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der of Nosferat “The Absence of Grace”

Order of Nosferat에 대해서는 딱히 아는 바가 없다. Bekëth Nexëhmü나 Greve, Kroda 같은 밴드들을 내놓았던 Purity Through Fire에서 꾸준히 앨범을 내놓았던 밴드라는데, 일단 Nosferatu가 아니라 Nosferat라는 것부터가 눈에 되게 걸린다. Nosferatu라는 이름에 저작권 문제라도 있는가 싶지만 일찍이 Helstar의 “Nosferatu”도 있었거니와… 애초에 영화 노스페라투가 브램 스토커의 작품과의 저작권 시비를 피하려고 저 이름을 선택했던 걸 생각하면 저작권 문제는 아닐 것 같기도 하다. 애초에 밴드가 이 이름을 사용해서 뱉어낼 만한 수익을 얻기는 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각설하고,

밴드의 다섯 번째 앨범이라 하나 나로서는 처음 접하는 밴드의 앨범인데, 레이블이 통상 보여준 모습들이나 저 시커먼 커버에서 으레 생각하게 되는 스타일과는 달리 미드템포 위주의 전개에 던전 신쓰풍 키보드를 대거 차용한 류의 블랙메탈이다. 기본적으로 질감은 꽤 거칠기 때문에(이 레이블에 뭘 바라겠나) 어찌 들으면 좀 더 유치해진 멜로디를 얹어낸 Osculum Infame 풍의 음악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필요한 만큼은 다 해주지만 그렇다고 웅장하다고 하기는 이래저래 부족해 보이는 건반인만큼 Osculum Infame의 수준을 기대하면 좀 곤란하다.

그래도 ‘Devoured by Lurking Shadows’ 같은 곡의 극적인 맛은 나름 눈도장을 찍기는 충분해 보이고, 뱀파이어 컨셉 들고 나오는 밴드에게 낭만성 쫙 빼낸 차가운 사운드만을 요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니 때로는 ‘cheesy’한 이 멜로디도 이해해보려 하는 중이다. 그런 구석만 아니면 꽤 좋게 들었을 것이다.

[Purity Through Fire, 2024]

가난 사파리 : 하층계급은 왜 분노하는가

영국에서는 꽤 유명한 래퍼라는 저자가 쓴 자전적 에세이라는 소개문구와 꽤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선을 끌었다가 저자가 그동안 쓴 칼럼들의 제목을 늘어놓아 만들었다는 난삽한 표지 디자인으로 기껏 모았던 시선을 단숨에 흩어버리는 모습이 돋보이는 이 책은 저자의 약력과 소개문구가 무색할 정도로 랩이나 힙합과는 별 상관없는(바꿔 말하면 굳이 랩이나 힙합을 갖다쓰지 않더라도 책을 풀어가는 데 아무 지장이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런 류의 책이라면 Suede의 Brett Anderson이 데뷔 전 거지같았던 유년기를 회상하며 내놓은 “칠흑 같은 아침”을 떠올릴 수 있겠는데, 인종의 차이야 있겠지만 아무래도 둘 다 하위계층으로서 팍팍한 인생을 살다가 나름의 성공의 맛을 본 이가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자신의 멜로디메이커 기질이나 문학성을 무슨 음악을 듣고 무슨 글을 읽었다는 식으로 어쨌든 풀어내는 “칠흑 같은 아침”에 비해 더욱 음악 얘기를 쫙 뺀 이 책은 스코틀랜드 흑인 게토에서 자라난 저자가 풀어내는 가난에 대한 르포르타주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 게토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타고난 능력의 고하와 무관하게 정신적 위축, 정신적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저자는 이러한 스트레스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발언권의 부재를 지적한다. 말하자면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우리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논의에서 배제된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대개 실생활에서의 경험에서 비롯하는 만큼 꽤 타당해 보이는 이유를 동반한다. 심지어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마저 지역의 자활이 아니라 지역의 외부에 대한 의존을 심화시키면서 가난한 이들을 더욱 더 종속적인 위치로 몰아넣고, 결국 빈곤 지역은 계속해서 보존되는 일종의 사파리가 되는 것이다, 라는 게 책의 대략적인 결론이다.

그러니까 저자에게 랩은 결국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극복하고 자기애를 회복하는 방법이었던 셈이고, 비행청소년들의 교화(내지는 재사회화) 수단으로 랩을 가르쳤다는 소개글의 토막은 덕분에 좀 다르게 읽힌다. 이걸 뜨고 나서 옛날 생각 못 한다고 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가난을 딛고 일어섰다는 식의 ‘스웨그’를 강조하는 많은 힙합 뮤지션(또는 뮤지션 호소인)들의 모습보다는 이런 모습이 더 진정성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긴 금수저 물고 태어나 두꺼운 지갑을 내세우며 이걸 스웨그라고 덧붙이는 이들이 힙합 문외한의 눈에는 좀 많아 보였다. 그런 분들이 주변에 있다면 일독을 권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난 한 대 맞을까봐 안했다.

[대런 맥가비 저, 김영선 역, 돌베개]

Trolldom “I nattens sken (Genom hemligheternas dunkel)”

그래도 블랙메탈 좀 들었다면 꽤 많은 이들이 익숙할 Trelldom의 짝퉁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일단 노르웨이 출신도 아니거니와 음악도 Trelldom의 그것과는 꽤 다른 스웨디시 블랙메탈 밴드. 보통 atmospheric black 정도로 소개되는 모양이지만 사실 음악이 이 정도 되면 그냥 90년대 스타일의 키보드 적당히 깔아주는 심포닉블랙 정도로 소개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심포닉 딱지 달고 훨씬 화려하게 음악하는 밴드들이 많지만 이 정도를 심포닉이라고 하지 못한다면 90년대 키보드 들어간 노르웨이 블랙메탈 중 심포닉 소리를 들을 만한 앨범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이다. 각설하고.

작명 센스야 영 신통찮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요새 부쩍 이것저것 많이 하는 스웨디시 블랙메탈의 워크호스 Swartadauþuz의 프로젝트인데, 아마도 제일 유명한 본진이야 Bekëth Nexëhmü겠지만 최근 들어본 이 근면의 화신이 참여한 앨범들 중에서는 저 본진이 아니더라도 구린 게 한 장도 없었으니 A급을 넘어 S급인지는 좀 애매하지만 본인의 역량만큼은 충분히 검증됐다고 해도 맞을 것이다. 레이블도 Iron Bonehead인 것도 있고.

음악은 앨범명에서도 보이듯이 90년대 노르웨이풍의 블랙메탈이고, 굳이 비교하면 그 시절 Emperor나 “For All Tid”의 Dimmu Borgir에서 약간 포크 바이브를 뺀 정도의 음악인데(굳이 스웨덴 밴드도 비교대상을 찾는다면 Parnassus), 아무래도 Darkspace류의 음악을 참고한 듯한 건반 때문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들어보진 못했지만 역시 2022년에 나온 “Av gudars ätt…” 보다는 이 앨범이 살짝 더 모던한 스타일이라는 평이 많이 보이는 편인데, 이 90년대풍 진한 음악이 모던하다 한다면 아마 저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Dräparen av livets veke’ 처럼 90년대의 휘몰아치는 블랙메탈을 재현하는 지점을 마주하면 모던 운운하는 얘기는 조금은 너무 나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Trelldom보다 더 마음에 든다.

[Iron Bonehead, 2022]

Time Requiem “Unleashed in Japan”

보면 실용음악의 세상에서 Dream Theater나 Liquid Tension Experiment(그 중에서 ‘Acid Rain’)을 커버하는 이들은 완성도를 떠나서 꽤 자주 볼 수 있는 반면 이제는 Yngwie Malmsteen을 커버하는(특히 ‘Far Beyond the Sun’ 말고 다른 곡을 커버하는) 이는 정말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어렵기가 Dream Theater가 Yngwie에 뒤처진다고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그냥 오늘날 프로그레시브 메탈과 네오클래시컬 메탈의 장르로서의 입지 차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사실 냉정히 말한다면 진창이냐 시궁창이냐 고르는 것과 비슷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따진다면 후자가 더 심각해 보이는 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확실히 자신의 뿌리를 네오클래시컬에 있음을 밝히는 메탈 뮤지션 중 나름대로 확실한 존재감을 보여준 사례로 Richard Andersson 이후의 인물을 고르기는 꽤 어려울 것이라 생각한다. 기껏해야 Christian Muenzner 정도랄까? 물론 다른 뮤지션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Adagio와 Time Requiem 이후 이만큼 네오클래시컬을 전면에 내밀면서 나름의 성공을 거둔 밴드는 그리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리고 Stephan Forte 식의 어설픈 익스트림메탈 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이에게는 둘 중에서는 Time Requiem이 2000년대 초반 이 장르를 선도했던 대표주자로서 보인다. 말하자면 망해가는 집안이 내놓은 개중 제일 똘똘한 자식(이라지만 사실 고생도 충분히 오래 한 자식) 같은 셈이다.

그래도 이 똘똘한 자식에게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준 건 역시나 일본이었고 덕분에 1집 한 장 내놓은 밴드가 라이브앨범을 내는 기염을 토하는 사례가 나왔는데, 하긴 말이 1집 한 장이지 Majestic 등으로 이전부터 이미 활동해 온 테크닉 괴수들이니 큰 문제야 없었겠지만 9곡 중 3곡이 다른 밴드의 커버인 라이브앨범이라니 구색은 좀 머쓱하다. 하지만 Majestic이나 Time Requiem이나 사실 똑같은 놈들이 이름만 바꿔서 비슷한 음악하는(후자가 좀 더 프로그하긴 하지만) 밴드임을 생각하면 크게 문제삼을 것까진 아닐 것이다. 오히려 깔끔한 음질로 뽑아내는 무시무시한 밴드의 테크닉은 지금은 가도 몇 물은 갔을 이 장르가 한때 어떻게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을 수 있었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다. ‘Time Requiem’과 ‘Visions of New Dawn’이 아무래도 앨범의 백미.

[Regain, 2003]

Ace Frehley “Frehley’s Comet”

볼 때마다 헷갈리는 것이 이 앨범을 Ace Frehley의 솔로 앨범이라고 불러야 하는지 Frehley’s Comet이라는 밴드의 앨범이라고 불러야 하는지인데, Ace Frehley가 결국 모든 작곡과 작사를 맡았고 나머지 멤버들은 누가 뭐래도 어쨌든 Ace Frehley보다는 유명세 덜한 세션맨에 가까웠으며 무엇보다 저렇게 앨범 커버에 자기 이름을 떡하니 박아놓는다면 솔로작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나 하는 게 사견이다. 하지만 밴드임을 강변하면서 자기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박아놓던 윤도현밴드(지금이야 YB라고 부른다지만)의 사례를 떠올리니 Ace Frehley 본인도 이 앨범을 자기 솔로작이라고 생각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어쨌든 (솔로작이라고 칭한다면)1978년의 “Ace Frehley” 이후 두 번째 솔로작인 이 앨범을 Kiss와 비교하지 않을 수는 없다.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Creatures of the Night”나 “Lick It Up”과의 비교는 당연하지만, 그보다는 이 앨범이 좀 더 글램다운 면모를 강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Rock Soldiers’나 ‘Breakout’ 같은 곡은 영락없는 Kiss의 스타일이지만 Russ Ballard의 곡을 커버한 ‘Into the Night’ 같은 곡은 Kiss와 비교하기엔 좀 더 단정한 팝 록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내놓고 Paul Stanley를 따라하고 있는 Tod Howarth의 보컬을 듣자면 그저 Kiss의 음악에서 Ace Frehley의 개성을 좀 더 강조한 스타일을 담고 있다 하는 게 맞아 보인다. 하긴 어찌 보면 글램의 화신이나 다름없을 우리의 스페이스맨의 개성을 강조했으니 이 앨범의 글램스러움은 당연한 결과다. 헤어메탈의 기준에서 본다면 Kiss는 물론, Kiss 패밀리가 내놓은 여러 앨범들 가운데에서도 손꼽히는 사례일 것이라 생각한다.

[Atlantic, 1987]