 트리뷰트가 나오는 걸 Roger Karmanik이 좋아는 할까 궁금하기도 하다. 하긴 2016년이면 공식적인 발표만 없었지 다들 이 레이블 문 닫았다고 생각하고 있을 시점이었던 만큼 크게 문제 안 될지도 모르겠다.

일단 참여한 밴드들이 밴드들인만큼 곡들은 원곡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재해석돼 있다. 그나마 원래 하던 음악이 둠의 기운이 강했던 Spire의 ‘Death, Just Only Death…’의 커버가 비슷한 분위기를 가져가는 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In Slaughter Natives의 폭력적인 심포닉을 재현할 순 없겠다. 덕분에 원곡의 분위기를 기대하고 듣기는 어려울 앨범인데, 한편으로는 왜 블랙메탈 팬들이 이 메탈과는 담 쌓은 레이블의 음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Arcana의 클래시컬한 곡을 둔중하게 찍어누르는 비트의 블랙메탈로 바꿔놓은 Temple Nightside의 ‘Winds of a Lost Soul’은 Arcana의 곡에 꽤 괜찮은 ‘리프’가 숨어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앨범의 백미는 Brighter Death Now의 원곡을 원래 자기들 하던 스타일대로 답답할 정도로 자욱한 분위기의 둠으로 풀어낸 Grave Upheaval의 ‘Necrose Evangelicum’이겠지만, 어느 하나 섣불리 넘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게 다듬어져 있다. 솔직히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게 들었다.

[Nuclear War Now! / Iron Bonehead, 2016]

Anyone’s Daughter “Living the Future”

독일 프로그에 대한 ‘뭔가 딱딱하고 어려운 듯한’ 선입견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전형적인 사례(달리 말하면 독일이 낳은 Camel 짝퉁)로 흔히 소개되는 밴드이긴 하지만, Camel보다 겨우 1년 늦게 결성된 이 밴드를 그렇게만 소개하면 밴드 입장에선 꽤 억울하지 싶다. 하지만 결성만 빨랐지 밴드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앨범을 내놓은 건 1979년이었으니 말하고 보니 Camel과 같이 놀려고 한다면 그것도 또 많이 그렇긴 하다. 뭐 Camel에 비해서는 빛본 건 거의 없다시피한 밴드이니 적당히 봐주고 넘어간다.

그런 밴드의 역사를 생각하면 2000년 재결성 이후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프로그 물이 쫙 빠져 있는데, 그래도 뭔가 듣기 편해진 Porcupine Tree 같은 구석이 있었던 “Wrong”까지의 음악보다도 한 걸음 더 팝적으로 변한 이 앨범을 듣고 좋아할 사람보다는 본전 생각할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처럼 프로그 하던 형님들이 80년대에 연주한 아재들의 길티 플레져 스타일을 좋아하는 경우라면 이 앨범도 꽤 괜찮지 않을까 싶다. 에너제틱한 거야 기대하기 어렵지만(이 분들 연세를 생각한다면야) 멜로디는 어쨌든 귀에 잘 들어오는 편이고, 어쨌든 John Wetton 스타일이었던 Harald Bareth에 비해서는 새로운 보컬인 John Vooijs는 확실히 좀 더 말랑하고 팝적인 스타일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래서인지 이 앨범은 내가 들었던 이 밴드의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발라드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덕분에 Jimi Hendrix의 커버인 ‘Voodoo Chile’가 프로그레시브 메탈처럼 들릴 지경이니 이 정도면 그냥 Anyone’s Daughter식 AOR 앨범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밴드의 좋은 시절은 80년대 초반의 모습일 것이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데뷔작의 ‘Anyone’s Daughter’를 은근히 뒤튼 ‘She’s Not Just Anyone’s Daughter’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꼭 너네가 알고 있던 그런 모습만은 아니라는 밴드 본인들의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One World for You and Me’의 당혹스러운 힙합 사운드를 제외하면 나로서는 좋게 들었다.그런데 저 곡은 좀 많이 심각하긴 했다.

[Inakustik Music, 2018]

Kirlian Camera “Radio Signals for the Dying”

Kirlian Camera만큼 커리어 내내 탐미적인 스타일을 유지해 온 일렉트로닉 밴드는 매우 드물 것이라 생각한다. 말이 드물다지 이 밴드가 1979년부터 시작된 장르의 개척자 중 하나임을 생각하면 이만큼 일관된 커리어는 사실 유일하다고 해도 괜찮겠거니 싶다. 덕분에 Kirlian Camera에 대한 씬에서의 존중은 생각보다 더 높은 것처럼 보인다. Abbath와 The True Endless 등에서 베이스를 잡았던 Mia Wallace가 이 ‘팝’ 밴드에 세션으로 합류한 건 그런 의미에서 보여주는 바가 있을 것이다. 하긴 이 분이 합류한 것도 2018년이니 이젠 그리 신기할 얘기도 아니다.

3년만의 신작은 더블 앨범으로 나왔는데, 밴드가 늘 그랬듯 탐미적인 류의 다크-팝 스타일이지만 그 범위 안에서 나타나는 모습들은 꽤 다채롭다. 앨범마다 꼭 하나 이상은 등장하던 사이키한 앰비언트풍의 ‘Genocide Litanies’나, 몽환적이지만 무척이나 팝적인 ‘The Great Unknown’, 밴드의 어두운 측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Il Tempo Profondo’, 네오클래시컬 튠이 돋보이는(덕분에 잠깐 Ataraxia 생각도 나는) ‘Madre Nera’ 등은 사실 밴드의 다른 앨범에 수록되었다고 하더라도 위화감이 없을 정도의 곡들이지만, 이 앨범에서 서로 잘 어울려 나름의 분위기를 이뤄낸다. Elena Fossi의 적당히 관능적인 보컬이 더해지면 이제 음악은 고쓰의 경계까지 넘본다. 사실 이런 건 모두 40년 넘게 밴드가 보여준 모습이기는 하지만 Depeche Mode의 ‘Wrong’ 커버에 이르면 이 스타일이 아직도 충분히 세련되게 들린다는 점도 더욱 명확해진다.

700장 한정 아트북에는 보너스 한 장이 더 들어가 있다는데 한 장 또 사야 하나…

[Dependent, 2024]

Spell “Seasons in the Sun”

Depeche Mode나 New Order 같은 이름들 덕분에 많은 이미지 순화가 이뤄져서 그렇지 Mute Records의 초창기 카탈로그를 보자면 이 레이블이 그 시절 어디 가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똘끼 넘치는… 레이블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초창기의 이름들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이름들 중 하나라면 역시 Boyd Rice일 텐데, 무려 Stumm 4번으로 Depeche Mode의 데뷔작보다도 먼저 나온데다… NON의 이름으로 나온 Boyd Rice의 앨범들의 수를 생각해 보면 Boyd Rice를 레이블의 가장 중요한 뮤지션들 중 하나라고 해도 많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논란거리로는 업계 최고봉일 인물인만큼 레이블로서는 용감하기 그지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80년대 초반이니까 가능했을 선택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절이라고 Boyd Rice가 정상인이었을 리는 없다는 생각도 든다.

Spell은 그나마 Mute에서 Boyd Rice가 내놓은 앨범들 중에서는 가장 ‘순한맛’에 가까울 프로젝트이다. 그래도 차트의 상단에 이름을 내밀던 메이저 팝 듀오의 멤버에서 네오포크를 대표하는 여성 뮤지션 중 하나로 변신한 Rose McDowall과 함께 만든 커버곡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싼티를 완전히 감추지 못한 드럼머신과 신서사이저 위에 Rose의 예의 그 ‘ethereal’한 보컬을 얹은 스타일로 꽤 ‘스푸키’한 내용들을 담은 러브송들을 풀어냈으니 이 둘이 함께 만든 음악으로서는 이만큼 안전한 선택도 없을지도? 하지만 Jacque Brel의 원곡인 ‘Seasons in the Sun’을 극우전사 Boyd Rice가 연주하는 아이러니함이 매력적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Dolly Parton의 곡인 ‘Down from Dover’도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선택일 것이다.

그래도 ‘Rosemary’s Baby(Lullaby Part 1)’나 ‘Stone is Very Very Cold’ 같은 곡은 이 듀엣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스타일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초에 러브송을 만질 사람들이 아닌데 굳이 러브송을 만진 나머지 제일 좋은 곡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본격 러브송과 거리가 있는 곡들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쓰고 보니 이게 칭찬인가…

[Mute, 19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